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민주당 사건’ 집중 내막

‘더 노골적으로’ 다시 문 여는 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 진행될수록 검찰이 더욱 정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헌법재판소서 탄핵 심판이 계속 진행될 때에는 정치 사건 관련 수사를 중단하면서 눈치를 봤지만 점차 야권에 대한 수사에 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정권교체를 생각하지 않고, 윤 대통령의 탄핵 기각에 투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상직 전 의원과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인 서모씨, 그리고 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수사 중이던 타이이스타젯 부정취업 사건서 문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를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외에도 검찰은 야권 관계자가 연루된 사건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야권 관계자
의혹들 캔다

앞서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이하 서민위)는 지난해 11월5일 다혜씨를 뇌물수수죄 공범과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다.

서민위는 “다혜씨의 전남편 서모씨가 항공업계서 일한 경험이 없는 상황서 이상직 전 의원이 실소유주인 타이이스타젯 전무로 채용됐다”며 “뇌물성 급여의 직접 수혜자인 서모씨뿐만 아니라 다혜씨 역시 수혜자로 볼 때 뇌물수수죄의 공범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문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의 출간 과정서 출판사 측이 2억5000만원을 다혜씨에게 입금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거래를 가장한 부녀간 증여세 포탈 수법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이 사건은 2020~2021년 국민의힘 등이 관련 의혹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수년간 지지부진하던 수사는 지난 2023년 9월 ‘친윤계’(친 윤석열)로 분류되는 이창수 당시 전주지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이 부임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민주당은 ‘보복수사’로 규정하고 검찰의 전 정권 죽이기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태국 저가 항공사 타이이스타젯 실소유주인 이 전 의원이 지난 2018년 3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으로 임명된 후 4개월 뒤 항공업 경력이 전무한 문씨의 전 남편 서씨가 타이이스타젯 전무이사로 채용된 것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서씨는 타이이스타젯서 약 2년간 매달 급여 800만원과 주거비 350만원 등을 받으며 문씨, 아들과 태국에 거주했다. 검찰은 문씨 가족이 받은 각종 혜택을 사업가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이 전 의원이 향후 자신의 사업 또는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문 전 대통령에게 건넨 뇌물로 보고 있다.

전주지검은 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로, 이 전 의원을 뇌물공여 혐의로 각각 입건하고 문재인정부 당시 청와대 주요 인사들을 줄소환했다. 또 문 전 대통령 부부의 금융계좌를 압수수색하고 자금거래 흐름을 분석했다. 지난해 8월에는 다혜씨의 주거지도 압수수색했다.

이후 검찰은 지난해 이 전 의원의 서씨 채용과 태국 이주 지원 전후에 문 전 대통령 내외와 다혜씨 부부의 경제적 의존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다혜씨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요구했으나 불발됐다.

당시 다혜씨 측은 “형사소송법상 참고인 조사는 출석 의무가 없으니 출석을 대체할 다른 방법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씨 부녀 피의자 입건
1월 중단 후 재수사 시작

이에 검찰은 ▲주거지 인근 검찰청 출석 조사 ▲제3의 장소 방문 조사 ▲전화 녹음 등 유선 조사 등 3가지 방식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다혜씨 측이 서면조사를 원하면서 무산됐다.

검찰 관계자는 “뇌물수수 혐의 사건서 이득 수취·취득자 조사 없이 사건을 처분할 수 없어 (다혜씨) 대면 조사가 필요했다”며 “압수물 등 다른 객관적 자료를 통해 실체적 진실관계를 규명할 계획”이라고 사실상 다혜씨에 관한 조사는 무산된 것으로 보였다.

당시 검찰은 김정숙 여사에 관한 참고인 조사도 추진했었다. 검찰은 김 여사 측에 참고인 조사를 받을 것을 요청하면서 조사 시기·장소·방법 등은 김 여사 측이 원하는 대로 맞추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검찰 내부에선 “문 전 대통령 조사 전에 김 여사를 참고인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김 여사 측이 “참고인 신분이라 출석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조사가 무산됐다. 이후 검찰은 피의자 신분으로 강제수사가 가능한 문 전 대통령을 불러 조사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다혜씨가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입건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전주지방검찰청은 지난 25일 시민단체의 다혜씨 뇌물수수 혐의 관련 고발 사건을 경찰로부터 이송받았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시민단체가 서울 종로경찰서에 다혜씨의 뇌물수수 혐의 고발장을 제출했는데 지난달 말에 이 사건을 이송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까지 구체적인 수사 방식은 정해진 바 없다”며 “서씨를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로 입건할 수 있는지 법리 검토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의 조사 여부에 대해선 “조사를 위해서 다각도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더 이상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기 힘들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김정숙 여사까지 피의자로 입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전 사위
부정채용

검찰은 전 정권에 대한 표적수사 논란을 의식한 듯 “단순히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태서 고발장 접수를 계기로 피의자 전환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라며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다혜씨에 대한 대면 조사가 가능해지면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 형사재판 등을 통해 사법절차에 대한 불공정 논란이 증폭된 가운데, 문 전 대통령과 다혜씨를 소환조사할 명분이 생긴 만큼 속도를 내서 수사를 마무리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을 기회”라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도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조 전 수석은 2017년 12월, 이 전 의원이 ‘대통령비서실 인사추천위원회 간담회’서 중진공 이사장으로 내정되자, 관련 부처 공무원들에게 이 전 의원이 최종 임명되도록 사전 지원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그러다 수사 막바지에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만 남겨둔 상황서 윤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 들어서자 전주지검은 지난 1월 “문 전 대통령 사건과 관련해 물밑에선 확인하는 게 몇 개 있다”면서도 “현재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이나 조사 여부는 홀딩(일시 중단)시킨 상태”라고 밝혀 ‘정치 수사’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타이이스타젯 부정취업 사건 외에도 검찰이 야당과 관련된 사건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예측된다.

검찰이 수사 중인 중요 정치 사건은 ‘성주 사드 기지 군사비밀 누설 사건’, 이 대표가 연루된 ‘정자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428억원 약정 의혹’ 등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김태훈 부장검사)는 성주 사드 기지 군사비밀 누설 사건을 수사 중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2월9일 사드 기지 반대 집회가 열렸던 시민단체 천막과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물 등을 디지털포렌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재명
타깃으로?

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감사원이 검찰에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 전 1차장,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 민주당 이기헌 의원(당시 청와대 시민참여비서관) 등을 수사 의뢰한 사건이다.

감사원은 이들이 2017년 성주군에 임시 배치된 사드의 정식 배치를 지연시키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하고, 한미군사작전을 중국 측과 시민단체에 유출했다고 봤다.

수원지검 성남지청(부장검사 강성기)은 지난 2023년 2월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이 대표의 정자동 특혜 개발 의혹 사건을 이첩받고 수사 중이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한 시행사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시유지에 관광호텔을 지으면서 성남시로부터 용도변경, 대부료 감면 등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5년 정자동 호텔 시행사에 특혜를 줬는지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2023년 6월엔 호텔 건립을 추진한 시행사와 성남시청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본격 착수했던 바 있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현욱)는 이 대표의 ‘쪼개기 후원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2023년 8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불법 대북 송금 혐의 재판서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 전 부지사 부탁으로 이재명 캠프에 1억5000만원 정도를 쪼개기 (방식으로) 후원했다”고 증언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게 요청해 불법 정치자금을 이 대표 측에 기부하게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로 이 전 부지사를 지난달 25일 6번째로 추가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이준동)는 대장동 특혜 의혹서 비롯된 이 대표의 ‘428억원 약정설’도 수사 중이다. ‘428억 약정’ 의혹은 이 대표 측이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특혜를 제공한 대가로 천화동인 1호 지분 428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의혹이다.

앞서 검찰은 2023년 3월 대장동 의혹을 받는 이 대표를 배임 등 혐의로 기소했으나, 해당 의혹은 함께 기소하지 못했다. 당시 측근인 민주당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등은 이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드기지·이 대표 사건도 다시
“검 개혁 두려움에 수사력 몰빵”

다만 검찰은 이 대표 공소장 속 전제 사실에 이 대표가 428억원 약정 내용을 정 전 정무조정실장으로부터 보고 받았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이승학)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관련 재판 거래 의혹도 수사 중이다. 재판거래 의혹은 권순일 전 대법관이 재직 중이던 2020년 7월,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할 때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단 의혹이다.

이후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불거진 뒤 김만배씨가 이 대표의 대법원 선고 전후로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 사무실을 방문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권 전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을 맡아 매달 1500만원의 보수를 받은 사실도 알려졌다.

권 전 대법관이 해당 판결의 대가로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고발로 이어졌다.

검찰은 지난해 3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권 전 대법관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재판 거래 의혹은 이번 압수수색 영장 기재 내용과는 다르지만 그 부분까지 포함해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다시 전 정권 및 야당 관계자에 대한 수사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윤 대통령의 탄핵 기각을 확신한 게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 당시부터 검찰개혁(검찰 수사권 조정)의 위험을 겪어왔다”며 “하지만 이를 이겨낸 것은 검찰로서 수사력을 증명한 것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정부 들어서 축소된 수사권이 윤석열정부서 다시 어느 정도 복원된 것을 지켜본 검찰은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검찰이 와해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어 야권에 대한 수사를 강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 검찰 내부 관계자도 “윤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정치 사건에 대한 수사가 중지됐었다”며 “구속 취소에 대해 즉시항고하지 않아 야권이 검찰총장을 고발하면서 내부 분위기는 ‘상황을 지켜보자’에서 ‘이미 많은 수사를 진행한 정치 사건을 먼저 마무리해 야권의 검찰 공격에 대해 방어하자’는 쪽으로 변화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항소심서 무죄가 나오면서 이 대표가 추후 대통령이 될 경우 검찰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생각도 야권 관계자가 연루된 정치 사건에 더욱 집중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적 죽이기?
피의자 불만?

이 대표는 윤정부 출범 후 검찰의 자신에 대한 수사에 대해 강력 반발하며 “정치 검찰” “정적 죽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 같은 반발은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선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지지층이 아닌 다른 유권자들에겐 ‘피의자(피고인)의 불만’ 정도로 인식돼오고 있다. 위증교사 1심에 이어, 선거법 2심서도 법원이 검찰의 공소 사실 일체를 부인하며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이 대표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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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