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맴도는 '정치낭인' 집중탐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7.01 1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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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정치인도 삐끗하면 '떠돌이'

[일요시사=정치팀] '고시낭인'이란 말은 이미 익숙하지만 '정치낭인'이란 단어는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정치1번지 여의도 주변엔 늘 정치낭인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누구일까? <일요시사>가 정치권을 맴도는 정치낭인들의 삶을 집중 탐구해봤다.



'낭인(浪人)'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직업이 없이 허랑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사전에 나온 해석만을 놓고 보면 흔히 말하는 ‘백수’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은 백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뚜렷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가 이뤄지면 언제든지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정치예비군?

지난 대선기간 민주당의 한 대선경선후보의 캠프에서 일했던 A씨는 대표적인 정치낭인이다. 특별히 할일은 없지만 그는 매일 여의도로 향한다. 대선캠프에서 일하면서 친분을 쌓은 현직 의원보좌진들이나 당직자들을 만난다. 이렇게라도 인맥을 유지해두면 나중에라도 자신을 다시 찾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보내고 설령 약속이 없더라도 여의도 주변 카페를 찾아 시간을 보낸다. 여의도를 떠나있으면 정치적 감각이 떨어질 것 같다는 이유다.

지금은 무척 꼴이 우습지만 이들은 엄연한 '정치예비군'이다. 줄만 잘 닿으면 백수에서 별정직 4급 공무원인 보좌관으로의 수직 신분상승도 허황된 꿈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신분상승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 보좌진의 전문화, 고학력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보좌진들이 '몸값'을 올리기 위해 전문성을 한층 강화하고 있는데다가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감시 평가로 인식이 바뀐 의원들이 전문 입법보좌관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충성심과 우직함만으로 버텨왔던 이들이 정치낭인으로 전락한 후 다시 중앙정치로 돌아오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때문에 일부는 정치낭인을 넘어 '정치브로커'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당장 생계가 걱정되지만 그동안 정치권 경력 외에는 마땅히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실상 명예직인 '~위원'과 같은 명함을 내세워 민원을 해결해줄 것처럼 과시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때 실세로 군림하던 유명 정치인도 낙선하고 나면 수년 간 정치낭인의 길에 들어서기도 한다. 특히 유명 정치인이 떠돌이로 전락하게 되면 사정은 더 가혹하다. 이들은 이미 대중에 얼굴이 알려져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기도 애매하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출신 정치인의 경우 낙선 후에도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가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치연구소 등을 운영하며 끊임없이 정치권을 맴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회의원 두 번만 하면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다. 의원들이 버스요금이나 생필품 가격을 몰라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있는데 어쩌면 당연하다. 의원들이 재선에 목을 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정치인은 낭인시절을 회고하며 "어떤 행사장에 내빈으로 초대되어 갔는데 내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현직 시절엔 그런 일이 일어난 적도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행사주최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황급히 자리를 마련해 줬을 텐데 참 서러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유력 정치인의 경우는 정치낭인 시절도 별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낭인 시절 오히려 주변에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낭인 시절 유력 정치인과 인연을 맺어두면 나중에 그가 중앙정치에 복귀할 경우 큰 인적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낙선했지만 얼굴 팔려 취업도 창업도 애매
선거판 기웃거리다 범죄 유혹 빠지기도


게다가 실세로 군림하는 현역 정치인에게 줄을 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거물급이었더라도 정치낭인 시절엔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또 정치낭인 시절 맺은 인연은 더 끈끈하고 깊기도 하다.

실제로 정치낭인으로 전락해 잊혀져가다 화려하게 복귀하는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창희 국회의장이다. 그는 8년간을 원외에서 머물렀다. 지난 17ㆍ18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하자 주위에선 “강창희의 정치인생도 끝”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화려하게 부활해 충청권 최초로 국회의장직까지 맡았다.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이야기다. 그는 한때 정치낭인들의 롤모델로 불리기도 했다. 윤 전 대변인은 <문화일보> 기자 출신이긴 하지만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종편채널을 전전하던 '뜨내기 정치평론가'에 불과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돼 정권실세로 불리게 되니 정치낭인들의 롤모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 물론 윤 전 대변인의 인생역전은 한 순간의 실수로 끝나버리긴 했지만 정치낭인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나마 금배지라도 달아본 이들은 정치낭인들 사이에선 부러움의 대상이다. 정치낭인 중엔 평생 선거에 도전하고도 배지 한번 못 달아본 이들이 더 많다. 특히 선거판에 발을 잘못 들여놓았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도박중독'과 비견되는 '선거중독'이다. 선거를 한번 치르는데 들어가는 돈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유명 정치인들이야 후원금으로 선거비용을 충당하고 선거가 끝난 후엔 또 대부분을 보전 받지만 보통의 정치지망생들은 자비를 들여 선거에 임한다. 또 선거 과정에서 일부는 선거법을 어겨 팔자에도 없던 전과를 얻어 인생이 꼬이기도 한다. 정치낭인들의 슬픈 운명이다. 

물론 순수한 정치낭인들도 있다. 나름대로 정치경력도 있고 정치판에 대한 식견도 갖고 있지만 현역에서 은퇴해 정치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이다. 이들은 여의도를 오가며 전당대회나 중앙위원회, 전국위원회 등을 통해 당무에 참여 하는 것 자체에서 보람을 찾는다. 사실상 정치봉사활동인 셈이다. 젊은 청년층에서도 오직 정치참여만을 목적으로 순수한 정치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많다. 

정치브로커?

한편 정치낭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이들이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력도 없이 정치권을 맴돌다 '한방'만을 노린다는 비판이다. 또 이런 정치낭인들이 늘어날수록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가 된다. 앞서 언급한 정치브로커 사례처럼 각종 불법이나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도 커진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치낭인들을 정치판이 아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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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