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동아시아의 시계, 다시 한국을 향한다

중국 흔들리고, 일본은 움직이는 순간의 한국

최근의 한·중·일 관계는 오래된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미·중 기술 전쟁 속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은 방위비 증액과 자위대의 군사화로 노선을 바꾸고 있다. 한국은 미·일 안보 체제에 편입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놓지 못하는 줄타기를 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는 세 나라가 따로 흘러온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시계 위에서 함께 움직여온 궤적이다. 우리는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를 분리해 배우지만 실제로 이 셋은 한 번도 따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중국이 중심을 잡고 일본이 주변에서 팽창하며 한반도가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구조는 수천년 동안 반복돼 왔다.

지금 우리가 보는 미·중 충돌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한국의 외교적 모호성도 이 오래된 시계가 다시 한 바퀴를 도는 장면일 뿐이다.

중국이 안정돼있을 때 동아시아는 비교적 조용했다. 한나라와 당나라, 명나라 시절에는 국제 질서가 단단했고 주변국들은 그 틀 안에서 자율성을 누렸다. 중심이 단단하면 주변은 흔들리지 않고, 패권이 분명하면 충돌도 줄어든다. 그래서 이 시기 동아시아는 교역과 문화 교류가 활발했다. 중국의 안정은 곧 동아시아 전체의 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무너질 때마다 동아시아는 즉각 요동쳤다. 907년 당나라가 붕괴하자 중앙 질서가 사라졌고, 그 공백 속에서 고려와 일본은 전례 없는 독립성을 얻었다. 해상 교역이 폭증하고 각국은 독자적 정치와 문화를 꽃피웠다. 중국의 붕괴는 주변국의 해방이자 재편의 신호였다. 이 패턴은 이후에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1911년 청나라가 무너졌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수백년간 동아시아를 지탱해 온 중화 질서가 붕괴하자 일본과 서구 세력이 동시에 밀려 들어왔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은 메이지 일본이었다. 일본은 더 이상 중국의 문화적 후손이 아니라 서구 제국과 경쟁하는 제국이 되기로 결단했다. 그 결과가 조선 병합과 만주 침략으로 이어졌다.


일본이 강해질 때마다 전쟁은 필연처럼 따라왔다. 1592년 임진왜란은 일본이 처음으로 한반도를 넘어 대륙으로 진출하려 한 시도였다. 일본에게 조선은 목적이 아니라 통로였고, 진짜 목표는 중국이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도 일본은 조선을 둘러싼 중·일 질서를 무너뜨리며 대륙 진출의 길을 열었다. 1937년 중일전쟁 역시 같은 궤적 위에 있었다.

이 모든 충돌의 중심에는 항상 한반도가 있었다. 중국 질서와 일본 야망이 맞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이 땅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강하면 한반도는 그 질서 속에 묶였고, 중국이 약해지면 일본의 침투를 가장 먼저 받았다. 그래서 한반도는 한 번도 평화로운 완충지대였던 적이 없었다. 늘 전쟁의 통로였고, 압박의 교차로였다.

지금의 동아시아도 이 구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중국은 성장 둔화와 금융 불안, 인구 감소로 내부 균열이 커지고 있다. 과거의 청나라와는 규모가 다르지만, 패권이 흔들린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런 순간에 주변 국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역사는 이 공식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일본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화헌법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방위비를 급증시키며 장거리 타격 능력까지 확보하려 한다. 일본은 자신을 더 이상 전후의 평화 국가가 아니라 전략적 군사 국가로 재정의하고 있다. 중국이 흔들릴 때 일본이 영향권을 넓히려 하는 것은 오래된 본능이다. 지금의 일본 재무장은 그 본능의 귀환이다.

미국은 이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읽고 있다. 그래서 일본을 동아시아 군사 질서의 핵심으로 세우고 한국을 그 축에 묶으려 한다. 한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전초기지이자 미·일 동맹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이것은 외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 구조의 문제다. 한반도는 다시 한번 패권 충돌의 중앙에 서 있다.

문제는 한국이 이 구조를 얼마나 정확히 인식하고 있느냐다. 많은 정치인과 관료들은 이를 단기 협상이나 일시적 위기로 본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907년은 중국 붕괴로 주변 질서가 풀린 순간이었고, 1911년은 중화 질서 붕괴와 제국 경쟁의 시작이었다. 1592년은 일본의 대륙 진출 선언이었고, 1895년은 그 야망이 패권으로 바뀐 전환점이었다.

중국이 흔들리고 일본이 움직이는 순간, 한반도는 언제나 시험대에 오른다.


지금 동아시아의 시계는 또 한 번 그 초침을 한국 쪽으로 돌리고 있다. 우리는 다시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에 서 있다. 필요한 것은 특정 국가와의 거래가 아니라 이 구조를 읽고 버틸 수 있는 전략이다. 역사를 읽지 못하면 역사는 다시 우리를 지배한다. 동아시아의 시계는 지금도 째깍거리며 한국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이 구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살아남는 법을 설계하는 것이다. 중국과 미국, 일본 중 하나를 택해 줄을 서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동아시아의 균열이 커질수록 줄서기는 곧 종속이 된다. 한국은 동맹을 유지하되, 어느 한쪽의 전초기지로 고정되지 않는 전략적 완충국가로 자신을 재정의해야 한다.

이것이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방식이다.

경제 역시 같은 원리로 재편돼야 한다. 중국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동시에 미국 기술과 금융에 매달리는 구조는 충돌이 커질수록 위험해진다. 한국은 미·중 어느 쪽에도 완전히 묶이지 않는 공급망과 기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AI 같은 전략 산업에서 한국이 빠지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해지는 나라가 될 때 비로소 선택권이 생긴다.

외교와 안보에서도 한국은 더 이상 수동적 위치에 머물 수 없다. 일본의 재무장과 중국의 불안정,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 시대에 한국은 스스로를 ‘경계 국가’이자 ‘중재 국가’로 설계해야 한다. 전쟁의 통로가 아니라 협상의 교차로가 되는 것이 생존 전략이다. 동아시아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지금, 한국이 역사의 피해자가 될지 설계자가 될지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정부 역시 이런 구조를 의식한 움직임을 보였다.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을 축으로 비정치 분야 협력을 이어가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중·일 갈등의 정면을 피해 제도의 뒤편으로 물러서는 선택에 가깝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 초 추진됐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끝내 무산된 뒤,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과 방일을 통해 관계를 각각 관리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자 틀에서 돌파구를 찾기보다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양자 관리로 내려온 셈이다. 이는 동아시아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는 지금, 한국이 흔들리는 톱니가 아니라 시간을 조율하는 기어가 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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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