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끼리' 가입자 리스트 대공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4.15 14: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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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버섯처럼 퍼진 종북, 국가 뿌리까지 뒤흔든다

[일요시사=정치팀] 전·현직 국회의원, 특정 정당의 당원, 기자, 교수는 물론이고 현역군인까지?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가 공개한 북한 대남선전사이트 '우리민족끼리' 가입자들의 면면이다. 우리민족끼리는 국가보안법상 이적 사이트로 분류되어 있다. 가입만으로도 처벌 대상이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이적사이트에 가입한 것일까? 커지는 안보불안 속에 <일요시사>가 이들의 실체를 추적해봤다.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가 지난 4일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회원 9001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우리민족끼리는 국가보안법상 이적 사이트로 분류된다. 만약 이들의 사이트 가입이 자발적인 행동이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종북 척결?
마녀 사냥?

북한의 안보위협이 연일 거세지는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은 이를 근거로 "종북 명단이 공개됐다"며 명단에 포함된 인사들을 공안당국에 신고하고 이들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무차별적인 공격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한 논란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종북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은 신매카시즘이며 '마녀사냥'이 우려된다며 반발했다.

게다가 어나니머스가 지난 6일 우리민족끼리 회원 계정 6216개를 추가로 공개하자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우리민족끼리는 가입 시 실명인증이 필요없는 사이트다. 따라서 어나니머스가 공개한 명단에는 가입자의 성명과 이메일 주소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었지만 네티즌들은 이 같은 제한된 정보만으로도 가입자들의 직업과 사는 곳, 사진 등을 찾아내 인터넷상에 게재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가입자들의 신상을 알아낼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정보는 이메일 주소다. 현재 인터넷 검색엔진에선 이메일 주소를 검색 해보는 것만으로도 해당 이메일 주소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신상정보가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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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군인, 언론인, 교사, 정당인 총망라 '충격'
"간첩 정말 있었나?" 커지는 안보불안, 이념갈등

우선 1차 공개된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9001명의 이메일 계정을 살펴보면 국내 이메일 계정인 ▲한메일(hanmail.net·1446개) ▲네이버(naver.com·221개) ▲네이트(nate.com·37개) 등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동안 아고라로 대표되는 커뮤니티 운영으로 진보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포털 다음(daum)의 이메일인 한메일 계정이 가장 많이 포함되어있는 것을 놓고는 '역시 다음에는 종북인사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밖에도 1차 명단에서는 삼성(2개), LG CNS(18개) 등 대기업 직원들이 쓰는 이메일 계정도 발견됐고 ▲중앙일보(joongang.co.kr·1개) ▲조선일보(chosun.com·3개) ▲동아일보(donga.com·1개) ▲MBC(imbc.com·1개) 등 언론사 이메일 계정으로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한 경우도 있었다.

자발적 가입?
명의 도용?


물론 우리민족끼리에 가입한 회원들 중 절대 다수는 중국을 포함한 해외 포털업체가 제공한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고 있었다. 약 4000여 명의 이용자들은 중국의 대표 포털사이트인 '시나닷컴'이나 미국 사이트인 '야후' '라이코스' 등의 계정을 이용했다.

공개된 회원정보를 토대로 네티즌들이 찾아낸 자료에 따르면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명단에는 평소 종북논란을 겪어온 단체의 회원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종북논란을 겪고 있는 모 진보정당 당원이나 진보성향의 언론사 기자, 전교조 회원 등이다. 아울러 각종 지역 노조원은 물론이고 교수, 유학생, 탈북자, 조선족들도 상당수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가입되어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공개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것인지 개인정보를 도용당했는지는 파악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현행법상 북한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이메일을 토대로 공개된 가입자들의 면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실로 기가 막힌다. 우선 정치권의 경우 K모씨는 전직 국회의원이었고, L모씨는 현역 5선 국회의원의 다음카페 관리자다. 특히 이 5선 의원은 과거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으며 정치 입문 전엔 남조선민족해방준비위원회, 이른바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수감생활을 한 전력이 있다.

이외에도 P모씨는 모 진보정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 시의원선거에 출마했던 인물이고, J모씨와 N모씨는 같은 정당의 당원이다.

또 우리민족끼리 사이트 가입자 중에는 각종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도 눈에 띈다. W모씨는 모 시민단체의 대변인이고, J모씨와 K모씨는 같은 단체의 언론담당자와 공인노무사로 각각 활동하고 있다. N모씨는 또 다른 시민단체의 통일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J모씨는 모 노조의 지역 수석부지부장이다.

유력인사 다수
전쟁나면 어쩌나?

우리민족끼리 사이트 가입자 중에는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론인들과 방송관계자들도 있었다. L모씨는 지상파 방송의 PD, K모씨는 같은 방송국의 시사교양국장이자 논설위원이다. N모씨와 J모씨는 각각 모 중앙일간지와 모 통신사의 기자다. 이외에도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매체들에 L모씨, J모씨, K모씨 등이 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청소년과 청년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사나 교수들도 사이트 가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만약 실제 종북인사들이 교사나 교수로 활동하고 있을 경우엔 이들이 학생들에게 편향된 안보관과 사상을 주입하게 될 우려가 매우 크다.

K모씨는 전북 정읍시 모 중학교의 수학교사고, P모씨는 광주광역시 모 중학교의 도덕교사다. 경기 안산의 고등학교 교사, 경남 밀양의 초등학교 교사, 모 대학 교수와 모 대학의 초빙교수 등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 일부는 전교조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인사들도 있었다. P모씨는 한국국방연구원의 박사다. H모씨는 전 통일부 직원, J모씨는 현역 직업군인, L모씨는 현역 사병이었다. C모씨는 남편이 직업군인이었고, P모씨는 북한군 출신 탈북자였다. 북한이 싫어 탈북한 인사가 왜 북한을 찬양하는 사이트에 가입한 것인지 의문이다. 같은 탈북자라도 군 출신이라는 특별한 이력을 가진 탈북자가 남한에서 북측과 내통하고 있다면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종북 명단 공개? 마녀사냥 시작? 첨예한 대립
박정희부터 김태희까지 엉터리 명단 '처벌 힘들듯'


이외에도 어나니머스가 공개한 명단에는 종교계, 체육계, 문화계, 금융권 관계자들도 이름을 올렸다. 현재 농협에 근무 중인 한 인사는 최근 발생한 농협 해킹 사건의 공모자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명단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이들이 실제 종북인사들이라면 국가의 기반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였다. 분명 심각한 문제다.

물론 가입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이들 모두를 무작정 종북인사로 치부하기에는 증거가 너무나 부족하다.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의 경우 가명으로도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명의도용 가능성이 크다. 유명인의 경우 메일주소가 일반에 공개되어 있고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메일주소를 알아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를 뒷받침하듯 국내 이메일로 가입된 2600여 명 중에는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안철수 등 국내 정치인은 물론이고 원빈, 조인성, 김태희 같은 연예인과 이순신, 을지문덕 등 역사 속 인물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가입자 명단 자체로는 이미 증거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현재 우리민족끼리 사이트 가입자 중 자신이 종북활동을 위해 사이트에 가입했다고 인정하고 있는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대다수는 가입사실 자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고, 일부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대북정보 획득을 위해 가입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이유든 본인이 직접 가입한 경우는 처벌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이들도 막상 수사를 받게 되면 명의를 도용당한 것이라고 말을 바꾸면 그만이다. 현재로선 아무런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공안당국은 일단 우리민족끼리 회원 1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기초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이들 중 종북인사를 걸러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처벌은 불가능
경각심 갖는 계기로

일부에선 공안당국이 여론을 의식해 어차피 증거능력도 없는 명단을 조사하는 데 인력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현재 공안당국은 명단에 대한 기초 분석 작업에만 2~3개월은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사이트 가입 사실만으로 이들 모두를 종북인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들이 모두 종북인사가 아니라고 볼 수도 없다"며 "이들 중 일부 또는 대다수는 분명한 종북인사들이므로 철저히 수사를 진행해야만 하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종북인사들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어나니머스' 뭐기에?

주요멤버 인터폴 수배 중

'어나니머스(Anonymous)'는 전세계 해커들이 익명을 전제로 활동하는 가장 대표적인 해킹 단체다. 지난 2011년에는 아동포르노 사이트를 해킹해 얻은 사용자 명단을 FBI에 넘기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중국 정부의 자국 인터넷 검열에 항의하며 중국 정부 웹사이트를 공격하기도 했다.

미국 FBI·CIA 같은 정부 기관, 페이팔·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의 금융기관, 소니를 비롯한 다수의 기업 등도 해킹해 단체의 주요 멤버들이 FBI와 인터폴로부터 추적을 받고 있다. 이들은 "우리민족끼리 외에도 북한 정부 포털사이트인 '내나라', 고려항공 등을 해킹해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며 "북한 인공위성인 광명성을 비롯한 인트라넷 등에도 침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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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