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당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내부거래로 오너의 '금고'를 채워주던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 하지만 자칫 지배구조가 뒤엉키거나 흔들릴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고민 고민하다 결국 짜낸 방법이 '꼬리 자르기'다. 롯데그룹도 그중 한곳이다.
갑자기 왜?
롯데그룹은 최근 총수의 부인과 딸이 운영하던 롯데시네마 매점사업을 회사 직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는 지난달 28일부터 영화관 매점사업을 운영 중인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유원실업과 계약을 해지했다. 롯데 측은 "앞으로 롯데시네마가 전국 롯데시네마 직영 영화관의 52개 매점을 직접 운영한다"며 "이번 극장 매점 직영화는 영화사업을 강화하고 수익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롯데의 통큰 결정을 두고 '내부거래 희석용'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과세 등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자구책이 아니냐는 것이다. 대기업 내부거래와의 전쟁을 선언한 박근혜 정부 출범을 의식해 내린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재계 순위 5위(공기업 제외)인 롯데그룹은 76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영화관 매점사업이 주력인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유원실업은 사실상 오너일가 소유로 실적이 대부분 '안방'에서 나왔다. 내부거래를 통해 매년 수십억∼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때문에 이들 세 회사는 일감 몰아주기의 대표적 사례로 비판을 받아왔다. 2007년엔 롯데쇼핑이 영화관 내 매점을 시네마통상과 유원실업에 저가임대해주는 방식으로 부당하게 지원하다 공정위에 적발돼 3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팝콘과 콜라의 이익률이 80%에 이르는 등 영화관에서 실질적인 수익원은 티켓이 아닌 매점사업이다. CJ CGV, 메가박스, 씨네플렉스 등 다른 영화관 사업자들은 매점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버리기 아까운 '황금알'사업을 놓은 이번 롯데의 결정은 불공정거래 관행을 손보겠다는 새 정부의 철퇴를 피하기 위해 몸 낮추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내부거래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그럴까. 세 업체는 모두 콜라·팝콘 등 음·식료품 소매업체로, 주로 롯데시네마 영화관 내 매점을 운영·관리했다.
먼저 2005년 설립된 시네마통상은 지방 영화관의 매점사업권(14개)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자생력.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했다. 시네마통상은 롯데시네마 등을 등에 업고 2011년 매출 129억원을 올렸다. 2009년과 2010년엔 각각 158억원, 16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기간 적자 없이 매년 30억∼40억원의 영업이익과 20억∼3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2011년 기준 총자산은 75억원, 총자본은 65억원이다.
사실상 오너일가 개인회사…수백억씩 몰아줘
극장 매점사업 독점권 돌연 회수 '몸사리기?'
시네마통상과 함께 롯데시네마의 지방 영화관 매점사업권(8개)을 쥐고 있었던 시네마푸드는 2011년 설립된 신생업체다. 2011년 매출은 58억원. 물론 롯데시네마 등 계열사들과 거래를 통해 올린 수익이다. 당시 영업이익 15억원, 순이익 12억원을 냈다. 총자산은 34억원, 총자본은 24억원이다.
2002년 설립된 유원실업은 서울·경기지역 '알짜'영화관(30여 개)의 매점을 운영했다. 주요 매출처 또한 그랬다. 유원실업은 롯데쇼핑과 롯데역사로부터 수의계약으로 롯데시네마와 롯데백화점 내 독점 입점 및 영업권을 받았다. 이를 통해 연매출 200억원을 기록하는 알짜배기 회사로 성장했다.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 유원실업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 업체 모두 오너일가의 개인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시네마통상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분 28.3%(5만6595주)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그의 자녀인 장혜선씨(7.55%·1만5092주), 장선윤·장정안씨(각각 5.66%·1만1319주)도 지분이 있다. 여기에 신 회장의 동생 신선호 일본 산서스식품 회장을 비롯해 신경애·박기택·원유경씨 각각 9.43%(1만8865주) 등 오너 친인척 지분이 총 84.91%(16만9785주)에 이른다.
시네마푸드도 신 이사장이 최대주주(33.06%·7만5636주)다. 장혜선씨 8.9%(2만394주), 장선윤·장정안씨 6.58%(1만5048주) 등 그의 자녀들 역시 지분을 갖고 있다. 박기택·원유경씨(각각 10.99%·2만5146주)와 신선호·신경애씨(각각 5.44%·1만2434주) 등 롯데일가의 시네마푸드 지분은 총 87.98%(20만1286주)에 달한다.
유원실업은 롯데 계열사가 아니다. 오너일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신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와 그 딸인 신유미씨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각각 57.82%, 42.18%씩 100% 지분을 갖고 있다.
꼬리 자르기!
신 회장은 첫 번째 부인 고 노순화씨와 사이에 장녀 신 이사장을, 두번째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씨와 사이에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낳았다. 이후 1977년 미스롯데 출신인 서씨를 만나 1983년 유미를 얻었다. 두 사람 사이는 1988년 유미씨가 신 회장의 호적에 입적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롯데가 별당마님'으로 불리는 서씨는 신 회장과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3개사 기부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시네마통상과 시네마푸드, 유원실업은 기부를 얼마나 할까.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시네마통상은 2011년 단 한 푼도 기부하지 않았다. 2005년 설립 이후 기부금이 전혀 없다. 시네마푸드도 2011년 설립 이후 기부한 적이 없다. 유원실업은 공시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업계엔 설립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기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