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3인 현미경 검증 ?가족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0.18 16: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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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다 진한 피…역시 피는 못 속여?"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각 정당의 경선 이전부터 대선예비주자들을 검증해 온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후보단일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후보의 면면을 세세히 검증 중이다. 이번호에서는 열아홉 번째 순서로 그들의 '가족사'를 살펴봤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은 늘 친인척비리로 골머리를 앓았다.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접어들면서 대통령후보들의 가족 및 친인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또 후보들의 집안 환경과 그 가족을 살펴보면 베일에 가려져 있는 후보들의 진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피는 못 속인다"는 옛말이 대선 후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4남매 중 둘째, 미혼>
"다사다난한 가족사, 그래도 가족은 나의 보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직계가족으로는 아버지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 이복언니인 박재옥씨, 여동생 박근령 한국재난구호 총재, 남동생 박지만 EG회장이 있다.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5·16 군사 정변에 참여했으며 제5, 6, 7, 8, 9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다.

어머니 육 여사는 소학교 가정교과목 교사였는데 육 여사의 집안은 수많은 하인과 농토를 가진 대지주 집안이었다. 외할아버지 육종관은 이혼경력이 있는 박 전 대통령과의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으나 외할머니 이경령과 육 여사는 외할아버지 몰래 박 전 대통령의 대구 관사로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정변을 계기로 정권을 잡는데 성공하자 박 후보와 형제자매들은 한때 청와대에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어머니가 암살범의 피격으로 사망하고 1979년 10월26일 아버지마저 암살되면서 청와대를 나와 신당동 사저로 이주하게 된다.


남매 간 재산다툼

이때부터 박 후보는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며 동생들을 돌봤다. 양친이 사망한 후 남동생 지만씨는 2002년까지 사창가와 여관 등에서 윤락녀와 어울리며 상습적인 마약 투약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여동생 근령씨 역시 순탄치 못한 인생을 살았다. 근령씨는 1982년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의 아들 류청씨와 결혼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했다. 이후 2008년 10월 열네 살 연하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와 재혼하게 된다.

박 후보 삼남매는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한차례 재산다툼을 벌였다. 때문에 근령씨의 2008년 결혼식에는 박 후보와 지만씨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근령씨의 남편 신씨는 육영재단의 이사장으로 있던 부인이 재단에서 사실상 쫓겨나게 되자 지난 2009년 박 후보의 미니홈피에 '박 후보가 육영재단을 강탈했다' '박 후보가 중국에서 나를 납치·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등의 비방글을 수차례 올린 혐의로 구속되어 현재 징역형을 살고 있다.

반면 양친의 사망 후 방황하던 남동생 지만씨는 재기에 성공했다. 박 후보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개선된 모양새다. 지만씨는 1989년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도움으로 현재 본인이 회장으로 있는 EG의 전신인 삼양산업 부사장으로 임명됐다. 지만씨는 이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9억원을 빌려 이 회사 지분 74.3%를 인수해 대주주가 됐고, EG는 지난해 매출액 846억여원의 알짜회사로 성장했다. 이를 발판으로 지만씨는 무려 589억원의 자산가가 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5차례나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되는 등 방황을 거듭했던 지만씨가 갑자기 수백억의 재산가로 변신한 것은 박 후보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라며 특혜시비가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발목 잡는 가족?

지만씨는 미혼인 박 후보가 가장 아끼는 가족이다. 지만씨는 지난 2004년 16살 연하의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해 이듬해 아들 세현군을 낳았다. 박 후보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잃고 싶지 않은 것 세 가지 중 하나로 '세현이'를 꼽을 만큼 깊은 남매 간의 우애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최근 지만씨 부부가 저축은행 비리사건 등에 연루됐다는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면서 무척 난처해졌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박 후보에게는 이복언니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첫 번째 부인 김호남 여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박재옥씨다. 전언에 따르면 박 후보와 재옥씨는 자매이긴 하지만 서로 왕래가 전혀 없어 가족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사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재옥씨의 딸 한유진씨와 남편 박영우 대유신소재 회장의 주가 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 후보와의 관계가 새삼 재조명 되고 있다.

 

문재인 <5남매 중 둘째, 아들·딸 각 1명>
"평범한 남매, 평범한 아들 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직계가족으로는 아버지 문용형씨와 어머니 강한옥씨, 누나 문재월씨와 여동생 문재성씨, 남동생 문재익씨, 막내여동생 문재실씨가 있다. 문 후보는 집안의 장남이자 둘째다.

배우자는 김정숙씨며 자녀로는 아들 준용씨와 딸 다혜씨가 있다. 문 후보의 아버지 용형씨는 함경남도 흥남의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이다. 용형씨는 당시 명문이던 함흥농고 출신으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지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고향을 떠나 경남 거제로 피난을 왔다.

아들 특혜 의혹

아버지 용형씨는 포로수용소에서 노무 일을 했고, 어머니는 행상을 해서 5남매를 키웠다. 용형씨는 문 후보가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인 1978년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막내여동생 재실씨와 부산 영도에서 살고 있다.

문 후보의 형제자매들은 무척 평범한 이력을 지녔다. 누나 재월씨와 여동생 재성씨는 평범한 주부이고, 남동생 재익씨는 외항어선 선장이다. 재익씨는 직업 특성상 외국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문 후보에게는 아들과 딸이 각각 한명 씩 있다. 아들 준용씨는 건국대를 졸업하고 미국 파슨스 디자인 앤드 테크놀로지 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준용씨는 유튜브에 올린 석사 졸업작품으로 4개국 초청 전시회를 여는 등 유명세를 탔다. 지난 2011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마쿠로쿠로스케 테이블>이라는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병역은 논산훈련소 조교로 현역 복무했다.

준용씨와 관련해선 한때 취업 특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문 후보가 청와대 정무특보이던 지난 2007년 초 노동부 산하 고용정보원이 동영상 전문가를 뽑으면서 채용공고에 '연구직 초빙'이라고만 밝혀, 결과적으로 준용씨 혼자만 지원하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권재철 고용정보원장은 문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임할 때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었다.

이에 대해 고용정보원은 "인터넷(워크넷)을 통해 다른 채용공고와 동일한 방법으로 했다"며 "준용씨는 국내 기업 주최 광고 공모전에서 3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고 토플(CBT) 점수도 상위권인 250점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준용씨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지난 2010년 고용정보원을 퇴사했고, 현재 대학강사로 일하고 있다.

딸 다혜씨는 2010년 3월 부산 수영구 남천성당에서 평범한 가정 출신의 직장인 남편과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다. 현재 다혜씨는 1명의 자녀를 두고 남편과 문 후보 소유의 경남 양산 집에서 살고 있다. 다혜씨의 남편은 미국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이다.

딸의 출마 반대


한편 다혜씨는 당초 문 후보의 대선출마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다혜씨는 문 후보의 대선출마선언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다혜씨가 문 후보의 대선출마를 반대한 이유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트라우마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다혜씨는 문 후보 측에 "노무현 아저씨 가족들을 보지 않았나. 저는 그게 너무 눈물나고 슬프고 무섭다. 아버지의 결정을 저는 싫지만 이해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저와 제 아이 그리고 우리 식구들이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전했다고 한다. 


안철수 <3남매 중 첫째, 하나 뿐인 외동딸>
"화려한 학력으로 압도, 공부가 취미인 가족?"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직계가족으로는 아버지 안영모씨와 어머니 박귀남씨, 남동생 상욱씨와 여동생 선영씨가 있다. 배우자는 김미경씨이며 자녀는 외동딸 설희씨가 있다. 안 후보의 가족들은 무엇보다 화려한 학력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여동생 선영씨의 남편(치과의사)까지 합하면 안 후보의 가족 중 의사만 5명이다.

의사만 5명

아버지 영모씨는 일제 강점기 때 부산공립공업학교, 즉 공고를 졸업했지만 기적적으로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를 졸업한 후엔 경남 밀양에서 7년간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1963년 11월 부산의 대표적 빈민촌인 범천동에서 병원을 개업했다. 가난한 동네에 병원을 차린 영모씨는 병원비를 시내 병원의 절반 값으로 받았고 돈이 없는 이웃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기도 했다. 때문에 병원은 늘 적자에 시달렸지만 영모씨는 병원운영을 그저 봉사활동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영모씨는 또 40세 때 부산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56세 때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정도로 학구열이 강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안 후보의 대선출마설로 언론의 시선이 집중되자 올해 5월 무려 49년 동안이나 운영해온 병원을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영모씨는 안 후보의 최대 라이벌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영모씨가 박 전 대통령을 알게 된 것은 군의관 시절로 1960년대 초 박 전 대통령이 부산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으로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훗날 1961년 5·16으로 집권한 후 이듬해부터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는데 부산은 그 중심도시가 되면서 크게 발전했다. 영모씨는 이 같은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고 지인들에게 평소 박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뜻을 자주 내비쳤다고 한다.

어머니 박귀남씨 역시 이화여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재원이다. 안 후보의 어머니는 항상 자녀들에게 존댓말을 썼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심지어 혼낼 때도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자녀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안 후보의 남동생 상욱씨는 경희대 한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한의사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체의학과 자연요법에 관해 연구해왔으며, 환경친화적인 한약재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상욱씨는 안 후보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자신에게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자 "정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형이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선거운동을 도울 생각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동생 선영씨는 결혼 후 부산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치과의사로 알려져 있다.

존경스런 아버지

안 후보의 부인 김미경씨 역시 의사출신이다. 안 후보와 미경씨는 서울대 의대 선후배 사이다. 외동딸 설희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 미경씨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간 후 그곳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전공은 수학과 화학이다. 현재 그는 스탠퍼드대학 박사과정을 앞두고 있다. 설희씨는 TV에 가족사진이 공개되면서 뛰어난 미모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안 후보 가족들은 전부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공부와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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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