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초가’ 국힘 다섯 가지 딜레마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3.04 13:37:24
  • 호수 1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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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완성한 오중 포위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중도 보수론을 주장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오중 포위망이 완성됐다. 외부 타격과 내부 잠식이 다양하게 이뤄질 포위망이다. 오면초가 상황에 빠진 국민의힘은 과연 돌파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중도 보수’라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8일 유튜브 채널 ‘새날TV’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다”라며 “실제로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갖고 있고,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도냐
보수냐

그는 다음날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에 대해 “극우보수 또는 거의 범죄 정당이 돼가고 있으니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실제 중도좌파 또는 진보는 새로운 영역들이 맡아야 된다고 본다”며 “민주당의 입장과 위치는 중도 보수쯤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크게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20일 비대위 회의서 “이 대표는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부르고, 재벌 해체를 주장했다”며 “이제 와서 오른쪽을 운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반도체특별법·상속세 인하·연금개혁도 국민의힘의 정책이었다”며 “여당 정책을 껍데기만 베꼈다”고 반박했다.

김기현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서 “‘답보하는 지지율에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 대표에게 대한민국 유일의 중도 보수 정당 국민의힘에 입당하실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을 일컬어 “대한민국 유일의 중도 보수정당”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면서 사법부와 각을 세우는 국민의힘에 대해 “극우화되고 있다”는 일각의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8일부터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34%를 기록했다. 중도층에 한정해 양당의 지지율을 집계한 결과 민주당은 42%였고, 국민의힘은 22%였다.

국민의힘이 중도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이 대표는 직접 빠르게 틈을 치고 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은 국민의힘에 대한 오중 포위망이 완성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여러 세력으로부터 포위당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을 둘러싼 오중 포위망은 ▲이 대표와 민주당 ▲전광훈 목사 ▲이준석 의원과 개혁신당 ▲명태균씨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등으로 구성됐다. 이 대표와 민주당 외 다른 포위망은 국민의힘이 자초해 구성된 포위망이다.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은 한동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등으로 상징되는 국민의힘 내 일부 온건 보수를 함께 공략하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최종 유죄를 확정받아 수감돼있고, 진보정당들도 이렇다 할 대권주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은 진보 세력을 사실상 장악한 상황서 중도층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미 개혁 성향의 영남 출신 대선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잡는 등 동진 전략을 구사해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외부서 타격할 민주당과 명
전광훈 차단할 대체재 부재

이 대표는 각론서도 중도 보수 전략을 구사했다. 지난달 18일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다”며 “누진세에 따라 세금은 계속 늘어난다”는 취지로 근로소득세 개편을 주장했다.

지난달 24일엔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현행 10억원서 18억원으로 올리면, 서울의 웬만한 주택 보유자가 겪을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이 대표의 중도 보수 공략은 한편으로 서울 표심 공략을 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표의 상속세·근로소득세 주장은 서울 거주 1주택자와 중산층 노동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서 윤 대통령보다 서울서 약 31만여표를 적게 얻었고, 이는 승패로 직결됐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반응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공개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이튿날 기자들에게 “일대일 무제한 토론에 동의하고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상속세법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이 현안이 돼서 끝장 토론을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론이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권 원내대표가 응하자, 이 대표는 양당의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모두 모인 3대 3 토론을 재차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 반격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1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노란봉투법을 다시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중에 발생하는 불법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법이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고소득 연구직에 대해선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인정하자”는 정부·국민의힘의 주장에 대해선 반대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는 상법 개정안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런 입장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이 대표는 정치 공간서 차선 물고 달리고, 급정거·급출발을 반복하고, 깜빡이 없이 차선을 바꾸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며 “1차로서 우측 깜빡이를 켜고 있으면, 국민은 ‘뭐에 취해서 핸들을 잡았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구축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열쇠는 섬세함일 것이다.

이준석
선택은?


두 번째 포위망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그를 따르는 강성 지지자들이 구축하고 있다. 이 포위망은 분명히 외부에 있지만, 직접적인 공격보다 국민의힘 내부에 침투해 잠식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전 목사는 여러 차례 원내정당을 꿈꿨지만, 총선서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자신이 결집한 강성 보수 지지자들의 세와 부정선거론을 미끼로 국민의힘 내부 잠식을 꿈꾸고 있다.

잠식은 이미 상당할 정도로 진행됐다. 잠식의 고리는 국민의힘 5선 윤상현 의원이다. 윤 의원은 지난 1월5일 진행된 전 목사 주최의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단에 올랐다.

당시 전 목사는 윤 의원에게 “윤상현이 최고래요. 잘하면 대통령 되겠어”라고 말했고, 윤 의원은 전 목사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이어 “너무나도 존귀하신 전광훈 목사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를 지키는 데 가장 선봉에 선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전 목사는 이미 지난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당시 대표의 예방을 받는 수준의 입지를 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2019년 전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 참석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전 목사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로는 전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전 목사를 다루기 위해선 큰 숙제 하나를 풀어야 한다. 전 목사의 정치관은 “교회는 정치에 간섭해야 하지만, 정치는 교회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23년 4월엔 “총선서 국민의힘의 200석을 지원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목표”라면서 자신을 ‘200석을 몰고 올 거물’ 겸 ‘한국 교회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그는 “정치인은 권력을 갖기 때문에 종교인의 감시가 없으면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정치인은 전광훈 목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몸집을 불려주고 정권을 안겨주는 대신 자신의 통제를 받는 위성 정권 및 위성정당의 위상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전 목사의 요구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전 목사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6일 신년 기자간담회서 “민주당 사람들은 민주노총 집회에 엄청 많이 가서 굉장히 위태로운 발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기에 비하면 아직 우리가 문제 삼을 정도까진 아니라고 본다”는 등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소속 정치인의 욕구를 억제하려면, 그에 걸맞은 당근을 제공해야 한다. 권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대체재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 목사는 부정선거론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단 측면서도 장기적으론 국민의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전 목사는 3회에 걸친 창당과 국회의원 확보 시도가 실패한 이후 부정선거론 관련 활동을 이어갔고, 북한·중국의 선거 개입설로 확대했다. 이는 곧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윤 대통령과 전 목사는 같은 인식을 토대로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영혼의 동지가 됐다. 이는 곧 국민의힘에도 악영향을 미쳐, 명확하게 끊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진행된 관훈 토론회서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중앙선관위 스스로 투표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요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지난달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제가 국민의힘 대표를 그만둔 후, 국민의힘서 부정선거론이 종양처럼 거의 온몸을 덮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전 목사와 부정선거론은 국민의힘 관련 이슈 중 중도층에게 가장 심한 거부감을 주는 논점이기 때문에 심각한 포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쥐락펴락
목사님

세 번째 포위망은 명태균씨가 친 포위망이다. 민주당은 꾸준히 명씨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고 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SNS에 명씨의 황금폰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는 명씨가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명씨의 변호를 맡은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021년 6월에만 명씨를 만났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아는 것만 해도 3번 더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1일엔 민주당이 홍 시장과 명씨가 같은 행사장서 함께 찍힌 사진과 명씨 스스로 “이준석 당시 대표에게 홍 시장의 복당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남 변호사는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오 시장과 홍 시장을 사기·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는 명씨의 입장을 대신 밝혔다. 또 검찰은 지난달 26일 “명씨에게 오 시장의 여론조사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을 받는 오 시장의 후원자 김한정씨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오 시장과 홍 시장은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오 시장은 국민의힘의 세를 중도로 확장할 수 있는 주자 중 1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전부터 가장 구체적인 의혹이 거론됐다는 것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가시화되자, 민주당과 명씨는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바짝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명씨의 황금폰엔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140명과 김건희 여사의 육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의미서 보면, 이 의원은 묘하게 펼쳐진 포위망이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 시절 명씨와 다양하게 연결됐고, 개혁신당 창당 후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 관련 회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씨도 “내가 입을 열면 이 의원은 끝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명태균 특검법 발의에 참여했다.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달 26일 채널A 라디오 <정치 시그널>서 “나중에 열어보면, 아무 문제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빨리 특검하라, 꺼릴 일 없다는 것이 저희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일 서울 마포 홍대거리서 “퍼스트 펭귄이 되겠다”면서 대선주자 중 가장 먼저 사실상 출마 선언을 했다.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합리주의를 토대로 개혁 보수를 자처하고 있고, 국민의힘과 2030 남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호시탐탐 틈 노려
내부 잠식 가능성

이 의원은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등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국민의힘의 중도 확장을 막을 변수 중 하나로 통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합당설 및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 의원의 단일화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거론됐지만,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그때마다 부정하고 있다.

이 가능성은 현실이 돼도, 반대의 상황이 연출돼도 불씨가 남는다. 현실이 되면, 이 의원과 국민의힘 구성원의 옛 갈등이 되살아나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이 의원이 국민의힘 접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이 되지 않는다면, 이 의원이 얻을 지지는 한때는 국민의힘이 얻었고, 지금도 얻으려고 노력하는 중도·2030 남성 지지층으로부터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

이 의원이 얻는 표만큼 이 대표와의 경쟁서 불리해진다. 현재 국민의힘엔 까다로운 복어를 다룰 수 있는 솜씨 좋은 요리사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포위망은 티는 안 나지만, 가장 깊고 거대한 포위망이다. 국민의힘은 일부 강성 지지자들이 이어가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자택 인근 시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적극적인 헌재 공격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도 사실상 두둔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탄핵 심판 최후진술 중 ‘영장 쇼핑’이란 말을 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직·간접적으로 정당 차원서 사법부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는 보기 드문 사례를 연출하고 있다. 삼권분립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나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직접 언급했다. 정당해산심판이 실제로 진행되면, 지난해 12월 이후 국민의힘이 직·간접적으로 이어가거나 두둔한 사법부에 대한 각종 공격은 어떻게 해석될지 의문이다.

사법부는 사법 파동을 일으키면서 사법부에 대한 공격에 대응했던 전례가 있다. 국민의힘이 사법부와 적절한 조화·타협을 이루지 못하면, 치명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비상구가
안 보인다

일본 센코쿠 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우에스기 겐신 등이 주도해 구성했던 두 번에 걸친 포위망에 갇힌 적이 있다. 오다는 이 포위망들을 모두 무너트리고 일본 통일 직전까지 갔다. 반대로 중국 초패왕 항우는 한왕 유방이 구성한 연합군에 포위됐던 사면초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해 사망했다. 국민의힘은 정면 공격·잠식을 노리는 다양한 적들에 갇혀 오면에 걸쳐 포위돼있다. 과연 이 ‘오면초가’를 뚫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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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