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NLL(서해북방한계선) 논란을 놓고 여야 간 대치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달 30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국가기록원에 있는 회의록 원본의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문 의원은 공개된 원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확인될 경우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초강수 배수진을 쳤다. 문 의원의 예상 밖 초강수 대응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문 의원의 진짜 노림수는 무엇일까?
NLL 논란이 다시 정치권을 덮쳤다. 지난 6월20일 새누리당 소속 정보위 위원들이 단독으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을 열람한데 이어 지난 6월24일에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전문을 전격 공개했다.
대선 때도 안 버린 금배지
NLL 논란을 놓고 여야 간 대치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자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오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가기록원에 있는 회의록 원본의 공개를 요구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확인될 경우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초강수 배수진을 쳤다.
지난 대선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직 포기 선언에 맞서 문 의원도 의원직을 버려야 한다는 당 안팎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의원직을 내려놓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무척 호전적인 제안이었다. 문 의원의 정계 은퇴 배수진은 정상회담 회담록 원본이 전격 공개된 지 5일 만에 나왔다. 그 뒤에 숨겨진 노림수는 무엇일까?
우선 문 의원 측은 이번에도 NLL 논란을 유야무야 덮고 가면 정치인생 내내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의식한 듯하다. 어차피 한번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라는 이야기다.
지난 대선기간 새누리당은 NLL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정문헌 의원 주장을 바탕으로 문 의원을 전방위로 공격했다. 민주당은 정 의원 등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정 의원의 발언을 허위사실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NLL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문 의원을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문 의원으로서는 이번 기회가 NLL 의혹을 확실하게 풀고 넘어갈 수 있는 호기라고 판단한 듯하다. 물론 그 바탕에는 노 전 대통령은 절대로 NLL 포기발언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자신이 실제로 사퇴하게 될 일은 없다는 강한 자신감이 녹아있다.
또 문 의원은 새누리당에 대한 공개제안에서 "2007년 남북회담 전후의 논의에 당시 김장수 국방장관과 김관진 합참의장, 윤병세 외교안보수석 등 지금 박근혜정부의 인사들도 참여했다. 특히 윤병세 수석은 회담 준비자료를 총괄했고, 김장수 국방장관은 노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정상회담 후의 국방장관 회담에서 NLL을 고수한 바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화록 원본 공개 후 만약 NLL 포기발언이 있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관철된다면 박근혜정부의 국가안보실장,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서도 큰 부담임에 틀림없다. NLL 논란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 문 의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NLL 덮고 가면 정치인생 내내 걸림돌
존재감 없단 논란 끝내고 영향력 확대
문 의원이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여론의 힘도 컸다. 사실 그동안 민주당 내에서는 친노진영의 강경론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대화록 전문이 공개된 이후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NLL 포기 발언이 아니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여론이 문 의원이 NLL 난국을 강하게 돌파할 근거로 작용한 것이다.
문 의원 측은 NLL과 관련해 성명서와 보도자료를 내는 과정에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충분히 사전에 상의했다고 밝혔다. 처음엔 국정원 사건의 물타기라고 여겼던 NLL 논란을 더욱 이슈화 시킬 것으로 우려돼 만류했던 당 지도부도 여론의 동향이 민주당에 유리한 것으로 판단되자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문 의원의 행동이 다음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 의원의 정계 은퇴 배수진을 친 이후엔 구주류로 물러났던 당내 친노(친노무현)계가 문 의원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결집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이번 NLL 논란을 계기로 문 의원과 친노계가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번 사태가 오히려 문 의원과 친노계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동안 노무현의 그늘에만 머물러 있던 친노계와 문 의원이 이제 친문(친문재인)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내에서 문 의원의 영향력이 그만큼 확대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문 의원은 한때 당 권력의 정점인 대선후보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하지만 현재는 일개 초선의원일 뿐이고 대선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자중해야 한다는 당내 여론 때문에 행동반경이 크게 제한되어 있었다. 이번 사태야 말로 자신의 정치적 행동반경을 크게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번 정계은퇴 배수진이 문 의원에게 독이 될 것이란 주장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에서는 "NLL 포기 논란은 '포기'라는 용어를 썼느냐 안 썼느냐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 정상회담 이후 노무현정부 때까지 NLL에 대해 불투명하고 유보적이며 양보할 듯한 분위기를 많이 보여서 국내에서 우려가 많이 제기됐다"며 "(2007년)10·4 남북정상회담 때 그것이 표면화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주장을 적용하면 대화록 원본이 공개돼도 열람한 의원들 사이에서 해석에 대한 공방이 이어질 것이며 결국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차기대권 발판?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문 의원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벌써부터 보수진영에서는 문 의원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간헐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마저 문 의원에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기사만 아니라면 어떤 기사라도 유익하다"라는 말이 있다. NLL 이슈가 오래 지속될수록 문 의원의 존재감 또한 상승될 것이며 당내 입지 또한 탄탄해진다는 것이다. 문 의원으로서는 대선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없단 일각의 비판들을 단숨에 불식시키고 영향력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어찌됐든 있는 듯 없는 듯 국회에 출석만 하던 지난 과거보다는 확연히 나아질 것이란 기대다.
문 의원은 과연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NLL 논란을 발판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