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초가’ 국힘 다섯 가지 딜레마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3.04 13:37:24
  • 호수 1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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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완성한 오중 포위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중도 보수론을 주장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오중 포위망이 완성됐다. 외부 타격과 내부 잠식이 다양하게 이뤄질 포위망이다. 오면초가 상황에 빠진 국민의힘은 과연 돌파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중도 보수’라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8일 유튜브 채널 ‘새날TV’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다”라며 “실제로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갖고 있고,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도냐
보수냐

그는 다음날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에 대해 “극우보수 또는 거의 범죄 정당이 돼가고 있으니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실제 중도좌파 또는 진보는 새로운 영역들이 맡아야 된다고 본다”며 “민주당의 입장과 위치는 중도 보수쯤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크게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20일 비대위 회의서 “이 대표는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부르고, 재벌 해체를 주장했다”며 “이제 와서 오른쪽을 운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반도체특별법·상속세 인하·연금개혁도 국민의힘의 정책이었다”며 “여당 정책을 껍데기만 베꼈다”고 반박했다.

김기현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서 “‘답보하는 지지율에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 대표에게 대한민국 유일의 중도 보수 정당 국민의힘에 입당하실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을 일컬어 “대한민국 유일의 중도 보수정당”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면서 사법부와 각을 세우는 국민의힘에 대해 “극우화되고 있다”는 일각의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8일부터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34%를 기록했다. 중도층에 한정해 양당의 지지율을 집계한 결과 민주당은 42%였고, 국민의힘은 22%였다.

국민의힘이 중도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이 대표는 직접 빠르게 틈을 치고 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은 국민의힘에 대한 오중 포위망이 완성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여러 세력으로부터 포위당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을 둘러싼 오중 포위망은 ▲이 대표와 민주당 ▲전광훈 목사 ▲이준석 의원과 개혁신당 ▲명태균씨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등으로 구성됐다. 이 대표와 민주당 외 다른 포위망은 국민의힘이 자초해 구성된 포위망이다.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은 한동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등으로 상징되는 국민의힘 내 일부 온건 보수를 함께 공략하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최종 유죄를 확정받아 수감돼있고, 진보정당들도 이렇다 할 대권주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은 진보 세력을 사실상 장악한 상황서 중도층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미 개혁 성향의 영남 출신 대선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잡는 등 동진 전략을 구사해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외부서 타격할 민주당과 명
전광훈 차단할 대체재 부재

이 대표는 각론서도 중도 보수 전략을 구사했다. 지난달 18일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다”며 “누진세에 따라 세금은 계속 늘어난다”는 취지로 근로소득세 개편을 주장했다.

지난달 24일엔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현행 10억원서 18억원으로 올리면, 서울의 웬만한 주택 보유자가 겪을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이 대표의 중도 보수 공략은 한편으로 서울 표심 공략을 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표의 상속세·근로소득세 주장은 서울 거주 1주택자와 중산층 노동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서 윤 대통령보다 서울서 약 31만여표를 적게 얻었고, 이는 승패로 직결됐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반응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공개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이튿날 기자들에게 “일대일 무제한 토론에 동의하고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상속세법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이 현안이 돼서 끝장 토론을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론이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권 원내대표가 응하자, 이 대표는 양당의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모두 모인 3대 3 토론을 재차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 반격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1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노란봉투법을 다시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중에 발생하는 불법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법이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고소득 연구직에 대해선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인정하자”는 정부·국민의힘의 주장에 대해선 반대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는 상법 개정안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런 입장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이 대표는 정치 공간서 차선 물고 달리고, 급정거·급출발을 반복하고, 깜빡이 없이 차선을 바꾸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며 “1차로서 우측 깜빡이를 켜고 있으면, 국민은 ‘뭐에 취해서 핸들을 잡았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구축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열쇠는 섬세함일 것이다.

이준석
선택은?


두 번째 포위망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그를 따르는 강성 지지자들이 구축하고 있다. 이 포위망은 분명히 외부에 있지만, 직접적인 공격보다 국민의힘 내부에 침투해 잠식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전 목사는 여러 차례 원내정당을 꿈꿨지만, 총선서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자신이 결집한 강성 보수 지지자들의 세와 부정선거론을 미끼로 국민의힘 내부 잠식을 꿈꾸고 있다.

잠식은 이미 상당할 정도로 진행됐다. 잠식의 고리는 국민의힘 5선 윤상현 의원이다. 윤 의원은 지난 1월5일 진행된 전 목사 주최의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단에 올랐다.

당시 전 목사는 윤 의원에게 “윤상현이 최고래요. 잘하면 대통령 되겠어”라고 말했고, 윤 의원은 전 목사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이어 “너무나도 존귀하신 전광훈 목사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를 지키는 데 가장 선봉에 선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전 목사는 이미 지난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당시 대표의 예방을 받는 수준의 입지를 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2019년 전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 참석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전 목사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로는 전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전 목사를 다루기 위해선 큰 숙제 하나를 풀어야 한다. 전 목사의 정치관은 “교회는 정치에 간섭해야 하지만, 정치는 교회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23년 4월엔 “총선서 국민의힘의 200석을 지원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목표”라면서 자신을 ‘200석을 몰고 올 거물’ 겸 ‘한국 교회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그는 “정치인은 권력을 갖기 때문에 종교인의 감시가 없으면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정치인은 전광훈 목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몸집을 불려주고 정권을 안겨주는 대신 자신의 통제를 받는 위성 정권 및 위성정당의 위상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전 목사의 요구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전 목사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6일 신년 기자간담회서 “민주당 사람들은 민주노총 집회에 엄청 많이 가서 굉장히 위태로운 발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기에 비하면 아직 우리가 문제 삼을 정도까진 아니라고 본다”는 등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소속 정치인의 욕구를 억제하려면, 그에 걸맞은 당근을 제공해야 한다. 권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대체재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 목사는 부정선거론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단 측면서도 장기적으론 국민의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전 목사는 3회에 걸친 창당과 국회의원 확보 시도가 실패한 이후 부정선거론 관련 활동을 이어갔고, 북한·중국의 선거 개입설로 확대했다. 이는 곧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윤 대통령과 전 목사는 같은 인식을 토대로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영혼의 동지가 됐다. 이는 곧 국민의힘에도 악영향을 미쳐, 명확하게 끊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진행된 관훈 토론회서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중앙선관위 스스로 투표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요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지난달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제가 국민의힘 대표를 그만둔 후, 국민의힘서 부정선거론이 종양처럼 거의 온몸을 덮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전 목사와 부정선거론은 국민의힘 관련 이슈 중 중도층에게 가장 심한 거부감을 주는 논점이기 때문에 심각한 포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쥐락펴락
목사님

세 번째 포위망은 명태균씨가 친 포위망이다. 민주당은 꾸준히 명씨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고 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SNS에 명씨의 황금폰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는 명씨가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명씨의 변호를 맡은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021년 6월에만 명씨를 만났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아는 것만 해도 3번 더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1일엔 민주당이 홍 시장과 명씨가 같은 행사장서 함께 찍힌 사진과 명씨 스스로 “이준석 당시 대표에게 홍 시장의 복당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남 변호사는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오 시장과 홍 시장을 사기·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는 명씨의 입장을 대신 밝혔다. 또 검찰은 지난달 26일 “명씨에게 오 시장의 여론조사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을 받는 오 시장의 후원자 김한정씨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오 시장과 홍 시장은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오 시장은 국민의힘의 세를 중도로 확장할 수 있는 주자 중 1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전부터 가장 구체적인 의혹이 거론됐다는 것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가시화되자, 민주당과 명씨는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바짝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명씨의 황금폰엔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140명과 김건희 여사의 육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의미서 보면, 이 의원은 묘하게 펼쳐진 포위망이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 시절 명씨와 다양하게 연결됐고, 개혁신당 창당 후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 관련 회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씨도 “내가 입을 열면 이 의원은 끝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명태균 특검법 발의에 참여했다.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달 26일 채널A 라디오 <정치 시그널>서 “나중에 열어보면, 아무 문제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빨리 특검하라, 꺼릴 일 없다는 것이 저희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일 서울 마포 홍대거리서 “퍼스트 펭귄이 되겠다”면서 대선주자 중 가장 먼저 사실상 출마 선언을 했다.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합리주의를 토대로 개혁 보수를 자처하고 있고, 국민의힘과 2030 남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호시탐탐 틈 노려
내부 잠식 가능성

이 의원은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등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국민의힘의 중도 확장을 막을 변수 중 하나로 통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합당설 및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 의원의 단일화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거론됐지만,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그때마다 부정하고 있다.

이 가능성은 현실이 돼도, 반대의 상황이 연출돼도 불씨가 남는다. 현실이 되면, 이 의원과 국민의힘 구성원의 옛 갈등이 되살아나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이 의원이 국민의힘 접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이 되지 않는다면, 이 의원이 얻을 지지는 한때는 국민의힘이 얻었고, 지금도 얻으려고 노력하는 중도·2030 남성 지지층으로부터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

이 의원이 얻는 표만큼 이 대표와의 경쟁서 불리해진다. 현재 국민의힘엔 까다로운 복어를 다룰 수 있는 솜씨 좋은 요리사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포위망은 티는 안 나지만, 가장 깊고 거대한 포위망이다. 국민의힘은 일부 강성 지지자들이 이어가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자택 인근 시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적극적인 헌재 공격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도 사실상 두둔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탄핵 심판 최후진술 중 ‘영장 쇼핑’이란 말을 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직·간접적으로 정당 차원서 사법부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는 보기 드문 사례를 연출하고 있다. 삼권분립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나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직접 언급했다. 정당해산심판이 실제로 진행되면, 지난해 12월 이후 국민의힘이 직·간접적으로 이어가거나 두둔한 사법부에 대한 각종 공격은 어떻게 해석될지 의문이다.

사법부는 사법 파동을 일으키면서 사법부에 대한 공격에 대응했던 전례가 있다. 국민의힘이 사법부와 적절한 조화·타협을 이루지 못하면, 치명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비상구가
안 보인다

일본 센코쿠 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우에스기 겐신 등이 주도해 구성했던 두 번에 걸친 포위망에 갇힌 적이 있다. 오다는 이 포위망들을 모두 무너트리고 일본 통일 직전까지 갔다. 반대로 중국 초패왕 항우는 한왕 유방이 구성한 연합군에 포위됐던 사면초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해 사망했다. 국민의힘은 정면 공격·잠식을 노리는 다양한 적들에 갇혀 오면에 걸쳐 포위돼있다. 과연 이 ‘오면초가’를 뚫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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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