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대통령의 SNS 정치, 화면? 역사? 어디에 남을까

속도는 환호 만들고, 시간은 결과 남긴다

정치는 메시지의 경쟁이자 속도의 경쟁이다. 누가 먼저 말하느냐, 어떤 문장이 더 널리 퍼지느냐, 어떤 장면이 오래 남느냐가 정치의 체급을 결정한다. 과거에는 연설문이 기록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타임라인이 역사를 만든다.

정치는 이제 화면에서 먼저 판단되고, 여론은 클릭의 속도로 굳어진다.

지난 7일 오후,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상공회의소의 ‘고액 자산가 탈한국’ 보도자료를 고의적 가짜 뉴스라고 규정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사익을 위한 왜곡이라며 책임을 묻겠다는 강한 경고도 뒤따랐다. 약 4시간 후 대한상의가 통계 검증이 부족했다며 공식 사과문을 냈지만, 이 대통령이 “가짜 뉴스”라고 질타한 지 하루 만인 8일 정부는 대한상의에 대한 즉각적인 감사 절차에 착수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 정치의 무대를 먼저 봐야 한다. 그는 기자회견보다 휴대전화 화면에 먼저 등장하는 지도자다. 발표보다 게시가 빠르고 브리핑보다 문장이 앞선다. 정치가 플랫폼 위에서 실시간으로 형성되는 시대, 그는 그 중심을 점유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말의 타이밍 자체가 리더십이 된다.

과거 이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을 떠올리면 낯선 장면은 아니다. 정치 입문 초기에 그는 직설적인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을 받으며 단숨에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복잡한 설명 대신 한 문장으로 답을 제시하는 방식은 지지와 반발을 동시에 키웠지만 존재감을 넓히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 기억 때문에 오늘의 SNS 메시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의 SNS는 단순한 홍보 수단을 넘어선다. 그것은 이미 통치 방식의 일부로 기능한다. 정책의 배경을 설명하고 지지층을 결집시키며 반대의 프레임을 정면 돌파한다. 언론이라는 중간 과정을 우회해 직접 도달하는 느낌을 만든다. 그만큼 메시지의 체감 온도는 높아진다.

정치가 전달이 아니라 즉시 반응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지지자들에게 이 방식은 강력한 해방감을 준다. 기다림 없이 반응이 나오고 복잡한 해설 없이 방향이 제시된다. 싸워야 할 대상이 또렷해진다. 정치적 에너지는 빠르게 한곳으로 모인다.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 역시 극대화된다.

최근 이 대통령의 이른바 ‘사이다 SNS’가 보여주듯 지도자와 같은 전선에 서 있다는 심리적 거리의 축소가 만들어진다.

이 대동령이 SNS에 올린 부동산·금융·외교 관련 메시지는 단호한 문장으로 하루의 의제를 다시 배열하는 힘을 보여줬다. 게시물이 올라오는 순간 무엇을 먼저 논의해야 하는지가 재정렬되고, 정치의 우선순위가 빠르게 이동한다.

임기 초 SNS에 올라온 “주식으로 장난치면 패가 망신”이라는 표현도 경고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메시지는 길지 않았지만 파장은 컸다. 관련 집단은 즉각 긴장했고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몇 줄의 문장이 투자 심리와 관망의 분위기를 빠르게 재편했다.

지도자의 의지는 압축된 형태로 명확히 전달됐고, 정책 당국이 어디를 주시하는지도 분명해졌다.


특히 부동산을 둘러싼 메시지는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차례 반복돼 왔고, 올해 연초 들어 더욱 집중됐다.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강조될수록 정책 방향은 한층 선명해졌다. ‘투기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공유되자 시장은 규제 강도를 먼저 계산하기 시작했다.

매수와 매도의 판단이 미뤄지는 사이 일부 지역에서는 매물을 내놓는 움직임이 나타났고, 강남권을 중심으로 호가를 낮춘 매물이 등장했다는 신호도 감지됐다.

대외 관계를 다루는 메시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예컨대 캄보디아를 언급하며 한국을 건드리면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경고가 나왔을 때, 그 메시지는 국가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에게 든든함을 주며 결속을 강화했다.

동시에 국제사회에는 한국이 스스로의 이익과 안전을 지킬 준비가 돼있다는 신호로 읽혔다.

이들 사례는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SNS 글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곧바로 행동을 부르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금융시장은 거래 속도를 조절하고, 부동산시장은 관망에 들어가며, 외교 당국은 파장이 어디까지 번질지 따져 본다.

글이 올라오는 순간 관련된 사람들의 판단이 달라진다. 온라인에 적힌 말이 현실에서 움직이는 순서를 바꾸는 장면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를 떠올린다. 직접 말하고 즉각 반응하며 지지자와 직거래하는 방식이 닮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전투의 무대로 삼는 이 리더십은 결단력과 속도를 증명하는 강점을 갖지만, 숙성과 조정의 공간을 줄인다는 점에서 불안 또한 함께 키운다.

힘이 빠르게 모이는 만큼, 그 반대편의 저항도 같은 속도로 커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의 발언이 상징적 충돌이나 정치적 퍼포먼스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에서는 훨씬 구체적인 행정 신호로 읽힌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올라오는 순간 부처는 대응을 준비하고 시장은 위험을 계산하며 이해관계자들은 손익을 따지기 시작한다.

게시물 하나가 정책의 예고편처럼 받아들여지는 환경이 형성돼있다는 게 미국과 다르다.

SNS 정치의 장점은 분명하다. 의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선점할 수 있고, 논쟁의 출발점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지지층의 결집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며 온라인의 에너지가 현실 정치로 곧바로 이어진다. 지도자는 매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다.

속도를 쥔 쪽이 결국 국면을 끌고 간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단점 역시 분명하게 존재한다. 한번 공개된 메시지는 기록으로 남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수정하기 어렵다. 상황이 달라져도 톤을 낮추는 순간 그 변화는 입장 후퇴로 읽히기 쉽다. 협상의 공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선택지는 눈에 띄게 제한된다.

정치가 스스로 숨을 고를 수 있는 회색지대가 빠르게 사라진다. 유연성이 줄어들수록 지도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더 커진다.

지난 8일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연이은 SNS 정치를 두고 “국정은 임의로 지웠다가 남길 수 있는 일기장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최수진 원내수석대변인은 게시와 삭제가 반복되는 소통 방식이 기록 관리 원칙을 흐리고, 비공개 메신저 중심의 논의는 검증 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면을 장악하는 정치가 자칫 휘발성 통치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정치가 빨라질수록 숙성의 시간은 얇아진다. 정책은 본래 복잡하고 이해관계의 조정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SNS는 긴 설명 대신 즉각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선과 악, 찬성과 반대가 순식간에 갈리며 협상과 타협은 화면 밖으로 밀려난다. 표현은 늘 결단처럼 들리고 기대는 빠르게 높아지지만 준비와 수정의 시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간극이 커질수록 실망과 비용 또한 함께 자라난다.


끊임없는 발신의 압박 속에서 정치는 숨을 고르기 어려워진다. 하나의 이슈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의제가 밀려오고, 사회는 매일 결집과 반발을 반복한다. 진영은 단단해지지만 유연성은 줄어든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서로를 확인하는 정치가 익숙해진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공동체의 체력은 더 빨리 소모되고, 피로는 구조처럼 누적된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단순하다. SNS에 얼마나 많은 문장을 남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꾸었느냐다. 조회 수와 박수는 흘러가지만 제도와 결과는 오래 남는다. 타임라인은 지나가도 삶 속의 변화는 기록으로 축적된다. 정치의 평가는 언제나 그 자리로 되돌아오며, 진짜 결론은 화면이 아니라 시간 위에 쓰인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속도가 리더십을 증명하는 시대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때로는 속도를 늦추는 용기도 함께 보여주기를 바란다. 빠른 문장이 지지를 모을 수는 있지만, 오래 남는 것은 결국 조정과 결과이기 때문이다.

화면을 장악한 지도자로 기억되기보다 시간을 통과한 변화로 남는 대통령이 되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속도는 권력을 만들지만, 지속은 신뢰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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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혼란의 국힘 TK 쟁탈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최근 국민의힘에선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자들만 넘쳐난다. 언론은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더 큰 몰락 가능성을 경고한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 자민련을 피할 수 있을까? 6·3 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있지만, 정가 안팎에선 국민의힘의 패배 가능성을 심각하게 거론하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달 15일 쌍특검(통일교 금품수수·더불어민주당 공천 헌금 비리 의혹 특검)을 촉구하면서 단식을 시작했다가 대통령실·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이어지는 패배 경고 그러다 지난달 22일 초라하게 단식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제명에 대해선 강한 의욕을 드러내 친한(친 한동훈)계와 소장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장 대표는 “일부 극우 유튜버들과 밀착하는 등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자신의 정치적 공간 조성 전술로 삼는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선 “자신을 지지하는 ‘목소리 큰 집단’과 공명하면서 장 대표의 정치적 의사 청취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지방선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5선을 노리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을 만나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오 시장은 “장동혁 디스카운트가 선거를 덮치지 않을까 싶은 염려가 매우 크다”며 “국민의힘 소속 자치단체장들이 말을 안 해도 속은 숯검댕이”라고 주장했다. 오 시장은 한 전 대표가 제명됐던 지난달 29일에도 “장 대표가 당을 자멸로 몰아넣었다”면서 장 대표 사퇴를 촉구했다. 여론조사 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지난달 24일부터 2일 동안 서울시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달 27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 시장은 서울시장 가상 대결에서 40.3%의 지지를 얻어 50.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성동구청장보다 10.2% 뒤처지는 결과를 얻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대구·경북(이하 TK) 외 지역에선 지방선거 전패를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분석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국민의힘의 TK 지지율은 19%로 확인돼 정가에 큰 충격을 줬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지도력의 공백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이후에도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대표를 맡아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새로운 미래 구상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거 패배 후 물러났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지난해 5월10일 새벽 3시에 김문수 당시 대선후보를 한덕수 전 총리로 기습 교체하려다가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갈등을 매끄럽게 수습·조율할 지도력 공백의 여파였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두 전직 대통령이 구사했던 정치술이 만든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2인자·미래 권력·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했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정치인은 퇴출하려고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장 디스카운트…현 시도지사 속은 숯검댕이” ‘북적북적’ 넘치는데 다른 지역은 구인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국회법 개정안 관련 갈등을 빚었던 당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을 언급하면서 국무회의 도중 강하게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발언 13일 후 원내대표직에서 사임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민의힘 이준석·김기현 전 대표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3명의 여당 수장에게 ‘격노’ 카드를 부여한 후 퇴출하는 정치술을 구사했다.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과도한 당내 권위·권력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권력 승계에 있어 큰 위기에 봉착했다. 정치학에선 과도한 권위·권력이 갑자기 무너진 후 진행되는 혼란상을 권력 공백이라고 한다. 두 전직 대통령이 추구했던 권력 형태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했던 가산관료제와 맞닿는다. 막스 베버는 “근대 관료제가 군주제 국가의 관료제보다 진보적·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군주제 국가 관료제에 가산관료제란 명칭을 붙였다. 군주제 국가의 각종 행정 기구는 군주의 사유재산을 관리하면서 군주의 개인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주는 국가의 가부장이고, 관료는 군주의 가신에 가깝다. 군주의 주관적 의지와 자의적 판단이 법적 절차보다 우위에 있고, 군주와의 친소 관계가 관직 임용의 기준이 된다. 이로 인해 관직은 거래 수단이 되는 등 사유화된다. 두 전직 대통령도 공천권을 사적 충성심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내 친박(친 박근혜) 계열 정치인을 제20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시키기 위해 공천에 개입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2018년 징역 2년형을 확정받았다. 윤 전 대통령은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개입했단 의심을 받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현대 정당 시스템을 전근대적 가산관료제로 역행시켰다.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하는 혼란은 민주적 정당성을 토대로 전임자의 권위·권력을 승계받은 후계자가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이 파면된 이후 혼란을 수습할 후계자를 양성할 수 없었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5월 대선후보였던 김 전 후보를 새벽에 기습 교체하려고 했던 것도 권력 공백 상황에서 발생했던 극단적인 혼란이었다. 한 전 총리가 김 전 후보의 대안으로 선택됐던 이유도 당내 영향력이 미약한 인사·외부인을 옹립해 특정 정치 집단의 이권을 유지하려던 것이었다. 12명 중 5명 출마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을 암시하는 현 상황 중 하나는 당내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선언만 이어지고 있단 것이다. 현재까지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주호영 국회부의장(대구 수성갑) ▲추경호 전 원내대표(대구 달성군) ▲윤재옥 전 원내대표(대구 달서을) ▲최은석 의원(대구 동·군위갑) ▲유영하 의원(대구 달서갑) 등이다. 원외 정치인으로는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과 홍석준 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TK 지역신문 <영남일보>는 지난 3일 사설을 통해 “대구 전체 의원이 12명이니, 절반 가까이 대구시장 선거에 뛰어든 셈이고, 사상 유례없는 출마 러시”라며 “추상적인 슬로건을 강조할 뿐, 대구의 미래에 대한 독자적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다”고 비판했다.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 전한길씨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 전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전한길을 품는 자가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고, 향후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수 있으며, 대통령도 될 수 있다”며 “저는 공천 같은 건 안 받지만, 만약 대구시장 후보 공천을 받는다면 이 전 위원장에게 무조건 양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방문했고, 오는 9일 대구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지난 2022년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했다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탈락했다.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정치인은 ▲이철우 현 경북도지사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김재원 최고위원 ▲이강덕 포항시장 등이 있다. 이 지사는 3선에 도전하는 것이고, 이 시장은 포항시장 3기를 채웠기 때문에 더는 포항시장으로 출마할 수 없다. 최 전 부총리는 구 친박계의 핵심으로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2022년 특별사면을 받은 후 재기를 꿈꾸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경북도지사 출마로 방향을 틀었다. 김 최고위원의 의원 시절 지역구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이었다. 반대로 다른 지역에선 구인난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을 시작했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오 시장에 이어 국민의힘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지사 후보로는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 원외 인사들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안팎에선 “과열 양상이 빚어지는 TK와는 다르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친한계는 “서울 강남·부산의 보수 성향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친한계는 십수명 안팎의 국민의힘 의원들로 구성됐기 때문에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더라도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없다. 사라진 2인자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지난달 28일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 저널>에 출연해 “신당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창당설에 선을 그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수도권 기반 의원들의 위축을 유발해 국민의힘 전체의 폐쇄적 집단 사고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선 “소장파의 성장 가능성을 완전히 거세할 위험으로 연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당내 견제 장치가 사라져 언더 찐윤의 확증 편향 중심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질 위험으로 이어진다. TK·강원을 주된 기반으로 둔 언더 찐윤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 총선부터 연이어 참패해 국민의힘의 수도권 기반이 축소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치 구도에서 수도권 출마자들은 외연 확장의 선봉장 역할을 한다. 외연 확장이 가로막히면서 기존 텃밭을 지역 기반으로 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다. 반대로 외연 확장 실패는 정당의 힘을 약화한다. “언더 찐윤에 해당한다”는 평을 듣는 국민의힘 내 TK 기반 정치인들은 “언론 노출을 꺼리면서 지역구 토호와의 접촉에 열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외연 확장 실패는 외부와의 경쟁 포기·지역 기반 안주란 결과로 연결된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 열기만 이어진단 것은 ‘영남 자민련’ 축소를 자처하는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국민의힘 내 중앙 정치의 패장들이 중앙 정치에 뜻을 잃고 내부 기반의 요새로 도피하는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현대 정치학에서 거론하는 정치적 부족주의 개념를 뒷받침한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개인이 이성적 정책·이념보다 인종·지역·종교 등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치적 정체성에 자신을 귀속시키면서 동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8년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를 출간했다. 추아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 “특정 집단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체성 정치가 활개를 치면서 증오·대립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이 전 위원장의 대구 출마를 촉구·지지하는 상황은 정치적 부족주의를 넘어 계파적 부족주의로까지 축소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연이은 수도권 참패 후유증…부족주의 강화 눈앞 아른거리는 자민련·자유선진당 뒤안길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들에 대해선 “연이은 선거 패배 때문에 이어진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 채 과거 성공했던 지역 기반 승리에 집착하는 경로의존성에 따라 보신주의를 추구한다”는 평이 나온다. 두 전직 대통령은 1인 지배 체제를 선호해 후계자 양성에 소홀했다. 이는 위기를 타개할 정치적 상상력을 가지고 미래 권력이 돼야 할 2인자가 사라졌다는 후유증으로 연결됐다. 이들은 소속 정당이 중앙 정치에서 힘을 잃더라도 지역 기반만 유지할 수 있다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새로운 모험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정치적 성공을 안겨준 지역 기반에서의 승리 공식을 토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경로의존성에 의지한다. 그 결과, 국민의힘의 대구 지역 의원 12명 중 5명이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현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 현상에 대해선 당이 “불확실한 중앙 정치를 감당할 역량마저 고갈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도 있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일부 지식인은 거듭되는 난세를 정치적·정신적으로 감당하지 못했다. 이들 사이에선 대나무숲에서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면서 노장사상을 토대로 구성된 청담을 말하는 풍조가 유행했다. 이들 중 특히 유명했던 선비 7명을 묶어 죽림칠현이라고 한다. 죽림칠현은 모친상 도중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친구의 모친상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는 등 기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들은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 말년엔 고위 관직을 지내거나, 위나라 황실 사위가 되는 등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들에게 대나무숲은 정치적 실패를 잊기 위한 도피처였다. 사회 전반적로는 5가지 광물을 섞어 제조하는 마약 오석산이 유행했다. 죽림칠현도 술에 오석산을 섞어 마시면서 청담을 논했다. 오석산 복용자들은 환각 상태에서 기행을 저질렀다. 독성 때문에 피부가 약해지기 때문에 새 옷의 반듯함을 감당하지 못해 낡고 헐렁한 옷을 입어야 했다. 그래서 위나라 곳곳엔 낡고 헐렁한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민의힘에서 대구시장·경북도지사 출마만 이어지는 현상은 “텃밭으로 돌아가 연이은 선거 패배와 정권 상실이란 현실을 잊고 자아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언론이 국민의힘을 일컬어 ‘영남 자민련’이나 ‘영남 소수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더 큰 몰락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연립 정권의 한 축이었던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은 정치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연이어 선거에 패배한 후 2006년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자유선진당은 충청권에서조차 자민련만큼의 지지세를 확보하지 못해 2012년 총선 참패 후 새누리당과 합당해 소멸했다. 다가오는 몰락의 길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등 ‘중도 보수’ 선언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연 TK만 북적거리는 국민의힘은 자민련·자유선진당의 뒤안길을 걷지 않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