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의 귀환' 새누리 떠는 속사정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5.10 18: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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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좌장 김무성·충청맹주 이완구 '미친 존재감'…권력싸움은 '지금부터'

[일요시사=정치팀] 4·24 재보선의 후폭풍이 새누리당을 집어삼킬 태세다. 지난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은 완벽한 승리를 거뒀지만 기쁨도 잠시, 당내에선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번 재보선을 통해 김무성, 이완구라는 두 거물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의 중앙정치 복귀는 곧 여권 권력구조의 일대변화를 뜻한다. 두 사람의 복귀와 함께 치열한 눈치싸움에 들어간 새누리당의 속사정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야당 의원들과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지난해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중앙정치무대를 떠났다가 1년여 만에 다시 국회로 돌아온 김무성 의원의 첫 일성이다. 4·24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새로 들어온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김무성·이완구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돌아온 거물들
깊은 정치 내공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앞질렀을 정도의 거물 정치인임에도 초선인 안철수 의원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 3선의 이완구 의원은 차분했고, 5선 고지를 밟은 김무성 의원은 "야당 의원들과 소주 한 잔 하고 싶다"는 농담을 던질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두 여권 거물의 정치 내공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다.

일단 새누리당은 겉으로는 재보선의 완벽한 승리와 부산과 충청을 대표하는 두 인사의 화려한 복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두 사람의 복귀와 함께 당내 계파 간 경쟁이 본격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24 재보선을 통해 나란히 컴백한 두 사람도 일단은 의정활동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의 복귀로 향후 여권의 권력지형 변화는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됐고, 당내 인사들 간의 치열한 주도권 경쟁은 불가피해졌다. 두 사람이 4·24 재보선의 후폭풍이 된 이유다.


재보선 이후 새누리당 내부 눈치싸움 치열
대권 공신도 삐끗하면 끝 "어디에 줄 설까?"

우선 김 의원의 등장이 새누리당 인사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이기 때문이다. 현재 김 의원은 차기 당권 도전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주변에선 이미 김 의원의 차기 당권 획득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은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 대거 공천한 이른바 '박근혜 키드'들은 자신들의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샌님'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근혜 정부의 초기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과반수 의석을 가진 거대여당이라는 간판이 무색할 정도로 야당에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이렇듯 새누리당이 총체적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지난 대선 기간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준 김 의원의 등장은 당장 새누리당의 권력지형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권력지형
궁지 몰린 새누리

현재 김 의원의 당내 영향력은 상당하다. 그는 지난 재보선 기간에 조용한 선거를 치르겠다며 중앙당 인사는 부산 영도다리를 넘지 말아달라고 선언했었다. 그러나 선거 당시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와 안형환, 정옥임, 이종혁 전 의원, 홍인길 전 대통령 총무수석비서관, 정운천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원내대표 출마를 준비 중인 이주영·최경환 의원까지도 김 의원의 선거사무실을 다녀갔다.

후보가 직접 선거현장을 찾지 말아달라고 부탁까지 했음에도 고작 재보선에 나서는 한명의 후보를 만나러 유력정치인들이 대거 부산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이는 김 의원의 선거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앞으로 잘 봐달라는 '눈도장' 찍기에 가까운 방문이었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에는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난데없는 실랑이가 벌어져 김 의원의 당내 영향력을 새삼 느끼게 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병석 국회 부의장과 김 의원이 서로 상석에 앉을 것을 권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는 황우여 대표의 왼쪽으로 선수에 따라 자리 배치가 이뤄진다. 이날 회의에서도 황 대표 바로 옆자리엔 6선의 이인제 의원이 앉은 상황에서 기존 관행대로라면 5선의 김 의원이 그 옆 자리에 앉아야 했지만, 김 의원은 국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4선의 이병석 의원을 배려해 이 자리를 양보했던 것이었다. 뒤늦게 회의에 참석한 이 부의장이 김 의원에게 옆자리로 이동할 것을 권하며 실랑이를 벌였지만, 김 의원은 이를 끝내 마다했다.

지난 총선에서 공천조차 받지 못하고 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김 의원이 이토록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지난 대선에서의 활약이 크게 작용했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박근혜 대선캠프에 합류했고,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박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게다가 '무대(무성 대장)'라는 별명답게 리더십도 강해 기본적으로 국회에서 그를 따르는 의원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의 복귀에 대해 새누리당을 통째로 집어삼킬 엄청난 후폭풍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김 의원이 당권을 거머쥔다면 당내 의원들은 김 의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김 의원이 다음 총선에서 공천권을 가진 실세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의 연명을 위해서는 현재 힘을 가진 자보다 앞으로 힘을 가질 자에게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은 정치권의 자명한 이치다.

힘을 가진 자
힘을 가질 자

김 의원의 급부상에 대해 벌써부터 정치권 일각에서는 황우여 대표 등 기존 친박계 지도부가 견제에 나설 것이란 우려도 있다. 김 의원은 친박 뿐만 아니라 비박 의원들과도 두루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기존 친박계 의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김 의원은 당선사례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친박계, 상실감을 느끼는 비박, 친이계의 역량을 결집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는 당의 화합을 강조하는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실제로 김 의원이 당권을 잡고나면 기존 친박계가 기득권을 대거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이 김 의원의 당내 세력화를 경계하고 있다는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현 지도부와 비교해 결코 순종적인 성격이 아닌 김 의원이 당권을 거머쥐고 나면 박 대통령과의 마찰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김 의원은 과거 박 대통령과 세종시 수정안 건을 두고 이견을 보이다 서로 등을 돌렸던 전력이 있다.

거물 복귀에 일단 환영, 속내는 복잡
무기력한 새누리, 통째로 먹힐까?

아직 정권 초이기는 하지만 새누리당 내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이번 기회를 통해 차기 대권후보 중 한 명으로 부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당내 잠룡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예상되는 이유다.

김 의원이 얼마 남지 않은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 중진 최경환 의원의 당선을 막거나 방해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 의원이 원내대표가 될 경우 친박계가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독식한다는 비판에 대한 부담 때문에 김 의원이 최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최 의원 역시 김 의원의 당권론을 탐탁찮게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최 의원은 과거 김무성 당권론에 비판적인 말을 했다가 김 의원이 이에 반발하자 급거 김 의원을 찾아가 해명을 하기도 했다. 

대권까지 직행?
당내 세력 다툼

김 의원과 함께 국회에 재입성한 이완구 의원 역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새누리당을 긴장시키기는 마찬가지다. 충남지사를 역임한 이 의원은 이번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득표율도 77.3%로 16.9%를 얻은 민주당의 황인석 후보를 압도적으로 따돌렸다.

이 의원은 재보선 당시부터 자신이 '충청 홀대론'을 극복할 수 있는 '큰 인물'이란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일각에선 이미 그를 '포스트 JP(김종필)'라 부를 정도다.

이 의원은 충남도지사 재직시절인 지난 2009년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하면서 도지사직을 전격 사퇴해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후 정계복귀를 저울질하던 이 의원은 지난해 4·11 총선에서 출마를 준비해오다 혈액암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이 의원은 병마를 극복하고 이번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복귀함으로써 김 의원 못지않은 거물 정치인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특히 이 의원은 김 의원과 반대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하다 충남도지사직을 던진 인물이기 때문에 오히려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의원 역시 3선 의원으로 당권 도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두 사람의 국회 입성으로 새누리당 내의 역학구도가 복잡해지면서 당내 일각에서는 아무리 대권 공신이라고 하더라도 한번 삐끗하면 순식간에 당 중심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거물 정치인들의 복귀가 당 전체로서는 환영할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당장 그들과 권력다툼을 벌여야 하는 중진의원들과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는 초재선 의원들로서는 난감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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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