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앞을 보는 교육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이제 눈 뜨고 현실을 봐야 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00년이 아니라 30년만 내다봐도 좋을 것 같다.” 이제는 교육계에서 고리타분한 표현으로 여겨지는 ‘교육 백년지대계’에 대한 언급에 정근식 교육감이 답한 말이다. 시대 변화가 빨라진 상황에서 교육이 그만큼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러면서 정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 외벽에 붙어 있는 슬로건 ‘학생의 꿈, 교사의 긍지, 부모의 신뢰’는 ‘미래를 여는 협력 교육’이 만들어낼 궁극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최근 교육계에 ‘수능 폐지’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나온 주장이라 관심이 집중됐다. 영어 영역 난이도 조절 실패로 오승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퇴하는 등 수능을 ‘국가적 이벤트’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에 역행하는 제안이기도 했다.

경쟁 교육?
협력 교육!

지난 10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미래형 대입 제도 제안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한 이날 기자회견의 골자는 ‘대학 입시가 학생의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정 교육감은 “언제까지 교실 수업의 변화와 학교 교육의 혁신이 대학 입시에 가로막혀야 하나”라며 “고등학교 교실을 살리고 고교학점제의 안착을 위해 내신 평가제도 전반의 개선안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2009년생)이 치르는 2028학년도 대입부터 수도권 대학의 정시 비율을 낮추고 올해 초등학교 5학년(2014년생)이 대상인 2033년학년도 대입에서는 수능에 서술·논술형 평가를 도입한다. 수능과 내신 모두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도 이 시기에 적용된다.

현재 5세(2021년생)인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2040학년도에는 수능을 폐지한다. 핵심은 학생을 뽑는 과정에서 수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다가 궁극적으로는 없애자는 것이다.

사실 수능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계에서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암기력 테스트에 가까운 현재의 제도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 시장이 과열되면서 일정 정도의 공정성과 형평성이 담보되는 제도인 수능을 없애는 것은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를 공고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정 교육감의 기자회견이 교육계에서 화두로 떠오른 것은 제안 내용보다는 발화자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 초중등 교육의 설계자이면서 조타수인 교육감이 수능이라는 고등교육제도에 말을 얹은 것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른바 교육감이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교육감은 “초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초중등 교육이 바뀜에 따라 대학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측면이 있고 반대로 대학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에 따라 초중등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며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지금 이게 서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 교육감은 “현재 사회와 기업은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 외워서 풀어야 할 문제는 이미 AI가 전부 하고 있다. 현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창의적인 인재, 그리고 사회적으로 관계 맺기를 잘하는 인재, 다른 사람의 문제를 듣고 그걸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다. 현재와 같은 교육제도로는 그런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그래서 서울시교육청이 선제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를 여는 협력 교육’ 목표
진보 사회학자·과거사 위원장

지난 12일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만난 정 교육감은 여러 차례에 걸쳐 “특정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교육제도도 그에 휩쓸릴 것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결국 교육이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일종의 한탄이기도 했다.

정 교육감은 인터뷰 전 현장 방문한 창신초등학교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과거 학생이 많을 때는 1만2000명까지 있었다고 한다. 2부제, 3부제 하면서 수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 학생 수가 276명밖에 안 된다. 15년 뒤인 2040년에는 어떨까?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을 합치면 정원이 50만명 정도 된다. 이미 대학 정원이 대학에 입학하려는 학생보다 많아졌다. 과거 학생이 100만명이던 시대에는 대학은 적고 학생 수는 많아 경쟁을 통해 선발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경쟁 교육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귀한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옛날에는 일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중심으로 학교가 운영됐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를 둘 낳는 집도 많지 않다. 학생 한 명, 한 명에 맞는 맞춤형 교육으로 인재를 만들어내야 한다. 개인, 가정, 사회적으로 이런 방식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며 “그렇게 봤을 때 수능이 그런 맞춤형 교육에 적합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4지 선다, 5지 선다형 ‘정답 맞히기’형 교육으로는 사회가 필요한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 교육감은 지난해 10·16 교육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서울시교육청에 입성했다. 조희연 전 교육감이 ‘해직 교사 특혜 채용’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치러진 선거였다. 진보 사회학자이면서 문재인정부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을 역임한 그의 이력을 교육감과 연결 짓는 과정에서 기대와 걱정이 따라붙었다.

학령 인구↓
창의 인재↑

정 교육감은 교육 현장과 거리를 좁히는 방법을 통해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지난해 10월17일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160여차례에 걸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방문했다.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은 “하루에 두 군데 학교를 방문하는 일도 많다”고 귀띔했다. 정 교육감 역시 “현장에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정 교육감은 “서울은 (인구가) 굉장히 밀집돼 있지만 지역마다 사정이 아주 다르다. 초기에는 학교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고 하면, 최근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은 학교와 학생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복지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은 곳, 다문화 학생이 많은 곳, 주변 환경에 위험 요소가 많은 곳 등을 살피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을 중시하는 정 교육감의 방식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사태에서 빛을 발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수십년 만에 일어난 일인 만큼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특히 학교 수업이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의 안전은 담보할 수 있는지 등이 당장 문제로 떠올랐다.

정 교육감은 “비상계엄이 발동되자마자 여기(교육감실)에서 비상 회의를 진행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학교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해야 했다. 필요하면 휴교 등의 조치를 해야 했고 현장에 혼란이 있을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비상 대응 체제를 유지했다. 다행히 국회가 2시간 만에 비상계엄을 해제하면서 당장 큰 혼란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비상계엄이 해제됐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서울서부지법 사태도 일어났다. 학업 분위기가 저해되지는 않을지, 등하교 때 안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우려했는데 현장 방문, 안전 점검 등을 통해 다행히 사고 없이 잘 극복했다”고 자평했다.

이처럼 정 교육감이 주도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은 학생의 ‘안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특히 학생의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의 안전을 위한 ‘마음건강’ 정책은 정 교육감의 가장 큰 관심사다. 최근 들어 초·중학교 학생의 극단적 선택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정 교육감은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 그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교육감에게 올라온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이나 경위 등이 담긴 보고서다. 보고서를 읽다 보면 자살 미수, 자해 시도 등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징후가 있던 경우가 많다. 그런 내용을 볼 때마다 교육감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현장에
답 있다

이어 “지난 10월 ‘서울 학생 마음건강 증진 종합 계획’을 내놨다. 모든 학생에게 생명 존중과 극단적 선택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사회 정서 교육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제안했다”며 “또 마음건강이 좋지 않은 학생을 조기에 발견해서 지원하는 방안도 담았다. 무엇보다 극단적 선택 고위험군 학생을 긴급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일이 일어났다면 그런 학생의 친구나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치유도 진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교육감 이전에 사회학자인 정 교육감은 초·중학생의 극단적 선택이 늘어난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부모의 불화 등 가정적 요인 ▲경쟁적이고 배타적인 교육제도 ▲SNS로 인한 자기 관리 약화다. 특히 SNS의 발달로 학생들이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요인들이 어린 학생의 불안과 우울, 고독, 외로움 등을 자극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도록 한다고 했다.

정 교육감은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은 이제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구조의 변화, SNS 같은 사회적 소통 방식의 변화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학업 스트레스 또한 학생의 극단적 선택에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기에 서울시교육청으로서는 그 부분을 개선하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학교가 학생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는, 경쟁 교육이 아닌 협력 교육이 학생들의 마음건강이나 심리 정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판단으로 마음건강 종합 계획을 짰다”고 부연했다. 정 교육감이 가진 교육 철학과 취임사에서 여러 번 강조한 교육의 본질과 맞닿은 지점이다.

초·중학생 극단적 선택 많아져
‘마음건강 증진 종합 계획’으로

정 교육감은 “학생들이 소질과 적성에 따라 자아를 완성해 가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1번”이라며 “두 번째는 민주시민으로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세 번째는 미래 사회에서 직면할 여러 가지 도전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학습 역량을 주도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교육의 본질에 대해 언급했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야만 교육이 완성된다는 주장이다.

그의 교육 철학은 대학 시절에 만들어졌다.

정 교육감은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은 젊었을 때부터 있었다. 서울 사당에서 빈민 학생을 상대로 야학 수업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의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나타난 빈민을 보면서 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를 받아 자기 계발이 가능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사회 맥락에서 누구나 충분히 교육을 받고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형평성을 유지하면서 모두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은 사회학자로서, 과거사 위원장으로서, 또 교육감으로서 정 교육감이 살아온 삶의 기초이자 출발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이미 ‘사망 선고’를 내린 공교육 현장을 어떻게 해서든 부활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정 교육감은 학교의 문제는 가능하면 학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폭력 기록을 대학 입시에 반영하는 정책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정 교육감은 “학교폭력을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하니까 소위 말하는 가해자가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학교 문제를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과도하게 법이 개입하면, 즉 엄벌주의 방식으로 진행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숙려제’를 도입했다. 학교폭력 문제를 기록하고 처벌하기에 앞서 교육적 가치, 본질에 맞게 조정하고 화해하는 방식을 먼저 해보기로 한 것이다. 또 해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줄이는 등 교사와 학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폭력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예방 장치가 만들어졌지만 과도하게 법률주의, 엄벌주의로 흘러가면서 불거지는 여러 부작용을 극복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한 숙려 제도를 좀 더 확대해 나가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학교 문제는
학교 안에서

정 교육감은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상을 좇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과거에도 초등학생, 중학생의 극단적 선택은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엄청난’ 숫자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왜 사회는 이런 현실을 바라만 보고 있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침묵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음을 선택하는지 공론장에서 논의하고 해결을 위한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교육제도의 변화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과도한 경쟁의 결과로 드러난 부작용에 눈을 감으려 한다. 이제는 드러내놓고 말해야 할 시기다. 어른으로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여는 게 좋은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교육 패러다임의 대전환, 협력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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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여야 6당이 참여한 개헌 시도는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으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입법적 전격전을 선호하는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내년 재보궐선거까지 약 10개월 동안의 공백기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의 청야전술은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 국민의힘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여야 6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지난 7일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후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이튿날인 8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안 처리를 중단했다. 정족수 미달 투표 불성립 현행 헌법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나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를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이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거쳐 유권자 과반이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이 찬성해야 확정된다. 지난 7~8일 기준, 국회 재적 의원은 286명이라서 개헌안 가결에는 191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106명이다. 여야 6당 의원 전원이 개헌안 투표에 참여해 찬성한다면, 국민의힘에서 최소 11명 이상의 이탈자가 나와야 한다. 개헌안에는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마 민주항쟁 명시 ▲계엄 선포 시 48시간 이내 국회 승인을 받아야 유효하도록 변경 ▲국회가 계엄 해제를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대통령 권한 축소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은 연임 불가 선언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며 “개헌을 하겠다면, 먼저 이재명이 연임 불가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기자들을 만나 “부마 민주항쟁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을 헌법 전문에 담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헌법 전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게 아니라, 통합적 역사 인식 아래 균형 잡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다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87년 개헌은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 견제에만 집중해서, 국회에 예산·입법 등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기형적 구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가 권력남용을 이유로 언제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탄핵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폭주하는 국회도 해산의 심판대에 설 수 있어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성된다”며 “의회해산권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지난해에도 민주당을 비판할 때마다 의회해산권 도입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헌안 속 숨겨진 덫을 잘 파악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개헌은 통치 구조 개헌의 전초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적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성적 고려 차원에서 삽입된 조항이다. 대통령이 해당 조항의 효력을 무시하면서 임기 연장·중임 변경을 추진하려면 하야한 후 재선을 노려야 한다. 건국·새마을운동·의회 해산 쏟아내…과연? 이재명 독재 연장? 헌법 구조상 불가능한데…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매우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송 원내대표가 헌법 전문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실제로 시도할 경우, 엄청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전문은 실제 헌법재판에서 보충적 규범으로 활용되는 등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법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의 취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사적 평가가 끝난 불가역적 가치를 담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 이념 등이 담겨있다. 여야 6당이 전문 추가를 시도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도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재평가를 주도했던 정권은 국민의힘의 전신 신한국당 소속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였다. 송 원내대표가 주장한 건국 이념 반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곧바로 충돌한다. 임시정부 법통 논란은 해방 직후에도 치열하게 진행됐던 논쟁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했던 진영은 이승만 전 대통령·한국민주당 등 우익 진영이었다. 제헌의회도 임시정부 시절 임시의정원의 정통성을 승계하는 방향으로 정통성을 확보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정한 후 역사적 상식으로 굳어졌다가 뉴라이트 진영이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면서 송 원내대표의 주장으로까지 흘러간 것이다. 건국 이념 반영은 임시정부 법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 의원이 주장한 의회해산권에 대해서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온다. 의회해산권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총리가 보유하는 권한이다. 의회가 갖는 내각불신임권과 함께 상호 견제를 위한 짝패를 이룬다. 국무총리가 있고, 현역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는 우리 통치 체제는 일정 부분 의원내각제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의회가 아닌 국민을 향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 아울러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권을 가질 뿐 대통령과 내각을 불신임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구조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을 가졌던 것은 유신 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다. 이 헌법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던 프랑스 드골 헌법을 참고했다. 역사적 평가 불가역 가치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선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6석을 보유한 국민의힘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개헌안의 주요 내용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은 모두 전신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을 포함한 국민의힘의 약점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4·19 혁명에 이어 역사적 약점이 헌법 전문에 추가되는 굴욕을 감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부분까지 감수하면서 개헌안 표결에 불참했다. 부마 민주항쟁의 무대 부산·마산은 오랫동안 국민의힘을 탄탄하게 받쳐주던 주된 지지 기반이었다. 부산·경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경합 지역이 됐다. 국민의힘은 개헌 투표에 불참하면서 부산·마산의 위업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걷어차는 외통수에 갇혔다. 비상계엄 관련 개헌안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면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개헌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일단락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의 업보가 헌법에 명백하게 못 박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라는 암시가 새 개헌안에 담기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야 6당 중 민주당에 대해선 “국민의힘의 구조적 약점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기습적인 총력전을 시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 정당은 이미 6·3 지방선거라는 총력전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선 “개헌 시도가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총력전 속 총력전’을 시도한 것과 비슷하다. 개헌 시도와 6·3 지방선거를 묶는 연환계를 구사하면서 전쟁을 양면 전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세가 줄어들어 물량 동원에 한계를 보이는 국민의힘을 상대로 심리적·물리적 과부하를 유도한 것이다. 이는 장 대표의 지도력 논란까지 파고들어 결정적 지점에 화력을 집중하고, 국민의힘의 정치적 명분까지 꺾으려 했던 난도 높은 승부수였다. 개헌안 표결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국민의힘의 궁색한 현실을 전방위적으로 폭로했기 때문에 “졌지만 지지 않은 승부”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그 궁색한 현실 때문에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고전적인 청야전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총력 공격 총력 방어 이는 명장들이나 강대국이 자주 구사하던 전법이었던 사실을 전쟁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 태종은 제1차 고당(고구려-당나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전략을 바꿔 수시로 소규모 부대로 고구려를 침공해 변방을 교란하는 등 소모전을 병행했다. 태종의 뒤를 이은 당 고종은 2회에 걸쳐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제2차 고당 전쟁 당시 사수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했지만, 방어선이 한반도 내부로 점점 밀리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제3차 고당 전쟁에서는 내부 배반까지 겹쳐 고구려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도 독일군이 서부전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기습을 당해 방어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을 때, 바그라티온 작전이라는 총력전을 진행해 동부전선 내 독일군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민주당이 노린 전세는 이 같은 구도였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로 재임할 당시부터 윤석열정부를 상대로 30건이 넘는 탄핵소추를 발의하거나 법안 물량 공세를 펼치는 등 총력전 양상의 입법전을 주도했다. 17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를 확보한 데서 비롯됐다. 원래 민주당은 압도적 지방선거 승리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이 대통령 공소 취소를 강하게 추진하는 상황에 대한 일부 유권자의 반감을 사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보수층이 결집하는 등 선거 구도가 백중세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고, 개헌까지 시도했다. 지방선거 종료 이후엔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전까지는 선거가 없는 만큼, 오는 6월부터 내년 4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여야가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는 실제 정치학·정책학 이론으로도 입증된다. 존 W. 킹던 미국 미시간대 명예교수는 ‘정책의 창’ 이론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준비된 해결책이 있으며 ▲정치권이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 등 3박자가 맞물리면 ‘정책의 창’이 열린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관점에서는 선거 종료 이후 유권자로부터 직접 심판받지 않는 그 10개월이 정책의 창이 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헌 및 이 대통령 공소 취소 등 물량 공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시간대라고도 볼 수 있다. 업보·약점 헌법 전문 실리면 위헌 정당? 투표 불참·필리버스터…청야전술 한계 전술적으로 보더라도, 국민의힘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청야전술격 수동적 방어밖에 없다. 법안을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게 된다. 그럴수록 국민 피로도가 높아지고, 중도층의 의심을 받게 된다. 진영이 확고하게 나뉜 상황에서는 중도층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 필리버스터는 말 그대로 마지막 방법이어야 하지만, 국민의힘이 거듭 사용하면서 식상해져 그만큼 비장함의 강도도 낮아졌다. 민주당의 입법적 전격전과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는 일종의 경로가 됐다. 양당 모두 경로 의존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송 원내대표와 나 의원을 통해 ▲건국 담론 ▲새마을운동 ▲근대화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등 반격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담론이기 때문에 기존 경로를 고칠 만큼 파급력이 강한 승부수가 되긴 어렵다. 아울러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선거 기간이 아닌 10개월 동안에도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중도층의 설득을 얻을 영구적 선거운동을 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해선 중도층의 의견이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민주당으로서도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헌안의 경우는 다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요건 변화 등은 국민 대다수가 이미 평가를 마친 사안이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중도층·보수층의 비판을 상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영구적 선거운동을 통해 내년 재보궐선거에까지 대비하는 입법적 공세를 치르려고 한다. 청야전술은 자신의 경제 기반을 모두 허물면서 진행하는 극단적 처방이다. 국민의힘이 투표와 토론을 포기하거나 체력을 소비하는 등 극단적 처방을 할수록 대중·언론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어 지지 기반인 부산·경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헌법 전문에 담는 것까지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 22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동로마 제국이 몰락을 이기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세운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은 오스만 술탄국이 준비한 대형 ‘우르반 대포’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 예니체리 등 최정예 병력을 앞세운 오스만 술탄국의 물량 공세도 이겨내지 못했다. 여기에 방어전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용병 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부상 때문에 전장을 이탈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궁색한 현실 자충수 되나 물론 청야전술에도 한계는 있다. 국민의힘에는 연개소문이나 조반니 주스티니아니조차도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에는 정책의 창이 열릴 것이다. 지도력 공백을 회복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이제 청야전술을 넘어선 새 전술을 고안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연 정책의 창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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