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도피성 출국' 의심받는 까닭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4.05 14: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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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나무 아래선 갓끈도 고쳐 쓰지 말라 했거늘…

[일요시사=정치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퇴임 후 3일 만인 지난달 24일 미국으로 출국하려다 법무부로부터 출국금지를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이날 야권인사들과 시민단체들은 원 전 원장의 출국을 막겠다며 공항으로 몰려나와 진을 쳤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 측은 자신의 미국행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도피성 출국은 더더욱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 전 원장은 한때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었다. 그런 그가 무엇이 두려워서 해외로 도피하려했다는 것일까? 그 사연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24일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진선미 민주통합당 의원을 비롯한 야권인사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출국을 막겠다며 공항에 진을 친 것이다.

당초 이날은 원 전 원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는 항공편을 예약한 것으로 알려진 날이었다. 원 전 원장은 미국에 도착한 뒤에는 당분간 귀국하지 않고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라라카운티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에서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실패한 출국

원 전 원장의 출국 임박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달 23일 저녁부터 법무부가 원 전 원장을 출국금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들은 혹시라도 모를 원 전 원장의 갑작스런 출국에 대비해 공항에 모인 것이다. 원 전 원장은 불과 며칠 전까진 우리나라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이었다. 그런 그가 무엇이 두려워서 해외로 도피하려 한다는 것일까?

원 전 원장의 미국행이 도피성 출국으로 의심 받는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는 현재 여러 가지 고소고발사건에 휘말려 있다. 지난달 18일 25건에 달하는 이른바 '원세훈 지시사항'이 공개되면서다. 공개된 문서에는 '국정 현안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좌파단체들이 많은데 국정원이 앞장서 대통령과 정부 정책의 진의를 적극 홍보하고 뒷받침해야 할 것' '세종시와 4대강 등 주요 현안에 (국정)원이 중심을 잡고 대처할 것' 등 국정원법이 금지하는 정치관여로 의심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이러한 내용은 국정원이 통상적 활동을 벗어나 국내 정치현안 개입, 선거 여론조작, 국정홍보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때문에 원 전 원장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됐고, 그로 인해 현재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수건의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임 후 3일 만에 장기체류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행을 시도했다는 것은 도피성 출국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는 특히 지난 대선을 뒤흔든 국정원 여직원의 선거 개입 댓글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되어 국회 국정조사까지 앞둔 상태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그가 해외로 떠나 당분간 돌아오지 않는다면 수사는 표류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미국 출국 시도가 도피성이란 의혹을 받고 있다.

게다가 원 전 원장은 현재 특수활동비 유용과 해외 호화주택 구입설 등에도 휘말려 있다. 아직까지 확실하게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문병호, 진성준, 김민기, 김현 등 민주통합당 '원세훈게이트' 특위 위원들은 지난달 28일 국정원을 방문해 이에 대한 철저한 감사를 요구한 상태다.

원 전 원장이 퇴임 후 납치 등을 우려해 일정 기간 경호원이 따라붙을 정도로 보안에 민감한 전직 국정원장의 신분임을 감안하면 그의 출국 시도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 수장이 퇴임 3일 만에 미국행?
개인비리 의혹도 줄이어…'원세훈게이트' 어디까지?

민감한 국가기밀을 다뤄온 국정원장이 퇴임 직후 장기간 국외에 머문다면 국내 고급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 전 원장은 출국 3일전인 지난달 21일 저녁 국정원에서 주요 간부들만 참석시킨 채 이례적인 한밤중 퇴임식을 열기도 했다.


원 전 원장 측은 자신의 도피성 출국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각 언론사에 적극적인 해명을 하기도 했다. 그의 한 측근은 "원 전 원장이 미국 스탠퍼드대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떠나려 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원 전 원장은 델타항공편으로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 일본에 가족여행을 갔다 돌아올 예정이었으며 귀국행 티켓도 끊어놨다"고 설명했다. 이 측근은 직접 언론사에 티켓 사본 등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보도를 통해 원 전 원장이 지난달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떠나는 항공편을 예약한 것을 확인했다며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게다가 원 전 원장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최근 정치권엔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 의혹 사건이 점점 커져가면서 이미 원 전 원장의 퇴임 뒤 출국설이 떠돌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원 전 원장이 왜 무리하게 해외 출국을 시도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해외여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원 전 원장은 퇴임을 앞두고 약 한달 전부터 이삿짐을 꾸린 정황도 포착됐다. 지역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의 자택에 용달차와 탑차 등이 와서 현관과 대문까지 비닐로 덮어 집안을 하나도 안보이게 하곤 이삿짐을 옮겼다는 것이다.

특히 냉장고 등과 같은 큰 가전제품도 외부로 실어 나른 것으로 볼 때 원 전 원장이 미국행을 준비한 정황이 의심된다. 만약 원 전 원장이 단순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었다면 이삿짐이 모두 빠져나간 만큼 이미 이사를 했어야 하지만 미국행이 좌절된 이후에도 원 전 원장은 여전히 기존의 자택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 측은 이사 갈 계획은 당초부터 없었다며 탑차를 동원해 이삿짐을 뺀 것은 아이들 이삿짐이랑 버려야 할 물건들 정리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정말 당당할까?

한편 최근에는 검찰이 야당이 요구하기 전 이미 원 전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 전 원장에 대한 수사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원 전 원장이 다급하게 미국으로 떠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우리는 원 전 원장이 도피성 출국을 시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원 전 원장이 정말 당당하다면 자신에 대한 의혹이 모두 해소될 때까지 국내에 남아 수사에 협조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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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