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19)흉포성과 정복욕으로 활보

  • 김영권 작가 nammunsan@naver.com
  • 등록 2026.03.30 02:36:59
  • 호수 1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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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블루문의 홀보이가 된 이후로 청운은 미군을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이방인을 바라보던 시선, 피에로 형의 초대로 홀 안에 앉아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구경하던 눈길은 이제 일단 거두어야 했다.

그들은 달러를 뿌리는 고객인 것이다. 돈에도 품격이 있는 것일까?

워싱턴 대통령이 박힌 미국 달러 앞에서 세종대왕이 새겨진 한국은행권 지폐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사람 취급

어쨌든 청운은 편견 없이 사실 그대로 미군들을 바라보려고 했다. 가능하면 한 인간으로서….

모든 존재가 그렇듯 미군 중에도 선량하고 신사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개쌍놈 같은 양아치도 많았다. 그런 치들은 대부분 자기 나라인 미국에서는 하류인생으로서, 가난에 찌들고 무식한 탓으로 홀대받는 자들이었다.

개중엔 뒷골목 우범지대를 떠돌며 마약을 하고 성폭행이나 강도짓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저지른 뒤 도망쳐 온 불량배나 강력범죄자도 섞여 있었다.

쉽게 말해 그런 치들은 ‘아름다운 나라’인 미국의 군복을 걸치고 있지만 속엔 죄악이 숨겨진 채(물론 모든 인간의 내부엔 죄악 성향이 잠복돼 있겠으나…) 어떤 바이러스처럼 강한 활동성을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부 미군은 한국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대하면 자기 위신이 짐승으로 추락될까 봐 짐짓 인간의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자기네 나라에서 하층민으로 무시되고 핍박받은 울분과 설움을 약자인 한국 남자에 대한 우월감이나 소녀같이 작은 기지촌 여자들을 노리개 삼아 능욕하는 짓으로 탕감하는지도 몰랐다.

청운은 가능하면 그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려 애를 썼다. 지피지기랄까.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냥 일상 속에서 보고 겪으며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부대끼노라면 어느 날 문득 인종을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그래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특별한 인간 또는 신이라 여기고 이국의 미개한 작은 여자들을 돈 주고 구입한 시녀나 성노예로 삼아 희희낙락하는 것이었다.

미군 중에서도 질이 좀 낮은 하류 양아치들이 주한미군에 섞여 많이 들어오는 건 한반도가 전쟁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1950년에 (누가 먼저 때렸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쟁을 벌였던 남한과 북한은 일단 휴전협정을 맺었을 뿐 아직 싸움을 끝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물밑으로 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으르렁거리는 중이었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만성이 된 한국 사람들은 대수롭잖게 생각하게끔 되었으나 미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에겐 그렇지가 않았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속에 지닌 위험지역이었다. 아무리 고국에서 홀대받는 구겨진 청춘일지언정 사지死地와 비슷한 곳으로 가긴 싫었을 터였다.

하지만 위험수당이 꽤 쏠쏠했기 때문에 기피지역 1번지인 이 황토에도 잡다한 미국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지원해 왔던 것이다.

해외 미군 기지는 나라마다 다른 양상이었다. 한국에는 주로 젊은 독신 남성 군인을 1년간 배치한 반면, 일본과 독일에는 2∼3년으로 복무 기간을 조금 더 길게 두었고 아내와 자녀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을 일단 전시지역으로 판단해, 가족을 함께 보내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군과 각 주둔국 사회 사이의 관계도 다르게 형성되었다.

가족을 동반해 긴 복무기간을 받고 배치된 기혼 군인들은 미혼 군인들에 견줘 기지 주변 주민들과의 관계가 훨씬 건전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한국인을 무시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치 대통령이나 황제처럼…달러 지폐에 그려진 그들의 대통령이 그런 권력을 주는지도 몰랐다.

물론 좀 차이는 있었다. 백인은 겉으론 점잖아 보이면서도 이기적이고 아집이 아주 강했다. 고정관념적인 독한 편견이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 흑인은 늘 허연 이를 드러낸 채 싱긋빙긋 웃다가도 감정이 성해져 폭발할 경우엔 말리기가 힘겨웠다.

자기를 버리는 건 좋은데 무심 무아가 아니라 자기파괴적으로 될 땐 남까지도 사해(死海)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즉, 자기의 죽음으로 남의 생명마저 빼앗는 것이다. 히히 웃으며….

사람은 낯선 이국이나 이방 지역으로 떠나게 되면 나름대로 소망과 욕망을 담은 꿈을 꾼다. 기지촌의 여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꾸듯 미군들도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 땅으로 왔을까?

만약 그렇다면 과연 그 꿈은 어떤 걸까? 그들이 미개국이라고 무시하는 작은 나라에서 바라는 소망이나 욕망은?

맨허턴이나 시카고 뒷골목에서 놀던 양아치들이 주한미군 출신 선배에게 듣는 조언 중 하나는 ‘한국은 여자들이 꽤 예쁘면서도 값은 싸다. 일본이나 독일엔 비하면 껌값이지.

그리고 암캐처럼 마구 조져도 상관없어. 그깟 년들을 우리가 기분 상해서 죽여도 한국 경찰 놈들은 우릴 건드릴 수가 없어. 실제로 계집년의 바기나 속에 콜라병을 처박아 죽이고도 유유히 귀국해 버리면 그만이야.’라는 말이라고 했다.

주한미군에 질 낮은 하류 인생들
무시하는 나라에 바라는 욕망은?

‘그리고 롤리타 콤플렉스를 가진 놈들에겐 일종의 천국일 수도 있단 말야. 왜냐? 그년들의 키가 대개 작아서 우리 몸에 비하면 어린 소녀 같다고 할 수 있거든. 몸매가 아담하면 다 아담하지. 좀 닳고 닳은 여자의 바기나라도 우리들 페니스가 들어가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고 하니까. 흐흐흐.’

그 소리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미군의 입으로부터 청운이 직접 들은 것이었다.

그들은 분단국의 위험수당까지 포함된 월급을 받은 날이면 땅거미를 밟고 클럽으로 몰려 들어와서 유쾌하게 웃으며 달러 지폐로 슬픈 소녀 같은 여인들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마치 로마의 황제가 노예 시녀에게 바라는 것을 해주길 바라는 듯이….

혹시 먼 옛날 그들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무대로 원주민을 사냥해 노예로 부리거나 사냥당해 부려먹인 기억이 잠재의식 위로 떠올라 뇌리를 살살 간지른 건 아닐까?

그래서 백인들과 흑인들의 가학증과 피학증이 동시에 레일을 지나 이 한국 땅으로 와서 가엾은 여인들을 학대하는 건 아닐까?

‘인디언 헤드’는 미군부대의 심볼 마크였다. 미국인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해 그곳 원주민이던 인디언들을 쫓아낼 당시 미군 기병대들은 죄없는 무수한 주민들을 총칼로 무참히 살육했다.

그리고 생사람의 머리를 잘라내 총검에 꽂고 다니며 용맹성을 자랑했다.

이제 그들의 후손인 미군들은 선조들을 존숭하는 의미로 별과 도끼 문양 안에 인디언의 머리 모양을 새겨넣어 도안해 군복 왼쪽 어깨에 단 채 한국 땅을 활보했다.

흉포성과 정복욕을 상징하는 그 마크 외에도 미군들은 모자나 셔츠에 ‘태어남은 우연, 사랑은 선택, 살인은 직무’라는 따위의 글귀를 새겨 단 채 뽐내기도 했다. 아예 문신을 새겨 우쭐거리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청운은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모든 인간에겐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고 옛 성현들도 경계하지 않았던가.

선입견 따윈 버리고 부대끼며 살다보면 문득 실체가 느껴지지 않겠는가 싶었다.

인디언처럼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 주렴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 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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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투표용지가 없다니…’ 초유의 사태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선거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긴 쪽은 동력을 얻고 진 쪽은 수습에 나선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만큼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행보가 회자할 것으로 보인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불러온 후폭풍이 지방선거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출범 1년(4일)을 앞두고 치러졌다. 선거 자체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는 취지로 치러지는 만큼 여야는 결과에 사활을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등에서 싹쓸이로 의회 권력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고, 국민의힘은 ‘견제’를 외치며 맞섰다. 누구 손도 안 들어줘 민심은 절묘했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총 16개 시‧도 중 12곳에서 이겼다. 결과만 놓고 보면 압승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채 1% 차이도 나지 않게 석패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구에서도 졌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에서 의석을 내줬다. 반면 국민의힘은 선거 초반 전패를 예상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선전했다는 평을 받는다. 서울을 수성했고 텃밭인 대구에서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이겼다. 경기 평택을 선거에서도 ‘어부지리’지만 의석 하나를 건졌다. 민주당으로선 이겨도 찜찜한, 국민의힘은 졌지만 미묘하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제 여야는 물론 이재명 정부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을 마주해야 한다. 여야 모두 ‘완벽하게 이겼다, 혹은 졌다’는 결과를 받아든 게 아니기에 후폭풍은 작지 않으리라고 예상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당권 싸움을 시작할 것이고, 보수 궤멸 직전에 간신히 살아남은 국민의힘에서도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에 또 다른 후폭풍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후폭풍의 크기는 선거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거의 신뢰성 문제까지 뒤흔들 수 있는 수준의 초대형 태풍급이다.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맡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 지난 3일 지방선거 본투표 중에 서울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가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라는 선거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취지가 훼손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일이 투표소 한 군데가 아니라 십수 군데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를 비롯한 12개 투표소와 강남구 1개 투표소, 광진구 1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는 사태를 인지한 후 투표용지를 이송하고 현장 대기 인원에 한해 투표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소쿠리 이어 투표지가 없다? 부정선거 논란에 불 질렀다 하지만 잠실7동 제2투표소는 대기표를 받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오후 10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혼란이 발생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소에 몰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싸고 선관위 관계자와 시민 사이에 대치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강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던 데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출구조사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박빙으로 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개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투표도 동시에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야는 물론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지역이 공교롭게도 서울 지역 내에서 비교적 보수세가 강한 ‘강남권’으로 확인되자 당력을 집중한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대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개표를 중단하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표를 멈추고 상황에 따라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선관위에 책임을 묻겠다면서도 국민의힘의 개표 중단, 재선거 요구는 일축했다. 민주당 조승래 총괄선대본부장은 국민의힘의 요구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선관위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선거를 다시 치를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선관위 역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앞서 허철훈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큰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렸다”며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를 찾아주신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빙에서 불 질렀다 그러면서 “중앙선관위는 이번 사안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개표가 종료되는 즉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원인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미흡한 준비와 대처로 실망을 드리게 돼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능 선관위 선거1국장은 “이런 사례가 과거 선거에서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송파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 수의 50% (규모의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몇 표 차이로 선거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윤재수 선거관리정책실장은 “저희가 직접 말씀드리기는 좀 곤란할 것 같다”며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관위는 지난 4일 0시께 긴급 위원회를 열고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 연기나 재선거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또 “현재 진행되는 개표를 중단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요구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번 사태로 선관위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일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일어났던 ‘선관위발’ 논란이 ‘파묘’되는 분위기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소쿠리 투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간이 용기나 쇼핑백 등에 담으면서 촉발된 논란이다. 지난 조기 대선 때도 서울 신촌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관외 선거를 위해 대기하던 일부 유권자가 대기 줄이 길다는 이유로 투표용지를 받은 채 식사하고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선관위의 행태는 일부 극우층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논란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본투표에 앞서 이틀간 진행되는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등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선관위 관련 논란도 그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재선거까지 나왔지만… 부정선거 논란을 차단해야 할 기관에서 오히려 의심만 제공하는 꼴이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사정이 반복되는 부실 선거의 배경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 언론이 민주당 채현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17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새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육아휴직이 12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반 질병 휴직 30명, 가족 돌봄 휴직 11명, 해외 동반 휴직 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이른바 3대 전국 선거 때마다 휴직자가 늘어나는 선관위의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2022년 5월 기준 선관위 휴직자 수는 218명으로 최근 10년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3월에는 대선, 6월에는 지방선거가 각각 치러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진 지난해에도 선거를 한 달 앞둔 5월 기준 휴직자는 145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자 선관위도 선거 기간에는 휴직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리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등은 강제로 제한할 수 없으니 인력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인력 공백을 막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하지만 앞서 선관위 내부에서 채용 관련 비리 의혹이 크게 불거지면서 이마저도 미덥지 못한 방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선거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내부의 고질적인 병폐 등으로 지적을 받는 와중에도 선관위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지금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선관위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정을 할 수 없으면 외력이라도 가해야 하는데 그것조차 막혀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구설 불거지는데… 자정은커녕 외부 감사도 안 돼 2023년 5월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의 자녀가 선관위 경력직 채용에 특혜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아빠 찬스’ 논란의 시발점이다. 이후 선관위 자체 특별감사 결과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실태에 관한 직무감찰에 착수했다. 그러자 선관위는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면서 감사원 감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는 물론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감사원의 감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2023년 7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선관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2월 헌재는 “이 사건 직무감찰은 헌법 및 법률상 권한 없이 이뤄진 것으로 선관위의 독립적 업무 수행 권한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에 기재된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인 만큼 정부와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국회, 법원, 헌재와 같이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배경으로 선관위의 선거 관리 업무를 들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 기구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 배제가 곧바로 부패 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감사원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를 대신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선관위는 자체 감찰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내부 자정 기능에 기대를 건 것이다. 이번에는 고쳐질까 하지만 채용 의혹은 차치하고라도 그 이후에도 가장 본연의 업무인 선거 관리에서 계속해서 잡음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관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주공화국에서 무엇보다 철저해야 할 선거 관리에 납득하기 쉽지 않은 허점이 발생한 점에 대해 매우 큰 유감을 표한다”며 “국민의 참정권이 한치라도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할 만한 적절한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 선관위는 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