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팬클럽' 골칫덩이 전락 사연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5.15 13:15:58
  • 댓글 0개

"팬클럽 회장이 국회의원보다 낫다고?"

[일요시사=정치팀]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예외 없이 임기 말 친인척 및 측근비리로 골머리를 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무엇보다도 친인척 및 측근비리의 근절을 역설했던 이유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하나 더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있다. 바로 30여개에 달하는 그의 팬클럽들이다. 최근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측근들보다 이들을 향한 우려가 더 높아지고 있다. 어찌된 사연일까? <일요시사>가 추적해봤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사모'는 우리나라 정치인 팬덤의 시초로 꼽힌다. 여느 정치인들도 지지모임 하나씩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당시만 해도 노사모만큼 순수하고 열광적인 지지모임은 유례를 찾기 힘들었다.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지지모임은 대부분 해당 후보에 대한 줄서기 성격이거나 지역주의 또는 해당 정당과 결합된 측면이 강했다. 따라서 정치인이 선거에서 패하거나 정당을 옮길 경우엔 지지모임도 쉽게 와해되곤 했다. 이와 비교할 때 노사모는 달랐다. 노사모는 순수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팬클럽 성격이 강했다.

노사모 명과 암
박사모는 어떨까?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고집하다 낙마했을 때도,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민주당을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가장 큰 힘이 돼줬던 조직이다. 노사모가 팬덤이라고까지 불린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노사모를 성공적인 지지모임의 롤모델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노사모는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지난 해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가 민주당 공천비리와 연루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단순 팬클럽으로 출발한 단체였음에도 규모가 커지다보니 일부 간부진이 비리와 연루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치인 팬덤의 양면성을 잘 나타내주는 사건이었다.


팬클럽 회장이라고 무시했다간 큰 코 다쳐
웬만한 중진급 실세, 선거 때마다 큰 힘

이 같은 사례와 비교할 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현재 박 대통령의 팬클럽은 대략 30여개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호박가족, 박사모, 근혜동산, 근혜사랑, 뉴박사모 등 이른바 5대 메이저 팬클럽과 청산회, 대박산악회, 각 지역별 희망포럼, 박지모(대한민국박근혜지지모임), 박근혜써포터즈, 근혜울타리모임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팬클럽들이 난립하고 있다.

이들은 워낙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고 또 쉽게 통합되거나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 현재로선 정확한 숫자 파악조차 어렵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팬클럽은 역대 정치인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메이저급 팬클럽들은 조직력 또한 무척 끈끈하다. 회원들 간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것은 기본이고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고 매년 창립행사도 연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한 팬클럽은 창립대회를 위해 대전의 한 체육관을 통째로 빌렸을 정도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기간 온갖 악재를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팬덤의 영향이 컸다.

엄청난 규모
양날의 검

하지만 박근혜 팬클럽들의 엄청난 규모와 조직력은 박 대통령으로서는 양날의 검이다. 이 같은 규모와 조직력 때문에 정치권에선 박근혜 팬클럽들이 노사모보다 비리에 연루될 개연성이 훨씬 더 크다며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에서는 자원봉사성격의 외곽조직인 '한강포럼' 홍 모 대표가 수억원의 돈을 수수한 정황이 포착돼 박 대통령을 난감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가장 규모가 큰 팬클럽인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을 둘러싸고 온갖 비리 의혹이 끊이질 않아 눈총을 받았다. 결국 정 회장은 한 박사모 회원으로부터 사기와 횡령 혐의로 고소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사태를 계기로 박사모에서 분화되어 나온 단체가 뉴박사모다.


비리 연루가 아니더라도 일부 팬클럽 회원들의 돌발행동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박 대통령의 팬클럽 회원들은 '박근혜교 신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성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대선 경선 기간 박 대통령의 한 열성지지자는 박 대통령을 비난했던 김문수 경기지사의 멱살을 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4·11 총선 기간에는 충남 옥천군에서 '행복플러스 희망포럼'이라는 단체가 지역 주민들에게 향응을 제공하다 적발돼 지역 주민들이 역대 최고액인 2억2400여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박 대통령의 팬클럽 관련자들이 비리와 연루되거나 사고(?)를 친다면 직접 연관성은 적다고 해도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의 팬클럽들을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인 만큼 박 대통령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을 관리하는 민정수석실은 박 대통령의 팬클럽까지는 관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팬클럽 현황을 살펴보면 박 대통령의 팬클럽 중 가장 대표적인 단체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박사모는 지난 2004년 정광용 회장이 인터넷 카페로 시작해 현재 온라인회원 7만여명, 오프라인회원 18만명에 달하는 박 대통령의 최대 팬클럽이다. 대부분 중장년층으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유세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박 대통령에게 큰 힘을 보탰다.

때문에 일반인들은 박사모가 박 대통령의 공식 팬클럽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공식 팬클럽은 호박가족(회장 임산)이다. 이 두 단체와 함께 근혜동산, 근혜사랑, 뉴박사모 등이 박 대통령의 5대 팬클럽으로 꼽힌다.

단체 난립
통합 어려워

호박가족이 박사모를 제치고 박 대통령의 공식 팬클럽으로 지정된 것에는 사연이 있다. 박사모는 명실상부 박 대통령의 팬클럽 중 가장 많은 회원수를 자랑한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전국적인 조직망도 탄탄하다. 하지만 박사모의 정광용 회장은 지난 2007년 17대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의 경선 대결에서 패배한 후 이 후보에 대한 지지유세에 나서겠다고 하자 이에 반발해 당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경선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한 박 대통령이 팬클럽 때문에 오히려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정 회장의 행보가 박 대통령에게 오히려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판단한 타 팬클럽 회원들은 정 회장에게 맞섰고, 박사모에 대응하기 위해 호박가족을 탄생시켰다. 이후 박 대통령도 호박가족에 힘을 실어줬다. 이로 인해 호박가족은 사실상 박 대통령의 인증을 받은 유일한 공식 팬클럽이 됐지만 회원수는 여전히 박사모가 앞서고 있다.

한편 박근혜 팬클럽 회원들은 팬클럽이 난립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절감하고 팬클럽의 통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후 주요 5개 단체는 매달 대표자회의 및 실무자회의를 열어 박 대통령을 도울 수 있는 방안들을 논의하며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통합은 쉽진 않아 보인다.

단체 난립, 잡음도 많은데 "뾰족한 수 없네"
박사모는 노사모와 다를까? 건전한 비판 기대

표면적인 이유는 팬클럽마다 개성이 너무 뚜렷해 섣부른 통합이 역효과만 부른다는 것이다. 아직까진 박 대통령의 팬클럽 단체들은 통합보다는 연대에 초점을 맞춘 협조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전국 단위의 대외적 행사가 있을 때 서로 연합해 치르거나 측면지원을 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각 단체들이 통합하지 못하는 것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각 단체들이 통합하면 대부분의 현직 회장들이 직을 내려놔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팬클럽 지도부는 아무래도 박 대통령과 소통할 기회가 많고, 팬클럽 운영과정에서 다양한 기득권을 가지게 된다. 일부 팬클럽 운영진이 선거 때마다 엄청난 영향력을 휘둘러 왔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각 팬클럽의 지도부는 마음만 먹는다면 관광차 대절비, 현수막 제작비, 식비 등 다양한 곳에서 착복도 가능하다. 돈이 도는 곳이다 보니 잡음이 생길 여지도 많아 박 대통령을 긴장시키는 이유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박사모는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박사모의 존폐 여부를 놓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박사모의 정 회장은 "당초 박사모는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해체하기로 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했으니 박사모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박 대통령의 5년을 지켜 성공한 대통령을 만드는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회원들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회원들의 투표결과 박사모는 압도적인 표차이로 존립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정치사 기록 될까?
정치사 오점 될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은 순수한 팬클럽이지만 일부 팬클럽의 경우는 적절치 않은 사람들이 입신양명을 위해 모이고 있다"며 "일부 팬클럽에서는 지도부가 돈 문제를 일으키고 공천욕심을 은연중에 드러내 잡음이 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친박계 의원들이 이들을 자신들의 정치행보에 사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크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박 대통령의 팬클럽이 저지르는 사고는 박 대통령에게도 도의적 책임이 지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관리해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