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정부 ‘촉법소년 연령’ 하향 움직임에 제동, 왜?

“사건 통계 부족 및 사회복귀·회복 관점에 반해”

[일요시사 정치팀] 박 일 기자 = 지난 26일, 정부가 촉법소년의 상한 연령을 현행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하향하는 소년법·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제동을 걸었다.

이날 인권위는 “최근 강력범죄를 저지른 아동에 대해 강도 높은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형사미성년자 및 촉법소년 연령 조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면서도 “다른 한편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제인권기준이 요구하는 소년의 사회 복귀와 회복의 관점에 반하고,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실효적 대안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부정적 낙인효과를 확대해 소년의 사회 복귀와 회복을 저해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촉법소년 사건 발생 현황을 전체적으로 보여줄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하향)주장이 객관적으로 타당한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의 범죄 건수는 매해 400~450건으로 유지돼 흉포화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년범죄의 예방과 재범방지를 위해서는 소년비행 원인의 복잡성·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아동의 발달 특성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고, 아동사법제도의 각 단계에서 문제점을 분석해 소년범죄에 통합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늘날 소년범죄와 관련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소년 사건 재범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에 있다”며 “법무부 장관에게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대안으로 소년분류심사원, 소년원, 소년교도소 등 교화·교정시설의 확충, 소년을 담당하는 보호관찰관의 인원 확대, 임시조치의 다양화 및 교화프로그램 개선 등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e-나라지표’가 공개한 소년사범 형사사건 처리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1만8714건 ▲2013년 10만1421건 ▲2014년 9만158건 ▲2015년 9만890건 ▲2016년 8만7277건 ▲2017년 8만4026건 ▲2018년 7만5150건 ▲2019년 7만5197건 ▲2020년 7만2344건 ▲2021년 5만5854건으로 감소 추세다.

하지만 경찰청의 ‘최근 5년간 촉법소년 강력범죄 소년부 송치 현황’은 다른 지표를 나타냈다.

지난 2017년 이후 발생했던 촉법소년의 살인, 강도, 강간·추행, 방화, 절도, 폭력 횟수는 2018년 6014건으로 잠깐 주춤한 이후 2019년부터 계속 상승세다.

또 대법원의 ‘최근 5년간 촉법소년 범죄 접수 현황’에서도 ▲2017년 7896건 ▲2018년 9049건 ▲2019년 1만22건 ▲2020년 1만584건 ▲2021년 1만2501건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촉법소년 연령의 세계적인 추세는 어떨까? 현재 UN이 권고하고 있는 국제인권기준은 ‘만 14세’로 현재 시행 중인 연령대와 동일하다. 하지만 촉법소년들의 강력범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어 이들의 연령을 하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국제인권기준은 국내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데다 문화적 특성 및 사회적 환경에 따라 형사미성년자 기준 연령이 국가마다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뉴욕주와 프랑스는 만 13세 미만, 캐나다는 만 12세 미만, 호주·영국은 만 10세 미만, 스코틀랜드 8세 미만으로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는 7세 미만이다.

촉법소년의 연령 하향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당시 공약 중 하나였다.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은 “14세 미만에서 12세 미만으로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겠다고 약속했던 바 있다.

현행 소년법에 따르면 만 14세 이상부터 19세 미만까지는 형사 처벌이 가능한 ‘범죄소년’, 10세 이상부터 14세 미만까지는 소년원 송치, 사회봉사 명령 등의 보호처분만 가능한 ‘촉법소년’으로 분류된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주장해왔던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의 숫자는 줄어드는데 범죄는 늘어나고 질은 더 나빠졌다. 청소년들이 부모도, 선생님도, 경찰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법까지 우습게 보는 분위기가 돼버리면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법을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설 확충이 우선’이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선 “촉법소년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마냥 시설확충만 기다릴 수는 없다”며 “연령 하향을 우선 하고 시설을 확충해도 늦지 않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는 게 이들의 처벌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전과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범죄를 억제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par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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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곽종근 공소장에 담긴 윤 ‘2차 계엄’ 정황

김용현·곽종근 공소장에 담긴 윤 ‘2차 계엄’ 정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불법 계엄이 국회서 해제된 지 한 달이 지났다. 검찰은 사건에 연루된 군 수뇌부들을 연달아 재판에 넘기는 과정서 2차 계엄 시도 정황을 포착했다. 구속 기소된 일부 장성들이 지휘관들에게 복귀가 아닌 대기 명령을 내린 게 핵심이다. 정보사도 빠지지 않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계엄에 개입된 정보사는 노상원 전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주도면밀히 움직였다. 검찰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가 연합된 공조수사본부(이하 공조본)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수사 한 달여 만에 군 수뇌부를 줄기소 처리했다. 검찰은 내란 수괴(우두머리)로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했다. 군 수뇌부들의 공소장에는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의 역할이 적나라하게 적시돼있었다. 정보사 역할 적나라 적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시작으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을 구속 기소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이들의 공소장엔 윤 대통령이 150회 이상 등장하고, 기소된 당사자보다도 훨씬 많이 언급된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윤 대통령 공소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고 봤다. 또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이 지난해 3월부터 비상계엄을 염두에 뒀고, 계엄 당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라고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 외에도 검찰은 각 사령관들을 포함한 군 관계자들을 조사해 계엄 당일 윤 대통령이 비화폰(군 보안폰)으로 직접 전화하면서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다 끄집어내라”고 독촉하는 등 국회 봉쇄를 직접 지시한 사실을 밝혀냈다. 가장 먼저 윤 대통령에게 피의자 출석 통보를 한 것은 검찰이었다. 검찰은 지난달 15일 윤 대통령에게 1차 출석 요청을 했지만, 윤 대통령 측은 “변호인단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다”며 불출석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출석 통보를 한 이후 수사권 논란이 커지고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자 윤 대통령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다. 경찰은 지난달 4일 윤 대통령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한 직후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을 만들고, 공수처, 국방부 조사본부와 함께 공조본을 꾸려 동시다발적으로 수사를 진행해 왔다. 계엄 전 이른바 ‘롯데리아 회동’을 갖고 계엄을 사전 기획한 혐의를 받는 ‘계엄의 배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1차 수사도 마무리한 상태다. 특수단이 최근까지 입건한 피의자는 대통령실 및 당정 관계자 25명과 군 관계자 19명, 경찰 5명 등 총 49명에 달한다. 검, 한 달 만에 군 핵심 수뇌부 기소 짙은 플랜 B 논의 정황 “지휘부 대기” 그러나 정작 이번 사태의 ‘정점’인 윤 대통령 사건을 맡은 공수처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지난 7일까지 공수처가 신병을 확보한 피의자는 문 전 사령관 1명뿐이다. 공수처는 검찰이 이미 두 차례 출석을 통보했던 윤 대통령에게 추가로 3차례나 더 출석을 통보한 뒤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지만, 지난 3일 집행 5시간반 만에 철수하며 “수사력과 수사 의지가 모두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체포영장 집행을 일임하려다가 국수본이 “위법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자 철회하기도 했다. 검찰이 윤 대통령과 함께 이첩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수사도 제자리걸음 수준인 건 마찬가지다. 현 형사소송법과 공수처법 등을 따져보면 검찰은 기소권이 있으나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 공수처도 내란죄 수사권이 없어 직권남용 관련 범죄로 내란 혐의를 입건해 윤 대통령을 수사 중이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 경찰은 윤 대통령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하고 체포영장 집행 등에 협력 중이다. 특히 공수처는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을 체포하더라도 기소하려면 검찰에 다시 넘겨야 한다. 애초부터 검찰과 공수처, 경찰이 합동수사본부를 꾸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대검은 공수처에 합동수사를 3차례 제안했지만,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사건 이첩 강행 규정을 들며 거부했고, 결국 검찰은 윤 대통령 사건을 이첩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안 가결 이후에도 ‘2번, 3번 계엄 선포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음을 증거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은 계엄 직후부터 제기돼왔다. 국회서 계엄 해제요구안이 통과된 지 3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상계엄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정점 수사 지지부진 박 총장은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이 설치된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을 방문했다고 박 총장이 국회서 증언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당시 윤 대통령이 ‘2차 계엄이라도 해서 국회를 접수하라’는 투로 이야기했고, 그래서 7공수여단과 13공수여단이 새벽 3시 반 복귀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계엄 해제 당일인 지난달 4일 오후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이 장관 등이 대통령 안가(안전가옥)서 모임을 한 것을 두고도 2차 계엄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검찰 관계자는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해 “당연히 의혹이 있는 부분은 수사할 예정이고 일부 수사 중이다. 꼭 입증해야 하는 건 실행 행위가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박 총장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 후에도 육군본부에 있던 참모진들을 계엄사령부로 출동하도록 지시한 정황도 2차 계엄 의혹의 중요한 근거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박 총장은 지난달 4일 새벽 3시3분 참모진들에게 계엄사령부가 있는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로 모이도록 지시했다. 당시 지시를 내린 시각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체요구안이 가결된 이후였다.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의결 후 즉각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하지 않고, 계엄 다음날 오전 1시16분~1시47분경 합동참모본부 지하에 위치한 결심지원실에 모여 관련 논의를 계속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김 전 장관은 이날 오전 2시13분에 박 총장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 재차 투입 여부를 물었고 박 총장은 어렵다는 취지의 답변을 남겼다. 박 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된 이후 계엄사령부 구성 및 소집을 위해 어떤 지시를 했는지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군내 별동대 꾸리려 시도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직후 군내 자신이 지휘하는 별동대를 꾸리려 했다. 경찰은 수사 2단이 부정선거 의혹을 확신하는 노 전 사령관 등이 선관위 장악을 위해 구상한 조직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일 경찰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전·현직 군 관계자들과 지난해 11월1일과 3일 햄버거집서 두 차례 만나 수사 2단 설치를 논의했다. 수사 2단은 계엄 발령 이후 구성되는 합동수사본부와 별도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구체적 임무는 선관위 서버 확보였다. 경찰은 지난달 12일 국방부 압수수색을 통해 수사 2단과 관련된 일반명령 문건과 이에 근거해 작성된 인사 발령 공문을 확보했다. 수사 2단은 3개의 부로 나뉘는데, 단장부터 부대원까지 총 60여명이 인사 발령 명단에 포함됐다. 수사2단은 1·2·3대로 나뉜다. 계엄 사태에 연루돼 업무가 배제된 김모 대령이 1대장을, 노 전 사령관과 햄버거집 회동을 한 정보사 김·정 대령이 각각 2·3대장을 맡는 것으로 계획됐다. 이 조직은 예비역인 노 전 사령관, 국방부 조사본부 출신으로 예비역인 김용군 전 대령이 실질적으로 지휘하려 했다. 이들의 주임무는 선관위 서버 탈취와 선관위 직원 납치·감금·심문이었다. 정 대령은 앞선 조사에서 선관위 장악을 위해 직원들을 케이블타이, 두건, 마스크 등을 사용해 무력 통제한 뒤 특정 장소에 감금하는 방안을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등과 함께 준비했다고 진술했다. 국무회의 의결 전 군 간부 ‘계엄사 이동’ 지시 노, 해제되자 분노 “‘강행해’ 언성 높이기도”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준비 과정서 핵심적 역할을 해 왔다는 증거는 계속 나오고 있다. 그는 계엄 직전, 김 전 장관과 국방부 공관서 단둘이 만나 계엄을 논의했다. 또 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정 대령 등과 함께한 자리서 선관위 장악에 북파공작부대(HID) 대원 등을 ‘체포조’로 동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계엄 당일인 지난달 3일 노 전 사령관은 구삼회 제2기갑여단장, 김 전 대령 등과 2차 햄버거 회동을 열었다. 제2기갑여단은 장갑차와 전차 등을 운용하는 부대다. 구 여단장은 계엄 당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정보사 100여단 사무실서 노 전 사령관 지시로 대기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노 전 사령관 등이 계엄 당시 탱크부대를 동원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들의 계엄 논의가 그 이전부터 이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정 대령은 경찰 조사에서 지난달 중순쯤 “노 전 사령관이 ‘공작 잘하는 인원 15명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존재는 경찰이 김 전 장관의 통화 내용을 분석하던 중 드러났다.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의 잦은 통화 기록에 의심을 품은 경찰은 결국 ‘계엄 비선 기획’의 실마리를 잡았다. 노 전 사령관은 1989년 김 전 장관이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소령)일 때 같은 부대서 대위로 근무했다. 20여년 전 김 전 장관이 박홍렬 전 육군참모총장의 비서실장이었을 당시 노 전 사령관은 국가정보원에 파견 근무 중이었다. 이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대북 관련 첩보를 제공하면서 수시로 통화하는 인연을 키웠다. 노 전 사령관이 박근혜정부 시절 경호실 군사관리관을 할 때, 경호실장이 박 전 총장이었고, 김 전 장관은 대통령 경호 업무와 밀접한 수도방위사령관이었다. 김 전 장관이 지난해 9월 국방부 장관이 된 이후 인사와 작전에까지 그의 입김이 미쳤다는 게 복수의 정보사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공작조 15명 보고도 지시 정보사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안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노 전 사령관도 타 사령관들과 마찬가지로 부하들을 대기시켰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군 소식통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국회에 의해 계엄이 해제되자 노 전 사령관이 크게 분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관위 직원들을 겁박한 이후 다른 장소로 옮기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강행하라’면서 언성을 높였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