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정원이 12·3 내란 연루 의혹으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조태용 전 국정원장만이 피의자 신분이지만 국정원 조직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문건도 정치적 파장이 컸다. 여권발 국정원 대공·방첩·공작 기능 약화 계획의 전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최근 국가정보원이 12·3 내란 당시 계엄사에 인력 파견을 검토하고 활동 계획을 세웠다고 밝힌 바 있다. 윤 의원이 관련 문건을 공개한 이후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국정원이 또 정치적 태풍에 휩쓸렸다는 평가다.
갑자기 날벼락
윤 의원이 공개한 문건의 제목은 ‘비상계엄 선포 시 안보조사국 조치사항’이다. 문건에는 안보조사국 직원 80여명을 계엄사 및 합수부 등에 파견하는 방안과 함께 계엄사에는 연락관을, 합수부에는 조사관을 보내고, 중앙합동정보조사팀을 5개조 30여명으로 꾸려 주요 임무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10여명으로 꾸려지는 1개조는 당정 고위 간부, 특수부대 게릴라, 침투 간첩 등을 담당하고, 1개조는 이탈 주민을 담당하기로 하는 등 매우 구체적인 업무계획도 세웠다. 대통령령으로 임시 특례법을 제정해 문재인정부 시절 대공수사권 이관으로 사라진 국정원 직원의 수사권을 부활시키는 방법도 기술됐다고 한다.
국정원은 윤 의원에게 “이 문서는 담당 부서에서 작성한 것으로, 지휘부에 보고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의원은 문서가 작성된 시점을 들어 “누군가의 지시로 검토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소한 안보조사국을 책임지는 황원진 2차장은 몰랐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국정원으로부터 임의 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 중이다. 최근에는 국정원 담당 부서 관계자를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형사소송법 제110조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책임자 승낙 없이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특검팀은 지난 18일 조 전 국정원장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면서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 금지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법의 정치 관여 금지는 국정원장과 국정원 직원 등이 정당이나 정치 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7년 이하의 징역과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 외에도 압수수색영장에 국정원법상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 등도 적용했다. 조 전 원장은 내란 당일 국무위원이 아님에도 대통령실에 조기 호출돼 위법한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알고 있음에도 국회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계엄 선포 시 안보조사국 조치사항’ 문건 파장
내란 특검, 압수수색 후 조태용 지시 여부 확인
국정원법 15조에선 국정원장이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대통령 및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그러나 조 전 원장은 국회 정보위에 이를 즉시 통보하지 않았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를 폭로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게 사직을 강요하고, 박종준 전 대통령실 경호처장과 공모해 홍 전 차장의 비화폰 기록을 삭제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비상계엄 계획을 인지한 시점부터 계엄 해제 전까지의 통화 내역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조 전 원장은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인지한 시점부터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안 통과 전까지 국회 정보위 소속 인사들과 연락을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 해제 이후인 같은 달 4일부터 6일 사이, 국회 정보위원장인 국민의힘 신성범 의원과 세 차례 통화한 기록이 끝이다.
6일 통화는 홍 전 차장의 사직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조 전 원장은 이후 신 의원과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를 근거로 조 전 원장이 국회에 연락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보고할 수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정원 내부 분위기는 말 그대로 초토화 상태다. 특검 수사 이후 국정원의 방첩·대공·공작 기능이 크게 약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강제 수사 내부 초토화 “또 정치적 외풍”
“대공·공작 기능 약화하려는 빌드업 의심”
지난 17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공수사 업무가 경찰로 이관된 지 2년째인데 인력이나 장비·예산 등이 넘어온 것이 없다”는 민주당 이상식 의원 지적에 “정부조직법 통과 후 인력 배치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해 국정원 대공 조사 기능이 축소될 수도 있다.
현재 경찰은 국정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첩보를 바탕으로 국내 주 간첩 수사를 진행한다. 문제는 여전히 대북 수사 경험이 전무한 경찰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상실로 인한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협력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경찰이 단기간 내에 충분한 대공수사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 우려를 표하는 시각은 여전하다.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첩보 수집과 깊이 있는 분석 평가를 통해 정보를 생산해내는 능력 등은 단기간에 갖춰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그간 북한의 대남 공작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온 국가 핵심 기능이 저하됨에 따라 일정 수준 안보 공백 발생은 불가피하다”며 “경찰과 내·수사 협업 및 직무 교육을 실시했고, 현재 ‘대공 합동수사단’을 운영하며 대공 수사기법을 경찰에 전수 중”이라며 “국가정보원법에서 위임받은 직무 범위에 따라 유관 기관과 직무 교육 및 협업 체계 구축, 합동수사 기구 참여를 통한 정보 지원 등 국가 대공 역량 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국정원 대공수사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경찰 실적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기간에 검거가 가능한 국보법 제7조(찬양, 고무 등) 위반 사범이 대부분”이라며 “직파간첩이나 북한 연계 지하 조직, 고첩망 사건과 같은 중요 사건은 대부분 국정원에서 처리해 왔다. 이는 통계가 말해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정보기관 일각에서는 윤 의원이 공개한 문건만으로 국정원이 내란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위축된 분위기
국정원 국장을 지낸 한 인사는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 의원이 모를 수가 없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법에 따라 조처돼야 할 사안들이고, 국정원과 같은 국가 안보에 대처하는 정보기관은 윤 의원이 공개한 문건들을 항시 준비하거나 생산한다”고 말했다.
대북 공작 업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 관계자도 “안보조사국은 대공수사권 폐지 이후에 생긴 부서다. 대공수사국과 수사단 전문가들이 소속된 곳인데 정권이 바뀐 이후 관련 문건이 공개된 건 국정원의 방첩 및 대공 업무 기능 축소를 위한 빌드업으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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