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신종마약 백태

먹어도 안 걸리는 환각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마약 청정국’이라는 이름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검찰과 경찰,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마약사범들은 오히려 새로운 마약을 개발해 법망을 피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압수된 마약 중 신종마약의 비율은 지난 2017년 대비 10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신종마약을 마약류로 분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법망을 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만명을 넘어선 마약사범의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먀약 유통도 더 교묘해지고 대담해졌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신종마약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원(이하 국과수)서 감정한 압수품 중 35%가 신종이다.

2만명
넘었다

행정안전부 소속인 국과수는 지난 25일 마약류 국내 확산 실태를 분석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4’를 발간했다.

국과수는 “세계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SNS), 다크웹, 가상화폐, 국제 우편 및 특송 서비스, 도어-투 도어 택배 등으로 마약 유통망이 다변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마약류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마약류 관련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마 합법화와 합성 대마 등 신종마약류의 유행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며, 연령대별로 마약 오·남용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10대와 20대서의 마약 오남용이 늘어나고 있다”며 최근 7년간 국과수 서울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을 중심으로 최근 동향을 살폈다고 설명했다.


감정 백서에 따르면 국과수는 지난해 12만703건의 마약류를 감정했다. 이는 지난 2023년 대비 5.2%가 낮아진 수치다. 지난 2018년 4만3808건에서 2019년 6만3865건, 2021년 7만6528건, 2022년 8만9000건으로 매년 증가하다, 지난 2023년 12만7365건으로 역대 최다 감정 건수를 기록했다.

감정 건수가 소폭 줄어든 이유는 소변과 모발 감정 의뢰가 전년보다 각각 17%, 15%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압수품 감정 의뢰는 5만406건으로 지난 2023년 대비 12% 늘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지난해 한 해 동안 마약류 단속 대상이 마약류 남용자보다 유통책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의뢰된 압수품 중 검출된 마약류(3만669건)의 종류를 살펴보면 여전히 메트암페타민(1만3123건), 대마(2846건), 양귀비(2828건)와 같은 고전적인 마약류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메트암페타민이 전년 대비 10% 넘게 감소한 반면, 합성대마(5650건)와 반합성대마(882건)는 7.3%, 1.9% 증가해 전체적인 마약류 남용의 변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자담배, 알약, 사탕…
새로운 종류 압수 10배↑

이들 마약류를 유형별로 분류한 결과, 여전히 분말(8044건) 형태의 유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주사기(5161건), 식물(4594건) 등의 순이었다.


다만 주사기는 예년에 비해 많이 감소한 반면, 전자담배 유통 시 카트리지에 충전할 수 있는 액상(3320건) 형태가 크게 증가했다. 전자담배(2058건) 형태의 마약류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최혜영 국과수 마약과장은 “주로 전자담배 및 액상 형태로 유통되는 합성대마류의 유행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종마약의 경우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압수품서 검출된 신종마약은 34.9%로 역대 최대 비율이었다. 지난 2017년에는 3.4%에 불과했던 신종마약의 비율은 2020년까지 전년 대비 1.5%에서 4.8% 소량 증가하다가 지난 2021년 들어서 14.4% 대폭 증가한 26.2%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과 2023년에는 2021년과 비슷한 비율의 신종마약이 검출됐다.

합성대마류가 15.2%로 가장 많았고, 케타민(10.1%), 엠디엠에이(4.2%), 반합성대마(3.0%), 코카인(1.6%) 등이 뒤를 이었다.

국과수에 따르면 국내서 관리하는 마약은 약 2000종이다. 게다가 매년 50개에서 100개가량이 추가로 발견되고 있다. 다만 지난해 추가로 발견된 신종마약은 합성 대마를 포함해 100건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역대급 적발
심각한 상황

한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는 “마약 사건서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유·무죄를 가릴 중요한 단서”라며 “특히 합성 대마 같은 경우 종류가 너무 많아서 지금도 감정이 가능한 종류가 몇 가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경찰과 검찰서 단순 투약자가 아닌 유통책 검거에 힘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현재 발견되는 신종마약의 종류는 합성 대마 종류”라며 “대마와 다른 화학물을 합성하는 방식이라 대마의 성분 감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에 문제가 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마약”이라며 “이는 국과수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마약 종류가 부족해서 마약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이지만 기존 마약을 합성한 경우 감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과수 데이터베이스로 감정할 수 있는 약 2000여가지”라며 “국과수가 감정하지 못한 마약 종류는 5년 동안 40여가지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국과수는 지난 2월 신종마약류 ‘2-플루오로-2-옥소-피시피알(2-fluoro-2-Oxo PCPr)’을 세계 최초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마약은 수사기관의 최초 검사에선 음성 반응이 나왔지만, 국과수 정밀 분석을 통해 마약류로 판정됐다.


피시피알은 일명 ‘천사의 가루’로 불리는 펜사이클리딘 계열 유사체다. 펜사이클리딘은 복용 시 환각, 고열, 탈수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국내서 유행하는 케타민도 펜사이클리딘의 일종이다. 그동안 마약류 데이터베이스(DB)에 아예 등록도 안 돼있었기 때문에 마약사범 사이에선 “해도 걸리지 않는 마약”이라고 홍보됐다.

법망도
피한다

하지만 국과수서 피시피알을 마약류로 판정하면서 이를 유통·구매한 마약사범은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피시피알은 2022년 8월 용산서 현직 경찰관이 아파트서 추락사한 ‘집단 마약 모임’ 사건서 검출된 신종마약과 유사한 화학 구조를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추락해 숨진 경찰관의 몸에서는 ‘2-플루오로-2-옥소 피시이(PCE)’가 검출됐다. 이후 피시이는 자살충동 등 부작용이 심한 탓에 국내에선 드물게 적발되고 있다고 한다.

신종마약에 대한 감정이 가능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마약에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를 규정하고 있고, 마약류는 법에 따라서 규제 및 관리되고 있다. 따라서 마약류를 오용 또는 남용하면 법에 따라서 처벌받게 된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마약류의 범위에 들어가는 물질의 종류가 일일이 있고, 법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제시돼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스암페타민, 코카인, LSD, 아편, 대마 등 총 384종의 마약류를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관세청 홈페이지에 게시돼있다.

국과수서 감정이 가능한 마약류가 2000종이 넘는데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은 단 384종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마약류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관리 중이다. 마약류 분류도 마찬가지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가 어떤 물질을 마약류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세포 실험, 조직실험, 동물실험에 의한 의존성, 독성, 작용, 기전 등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마약류로 분류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데 이 과정이 1년여가 걸린다”고 말했다.

국내 마약류 분류 384종
이외 시중 돌아도 무대책

이어 “신종마약은 계속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 해당 과정을 계속 진행하면 법망을 피한 마약이 계속 유통되고 투약될 가능성이 있어 식약처는 신종마약을 임시 마약류로 분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식약처는 마약류가 아닌 물질·약물·제제·제품 등(물질 등) 중 오용 또는 남용으로 인한 보건상의 위해가 우려되어 긴급히 마약류에 준해 취급·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물질 등을 임시 마약류로 정의하고 있다. 아직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은 물질 중에서 국내외의 오·남용 사례가 있고, 위해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3년간 한시적으로 임시 마약류로 분류해 사용을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98종의 물질이 임시 마약류로 지정돼있고, 기존의 임시 마약류 중 62종이 마약류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규제의 속도보다 변종 마약류의 생성이 더 빠른 상황이라 신종마약으로 법망을 피할 길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신종마약의 감정이 어렵지만 법적인 처벌은 받게 된다고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요한다.

한 서울중앙지방검찰 형사부 소속 검사는 “최근 신종마약과 관련된 마약사범들에게도 법적인 처벌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아 안전하다는 것은 마약사범들의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법원에서는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은 신종마약에 대해 항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우선 처벌을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판별 위한
신규 연구

정부는 합성생물학 등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불법 유통이 늘고 있는 신종마약을 빠르게 검출하는 판별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지난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는 '국민생활안전 긴급대응연구' 사업 추진을 위해 2025년 상반기에 신규 연구개발 과제 5건을 선정했다.

그중 신종마약과 관련해서는 불법 유통과 오·남용이 증가하고 있는 신종마약(벤조디아제핀 및 펜사이클리딘 계열 등)을 현장서 빠르고 정확하게 검출하기 위한 마약 판별 키트도 개발한다. 합성생물학 기반 간편 검출 시스템을 통해 단속과 수사의 효율을 높이고, 마약의 불법 유통과 오·남용 방지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예정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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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