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고위층 성접대 파문이 권력기관간 이전투구 양상으로 번질 조짐이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청와대까지 얽혀 복잡한 함수관계가 펼쳐지고 있다. 더러운 사건을 두고 흡사 '삼국지'를 이룬 형세. 그럴수록 국민의 관심은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다.
강원도 한 별장에서 일어난 '섹스 파티'를 두고 난리가 났다. 건설업자가 고위층에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 그게 누구냐가 키포인트다. 여기에 불려나온 접대녀들로 연예인이 거론되면서 사건은 대형 스캔들로 비화될 조짐이다.
'대어' 낚고도…
경찰은 고민이다. '대어'를 낚고도 쉽게 어망에 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경찰은 일단 주선자인 윤모씨의 꼬리를 잡았다. 이어 그의 주변인을 털었다. 그 결과 충격적인 인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 검찰 수뇌부였던 김학의씨였다. 일부 언론은 그의 실명까지 공개하면서 성접대를 받았다고 했다.
경찰의 고민이 여기서 시작된다.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 형편. 내사에서 수사로 전환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김씨가 연루돼 있어서다. 김씨뿐만 아니라 검찰 고위직 인사들이 더 있을 경우 더욱 그렇다. 자칫 검찰 때리기로 비춰질 수 있어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기에 따라 검찰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검찰의 지휘를 받는 경찰로선 부담스런 대목이다.
경찰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곳은 경찰발이다. 내사 과정에서 이런저런 소문이 새어나왔다. 그 중심엔 김씨가 있었다. 검찰 내부엔 경찰이 일부러 내사 정보를 흘렸다는 의심이 가득하다. 만약 그렇다면 경찰의 의도가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찰이 묻혔던 옛 사건을 꺼내든 배경도 석연치 않다. 노림수가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이번 파문은 2011년 11월 학원사업가 권모씨가 윤씨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것이 시초다. 당시 사건을 접수받은 서초경찰서는 수사 과정에서 "윤씨가 성접대를 했고 동영상도 촬영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서초서는 윤씨의 원주 별장을 압수수색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 CCTV에 찍힌 차량 등을 조회해 별장에 드나든 유력인사들을 인지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윤씨는 성폭행 혐의를 벗었고, 성접대 의혹도 흐지부지됐다.
그로부터 1년이나 지난 뒤 경찰청이 직접, 그것도 대형사건만 전담하는 특수수사과가 사건을 다시 잡았다. 번번이 검찰에 당해온 경찰이 새 정부 출범에 맞춰 반격에 나섰다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경찰내 일부 세력의 작품으로 알고 있다"며 "검찰과의 수사권 갈등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의도로 일부러 언론에 흘렸다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청와대도 혼란스럽다. 당장 요직에 앉혀놓은 김씨가 도마에 올라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청와대는 지난 13일 김씨를 법무부 차관에 임명했다.(21일 사퇴) 그리고 일주일 만에 김씨는 '동네북'이 됐다.
당연히 사전에 인지 못했냐는 비난이 청와대에 쏟아지고 있다. 인사검증 시스템에 난 구멍이 또 한번 확인됐다는 혀 차는 소리가 요란하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청와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묻혔던 옛 사건 다시 꺼낸 경찰 노림수는?
청와대 알았나 몰랐나…경찰과 합작 의혹도
검찰 청와대 눈치보면서 비밀리 역공 태세
이 와중에 경찰과 '손뼉'도 안 맞아 더욱 난감한 눈치다. 김씨 연루설은 청와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성접대 내사 착수 전 수사 관계자를 불러 보고받았다. "파장이 클 것"이란 내용까지 보고에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는 결과적으로 이를 무시했다. 재확인차 부른 경찰 수뇌부는 "내사도, 동영상도 없다"고 보고했고, 철석같이 믿은 청와대는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청와대는 사건을 알고도 김씨의 임명을 강행한 셈이다. 경찰청장 인사가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도 있다. 경찰의 엇갈린 보고와 뒷북 수사에 청와대가 책임을 물어 당초 유임이 확실했던 김기용 전 경찰청장을 경질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에선 경찰과 청와대의 '합작' 의혹이 나온다. 한통속이란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성접대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와 경찰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도 은폐·축소하려 시도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댓글도 못 찾고 동영상도 못 찾는 경찰이라면 무능의 끝장을 보여주는 일이고, 청와대 눈치 보느라 안 찾는 것이라면 경찰은 존재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경찰과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다. 뒤로 한발 물러나 있는 자세다. 지금으로선 사건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성접대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른바 '벤츠 여검사', '성추문 검사'의 파장보다 더 큰 타격이 불가피해서다.
그러면서도 "무슨 내사를 홍보하냐"며 경찰 쪽을 노려보고 있다. 건들기만 해보란 투다. 언제든지 역공에 나설 태세다. 실제 검찰은 세간에 나도는 '별장 리스트'를 입수, 은밀히 사실 확인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트에 오른 전·현직 경찰 고위간부들이 타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윤씨의 사업도 들여다보고 있다. 그가 대표로 있는 건설사는 수십억원대 경찰 골프장 공사를 맡았다. 경찰이 발주한 공사 치고는 큰 액수다. 검찰은 윤씨가 이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경찰 고위인사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의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외에 경찰이 비호할 만한 윤씨의 각종 불법 행위도 훑고 있다. 혹시나 모를 역풍에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기 위해 비밀리에 움직이는 모양새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