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일 인권변호사 30년 임범부가 밝힌 혐한 실상

“교포 자녀들 다닐 학교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일본 내에 만연하는 혐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스로 차별된 삶을 자처한 남자가 있다. 현재 사단법인 ‘북한 귀국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회’ 회원이자 오사카변호사회 임원인 임범부 변호사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일본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이다.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한국 이름 석자를 포기할 수 없어 귀화를 포기했다.

일본 내 외국인 변호사로 활동하는 임범부 변호사는 차별받지 않기 위해 남다른 삶을 살고 있다. 30여년간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 혐한 시위 피해자 등을 위해 싸운 임 변호사는 북한 인권 실태 알리기에 나섰다. 

한마음
한뜻으로 

1959년 12월, 재일조선인은 배를 타고 북한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당시 북한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재일조선인 북한 귀국사업’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 위한 취지였다. 다만, 북한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1984년까지 재일동포와 그 일본인 가족 9만3000여명은 당시 부유했던 북한으로 갔다.

쌍수 벌려 환영한 북한 정권은 귀국 비용을 전부 부담했다. 

귀국자들이 북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 귀국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회(이하, 기억기록회)는 재일동포와 일본인으로 구성된 단체로 변호사,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귀국사업 당시 북한으로 갔다가 탈북해 한국이나 일본에 사는 ‘귀국자’들을 쫓아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지난달 17일 <일요시사>는 임 변호사가 운영하는 ‘한맘 법률사무소’를 방문하기 위해 오사카 니시텐마 지역으로 향했다. 빌딩숲이 일렬로 늘어선 이곳은 오피스 타운으로, 오사카 직장인의 근무환경을 엿볼 수 있었다. 화려한 간판 대신 법무법인, 유통회사 등이 자리를 잡았고, 일부 식당엔 외국어 메뉴판조차 흔치 않았다.

관광 수요를 만족시키는 여느 일본 지역들과 달리 다소 삭막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맘 사무소를 겨우 찾아 들어서자 한글 서적이 빼곡히 나열된 책장이 보였다. 괜히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푸근한 인상을 주는 임 변호사는 환한 미소와 함께 “반가워요”라며 취재진을 맞이했다.

“지금도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 민족”
차별에 맞선 재일교포 3세 고군분투 

임 변호사는 지난 2015년 직원들에게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을 교육해 논란을 빚은 주식회사 ‘후지주택’과 맞서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재일교포 직원을 변호했다. 당시 교육자료엔 ‘한국인은 야생동물’ ‘재일 한국인은 죽어라’ 같은 한국 혐오 문구가 실려있었다.

또 위안부 강제연행은 거짓말이라면서 실제로는 높은 급여를 받고 호화 생활을 했던 매춘부라고 역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후지주택은 이 같은 내용의 자료를 수백 차례에 걸쳐 배포하고, 직원들에게 감상문까지 요구했다. 의뢰인이 문제를 제기하고 교육을 거부하자 후지주택은 3000만원을 줄 테니 회사를 그만두라고 제안했다. 결국 지난 2015년 소송을 제기했고, 임 변호사는 함께 싸웠다.

일본 법원은 5년 만인 지난 2020년 후지주택이 ‘모욕과 차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며 110만엔, 우리돈 약 1100만원을 의뢰인에게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직원 개인을 향한 차별은 아니었다며 청구한 위자료의 30분의 1만 인정했다.


당시 임 변호사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서 “‘위안부는 없다’거나 ‘식민지 지배는 없다’든가 그렇게 주장하는 일본 회의와 (창업자가) 접촉한 것 같다”며 “일본 재판의 한계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은 안 좋다, 나쁘다, 추악하다고 하는 건 개인이나 법인을 상대로 한 공격이 아니기 때문에 손해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후지주택 측은 당시 판결로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즉각 항소하기도 했다. 사측은 “사원 교육을 할 때도 회사에 재량이 있고, 경영자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혐오 발언에 벌금을 부과하는 조례가 시행됐지만, 일본 곳곳서 혐한 움직임은 지속됐다. 대부분 혐한 시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왜 일본인보다 외국인을 우선해서, 생활보호도 받지 못하는 일본인이 피해를 보느냐”는 입장이다. 

창씨개명 잔재 여전
재일코리안 몸부림 처절

혐한에 맞서 싸우던 임 변호사가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변호사를 시작할 때부터였다. 대학 시절 임 변호사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산하에 기업인 금강보험주식회사 등에 취업을 시도하는 학생들을 봐왔다.

1980년대만 해도 북한은 남한과 경제 수준이 비슷했고, 조총련 산하 기업은 차질 없이 운영됐기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재일교포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당시만 해도 재일교포가 일본 기업에 입사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였기에 이력서에 출신을 숨기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대도시 진출은 어려웠다”며 “일본서 태어났지만, 한국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차별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시만 해도 북한 귀국사업에 대해 자세히 몰랐지만, 북한에 살다가 일본이나 한국으로 돌아온 귀국자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뒤늦게 알게됐다”며 “지금도 일본서 귀국자들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해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재일조선인 북한 귀국사업’은 1959년에 처음으로 시작됐다. 해방 후 재일조선인은 일본 복지제도서의 배제, 사회적 차별과 억압, 가난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한 일본과 공산주의 진영에 속한 북한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을 북한으로 보내고 데려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북한은 전후 사회와 경제를 복구하는 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일본 정부에 재일조선인은 골치 아픈 존재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재일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상실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들을 추방할 수도 없었지만 일본 국적을 부여해 부양하고 싶지도 않았다.

현지 대기업 입사 포기하고 외길 
재일코리안 변호사협회 회장 역임


북한과 일본 정부의 협상은 급물살을 탔고 조선인이나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 중 희망자를 북한으로 보내는 ‘귀국사업’이 시작됐다. 조총련은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의 사회주의 복지제도의 우수성을 선전하면서 귀국을 독려했다. 그렇게 9만3340명이 이 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재일교포 6.5명당 1명이 북한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렇게 귀국하게 된 9만여명 중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생사나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르렀다. 기억기록회는 2018년부터 이들 중 총 50명을 만났고, 한 사람당 평균 8시간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귀국자들의 삶이 고되고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귀국자들은 일본 내에서의 차별을 북한서도 겪었다. 심지어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생활고가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오사카 야오시서 만난 귀국자 A씨는 북한서 고위급 간부로 살다가 지난 2010년경 아내와 두 자녀, 손주들과 함께 탈북했다. 1960년경 귀국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간 그는 량강도 혜산시서 목재가공공장을 운영하며 제법 부유하게 살았다.

당시 일본서 도요타 자동차를 수입해 “최룡해를 비롯한 장성들이 손님을 맞이한다며 빌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제2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라 북한을 통치하더니 GDP는 (UN 통계 기준) 이전 해인 1993년 107억달러서 83억달러로 떨어졌고, 북한 주민들도 경제 빈곤을 몸소 느끼게 됐다고 한다.

재일코리안
몸부림 처절

이후 1995년 48억달러로 기존의 30% 수준으로 폭락하다 못해 GDP가 문자 그대로 초기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과 당이 자신들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배급제에 의존할 수 없어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게 됐다. 김정은은 북한 경제의 시장화 움직임을 막기 위해 2009년 화폐개혁을 실시하고 연장 차원서 장마당을 금지시켰으나 대실패로 막을 내려 북한의 내수 경제를 완전히 파탄 상태로 몰고 갔다.

김일성 시절부터 최빈국 수준이었던 북한의 경제는 김정일 시기에 재기불능의 극빈국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당은 A씨에게 수시로 트집을 잡아 외화를 벌어오라고 강요했다. 김일성대학교를 나온 장남은 평양에 입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째포(재일교포를 비하하는 단어)’라고 차별받으며 변방을 맴돌았다. 또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순 선전물을 수시로 검사하러 오자 A씨 가족은 견디다 못해 탈북을 결심했다.

A씨와 같은 귀국자들의 고초를 접하게 된 임 변호사는 기억기록회서 활동할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임 변호사는 사회적 지위를 얻었지만, 직접적인 차별을 당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1월 오사카가정법원은 이혼과 상속 문제 등을 중재하는 가사조정위원으로 추천된 임 변호사에 대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공무원으로서 일본 국적이 필요하다는 점을 선임 거부 사유로 밝혔다.

북한 인권 문제 깊숙이 관심
평양 입성해도 변방 맴돌아

조정위원은 지방법원과 가정법원이 일반 응모자와 변호사회 추천을 받은 변호사를 후보자로 선고한 후 최고재판소가 임명하는 비상근 공무원으로, 최고재판소의 임명 기준에는 국적 제한이 없다. 재일교포 변호사가 국적을 이유로 조정위원 선임에 거부당한 것은 2003년 고베 가정법원 이후 2007년 9월 센다이 가정법원과 도쿄 간이재판소, 그해 12월 고베 가정법원에 이어 다섯 번째 사례다.

임 변호사는 “조정위원은 변호사회가 추천한 변호사를 가정법원이 명부에 싣고, 그 명부에 실린 변호사 중에서 최고재판소가 선임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적 변호사도 변호사회의 추천을 받아 명부에 기재되지만, 최고재판소가 선임하지 않는다. 태어나고 자란 일본 사회서 배제됐다는 생각에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적 변호사도 파산관재인이나 상속재산관리인으로는 선임된다. 둘 다 남의 재산을 관리 처분하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조정위원은 그런 일을 안 하고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도록 설득하고 유도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귀화를 거부하고 소신을 지킨 것에 대해 “대한민국 국적은 태어나서부터 저절로 갖는 것이지만, 그 속은 나이를 거듭하면서 힘들게 손에 넣어온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평생 손 놓을 수가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민족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일본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없다. 조선학교는 북한 교육을 시켜 보내기 힘든데, 한국학교도 조선학교도 아닌 코리아국제학원이 오사카에 생겼지만 규모는 작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자녀들은 주로 일본학교를 다니고, 오사카서 민족학급으로 민족교육을 시키지만 부족한 상황이다. 민족교육은 각 가정의 노력에 달린 문제라는 의미다.

한편, 임 변호사는 1963년 오사카와 나고야 중간에 있는 이가우에노라는 시골마을서 태어나 오사카시립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재일교포 변호사들이 모인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Lawyers Association of ZAINICHI Koreans, 이하 LAZAK)’의 전 회장이며, NPO법인 코리아인권생활협회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귀화 거부
소신 지켜

실제로 협회는 서적 출판, 학습회 개최, 재일코리안의 인권에 관한 소송 지원, 재일코리안을 비롯한 재일외국인의 인권옹호를 위한 각종 의견서 및 성명 발표, 심포지엄 개최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NGO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인종차별, 인권보호 등에 앞장서고 있다. 이에 지난 2007년 12월 재일코리안의 인권옹호에 이바지함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인권상을 받았다. 


오사카 =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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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