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정부가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증원 전으로 되돌렸다. 1년 사이 의대 입학정원이 1500명가량 늘었다가 다시 줄어든 것이다. 정부는 의대 수업 정상화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의대생이 복귀할지도 의문이고 수험생들의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내년 전국 의과대학 모집 인원이 증원 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수업 정상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번 조치에 대해 설명했지만, 발표 1년2개월 만에 증원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의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 수험생들의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국 취소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0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2024학년도 정원 수준으로 조정하자는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내년 의대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당초 교육부는 ‘수업이 정상화될 정도로’ 의대생 복귀율이 높을 경우 내년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전국 의대의 평균 복귀율은 30% 수준이나 의대 총장들은 수업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내년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지난 16일 정부에 건의했다.
이에 이 부총리는 “학생 복귀 수준은 미진하지만 학사 일정과 대학 입시 일정을 고려할 때 모집 인원을 확정하고 교육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의대 교육을 정상화해 의사 양성 시스템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증원을 기대하셨던 국민 여러분께 의료개혁이 후퇴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2027학년도 이후 정원은 수급추계위원회를 중심으로 산정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장들의 ‘3058명안’은 교육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는 평가다. 의대 수업은 지난해 2월부터 14개월째 파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수업 거부가 길어질수록 수업 정상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예정대로 5058명을 뽑고 수업 거부 학생은 유급·제적시키는 ‘채찍’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교육부는 의대생들을 한 번 더 다독이는 ‘당근’을 택했다.
5058명을 뽑는다고 발표하면 수업 거부가 더 거세져 수업 정상화는 더욱 요원해진다는 것이다.
1년 만에 예년 수준으로
의대 총장 의견 받아들여
수업 거부가 장기화해 의료인 배출이 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론 의대 증원 효과를 볼 수 없다는 판단도 깔렸다. 이 부총리는 “의료개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의료개혁을 잘 추진하기 위한 판단”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6·25 때도 부산서 천막 치고 수업했는데 100년 동안 의사가 배출 안 된 해는 작년이 처음”이라며 “이번 조치는 의대생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굴복한 게 아니다. 밀린 것이 아니라 물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로 입시 업계와 수험생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의대 합격 인원이 5058명이라고 가정한 후 세운 입시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세계일보>와 인터뷰서 “대입 지원 기초는 전년도 결과인데 2025학년도 지원 경향을 적용하기 어려워 ‘근거 없는 지원’을 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재수학원서 입시전략실장을 맡고 있는 A씨는 2026학년도 수능에는 2001년 이후 가장 많은 수험생이 몰릴 예정인데 의대 증원 취소가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올해 입시 수험생은 지난해보다 8만명가량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런 상황에 예정됐던 의대 증원이 아닌 복원이 되면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전략을 모두 수정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에도 의대 증원이 늦게 확정된 후 예상치 못한 반수생들의 합류로 연초부터 준비하던 전략을 모두 수정했다”며 “올해 각 대학의 입학 정원은 4월30일에 나오는데 이 때 나온 각 학과의 입학 정원에 따라 입시 전략을 갑자기 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올해 초부터 의대 정원이 축소될 것이라는 말이 계속 나와 지난해 만큼 반수생은 많지 않겠지만, 황금돼지해로 고3 수험생 비율이 높아 의대 경쟁률은 그대로 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의대 정원이 축소된 만큼 자연계 상위권 학과의 경쟁률은 더 높아져 입시 불확실성을 더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수만휘(수능 만점 시험지 휘날리자)’서도 의대 증원 취소에 대한 한탄이 담긴 게시물이 계속 올라왔다.
5000여명 가정 입시전략
“모든 학과 입학에 영향”
의대를 목표로 하는 수험생임을 밝힌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올해 의대 입학 정원이 약 1000명 확대되면서 예년에 비해 합격 커트라인이 큰 폭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며 “지난해에도 갑자기 모집 정원이 늘어나면서 합격선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한 문제 차이로 의대에선 떨어지고 최상위 자연계 학과에 붙었지만 한 문제 차이인 것이 너무 아까워 재수를 선택했는데 갑자기 의대 증원 취소됐다”며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대학에 진학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의대 입학 정원 1500명은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문계 등 모든 학과의 입학 정원에 영향을 준다”며 “대입의 가장 큰 변수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지난해에는 늘렸다가 올해는 줄이는 등 정부의 고무줄놀이에 수험생들만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입시 업계서도 의대 증원 취소가 연쇄적으로 다른 학과 입시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내년도 의대 합격선은 의대 모집 인원 축소와 고3 학생 수 증가 등 영향으로 수시·정시 모두 전 지역서 상승할 것”이라며 “자연계 상위권 일반학과 합격선 예측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상당한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 역시 “단순 수치상으로만 봐도 의대 수시·정시 모두 역대급 경쟁을 예고한다”며 “의대 정원 증원 철회에도 여전히 의대를 노리는 N수생이 다수 의대, 치대, 한의대에 응시함으로써 경쟁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지역인재전형은 일정 비율(40% 이상)이 유지돼야 하기에 일반전형의 문이 더욱 좁아질 것”이라며 “비수도권 지역 수험생이 아니라면 의대 진입장벽이 대폭 높아지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불확실성
이 같은 입시 불안에 대해 이 부총리는 “정말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의대 정원 문제를 다음 정부로 넘기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더 불확실성이 커지고 또 다른 피해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한 고려 요인이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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