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한국 마라톤을 대표하는 ‘코오롱 구간마라톤대회’가 열린다. 황영조, 이봉주, 임춘애 등 육상의 상징적 인물들을 길러낸 이 무대는 한국 마라톤의 출발점이다.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에서 42회째를 맞은 이 대회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 ‘완주의 시간’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는 서울·대구·경주·제주 국제마라톤 등 세계와 경쟁하는 무대가 이미 갖춰져 있다.
마라톤은 3·4월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서 이어진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회부터 지방 도시를 잇는 코스까지, 수만명의 러너들이 같은 출발선에 선다. 그러나 승부는 출발선에서 갈리지 않는다. 42.195km라는 길 위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리듬이다. 자기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하는 사람만이 완주에 도달한다.
그래서 마라톤은 기록이 아니라 전략의 스포츠다.
마라톤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시간과 전략의 게임이다. 출발선에서는 모두가 비슷해 보이지만 30km 이후부터 격차가 벌어진다. 초반에 무리한 사람은 후반에 무너지고,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지킨 사람만이 완주한다. 그래서 마라톤은 지금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단순한 진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금 세계는 위험 구간을 지나고 있다. 중동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에너지 시장은 이미 그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국제 유가는 단기간에 급등하며 시장에서는 배럴당 150달러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다. 전쟁은 총으로만 치러지지 않는다. 가격으로 완성된다. 이 충격은 한국 경제에도 그대로 전이되고 있다. 이것은 단거리 변수가 아니라 장거리 리스크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 방식이 여전히 단거리 사고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정책은 단기 성과에 맞춰지고, 정치는 당장 눈앞에 있는 선거 기준으로 움직인다. 국회는 하루 단위로 싸우고, 정부는 분기 단위로 대응한다. 그러나 지금 세계가 요구하는 것은 42km짜리 전략이다. 100m 전력질주로는 결코 버틸 수 없는 구간에 이미 들어와 있다.
여당은 밀어붙이고 야당은 막는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역할이 뒤집힌다. 이 반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일관성이다. 마라톤으로 치면 페이스 전략이 없는 상태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속도를 올리고 줄이기를 반복하면 결국 후반에 무너진다. 지금 한국 정치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형적인 ‘오버페이스’다. 힘은 많이 쓰지만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최근 국회에서 반복됐던 24시간 입법 싸이클도 같은 구조다. 법안 상정, 필리버스터, 종결, 표결이 이어지는 과정은 속도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에너지 소모전이다. 마라톤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리듬이 깨질 때다. 정치가 리듬을 잃으면 국정 전체가 흔들린다. 지금 한국은 정책의 리듬이 아니라 정치의 충돌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경제도 다르지 않다. 유가 상승 가능성,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금리 변수까지 모든 요소가 장거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응은 여전히 단기 처방 중심이다. 시장은 이미 다음 구간을 보고 있는데 정책은 현재 구간에 머물러 있다. 마라톤에서 앞을 보지 않고 발밑만 보고 달리면 결국 방향을 잃는다.
지금 한국 경제는 방향보다 속도에 집착하고 있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30km 이후다. 흔히 ‘벽’을 만나는 구간으로 체력은 떨어지고 의지는 흔들린다. 그때 필요한 것은 근력이 아니라 전략이다. 초반에 어떻게 달렸는지가 그 순간을 결정한다. 지금 세계 경제와 지정학은 바로 이 ‘30km 구간’에 들어와 있다. 문제는 한국이 그 구간을 대비했느냐는 것이다. 준비 없이 들어간 장거리 구간은 항상 위기로 끝난다.
이란 사태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장기 에너지 구조를 흔드는 사건이다. 이런 사건은 단기 대응으로 끝나지 않는다.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에너지, 금융, 산업이 모두 연결된 구조 속에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전히 사건을 뉴스 단위로 소비하고 있다. 마라톤을 100m 단위로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마라톤은 이미 답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페이스다. 국가 전략에도 일정한 속도가 필요하다. 급하게 밀어붙이는 정책은 오래 가지 못한다. 둘째, 리듬이다. 정치와 정책은 충돌이 아니라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완주 전략이다. 단기 성과가 아니라 끝까지 갈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마라톤이 주는 세 가지 교훈이다.
특히 지금 한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입법 독주 자제와 ‘참여형 반대’다. 무조건 밀어붙이거나 막는 것이 아니라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 자제 없는 입법은 균형을 무너뜨리고, 무조건 저지는 시스템을 멈추게 한다. 마라톤에서 경쟁자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전체 레이스를 완성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경제 정책도 완주 전략으로 바뀌어야 한다. 유가가 오르면 대응하고, 금리가 변하면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에너지 전략, 산업 전략, 금융 전략이 하나의 코스로 연결돼야 한다. 마라톤은 구간별 대응이 아니라 전체 코스 설계다. 지금 한국 경제는 아직 그 코스를 완성하지 못했다.
국민 역시 마찬가지다. 마라톤은 개인의 의지로 완성되는 스포츠다. 누가 대신 달려주지 않는다. 국가도 결국 국민의 선택으로 움직인다. 단기 성과에 열광하고 장기 전략을 외면하는 순간, 국가는 늘 중간에서 무너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가는 힘이다.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선택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아직 출발선에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늦다. 이미 레이스는 시작됐고, 세계는 중간 구간을 지나고 있다. 마라톤은 착각하는 순간 패배가 시작된다. 지금 한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위기가 아니라 착각이다.
마라톤은 끝까지 가는 사람의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속도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전략이 승패를 결정한다. 국내외 불안이 교차하는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 하나다. 더 빨리 달리는 법이 아니라,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지난 22일 YTN이 주최한 ‘히트앤런’ 마라톤 대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프로야구 팬들을 위해 마련된 이번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고 달렸다. 경쟁이 아니라 함께 완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우리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같은 코스 위에서 함께 뛰는 마라톤 대회도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skkim5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