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코리안 드림’ 로이 아지트의 잃어버린 15년

“한국에 온 걸 후회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20대 이주노동자 청년이 15년 만에 폐병 환자가 됐다. 치료만 받아도 버거운 상황인데, 송사까지 진행 중이다.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는 사이 이 소송은 이제 40대가 된 노동자에게 ‘목숨줄’이 돼버렸다.

“내 골든 에이지(Golden Age)”. 그는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20대 중반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던 청년은 지나가 버린 시간을 골든 에이지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황금 시절을 한국에서 허무하게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읽혔다.

20대 청년
40대 됐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와 법무법인 원곡 등이 준비한 이날 기자회견은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로이 아지트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아지트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명문대인 자간낫 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뒤 2011년 처음 한국에 왔다. 2016년까지 일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른 뒤 2018년 다시 한국에 노동자 신분으로 들어왔다.

2011년 가구 공장에서 일하던 아지트는 이후 소방설비 제조업체를 거쳐 2021년 농기계 제조공장에 들어갔다. 아지트가 맡은 일은 기계의 금속 표면을 그라인딩 하는 일이었다. 2021년 가슴 통증을 느낀 아지트가 병원을 찾았고 ‘간질성 폐질환’ 진단이 나왔다.

아지트가 걸린 간질성 폐 질환이 그라인딩 과정에서 발생한 쇳가루 등 분진으로 인한 것인지를 두고 소송이 벌어졌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아지트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하면서 사안이 법정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아지트의 질환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2021년 사업장 작업환경 측정 결과, 분진 정도가 유해인자 노출 기준 미만으로 평가된 점 ▲높은 수준의 분진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근무 기간이 9개월 정도로 누적된 노출량은 적다고 판단되는 점 ▲본국(방글라데시)에서 기침을 많이 했다는 의무기록지 내용과 흡연 경력 등을 들었다.

아지트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결정에 불복,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아지트의 질병과 업무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2월 법원이 지정한 감정의는 업무상 질환을 인정하는 내용의 결과지를 제출했다. 2021년 이후 5년 가까이 이어진 아지트의 고통에 끝이 보이는 듯했다.

2011년 처음 한국행
2021년 이후 폐 질환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재감정을 신청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김달성 목사(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산재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지트는 살아갈 수 없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인데 병원비는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재감정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아지트는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한탄했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근로복지공단이 변론기일을 앞두고 재감정을 신청한 것은 의학적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재감정 결과가 나오는 데 1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피해자는 치료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삶을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아지트는 “가족과 함께 조금이나마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자 한국에 왔지만 행복하기는커녕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면서 “나는 경기 지역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가 폐 기능의 40%를 잃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나는 근로복지공단의 적이 아닌 평범한 근로자일 뿐”이라며 “부디 나에게 무리한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날 오후 아지트의 방에서 그를 만났다. 아지트는 서울 용산구의 한 교회에서 살고 있다. 병들고 갈 곳도 없는 그를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도운 결과였다. 교회에 도착해 아지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마중 나오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길어지는
소송 문제

아지트가 취재진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다시 그의 방으로 가는 길을 보면서 그 시간이 이해됐다.

좁고 복잡한, 미로에 가까운 길을 한참 걸어가자 집이 나왔고 그 안에 아지트의 방이 있었다. 집 안과 아지트의 방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물건이 있었다. 특히 아지트의 방은 그가 어떻게 누워도 발이 벽에 닿을 듯 좁았다. 안쪽에는 이불이 깔려 있고 선반 위에는 약이 가득했다. 가래 빼는 기구도 보였다.

아지트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지난해 12월에 걸린 감기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 병원에 5번이나 갔지만 낫지 않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아지트는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차례 울먹였다. 고국에서의 생활과 현재 처한 상황 등을 이야기할 때는 꽤 긴 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거듭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프다고 해도 외면하고 산재 신청을 취소하라고 종용하던 회사의 행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과 소송 과정에서의 재감정 신청 등을 말할 때 나온 표현이었다.

아지트는 “그라인딩 작업을 하면 쇳가루가 많이 나오는데 외국인 노동자에게만 그 일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마스크를 달라고 해도 주지 않거나 ‘네 돈으로 사라’는 말을 들었다. 숨 쉬기 어렵고 가래가 나오고 기침이 나는데도, 심지어 피가 나온다고 말해도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계단 한 층을 오르는 것조차 힘겨운 지경에 이르자 아지트는 회사에 말하지 않고 병원을 찾았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동네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고 어렵게 찾아간 큰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수술을 받고 나서도 문제였다. 아지트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주변 도움에
간신히 연명

아지트는 “병원에서 회사에 전화해 며칠 동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았다. 그 사람이 나를 3일 동안 돌봐줬다”고 전했다. 수술 이후 아지트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김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아지트가 나를 찾아왔을 땐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몸은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상태였고 마음도 많이 다쳤다. 이후 페이스북에 아지트의 사연을 올렸더니 변호사, 의사, 교회 사람들의 도움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승인이 나지 않을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아지트를 치료해 주겠다고 나선 의사 선생님의 연구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신고 8개월 뒤에야 현장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사측의 입장만 받아들여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지트는 “나는 한국의 적이 아니”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자신을 적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나는 노동자일 뿐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랬는데 나의 ‘골든 에이지’가 여기서 끝나 버렸다. 돈도 없고 몸도 망가졌다”고 눈물을 흘렸다.

아지트는 한국에 대해 양가감정이 드는 듯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크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에게 2011년으로 돌아간다면 한국에 올 것이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온 걸 후회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후회한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불승인 이어
업무상 연관성 인정 이후 재감정

그러면서도 “김달성 목사님, 교회 사람들, 의사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나는 지금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좋은 분들을 만나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의 기사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아지트를 알아봤다. 반계탕을 주문하는 그를 보면서 “아지트가 반계탕을 제일 좋아한다. 여기에 오면 반계탕만 먹는다”고 귀띔했다.

아지트의 젓가락질은 수준급이었다. 그에게 젓가락질에 관해 묻자 “배웠다”고 대답하며 수줍게 웃었다. 닭고기에 마늘을 곁들여 한 그릇을 다 먹은 그는 “사실 이 식당에 자주 오지 않는다”고 작게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여기에 오면 돈을 받지 않는다. 그게 미안해서 잘 오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아지트에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뭘 하냐고 물었다. 그는 “한국어 공부도 하고 성경 공부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숨이 차서 많은 걸 하진 못한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래를 빼고, 자기 전에 가래를 빼는 데만 수 시간이 소요된다고도 했다. 교회 앞에서 헤어질 때 아지트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고, 조심히 가라고.

김 목사는 “그래도 아지트는 운이 좋은 경우다. 우리 센터도 그렇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지 않나. 이런 사례는 만에 하나”라고 한탄했다. 지난 9년 동안 이주노동자와 부대껴 온 그는 각종 산재 사건을 봐온 터였다. 그러면서 “산재 피해를 본 이주노동자의 99%는 어떤 치료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듯이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근본적 원인”

이어 “이주노동자 산재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가 정책이 이 문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 그중에서도 이주노동자의 작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독소 조항이 사업자와 노동자를 철저한 주종 관계로 만든다. 문제가 생겨도 이의를 제기하는 게 불가능하다. 국가 정책, 제도가 산재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근로복지공단 입장 “소송 지연 아냐”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일 기자회견 이후 설명자료를 통해 “법원에 호흡기내과 감정을 추가로 신청했는데, 이는 이미 내려진 판단을 뒤집기 위한 것이 아니라 1차 감정에서 해소되지 않은 의학적 쟁점을 보다 충실히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공단은 처분하는 과정에서 직업환경연구원의 조사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을 거쳐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받았다”며 “최종적으로 불승인 처분이 적법한지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쟁점 확인 과정’ 해명

또 “법원 판단이 아닌 감정인 1인의 의견에 따라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공단 행정의 신뢰성에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근로자에게는 다소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공단은 재해자의 권리 구제를 외면하거나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소송 절차를 대응하고 있지 않다”며 “원 처분의 근거와 의학적 쟁점을 법원의 절차에 따라 충실히 설명하고 판단 받기 위해 필요한 소송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책임 있게 대응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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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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