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가 추락 중이다. 회의는 제대로 열리지도 못한 채 파행이 지속되고 있다. 이충상, 김용원 상임위원의 막말과 혐오 발언도 멈추지 않았다. 바뀐 건 없다. 오히려 안창호 인권위원장 후보자가 임명되면서 상황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신뢰를 잃은 인권위는 진정 접수도 대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사건 수가 대폭 감소했다. 무려 전년 대비 1000건 이상이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기관 자체가 마비됐다는 토로도 상당하다. 송두환 전 인권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주재하는 전원위에 상임·비상임위원 10명 중 절반이 보이콧한 상황을 보면 인권위 정상화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막말 한몫
송 전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인권위서 열린 전원위원회서 “올해부터 진정사건 접수가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며 “국민들로부터 우리 인권위에 대한 기대 또는 신뢰가 저하된 결과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강하게 든다”고 우려를 표했다.
인권위가 공개한 ‘2024년 진정사건 처리 및 권고이행 현황 보고’에 따르면, 진정사건 접수 현황은 지난 6월 기준 486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361건보다 1204건 감소했다. 진정사건 처리도 6555건서 5150건으로 497건 줄었다.
진정 접수가 줄어든 부분에 대해 위원들은 “인권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인권위의 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은 그간 막말·혐오 발언, 전원위 파행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인권위의 권리구제 건수가 줄어든 부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6월 권리구제 건수는 508건으로 전년 동기 856건 대비 348건 감소했다. 침해 사건이 596건서 292건으로, 차별 사건이 260건서 216건으로 줄었다. 권고율은 2배 이상 줄었다. 권고율은 지난해 340건이었으나, 올해 128건까지 급감했다.
박진 사무총장은 “위원회 창립 이후로 권고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초유의 일이다.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조사관들이 기존의 의견에 비춰 인용으로 올린 것들이 기각으로 의결돼 통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진정사건 접수·처리 전년비 1200·500건↓
권리구제 수백건 감소 “신뢰 잃은 지 오래”
김수정 비상임위원도 “위원들 각자의 기각·인용 의견이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결할 수 있는 소위원회 운영 방식이 됐으면 좋겠다”며 “진정인의 피해가 달려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전원위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다. 재적 인권위원 11명 중 과반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한다. 그런데 위원 6명이 출석을 거부하면 안건 의결은 물론이고 의사정족수 미달로 개회조차 되지 않는다.
여권이 추천한 위원 6명(김용원·이충상·한석훈·김종민·이한별·강정혜)은 지난달 24일 전원위서 ‘소위원회 의결정족수 안건’을 송 전 위원장이 표결에 부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그동안 인권위는 인권침해 조사 등을 관장하는 소위원회서 진정사건을 기각하거나 각하할 때 소위원회 구성 위원 3인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왔다. 합의 정신을 살리자는 취지로 지난 2001년 출범 이후 이어진 관행이었다.
여권 추천 위원들은 소위서 1명이라도 반대하면 ‘의결되지 않은 안건’으로 보류하는 안건을 제시했다. 송 전 위원장이 자의적으로 표결을 미뤘다는 게 위원 6명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안건이 통과되면 합의제 기구인 인권위 의사결정이 왜곡되거나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거셌다.
김 위원과 이 위원의 막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최근 공개회의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향해 “기레기들이 들어와서 쓰레기 기사를 써 왔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기레기 발언’에 대해 “극소수 기자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두 위원의 억지 ‘보이콧’으로 인한 전원위 파행은 인권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2022년 두 위원의 부임 이후 정족수 미달로 회의가 무산된 게 18회에 달한다.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인 두 위원은 회의 참석을 거부하면서도 월 1176만1910원의 급여를 챙겼다.
‘억지 보이콧’ 회의 무산만 18회 달해
“차기 위원장, 인권위 부정…희망 없다”
직급보조비 95만원, 정액급식비 14만원, 가족수당 4만원 등 각종 수당도 수령했다.
두 위원은 송 전 위원장 또는 다른 위원들과 의견이 대립할 경우 ‘안건 상정 전 의사진행발언 후 퇴장’ 방식으로 회의를 파행시켜 왔다.
지난해 4월20일 열린 ‘2023년 제13차 상임위’가 시작이었다. 상임위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3인으로 구성되는데 회의가 열리려면 ‘3인 이상 출석’해야 하고, ‘3명 이상 찬성’해야 의결이 이뤄진다. 당시 두 위원은 화물연대 파업 이후 공론화된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제도개선 권고 안건을 두고 이견을 보이다가 퇴장했다.
일부 위원이 안건을 전원위에 재상정하자고 하자 이 위원은 “인권위가 개판 5분 전”이라며 반발했다.
김 위원은 지난해 8월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관련 박정훈 대령의 긴급구제 안건을 다루는 회의에 불참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그는 “회의에 건강상 문제로 조퇴한 것이 고의로 불참한 것처럼 왜곡됐는데도 ‘알아서 대처하라’는 식이면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며 퇴장했다.
한편 송 전 위원장은 지난 3일 임기를 마쳤다. 이후 안창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차기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토로가 상당하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인권위 모토를 부정하는 사람이 왔다. 인사청문회 과정서 부적절한 인사라는 게 확인돼도 임명될 것이라는 건 예상했다”며 “이충상, 김용원 위원이 있을 때보다 더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성 목소리
인권위 위원 출신 한 인사도 “혐오와 막말이 1년 이상 지속돼 왔다. 전원위 파행만 10번을 넘었고 ‘퇴장하면 그만’이라는 두 위원의 막가파식 진행으로 인해 ‘피해자 구제’라는 인권위 존재 이유가 무색해졌다. 지금은 인권위라는 기관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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