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초가’ 국힘 다섯 가지 딜레마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3.04 13:37:24
  • 호수 1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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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완성한 오중 포위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중도 보수론을 주장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오중 포위망이 완성됐다. 외부 타격과 내부 잠식이 다양하게 이뤄질 포위망이다. 오면초가 상황에 빠진 국민의힘은 과연 돌파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중도 보수’라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8일 유튜브 채널 ‘새날TV’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다”라며 “실제로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갖고 있고,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도냐
보수냐

그는 다음날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에 대해 “극우보수 또는 거의 범죄 정당이 돼가고 있으니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실제 중도좌파 또는 진보는 새로운 영역들이 맡아야 된다고 본다”며 “민주당의 입장과 위치는 중도 보수쯤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크게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20일 비대위 회의서 “이 대표는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부르고, 재벌 해체를 주장했다”며 “이제 와서 오른쪽을 운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반도체특별법·상속세 인하·연금개혁도 국민의힘의 정책이었다”며 “여당 정책을 껍데기만 베꼈다”고 반박했다.

김기현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서 “‘답보하는 지지율에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 대표에게 대한민국 유일의 중도 보수 정당 국민의힘에 입당하실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을 일컬어 “대한민국 유일의 중도 보수정당”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면서 사법부와 각을 세우는 국민의힘에 대해 “극우화되고 있다”는 일각의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8일부터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34%를 기록했다. 중도층에 한정해 양당의 지지율을 집계한 결과 민주당은 42%였고, 국민의힘은 22%였다.

국민의힘이 중도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이 대표는 직접 빠르게 틈을 치고 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은 국민의힘에 대한 오중 포위망이 완성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여러 세력으로부터 포위당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을 둘러싼 오중 포위망은 ▲이 대표와 민주당 ▲전광훈 목사 ▲이준석 의원과 개혁신당 ▲명태균씨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등으로 구성됐다. 이 대표와 민주당 외 다른 포위망은 국민의힘이 자초해 구성된 포위망이다.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은 한동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등으로 상징되는 국민의힘 내 일부 온건 보수를 함께 공략하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최종 유죄를 확정받아 수감돼있고, 진보정당들도 이렇다 할 대권주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은 진보 세력을 사실상 장악한 상황서 중도층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미 개혁 성향의 영남 출신 대선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잡는 등 동진 전략을 구사해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외부서 타격할 민주당과 명
전광훈 차단할 대체재 부재

이 대표는 각론서도 중도 보수 전략을 구사했다. 지난달 18일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다”며 “누진세에 따라 세금은 계속 늘어난다”는 취지로 근로소득세 개편을 주장했다.

지난달 24일엔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현행 10억원서 18억원으로 올리면, 서울의 웬만한 주택 보유자가 겪을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이 대표의 중도 보수 공략은 한편으로 서울 표심 공략을 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표의 상속세·근로소득세 주장은 서울 거주 1주택자와 중산층 노동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서 윤 대통령보다 서울서 약 31만여표를 적게 얻었고, 이는 승패로 직결됐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반응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공개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이튿날 기자들에게 “일대일 무제한 토론에 동의하고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상속세법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이 현안이 돼서 끝장 토론을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론이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권 원내대표가 응하자, 이 대표는 양당의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모두 모인 3대 3 토론을 재차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 반격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1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노란봉투법을 다시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중에 발생하는 불법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법이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고소득 연구직에 대해선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인정하자”는 정부·국민의힘의 주장에 대해선 반대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는 상법 개정안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런 입장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이 대표는 정치 공간서 차선 물고 달리고, 급정거·급출발을 반복하고, 깜빡이 없이 차선을 바꾸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며 “1차로서 우측 깜빡이를 켜고 있으면, 국민은 ‘뭐에 취해서 핸들을 잡았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구축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열쇠는 섬세함일 것이다.

이준석
선택은?


두 번째 포위망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그를 따르는 강성 지지자들이 구축하고 있다. 이 포위망은 분명히 외부에 있지만, 직접적인 공격보다 국민의힘 내부에 침투해 잠식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전 목사는 여러 차례 원내정당을 꿈꿨지만, 총선서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자신이 결집한 강성 보수 지지자들의 세와 부정선거론을 미끼로 국민의힘 내부 잠식을 꿈꾸고 있다.

잠식은 이미 상당할 정도로 진행됐다. 잠식의 고리는 국민의힘 5선 윤상현 의원이다. 윤 의원은 지난 1월5일 진행된 전 목사 주최의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단에 올랐다.

당시 전 목사는 윤 의원에게 “윤상현이 최고래요. 잘하면 대통령 되겠어”라고 말했고, 윤 의원은 전 목사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이어 “너무나도 존귀하신 전광훈 목사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를 지키는 데 가장 선봉에 선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전 목사는 이미 지난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당시 대표의 예방을 받는 수준의 입지를 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2019년 전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 참석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전 목사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로는 전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전 목사를 다루기 위해선 큰 숙제 하나를 풀어야 한다. 전 목사의 정치관은 “교회는 정치에 간섭해야 하지만, 정치는 교회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23년 4월엔 “총선서 국민의힘의 200석을 지원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목표”라면서 자신을 ‘200석을 몰고 올 거물’ 겸 ‘한국 교회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그는 “정치인은 권력을 갖기 때문에 종교인의 감시가 없으면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정치인은 전광훈 목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몸집을 불려주고 정권을 안겨주는 대신 자신의 통제를 받는 위성 정권 및 위성정당의 위상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전 목사의 요구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전 목사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6일 신년 기자간담회서 “민주당 사람들은 민주노총 집회에 엄청 많이 가서 굉장히 위태로운 발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기에 비하면 아직 우리가 문제 삼을 정도까진 아니라고 본다”는 등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소속 정치인의 욕구를 억제하려면, 그에 걸맞은 당근을 제공해야 한다. 권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대체재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 목사는 부정선거론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단 측면서도 장기적으론 국민의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전 목사는 3회에 걸친 창당과 국회의원 확보 시도가 실패한 이후 부정선거론 관련 활동을 이어갔고, 북한·중국의 선거 개입설로 확대했다. 이는 곧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윤 대통령과 전 목사는 같은 인식을 토대로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영혼의 동지가 됐다. 이는 곧 국민의힘에도 악영향을 미쳐, 명확하게 끊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진행된 관훈 토론회서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중앙선관위 스스로 투표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요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지난달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제가 국민의힘 대표를 그만둔 후, 국민의힘서 부정선거론이 종양처럼 거의 온몸을 덮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전 목사와 부정선거론은 국민의힘 관련 이슈 중 중도층에게 가장 심한 거부감을 주는 논점이기 때문에 심각한 포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쥐락펴락
목사님

세 번째 포위망은 명태균씨가 친 포위망이다. 민주당은 꾸준히 명씨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고 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SNS에 명씨의 황금폰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는 명씨가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명씨의 변호를 맡은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021년 6월에만 명씨를 만났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아는 것만 해도 3번 더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1일엔 민주당이 홍 시장과 명씨가 같은 행사장서 함께 찍힌 사진과 명씨 스스로 “이준석 당시 대표에게 홍 시장의 복당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남 변호사는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오 시장과 홍 시장을 사기·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는 명씨의 입장을 대신 밝혔다. 또 검찰은 지난달 26일 “명씨에게 오 시장의 여론조사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을 받는 오 시장의 후원자 김한정씨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오 시장과 홍 시장은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오 시장은 국민의힘의 세를 중도로 확장할 수 있는 주자 중 1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전부터 가장 구체적인 의혹이 거론됐다는 것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가시화되자, 민주당과 명씨는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바짝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명씨의 황금폰엔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140명과 김건희 여사의 육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의미서 보면, 이 의원은 묘하게 펼쳐진 포위망이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 시절 명씨와 다양하게 연결됐고, 개혁신당 창당 후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 관련 회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씨도 “내가 입을 열면 이 의원은 끝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명태균 특검법 발의에 참여했다.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달 26일 채널A 라디오 <정치 시그널>서 “나중에 열어보면, 아무 문제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빨리 특검하라, 꺼릴 일 없다는 것이 저희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일 서울 마포 홍대거리서 “퍼스트 펭귄이 되겠다”면서 대선주자 중 가장 먼저 사실상 출마 선언을 했다.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합리주의를 토대로 개혁 보수를 자처하고 있고, 국민의힘과 2030 남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호시탐탐 틈 노려
내부 잠식 가능성

이 의원은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등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국민의힘의 중도 확장을 막을 변수 중 하나로 통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합당설 및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 의원의 단일화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거론됐지만,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그때마다 부정하고 있다.

이 가능성은 현실이 돼도, 반대의 상황이 연출돼도 불씨가 남는다. 현실이 되면, 이 의원과 국민의힘 구성원의 옛 갈등이 되살아나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이 의원이 국민의힘 접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이 되지 않는다면, 이 의원이 얻을 지지는 한때는 국민의힘이 얻었고, 지금도 얻으려고 노력하는 중도·2030 남성 지지층으로부터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

이 의원이 얻는 표만큼 이 대표와의 경쟁서 불리해진다. 현재 국민의힘엔 까다로운 복어를 다룰 수 있는 솜씨 좋은 요리사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포위망은 티는 안 나지만, 가장 깊고 거대한 포위망이다. 국민의힘은 일부 강성 지지자들이 이어가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자택 인근 시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적극적인 헌재 공격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도 사실상 두둔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탄핵 심판 최후진술 중 ‘영장 쇼핑’이란 말을 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직·간접적으로 정당 차원서 사법부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는 보기 드문 사례를 연출하고 있다. 삼권분립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나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직접 언급했다. 정당해산심판이 실제로 진행되면, 지난해 12월 이후 국민의힘이 직·간접적으로 이어가거나 두둔한 사법부에 대한 각종 공격은 어떻게 해석될지 의문이다.

사법부는 사법 파동을 일으키면서 사법부에 대한 공격에 대응했던 전례가 있다. 국민의힘이 사법부와 적절한 조화·타협을 이루지 못하면, 치명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비상구가
안 보인다

일본 센코쿠 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우에스기 겐신 등이 주도해 구성했던 두 번에 걸친 포위망에 갇힌 적이 있다. 오다는 이 포위망들을 모두 무너트리고 일본 통일 직전까지 갔다. 반대로 중국 초패왕 항우는 한왕 유방이 구성한 연합군에 포위됐던 사면초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해 사망했다. 국민의힘은 정면 공격·잠식을 노리는 다양한 적들에 갇혀 오면에 걸쳐 포위돼있다. 과연 이 ‘오면초가’를 뚫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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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