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5년부터 10여년 간 이어진 ‘가짜 백수오’ 파동이 일단락됐다. 한국소비자원의 발표로 시작된 사건은 사회 곳곳에 유탄을 뿌렸다. 법원이 판결을 확정하면서 사건으로 손실을 본 사람은 회복할 길이 사라졌다. 지난 10년의 과정을 <일요시사>가 되짚어봤다.

‘시중 유통 중인 백수오 제품 상당수가 가짜.’ 2015년 4월22일 한국소비자원(이하 소비자원)에서 내놓은 보도자료 한 건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갱년기 장애 개선·면역력 강화·항산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백수오 제품이 인기를 끌던 차에 나온 소식이었다.
1/10 폭락
당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소비자원은 시중에 유통 중인 32개 백수오 제품의 원료 진위 여부를 조사했다. 그중 백수오를 원료로 사용한 제품은 3개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6개 업체에 ‘백수오등복합추출물’을 공급하는 ㈜내츄럴엔도텍이 공장에 보관 중이던 가공 전 백수오 원료를 조사한 결과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도 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이엽우피소는 백수오와 외관상 형태는 비슷하지만 성분이 상이하다. 특히 간 독성·신경쇠약·체중 감소 등의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고 국내서 식용 근거가 없는 등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소비자원은 “백수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재배 기간이 짧고(백수오 2~3년, 이엽우피소 1년), 가격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이엽우피소를 백수오로 둔갑시켜 유통·제조·판매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건강기능식품에 부작용을 유발하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내용이 전해지자 내츄럴엔도텍의 주가는 폭락했다. 사과문도 발표했지만 소비자원 공표 이전 주당 8만6000원대였던 주가는 한 달 만에 주당 8500원대로 10분의 1 토막 났다.
최근 소비자원의 발표로 주가가 폭락해 손해를 봤다며 주주들이 낸 소송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내츄럴엔도텍 주주 18명이 소비자원과 직원들,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판결을 지난달 15일 확정했다. 결과는 원고 패소.
앞서 2015년 6월 수원지검은 내츄럴엔도텍을 무혐의 처분했다. 백수오 샘플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된 것은 맞지만, 비율이 3% 정도에 불구하고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년간 독성 시험을 한 뒤 2017년 8월 ‘백수오는 끓는 물로 추출해 섭취하면 안전하고 이엽우피소가 미량 섞이더라도 건강상 위해 우려는 없다’고 발표했다.
이후 이듬해 4월 내츄럴엔도텍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로 판결하면서 당시 소비자원의 발표를 허위 사실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는 “시중서 판매되는 백수오 식품 32종에서 시료를 채취해 조사한 결과 29개 제품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소비자에게 이 같은 사실을 신속하게 알리고 섭취에 주의할 것을 당부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소비자원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신속하게 공표할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된다”며 “공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거나 긴급한 필요 없이 공표를 진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2015년 이엽우피소 검출 발표
대법원 “배상 책임까진 없어”
대법원도 판결 자체는 원고 패소로 했지만 세부 내용이 달랐다. 소비자원의 발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 공표 당시 소비자원은 내츄럴엔도텍 제품에 포함된 이엽우피소의 양이나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경위를 확인한 바 없다”며 “내츄럴엔도텍이 원가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백수오를 이엽우피소로 대체했다고 단정할 만한 객관적 자료 역시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비자원은)업체 등이 원가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백수오를 이엽우피소로 대체했다는 취지로 공표해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제품이나 원료 대부분에 인체에 유해한 이엽우피소가 상당량 혼입됐음을 암시했다”며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히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객관적이고도 타당한 확증과 근거가 있다거나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위법한 허위 사실 공표의 피해자는 내츄럴엔도텍 등 회사들로 봐야 하고 소비자원의 발표와 주가 하락으로 인한 주주들의 손실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원심 판단에 부적절한 부분이 있지만 주주에게 배상해야 할 책임까지는 없다는 취지다.
가짜 백수오 사건이 10여년간 입길에 오르내린 것은 당시 청와대 인사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2017년 이유정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서 주식 거래 차익 문제로 야당의 집중 공격을 당했다. 논란이 된 주식이 바로 내츄럴엔도텍이었다.
이 전 후보자의 남편이 재산 신고를 했을 당시 주식은 2억9000만원 수준이었지만 헌법재판관 지명 이후 신고된 재산에서는 주식이 12억원이나 늘어난 15억1000만원에 달했다. 1년6개월 새에 10억원 넘게 주식가액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내츄럴엔도텍 주식으로 5억원이 넘는 매도차익을 낸 부분이 의심을 샀다. 이 전 후보자는 내츄럴엔도텍이 상장도 되기 전인 2013년에 주식을 구매했고 가짜 백수오 사건으로 주가가 폭락하기 전까지 차익을 실현했다.
이 전 후보자는 지명 25일 만에 결국 자진 사퇴했다. 그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면서도 “주식 거래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들, 제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불법적인 거래를 했다는 의혹들은 분명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2022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투자를 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후보자의 무죄가 확정됐다. 이 전 후보자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1심 재판부는 “식약처 정보는 투자 판단을 하는 데 영향을 미칠 정도로 명확성과 정확성을 갖추고 구체화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당시 가짜 백수오 성분이 검출됐다는 정보와 그렇지 않다는 정보가 혼재돼있었기 때문에 식약처 검사 결과가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인지 알 수 없고 검증도 가능하지 않았다”고 봤다. 결국 대법원서 판결이 확정되면서 이 전 후보자는 의혹을 벗게 됐다.
재판관도 날려
10여년에 걸쳐 진행된 사건은 기업과 사람에 상당한 상흔을 남겼다. 한때 건강기능식품으로 잘나가던 기업은 전성기 때보다 크게 쪼그라들었고 주주는 손실을 봤다. 그렇다고 정부 기관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결국 승자가 없는 긴 싸움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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