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친이계 '필생전략' 세 가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5.28 09: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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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항할까? 뱀 머리 될까? '최후의 선택'

[일요시사=정치팀] 친이계의 서러움이 극에 달했다. 최근 마무리 된 새누리당의 당직 인선에서 당 사무총장 등 핵심요직을 모두 친박계가 꿰찼기 때문이다. 이번 인선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친이계는 겉으로는 '계파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내는 서러울 수밖에 없다. 격세지감이다. 친박계가 모두 장악한 새누리당에서 친이계가 반드시 살아남기 위한 필생전략은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새누리당이 지난 22일 큰 틀에서의 당직 인선을 마무리 했다. 이번에 새롭게 출범한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 2기 체제는 한눈에 봐도 친박계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는 평가다. 지난 20일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홍문종 의원은 지난 대선 기간 중 매일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친박계의 핵심 중 핵심이다.

원조 친박
원조 친이

집권당의 사무총장은 당의 살림살이와 실무적인 공천 작업을 주도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당초 황 대표는 사무총장 후보로 다른 의원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홍 의원이 임명됐다. 사무총장 인선은 최고위 의결사항이지만 지금까지는 당 대표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최고위원들도 못 이기는 척 손을 들어주던 것이 관례였다.
뿐만 아니다.

이번에 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유일호 의원은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고,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임명된 김재원 의원 역시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과 함께해온 '원조 친박'이다. 새누리당의 1차 당직 인선이 '친박일색'이라는 논란이 일자 정치권에서는 남은 당직에는 비박계가 중용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 22일 발표된 2차 인선에서도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선후보 수행단장 출신인 윤상현 의원을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했고, 제1사무부총장에는 역시 친박계인 김세연 의원이 낙점됐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의 사촌 홍소자씨(육영수 여사의 조카)의 남편인 한승수 전 국무총리의 사위이기도 하다.


겉으로 계파구분 의미 없다지만…
친박 몰아준 인선에 서운한 친이

이미 새누리당 최고위원 7명 중 6명이 친박계고, 친박계의 좌장인 최경환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된 상황이다. 향후 남은 당직에 비박계 몇 명이 인선된다 해도 큰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새누리당이 친박계에 완전히 장악된 셈이다.

이번 새누리당의 당직 인선을 지켜본 친이계 의원들은 일단 애써 담담한 모습이다. 수도권 지역 친이계 한 재선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퇴임한 마당에 친이계, 친박계가 무슨 소용이냐. 다 같은 새누리당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속내는 서운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함께 힘을 합쳐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친이계는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게다가 지난 정부에서 친박과 친이 사이에 패인 갈등의 골을 생각해보면 친이계는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아무리 '다 같은 새누리당'이라고 외쳐도 속으로는 정치보복이나 당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는 신세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친박계는 '공천 학살'로 대표되는 치욕적인 정치적 핍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정가에선 공공연히 "박근혜가 집권하면 문재인보다 더 세게 친이계 보복에 나설 것"이란 추측들이 오갔다. 이제 친이계가 친박일색인 새누리당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후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과연 친이계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전략들은 무엇이 있을까?

친박 받아 줄까?
유리천장 우려

첫 번째는 '친박으로의 전향'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조 장관은 지난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친이계다. 그러나 조 장관은 지난해 총선에서 선대위 대변인을 맡아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성공적으로 보좌하며 인정을 받았다. 이후 조 장관은 대선기간 박근혜 대선후보의 대변인으로서 활약하며 존재감을 키웠고, 결국 박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여성정치인들을 모두 제치고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외에도 최경환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에 선출된 친이계 김기현 의원과 대선 기간 새누리당 대변인을 맡았으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박선규 전 의원 등, 당초 친이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사례는 많다.

게다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친박일색 당 지도부와 청와대 인사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 앞으로의 인선에서는 계파 분배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도 있다. 전향한 친이계는 언제든지 이에 대한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현 정부와 친박계에 섣불리 각을 세우기보다는 유화제스처를 보내며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친이계가 살아남는 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 전 대통령이 퇴임한 마당에 친이계라는 명찰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다만 문제는 아무리 친박계로 전향하려 해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막히는 경우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같은 친박이라도 지난 2007년 대선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과 함께 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진골'이니 '성골'이니 따지는 마당에 친이계가 아무리 친박으로 돌아선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하물며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한때 탈박이었다는 이유로 김무성 의원을 깊이 신뢰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이처럼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사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이 친이계 출신들을 믿고 중용하겠느냐. 친이계가 중용된다고 해도 보여주기식 인선 몇 명으로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뭉치면 산다
소수정예 친이

두 번째 전략은 현 정부 및 당과 거리를 두며 친이계가 '독자세력화' 하는 것이다. 현 정부와의 거리두기는 현재 가장 많은 친이계 의원들이 활용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박근혜정부 들어 상당수의 친이계 의원들은 '미스터 쓴소리'를 자처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자칭 타칭으로 친이계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재오, 이병석, 정의화, 심재철, 김기현, 김영우, 김재경, 이군현, 권성동, 주호영, 정병국, 김용태, 조해진, 원유철, 김성태, 정문헌, 이철우, 신성범, 김학용 의원 등이다. 이외에도 비박계로 분류되는 황영철, 남경필, 정몽준 의원 등과 중도성향의 의원 몇 명만 더 합류한다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도 남을 정도다. 이들이 당내에서 독자세력을 형성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권력이 된다.

특히 친이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인 지난 18대 국회에서 실세로 군림했던 이들로 당연히 모두 재선 이상이다. 현재 상임위에서 위원장이나 간사 등을 맡고 있는 이들도 많다. 소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정조준한 박 대통령
정치보복 당할까 전전긍긍 친이

반면 친박계 중 78명은 이른바 '박근혜 키드'로 불리는 초선의원들이다. 현재 친박계가 친이계보다 세력은 훨씬 크지만 막상 전면적으로 대립하게 된다면 오히려 친이계한테 친박계가 끌려 다닐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괜한 계파싸움으로 이들을 적으로 돌린다면 박 대통령과 친박계 모두에게 부담이다. 친이계가 독자세력화에 성공한다면 친박계로 전향하는 것보다 향후 정국 운영과정에서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8대 국회에서의 친박계다. 당시 친박계는 당내 소수 계파 임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항들에 대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서 "진짜 실세는 친박계"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이계가 당내에서 독자세력화 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탈당해 신당창당 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꾸준히 돌고 있다. 친이계의 탈당 시나리오는 안철수 무소속 신당과 힘을 합치는 것부터 독자적 창당, 이른바 친박 중심에서 밀려난 원박 및 중도성향 의원들과 힘을 합치는 방향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이미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권력은 누구?
친이계의 선택은?

세 번째 전략은 '당내 미래 권력에 줄을 서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오는 2016년 치러진다. 박근혜정부의 임기 말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확인했듯이 임기 말 실시되는 총선은 대통령의 영향력이 미치기 어렵다. 오히려 지난 총선에서 친이계가 대거 탈락했던 것처럼 친박계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또 다음 총선 때에는 공천을 받는다고 해도 역대 정권 임기 말 예외없이 불어 닥쳤던 정권 심판론에 자칫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섣불리 친박계로 이동하기보단 현재의 위치에서 당내 권력의 이동을 관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의 공천권은 분명 미래권력이 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이계로서는 지금 당장 친박계와 친하게 지내며 무게중심을 이동한다 해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한편 친이계가 절체절명의 선택을 해야 할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이명박정부의 핵심 사업인 4대강 사업과 한식세계화 사업을 국회에서 감사 청구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줄줄이 전 정부 정책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한 것도 친이계를 더욱 조급하게 하고 있다. 국정원 사건 등은 이미 이 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 같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 친이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과연 위기를 극복하고 옛 영광을 다시 누릴 수 있을까? 정치권의 이목의 집중되는 요즘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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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