국회 수상한 60억 리모델링 의혹 추적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8.06 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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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돈 거래 의혹으로 '와글와글'

[일요시사=정치팀] 지난 7월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수상한(?) 공사가 시작됐다. 그 누구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호소한 적이 없었지만 국회가 약 60억원을 투입해 본회의장을 리모델링하는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단지 내구연한이 지났다는 이유에서였다. 건물 몇 채를 짓고도 남을 돈이 겨우 본회의장 리모델링 공사에 투입됐다. 여론은 냉랭했지만 국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이 공사는 뒷돈 거래 의혹에 휩싸였다.



6월 임시국회가 끝난 직후 국회가 수상한 공사를 시작했다. 지난 7월3일부터 무려 60억원을 투입해 국회 본회의장 내부 전산시스템과 노후화된 장비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60억은 껌 값

하지만 지금까지 본회의장의 장비를 사용하면서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불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심지어 상당수의 의원들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추경을 편성하는 등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조금 더 기기를 사용해도 상관없는 것 아니냐며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리모델링 예산을 승인해준 것은 국회의원들이지만 예산이 편성되어있다고 해서 꼭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회의장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안건처리를 위한 표결이 전부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진 회의자료를 열람하거나 간단히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지만 본회의가 시작되면 안건처리를 위한 기능만 사용할 수 있다. 과거 본회의 도중 인터넷을 사용해 딴짓을 하는 의원들의 모습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탓이다.

고작 표결처리를 하는데 이용되는 본회의장 내부 장비를 교체하기 위해 60억이나 사용된다는 것은 일반 국민들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회는 이번 공사와 관련해 지난 4월 본회의장 전산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다운됐던 사례를 지적했다. 이들 장비가 2005년에 설치, 내구연도인 5년이 지나 이미 공사시기를 3년여 가량 넘겼다는 설명이다.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달 3일 "이번 개보수는 2005년 도입된 디지털 본회의장 시스템이 내구연한 5년을 초과해 노후화되면서 개선이 시급했기 때문"이라며 "8월 말까지 본회의장 개보수 공사가 진행 된다"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 2005년 약 25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각 의원들의 의석마다 PC를 설치하고 대형 전광판을 통해 프레젠테이션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 디지털화를 실시했다. 한때 본회의 중 국회의원들이 개인PC를 통해 연예인 사진 등을 감상하고 있는 장면이 여러 차례 언론에 포착돼 25억짜리 국회PC방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지만 국회 디지털화사업 이후 본회의의 진행 속도는 실제로 무척 빨라졌다. 별도의 개표작업 없이 투표가 끝나자마자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의회에 이런 시설을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국회의 설명대로 내구연한인 5년마다 60억 이상을 들여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면 가격대비 효용성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 공사에 들어가는 사업비는 59억9940만원이다. 교체대상은 의석단말기 350대 (의원석 299대·국무위원석 26대·의장단석 13대·기타 12대)와 좌우 전광판 2대, 전산서버 등이다. 의원들이 본회의 심의 안건을 신속하게 검토해 표결에 임할 수 있도록 하고, 대정부질문을 하면서 각종 통계자료나 영상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회의원들조차 "아직 멀쩡한데 왜 바꿔?"
뒷돈 의혹 보고하자 경찰 사무실 폐쇄?

먼저 의원들이 본회의 표결 전 안건을 살펴보고 전자투표를 하는 의원 단말기는 기존의 감압식 터치스크린 방식에서 스마트기기 방식의 정전식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바뀐다. 화면의 해상도도 기존의 1024 x 768픽셀에서 1366 x 768픽셀로 업그레이드 해 밝기도 개선된다.

전광판도 기존의 램프방식에서 내구성과 화질이 뛰어난 3.5mm 풀-컬러의 LED방식으로 교체하고, 화면의 크기도 기존 210인치에서 230인치로 확대하는 등 각종 통계자료나 영상자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세부 물품가액을 살펴보면 단말기가 16억4390만원, 전광판 16억5600만원, 서버 22억5500만원이다.


국회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 또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에 따라 조달청 공개경쟁입찰로 실시됐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아무리 최첨단 기기로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보기엔 여전히 입이 딱 벌어지는 금액이다.

때문에 국회 주변에선 이번 공사와 관련해 뒷돈이 오간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난달 17일에는 국회가 국회의사당 본청에 있던 경찰 상주 사무실을 폐쇄했는데 이를 두고 최근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 정보과 형사들이 국회 본회의장 리모델링 공사 과정에서 국회 고위공직자가 뒷돈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첩보를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 국회의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물론 국회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국회 측은 경찰 사무실의 폐쇄 이유로 "사무실을 경찰 경비대가 아니라 정보과 형사들이 주로 사용하면서 근거 없는 추측성 정보들이 무분별하게 생산·전파된 데 대해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회 내 경찰 사무실은 그동안 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 간부가 국회에 출석하거나 방문할 때 대기실, 휴게실 용도로도 사용해왔기 때문에 이 사무실을 경찰 측과 상의도 없이 갑자기 폐쇄한 것은 뭔가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국회는 지난해 완공한 제2의원회관과 관련해서도 비리의혹을 받고 있다. 제2의원회관과 관련한 비리의혹은 당시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던 이한구 의원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정도였다.

이 의원은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제2의원회관 건립과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도 자꾸 돌고 있다"며 "이것을 규명해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국회 주변에선 제2의원회관 건립을 놓고 온갖 부정비리 스캔들이 소문으로 돌았었다.

공감 얻기 힘들어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11년 한 소방서에서는 예산이 없어 내구연한이 지난 장비를 사용하다 소방관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보면 안전과 관련한 교각이나 소방장비 등도 내구연한이 지났지만 예산이 없어 교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데 국회 본회의장은 아무도 리모델링의 필요성을 지적하지 않았고, 내구연한이 지났다고 해서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처음부터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힘든 공사였다. 뒷돈 거래 의혹이 불거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라고 지적했다.


[국회 본회의장 공사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보는 8월 4일자 제917호 10면 [뒷돈 거래 의혹으로 '와글와글'] 제하로 "국회가 단지 내구연한이 지났다는 이유에서 약 60억원을 투입해 본회의장 공사를 시작했는데 이 공사와 관련 뒷돈 거래 의혹이 제기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해당 공사는 내구연한이 3년이나 경과했을뿐만 아니라 본회의장 시스템 상의 장애 발생으로 불편함이 야기되어 공사하는 것으로 밝혀져 이를 바로잡습니다.

또한 국회사무처측은 "해당 공사는 향후 5년간 총 60억원의 예산을 사용하게 되는 것으로 관련 법령에 따라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공개경쟁 방식으로 투명하게 진행하고 있어 뒷돈 거래 의혹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회는 항상 '공사 중'
예산 못써서 안달 났나?
 

현재 국회는 공사 중이다. 국회 제3어린이집 건립은 시민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행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제3어린이집은 기자주차장 부지에 들어서며 모두 107명을 수용하게 된다. 

국회 경비대 건물도 내년 말까지 새롭게 만들어진다. 1979년에 건설된 현재의 건물을 허문 자리에 7월부터 공사에 착수, 1년 반 만에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47억44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국회 연수원은 강원도 고성군으로 확대 이전된다.


총대지 39만4139㎡(12만 평)에 336억원이 들어간다. 이밖에도 국회사무처는 내년 예산에 후생동을 개축해 프레스센터를 이주하는 등의 계획안을 제안할 계획이지만 기획재정부의 반응은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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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