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당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내부거래로 오너의 '금고'를 채워주던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하지만 자칫 지배구조가 뒤엉키거나 흔들릴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고민 고민하다 결국 짜낸 것이 '꼬리 자르기'다.
2년 만에 4배 차익
계열사에 합병 또는 매각하거나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방법이 주로 쓰인다. 그중에서도 싸늘한 시선을 의식해 '공짜'로 문제의 회사를 처리하는 수순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재계순위 33위(공기업 제외)인 영풍그룹(23개 계열사)도 예외가 아니다. 내부거래로 먹고사는 계열사가 적지 않다. 무려 4개씩이나 된다. 업계에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대상 1호로 거론될 정도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영풍그룹은 최근 교통정리에 나섰다. 오너일가가 보유지분을 잇달아 처분하고 있는 것. 문제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제값'에 팔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웃돈'을 얹어 주머니를 채우기도 했다.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곳은 '엑스메텍'이다. 2009년 설립된 엔지니어링 서비스업체 엑스메텍은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았다. 2011년 매출 335억원 가운데 94억원(28%)을 계열사와의 거래로 올렸다. 그전엔 더 심했다. 영풍그룹 계열사들은 2010년 엑스메텍의 매출 81억원 중 49억원(60%)에 달하는 일감을 퍼줬다.
엑스메텍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다. 오너 자녀들의 지분이 있었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의 장남 세준씨 12%(4만8000주), 차남 세환씨와 외동딸 혜선씨 각각 11%(4만4000주) 등 총 34%(13만6000주)를 보유했다.
국세청은 오는 7월부터 특수관계법인이 정상거래비중(30%)을 초과한 일감을 계열사로부터 받으면 해당 법인의 지배주주와 친족 중 출자(3% 이상)한 대주주를 과세 대상으로 규정하고 세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이를 의식해선지 장 회장의 자녀들은 2011년 9월 엑스메텍 지분 전량을 ㈜영풍에 매각했다. 매매가는 주당 1만9500원씩 총 26억5500만원이었다. ㈜영풍 측은 "외부 평가를 거친 적정한 가격"이라고 밝혔지만, 엑스메텍 설립 당시 주당 5000원씩 출자한 것을 감안하면 영풍 2세들은 불과 2년 만에 출자금의 4배에 달하는 약 20억원을 차익으로 남긴 셈이다.
그렇다고 내부거래 논란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오너일가의 지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창영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장남 최제임스성(한국명 최내현)씨는 15%(6만주)의 엑스메텍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최 명예회장은 장 회장과 함께 영풍그룹을 공동경영 중이다. 고려아연·영풍 일가는 '최기호-장병희'선대 때부터 동업자 관계였다.
2010년 설립된 에너지시설업체 '케이지그린텍'도 사정은 같다. 2011년 매출 27억원이 전부 고려아연에서 나왔다. 2010년엔 15억원이 그랬다. 케이지그린텍은 세환씨와 최 명예회장의 동생 최창규 고려아연 부회장이 각각 지분 10%(8000주)씩 소유했다.
정부 압박에 오너일가 속보이는 지분 정리
무상 아닌 제값 처분…웃돈 얹어 챙기기도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지분 전량을 고려아연에 팔았다. 매매가는 각각 주당 1만1000원으로 총 9070만원씩이다. 케이지그린텍 자본금이 4억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세환씨와 최 부회장은 개인당 4000만원을 투자해 2배로 불린 셈이다.
'케이지인터내셔날'도 매출에서 차지하는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2010년 설립된 광물수입업체 케이지인터내셔날은 그해 매출 196억원에서 119억원(61%)을 계열사에서 채웠다. 이듬해의 경우 매출 229억원 중 121억원(53%)이 '집안'에서 나왔다.
케이지인터내셔날은 세준·세환 형제가 각각 16.67%(3만주)씩 총 33.34%(6만주)를 보유하다가 지난 1월 서린상사에 합병됐다. 영풍 측은 "대내외 환경에 효율적 대처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업계에선 '내부거래 희석용'이란 시각이 많다. 과세 등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자구책이 아니냐는 것이다.
오너일가는 금전적으로도 이득을 봤다. 합병비율(1:0.060260)에 따라 세준·세환씨는 각각 서린상사 지분 0.55%(1694주)를 갖게 됐다. 형제는 개인당 1억5000만원씩 케이지인터내셔날에 투자해 2년 만에 10억원이 넘는 가치의 지분을 쥐게 됐다. 지난해 말 기준 서린상사의 총자산은 3093억원, 총자본은 2633억원, 연매출은 3292억원이다.
세 회사를 처분했다고 '골칫거리'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애물단지인 영풍개발이 아직 남아있다. 1989년 설립된 건물관리업체 영풍개발은 매년 100%에 가까운 금액이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은 97∼99% 수준으로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어렵다. 그 금액은 100억원이 넘는다.
1억5천만원→10억
그러나 영풍그룹은 영풍개발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눈치다. 지배구조와 경영승계에서 '고리'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영풍개발은 세준·세환·혜선씨가 지분을 각각 11%(1100주)씩 갖고 있다. 영풍그룹은 '㈜영풍→영풍문고→영풍개발→㈜영풍'으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를 띠고 있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엑스메텍·영풍개발 기부는?
영풍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엑스메텍과 영풍개발은 기부를 얼마나 할까.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엑스메텍은 지난해 13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는 매출(67억원)의 0.02%에 불과한 금액. 2011년에도 120만원을 기부했는데, 이 역시 매출(335억원) 대비 0.004%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영풍개발은 지난해 단 한 푼도 기부하지 않았다. 2011년 역시 기부금이 '0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