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권위 막말 회의록 ‘블랙 마킹’의 비밀

어설픈 가리개 걷어내니…

[일요시사 취재1팀·정치팀] 오혁진·박희영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가 멍들고 있다. 피해자와 진정인을 위한 회의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갈등과 막말로 인한 파행의 연속이다. 회의록에 처리된 어설픈 블랙 마킹도 문제다. 인권위 내부 상황을 더욱 적나라하게 알 수 있으나 피해자와 진정인의 민감한 정보까지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21일 <일요시사>는 야권 의원실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회의록을 입수했다. 회의록에는 상임위원의 막말과 끼어들기가 여러 차례 언급된다. 민감한 정보를 보호할 때 쓰이는 ‘블랙 마킹’조차 어설펐다. 오히려 이들의 막말을 가리기도 했다. 블랙 마킹이 피해자와 진정인 보호가 아닌 갈등을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셈이다.

다 가려진
육두문자

인권위의 결정은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11명 인권위원의 판단으로 내려진다. 전원위원회 안건은 인권위원들의 표결로 처리한다. 보통 인권위원 과반인 6명의 동의를 받으면 대부분 통과된다. 임기 3년의 인권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대통령이 4명, 대법원장이 3명, 국회가 4명을 지명한다. 국회 지명 4명은 여당 몫 2명과 야당 몫 2명으로 나뉜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바뀐 상임·비상임위원은 총 6명이다. 사실상 의견 불일치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60페이지 분량의 인권위 제7차 전원위원회 회의 결과 및 회의록 보고 문건은 50페이지가량이 ‘블랙 마킹’으로 처리돼있다. 피해자와 진정인의 정보를 보호하기보다는 이충상·김용원 위원과 이들의 비상식적 발언에 동조하는 문구를 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킹 처리도 황당할 만큼 어설펐다. 문건을 인쇄할 때는 보이지 않지만 파일 형태에서는 마우스로 드래그 후 복사·붙여넣기가 가능했다.

7차 전원회의는 지난 5월22일 오후에 열렸다. 이날 한석훈 위원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관계자에 관해 “방청인이 이충상 위원에 대해 상당히 위협적인 언동을 했다. 원만한 회의 진행을 방해하면 퇴장을 명했어야 한다. 이해당사자가 방청인으로 들어온 상태서 회의를 진행하면 위협적인 상황서 자유롭게 의사를 발표할 수 있겠냐. 방청인이 위협적 언동을 하면 바로 퇴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석원정 위원은 한 위원의 발언에 대해 “유족분이 방청하신 것이고 이분들이 어떤 이익이나 불이익의 당사자라고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이해당사자라고 일반적으로 규정짓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김 위원은 “이게 무슨 봉숭아 학당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인권위 갈등은 직원들의 걱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얼굴만 맞대면 진흙탕 싸움
부끄러운 위원들의 ‘말말말’

박진 사무총장은 “현 상황을 무겁게 바라보고 있다. 인트라넷서 직원들이 글을 쓰고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언급된 내용 중 모 조사관이 진정된 사건이 있다”며 “담당조사관과 과장이 이충상 위원에게 불려간 자리서 이 위원으로부터 인트라넷 게시글에 관한 언급을 들은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이 위원은 모 조사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고 했다.


윤 위원은 박 사무총장에게 “‘조사관을 징계해야 한다. 이중처벌이 안 되니 지금 말고 내가 위원장이 되면 중징계를 내릴 것. 조사관에게 전해라. 곧 서기관하고 부이사관 승진이 있는 거 안다’는 발언이 사실이라는 거냐”고 물었다.

서미화 위원은 박 사무총장에게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다시 물었으나 김 위원이 “잠깐만”이라며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후 이 위원이 “‘내가 위원장이 되면’이라고 안 했다. 차기 위원장은 다른 분이 될 수 있고 김용원 상임위원님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될 수도 있는데 차기 위원장 취임 후에 징계한다면, 징계감”이라며 “무겁게 징계할 텐데 지금 위원장님 재직 중에 아주 가볍게라도 징계하면 징계를 두 번 할 수는 없으니까 조사관에게 나을 것이다. 위원장님 재직 중에 아주 가볍게 징계하면 심지어 징계위원회서 불문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해석은 달랐지만 발언을 인정했다.

남규선 위원은 “피진정인 자격으로 조사관에게 피해자의 징계를 운운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으나 이 위원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수정 위원은 “이 위원이 여러 말씀을 했는데 기본적으로 피해자 보호에 관한 생각이 과연 인권위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해결 아닌
갈등 유발

이 위원은 곧바로 “내가 피해자고 조사관이 가해자다. 갑질? 피해자가 아니라 진정인, 피진정인이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이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이 위원님 말을 내가 따라야 하냐”고 했다.

서 위원은 “이 위원님께 충언하겠다. 인권위 상임위원이면 인권에 대한 어떤 감수성, 가치가 우선돼야 한다. 위원님은 차관급 상급자다. 일개 직원에게 이런 사안이 벌어졌다면 자중해야 한다. 내가 이충상 위원이라면 자진해서 사퇴한다”고 지적했다.

타 회의록서도 유가족과 피해자를 향한 막말은 적지 않았다. 혐오 발언에 관한 블랙 마킹 처리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드래그 후 복사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민감한 내용은 적지 않았다.

11명의 인권위원은 전원회의 이전 진정인 또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소위원회 회의를 진행한다. 이 중 침해구제제1위원회(이하 침해1소위)는 김 위원이 소위원장을 맡고 있다. 침해1소위의 마지막 회의는 지난 8월1일이다. 이날 침해1소위는 정의기억연대 정기 수요시위 현장에서 터진 욕설을 제지해달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가 낸 진정을 기각했다.

인권위 사무처가 법적 근거가 없는 결정이라며 침해1소위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현행법상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소위 표결에는 김 위원을 포함한 3명의 위원이 참여해 김용원·김종민 위원은 기각, 김수정 위원은 인용 입장을 냈다.


김수정 위원은 “의견이 엇갈린 경우 소위원장이 기각을 결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근거는 인권위법 제13조 제2항의 “소위원회는 구성 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이다.

그동안 인권위는 인용 또는 기각을 결정할 때 이 조항을 적용해 소위원회를 운영해왔다. 소위원회 3인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원위원회에 넘겨 처리해왔던 것이 ‘관례’다.

제자리걸음
감추기 급급

현재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 주도로 한석훈·한수웅·김종민·이한별 비상임위원까지 6명은 ‘소위원회서 의견 불일치 때의 처리’에 대한 의안을 전원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는 인권위가 탄생한 2001년 이후 단 한 번도 제기된 바 없다. 행정법무담당관도 실제 회의 운영 관행과 전혀 다르다는 의미서 의결정족수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법제처의 판단도 같았다.

법제처 관계자는 “유권해석은 가결이 되지 않으면 부결이 된다는 식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권위원회법 제13조의 의결을 가진 가결로 축소 해석할 필요가 없고 성문법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서 법령 규정의 문자나 문장이 의미하는 바에 입각해 해석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법제처는 인권위의 오랜 관례를 깨려는 위원들의 판단이 부적절하다고 봤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법제처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소위원회서 진정 사건을 처리할 때 가결이 아니면 부결이라고 보거나, 위원회법 제13조를 권고 결정에 한정하여 가중된 의결정족수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타당하지 않다 ▲의결과 가결, 부결의 개념, 법 문언의 형식, 다른 유사한 합의제 행정기관의 입법례와 이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해석, 더 나아가 위원회법의 목적과 취지, 위원회 결정의 효력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위원회 설립 이후 지속돼온 의결정족수 규정에 관한 해석과 적용을 위 새로운 주장에 근거해 변경할 수는 없다 ▲소위원회는 위원회법 제13조에 따라 각하, 기각, 권고 등 결정에 3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진정에 관해 의결할 수 있으므로, 어느 하나의 결정에 3인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의결할 수 없다. 따라서 의결정족수에 미달할 경우, 위원들 간에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공통의 결론을 내리기 어려우면 본래 전원위원회에서의 위임 취지에 따라 전원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이 위원회 위원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다.

입맛대로 고쳐먹는 관례
단 1명만 반대해도 리셋

법제처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을 포함한 인권위원 6인은 관례를 깨려는 의지를 표출 중이다. 그는 자신이 작성한 의견서를 언급하면서 “헌법의 여러 조항과 민법, 상법 등 의결이나 결의, 가결만을 의미함이 명백하지만 법제처는 반박하지 못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권위법의 새 해석하에서도 종전에 비해 실무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다. 소위서 1명만 진정 기각 의견인 경우에는 인권위법의 새 해석하에서는 소위 기각이 가능하지만 인권위의 실무에 있어서는 2명의 인권위원의 의견이 존중돼 소위서의 기각 처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위서의 기각 처리는 없을 것이라는 이 위원의 주장과는 다르게 인권침해나 차별 행위의 피해자가 제기한 진정 사건이 기각될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와 진정인의 입장서 신중한 판단을 기해야 함에도 단 1명의 반대로 사건이 초기부터 기각되는 건 인권위의 역할 축소나 다름없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인권위원 6인의 움직임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관례가 깨지면 그만큼 피해를 보는 진정인이 늘어난다는 거다. 이충상 위원이 주장한 “‘소위서의 기각 처리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말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며 “전원회의서 기각돼도 울분을 토하시는 분들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 공무원 노조는 이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응답자 중 약 80%는 소위원회서 위원들 사이에 의견이 다를 경우, ‘다시 위원끼리 논의(40.6%)’를 하거나 ‘전원위 상정 논의 후 3인이 동의하면 전원위에 상정(39.6%)’해야 한다고 답했다. ‘3인 정족수 미달로 기각’해야 한다는 의견은 2%에 불과했다.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쌍방이 더 주장하고 자료를 제출할 것이 없어 재상정할 것이 아니다. 이 안건은 인권위의 운영에 관한 것이라서 인권위원들이 이 안건에 관해 최고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고 외부에 최고의 전문가가 따로 없기에 노동조합의 주장처럼 외부의 전문가에게 사실 조회를 하거나 청문회를 할 필요가 없다.”

법제처 무시
의견 고집만

송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전원회의서 “위원장으로서 위원들께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누구에게 무식하다, 오만방자하다,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방청인들도 지켜보고 있는 회의다. 회의의 품위나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의 무게에 대해 위원님들이 더 엄격하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이 공무원 노조를 향해 오만함이 섞인 발언을 하기 이전에 송 위원장이 했던 말을 곱씹어보는 게 어떨까? 그는 인권위의 추락이 자신을 포함한 일부 인권위원들에 의한 결과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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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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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 민주당 비대위 시나리오

‘총선 전’ 민주당 비대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던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이 소리 없이 물밑으로 사라졌다. 대통령 부부만 때리던 더불어민주당의 손이 갈 곳을 잃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는커녕 공천 파열음만 커지는 형국이다. 총선 전 ‘민주당 비대위설’에 또다시 연기가 오르는 이유다. 총선 레이스 초반부터 정부·여당에는 악재만 몰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부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까지 호재가 이어졌다. 안일했던 탓일까? 총선을 한달 반 앞두고 국민의힘이 각종 승부수를 띄우며 주도권을 당기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반격에 나섰지만, 여의도 담벼락을 넘는 요란한 집안싸움이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되든 말든 일단 고! 지난 6일,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밝혔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고령인구와 상승하는 의료수요에 비춰볼 때 2035년에는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으로 추산한 데 따른 것이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필수 의료공백의 원인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무분별하게 의대 정원을 늘린 정부를 규탄하며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료계의 협조를 당부했지만 양측의 갈등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22일 정부에 따르면 전공의 대부분이 근무하는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8816명으로 추산된다. 수술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등 차질이 빚어지면서 의료 대란이 현실로 다가왔다.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현장으로 복귀하라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환자를 돌볼 의무를 저버린 의사’와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정부’ 프레임으로 비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지난 3주 동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소폭 상승시킨 데 기여했다는 평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이 집어 든 ‘사형 집행 논의’ 카드도 주목을 받는다. 어디까지 논의가 이뤄질지 미지수지만 민감한 주제를 탁자에 올려놨다는 것만으로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게 한 비대위원장의 설명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깊게 논의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 20일 ‘시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국민택배 공약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사형제가 있고, 제가 (법무부)장관을 하는 동안 사형시설을 점검했고 사형이 가능한 곳으로 재배치했다”며 “그 자체만으로도 안에서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 그 부분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 책임 있는 사람들이 진지하고 과감한 논의를 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 부분에 대해 논의하다가 그만뒀다. 법에 따르는 집행도 충분히 고려할 때가 됐고, 그게 우리 사회를 더 안전히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천으로 두 쪽 난 당심…리더십도 ‘휘청’ ‘영장 기각’ ‘미니 총선’ 기세는 어디로? 민주당은 의대 정원을 콕 집어 ‘정치쇼’라고 지적했다. 충분한 논의 없이 총선 전 이목을 끌기 위해 성급하게 나섰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민생 국정 문제를 이렇게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권력의 사유화”라고 꼬집었다.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슈적인 측면서 민주당이 뒤처지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윤정부 심판론’을 내세워 총선을 준비했지만 판세가 뒤집히면서 불리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시작으로 ‘미니 총선’으로 불렸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까지 민주당이 승리를 이끌어내면서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담은 ‘쌍특검’을 윤 대통령이 거부하고, ‘명품백 수수 논란’까지 터지면서 점차 심판론에 무게가 쏠렸다. 기세를 이어가던 중 공천 문제가 뇌관으로 번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 19일 하위 20% 명단이 발표됐고,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을 배제한 지역구 여론조사가 시행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천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것이다. 첫 번째 타자는 민주당서 4선을 지낸 국회부의장인 김영주 의원이다. 김 부의장은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민주당이 저에게 의정활동 하위 20%를 통보했다”며 민주당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공천룰에 따르면 하위 10% 의원은 경선 시 득표율의 30%를, 하위 20% 의원은 20%를 감산하는 페널티를 받는다. 김 부의장은 “지난 4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시민단체, 언론으로부터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될 만큼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평가받아 왔다”며 “모멸감을 느낀다. 대체 어떤 근거로 하위 평가됐는지 정량평가, 정성평가 점수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밖에도 지난 22일 기준 하위권 통보 사실을 밝힌 의원은 김 부의장을 포함해 김한정·박영순·박용진·송갑석·윤영찬 의원 등 6명이다. 이들은 평가 결과를 향해 ‘비명계 공천 학살’이라고 주장하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터져 버린 공천 화약고 민주당 임혁백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 위원장은 “비명계 공천 학살은 없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모든 공천 심사는 저의 책임 하에 이뤄지고 있다”며 “제가 아는 한은 비명계 공천 학살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파장을 일으켰던 ‘윤석열정부 탄생 책임론’ 발언에 대해선 “책임 있는 분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했지, 특정인을 거론하지 않았다”며 “일반적인 이야기고 문재인정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민주당 원로인 김부겸·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공천 논란에 입을 열었다. 이들은 입장문을 내고 “이재명 대표가 지금의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김·정 전 총리는 “지금처럼 공천 과정서 당이 사분오열되고 서로의 신뢰를 잃으면 국민의 마음도 잃게 된다”며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입법부까지 넘겨주게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여러 번 강조했던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지금이라도 당이 투명하고 공정하며 국민 눈높이에 맞게 공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명계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일부 지역구서 의도가 불분명한 여론조사 실행된 것도 당내 갈등 요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 여론조사가 현역 의원을 제외한 채 이뤄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공관위는 여론조사를 돌린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경선을 앞두고 공관위조차 모르는 여론조사가 진행됐다는 점을 두고도 양측이 격돌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부평을에서는 홍 의원을 제외한 이동주 비례의원과 영입 인재 박선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이 외에도 노웅래(서울 마포갑), 송갑석(광주 서갑), 이인영(서울 구로갑) 의원의 이름이 빠진 여론조사가 한차례 지역구를 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동작을 출마를 준비하던 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의원은 “경쟁력도 없는 사람을 자꾸 (여론조사에 넣어)돌리면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흔드는 것은 해당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은 해당 지역구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을 포함해 여론조사를 진행했는데, 오히려 갈등만 빚어진 셈이다. 멀고 험한 총선 승리 결국 이 의원은 “이 대표를 도운 것을 후회한다”며 “왜 후회하는지 이유는 곧 밝혀질 것” “지난주 백현동 판결을 보면서 이재명 대표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등 폭로성 발언을 남기고 사퇴했다. 후폭풍이 불어닥치자 민주당은 지난 21일 국회서 비공개 긴급 의견총회를 열고 논의에 착수했다. 이날 이 대표는 의총에 참여하지 않았다. 의원들 사이서 ‘공천과 관련한 반발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자 최혜영 원내대변인은 “왜 참석을 안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의총 도중 고성이 오가면서 한때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진화에 나선 홍익표 원내대표는 “공천관리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경우 공관위원장이 어떻게 평가가 진행됐는지 직접 설명하도록 요청하겠다”며 “신뢰성·투명성이 납득될 수 있게 설명하도록 요청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에만 세 차례 이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다. 이른 시일 안에 그가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 총선을 치를 것이란 예상도 비일비재했다. 그때마다 이 대표는 통합 메시지를 강조하며 봉합에 나섰다. 일부 비명계가 ‘원칙과상식’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집단 탈당했지만 당시 민주당에는 큰 타격이 없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천이라는 예민한 주제를 놓고 내홍이 커진다면 이 대표의 거취를 장담할 수 없다. 공천을 계기로 ‘탈당 러시’가 이어질 경우 단순한 친·비명간의 계파 다툼이 아닌 조기 선대위가 꾸려질 수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지금 상황대로라면 이 대표가 총선 전 물러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판도를 봤을 때 자기네(민주당)가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이 대표는)뒤로 빠지고 친문(친 문재인)계 비대위원장을 내세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사분오열 안으로 굽어버린 칼날 “툭하면 사퇴” 뼈 있는 한마디 이 관계자는 현재 공천 파동의 핵심인 ‘친명 민주당’이 꾸려지는 이유 역시 비대위 가능성을 열어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차기 비대위원장 등 ‘포스트 이재명’을 찾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서 1열에 나섰다가 총선 패배의 원인을 몽땅 뒤집어쓴다면 추후 정치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파도처럼 밀려올 사퇴 요구를 얼마나 빠르게 수습하는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도부를 향한 불신과 공정성 시비가 매우 크다”며 “이를 해소하지 않은 채 이 대표가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후폭풍은 불가피하고, 또 국민이 봤을 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고 말했다. 당에 대한 불신이 쌓이는 것은 곧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결국 총선 패배로 귀결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의 원로를 비롯한 핵심 관계자들 역시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사표가 아닌 불출마 요구도 하나의 시나리오로 제시된다. 당 대표 임기가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으로서는 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대표는 내년 대선을 노리는 만큼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제시된다. 논란의 당사자인 이 대표는 대표직 사퇴 요구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 22일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툭하면 사퇴하라 소리 하는 분들 계신 모양”이라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365일 대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시스템에 따라서 합리적 기준으로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골라내고 있는 중”이라며 “환골탈태 과정서 생기는 진통이라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쌍특검 이번엔? 공천 논란을 잠재울만한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당은 일찌감치 쌍특검 재표결을 띄우면서 여론 형성에 나섰다. 민주당은 오는 29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쌍특검 재표결에 나설 예정이다.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김건희 리스크를 끌어 올려 한 번 더 도마 위에 올리겠다는 셈이다. 홍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정당한 이유 없는 거부권 행사는 자신과 가족의 죄를 숨기는 데 권력을 남용한 것”이라며 “국회서 꼭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국민의힘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후퇴’ 원희룡 반응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와 관련해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입장을 밝혔다. 원 전 장관은 인천 계양을서 이 대표와의 매치가 성사되기를 기대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이 대표의 2선 후퇴설에 관해 “불출마를 전제로 여론을 떠보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문제는 이런 간 보기에 계양은 없다는 것”이라며 “임기 내내 아무것도 안 해도, 또 아무나 공천해도 당선되는 곳이 계양인가”라고 비꼬았다. 아울러 “원희룡은 다들 어렵다는 계양을 스스로 찾아왔다”며 “계양의 변화에 대한 믿음과 각오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