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일 인권변호사 30년 임범부가 밝힌 혐한 실상

“교포 자녀들 다닐 학교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일본 내에 만연하는 혐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스로 차별된 삶을 자처한 남자가 있다. 현재 사단법인 ‘북한 귀국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회’ 회원이자 오사카변호사회 임원인 임범부 변호사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일본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이다.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한국 이름 석자를 포기할 수 없어 귀화를 포기했다.

일본 내 외국인 변호사로 활동하는 임범부 변호사는 차별받지 않기 위해 남다른 삶을 살고 있다. 30여년간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 혐한 시위 피해자 등을 위해 싸운 임 변호사는 북한 인권 실태 알리기에 나섰다. 

한마음
한뜻으로 

1959년 12월, 재일조선인은 배를 타고 북한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당시 북한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재일조선인 북한 귀국사업’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 위한 취지였다. 다만, 북한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1984년까지 재일동포와 그 일본인 가족 9만3000여명은 당시 부유했던 북한으로 갔다.

쌍수 벌려 환영한 북한 정권은 귀국 비용을 전부 부담했다. 

귀국자들이 북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 귀국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회(이하, 기억기록회)는 재일동포와 일본인으로 구성된 단체로 변호사,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귀국사업 당시 북한으로 갔다가 탈북해 한국이나 일본에 사는 ‘귀국자’들을 쫓아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지난달 17일 <일요시사>는 임 변호사가 운영하는 ‘한맘 법률사무소’를 방문하기 위해 오사카 니시텐마 지역으로 향했다. 빌딩숲이 일렬로 늘어선 이곳은 오피스 타운으로, 오사카 직장인의 근무환경을 엿볼 수 있었다. 화려한 간판 대신 법무법인, 유통회사 등이 자리를 잡았고, 일부 식당엔 외국어 메뉴판조차 흔치 않았다.

관광 수요를 만족시키는 여느 일본 지역들과 달리 다소 삭막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맘 사무소를 겨우 찾아 들어서자 한글 서적이 빼곡히 나열된 책장이 보였다. 괜히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푸근한 인상을 주는 임 변호사는 환한 미소와 함께 “반가워요”라며 취재진을 맞이했다.

“지금도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 민족”
차별에 맞선 재일교포 3세 고군분투 

임 변호사는 지난 2015년 직원들에게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을 교육해 논란을 빚은 주식회사 ‘후지주택’과 맞서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재일교포 직원을 변호했다. 당시 교육자료엔 ‘한국인은 야생동물’ ‘재일 한국인은 죽어라’ 같은 한국 혐오 문구가 실려있었다.

또 위안부 강제연행은 거짓말이라면서 실제로는 높은 급여를 받고 호화 생활을 했던 매춘부라고 역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후지주택은 이 같은 내용의 자료를 수백 차례에 걸쳐 배포하고, 직원들에게 감상문까지 요구했다. 의뢰인이 문제를 제기하고 교육을 거부하자 후지주택은 3000만원을 줄 테니 회사를 그만두라고 제안했다. 결국 지난 2015년 소송을 제기했고, 임 변호사는 함께 싸웠다.

일본 법원은 5년 만인 지난 2020년 후지주택이 ‘모욕과 차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며 110만엔, 우리돈 약 1100만원을 의뢰인에게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직원 개인을 향한 차별은 아니었다며 청구한 위자료의 30분의 1만 인정했다.

당시 임 변호사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서 “‘위안부는 없다’거나 ‘식민지 지배는 없다’든가 그렇게 주장하는 일본 회의와 (창업자가) 접촉한 것 같다”며 “일본 재판의 한계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은 안 좋다, 나쁘다, 추악하다고 하는 건 개인이나 법인을 상대로 한 공격이 아니기 때문에 손해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후지주택 측은 당시 판결로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즉각 항소하기도 했다. 사측은 “사원 교육을 할 때도 회사에 재량이 있고, 경영자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혐오 발언에 벌금을 부과하는 조례가 시행됐지만, 일본 곳곳서 혐한 움직임은 지속됐다. 대부분 혐한 시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왜 일본인보다 외국인을 우선해서, 생활보호도 받지 못하는 일본인이 피해를 보느냐”는 입장이다. 

창씨개명 잔재 여전
재일코리안 몸부림 처절

혐한에 맞서 싸우던 임 변호사가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변호사를 시작할 때부터였다. 대학 시절 임 변호사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산하에 기업인 금강보험주식회사 등에 취업을 시도하는 학생들을 봐왔다.

1980년대만 해도 북한은 남한과 경제 수준이 비슷했고, 조총련 산하 기업은 차질 없이 운영됐기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재일교포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당시만 해도 재일교포가 일본 기업에 입사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였기에 이력서에 출신을 숨기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대도시 진출은 어려웠다”며 “일본서 태어났지만, 한국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차별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시만 해도 북한 귀국사업에 대해 자세히 몰랐지만, 북한에 살다가 일본이나 한국으로 돌아온 귀국자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뒤늦게 알게됐다”며 “지금도 일본서 귀국자들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해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재일조선인 북한 귀국사업’은 1959년에 처음으로 시작됐다. 해방 후 재일조선인은 일본 복지제도서의 배제, 사회적 차별과 억압, 가난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한 일본과 공산주의 진영에 속한 북한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을 북한으로 보내고 데려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북한은 전후 사회와 경제를 복구하는 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일본 정부에 재일조선인은 골치 아픈 존재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재일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상실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들을 추방할 수도 없었지만 일본 국적을 부여해 부양하고 싶지도 않았다.

현지 대기업 입사 포기하고 외길 
재일코리안 변호사협회 회장 역임

북한과 일본 정부의 협상은 급물살을 탔고 조선인이나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 중 희망자를 북한으로 보내는 ‘귀국사업’이 시작됐다. 조총련은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의 사회주의 복지제도의 우수성을 선전하면서 귀국을 독려했다. 그렇게 9만3340명이 이 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재일교포 6.5명당 1명이 북한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렇게 귀국하게 된 9만여명 중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생사나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르렀다. 기억기록회는 2018년부터 이들 중 총 50명을 만났고, 한 사람당 평균 8시간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귀국자들의 삶이 고되고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귀국자들은 일본 내에서의 차별을 북한서도 겪었다. 심지어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생활고가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오사카 야오시서 만난 귀국자 A씨는 북한서 고위급 간부로 살다가 지난 2010년경 아내와 두 자녀, 손주들과 함께 탈북했다. 1960년경 귀국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간 그는 량강도 혜산시서 목재가공공장을 운영하며 제법 부유하게 살았다.

당시 일본서 도요타 자동차를 수입해 “최룡해를 비롯한 장성들이 손님을 맞이한다며 빌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제2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라 북한을 통치하더니 GDP는 (UN 통계 기준) 이전 해인 1993년 107억달러서 83억달러로 떨어졌고, 북한 주민들도 경제 빈곤을 몸소 느끼게 됐다고 한다.

재일코리안
몸부림 처절

이후 1995년 48억달러로 기존의 30% 수준으로 폭락하다 못해 GDP가 문자 그대로 초기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과 당이 자신들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배급제에 의존할 수 없어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게 됐다. 김정은은 북한 경제의 시장화 움직임을 막기 위해 2009년 화폐개혁을 실시하고 연장 차원서 장마당을 금지시켰으나 대실패로 막을 내려 북한의 내수 경제를 완전히 파탄 상태로 몰고 갔다.

김일성 시절부터 최빈국 수준이었던 북한의 경제는 김정일 시기에 재기불능의 극빈국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당은 A씨에게 수시로 트집을 잡아 외화를 벌어오라고 강요했다. 김일성대학교를 나온 장남은 평양에 입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째포(재일교포를 비하하는 단어)’라고 차별받으며 변방을 맴돌았다. 또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순 선전물을 수시로 검사하러 오자 A씨 가족은 견디다 못해 탈북을 결심했다.

A씨와 같은 귀국자들의 고초를 접하게 된 임 변호사는 기억기록회서 활동할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임 변호사는 사회적 지위를 얻었지만, 직접적인 차별을 당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1월 오사카가정법원은 이혼과 상속 문제 등을 중재하는 가사조정위원으로 추천된 임 변호사에 대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공무원으로서 일본 국적이 필요하다는 점을 선임 거부 사유로 밝혔다.

북한 인권 문제 깊숙이 관심
평양 입성해도 변방 맴돌아

조정위원은 지방법원과 가정법원이 일반 응모자와 변호사회 추천을 받은 변호사를 후보자로 선고한 후 최고재판소가 임명하는 비상근 공무원으로, 최고재판소의 임명 기준에는 국적 제한이 없다. 재일교포 변호사가 국적을 이유로 조정위원 선임에 거부당한 것은 2003년 고베 가정법원 이후 2007년 9월 센다이 가정법원과 도쿄 간이재판소, 그해 12월 고베 가정법원에 이어 다섯 번째 사례다.

임 변호사는 “조정위원은 변호사회가 추천한 변호사를 가정법원이 명부에 싣고, 그 명부에 실린 변호사 중에서 최고재판소가 선임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적 변호사도 변호사회의 추천을 받아 명부에 기재되지만, 최고재판소가 선임하지 않는다. 태어나고 자란 일본 사회서 배제됐다는 생각에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적 변호사도 파산관재인이나 상속재산관리인으로는 선임된다. 둘 다 남의 재산을 관리 처분하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조정위원은 그런 일을 안 하고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도록 설득하고 유도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귀화를 거부하고 소신을 지킨 것에 대해 “대한민국 국적은 태어나서부터 저절로 갖는 것이지만, 그 속은 나이를 거듭하면서 힘들게 손에 넣어온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평생 손 놓을 수가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민족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일본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없다. 조선학교는 북한 교육을 시켜 보내기 힘든데, 한국학교도 조선학교도 아닌 코리아국제학원이 오사카에 생겼지만 규모는 작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자녀들은 주로 일본학교를 다니고, 오사카서 민족학급으로 민족교육을 시키지만 부족한 상황이다. 민족교육은 각 가정의 노력에 달린 문제라는 의미다.

한편, 임 변호사는 1963년 오사카와 나고야 중간에 있는 이가우에노라는 시골마을서 태어나 오사카시립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재일교포 변호사들이 모인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Lawyers Association of ZAINICHI Koreans, 이하 LAZAK)’의 전 회장이며, NPO법인 코리아인권생활협회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귀화 거부
소신 지켜

실제로 협회는 서적 출판, 학습회 개최, 재일코리안의 인권에 관한 소송 지원, 재일코리안을 비롯한 재일외국인의 인권옹호를 위한 각종 의견서 및 성명 발표, 심포지엄 개최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NGO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인종차별, 인권보호 등에 앞장서고 있다. 이에 지난 2007년 12월 재일코리안의 인권옹호에 이바지함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인권상을 받았다. 


오사카 =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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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