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입수> ‘막말 잔치’ 인권위 회의록 공개

얼굴만 맞대면 아수라장 ‘이념 전쟁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위 관계자 2명이 인권위를 망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충상, 김용원 상임위원이 그 주인공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회의록에는 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말과 궤변이 담겨있다. 사건 피해 유가족들을 향한 막말도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인권침해 및 차별 행위를 조사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기관이다. 회의를 통해 의결을 거치지 않으면 본연의 업무를 이행할 수 없다.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내홍은 자연스레 ‘직무유기’로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례적
관행 파괴

인권위의 결정은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11명 인권위원의 판단으로 내려진다. 전원위원회 안건은 인권위원들의 표결로 처리한다. 보통 인권위원 과반인 6명의 동의를 받으면 대부분 통과된다. 임기 3년의 인권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대통령이 4명, 대법원장이 3명, 국회가 4명을 지명한다.

국회 지명 4명은 여당 몫 2명과 야당 몫 2명으로 나뉜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바뀐 상임·비상임위원은 총 6명이다.

11명의 인권위원은 전원회의 이전 진정인 또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소위원회 회의를 진행한다. 이 중 침해구제제1위원회(이하 침해1소위)는 김용원 상임위원이 소위원장을 맡고 있다.


침해1소위의 마지막 회의는 지난 8월1일이다. 이날 침해1소위는 정의기억연대 정기 수요시위 현장에서 터진 욕설을 제지해 달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가 낸 진정을 기각했다. 인권위 사무처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결정이라며 침해1소위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현행법상 소위원회 회의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소위 표결에는 김 위원을 포함한 3명의 위원이 참여해 김용원·김종민 위원은 기각, 김수정 위원은 인용 입장을 냈다.

김수정 위원은 “의견이 엇갈린 경우 소위원장이 기각을 결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근거는 인권위법 제13조 제2항의 “소위원회는 구성위원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조항이다.

그동안 인권위는 인용 또는 기각을 결정할 때 이 조항을 적용해 소위원회를 운영해왔다. 소위원회 3인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원위원회에 넘겨 처리해왔던 것이 ‘관례’다.

사무처는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지난 9월, 진정 재논의 방침을 담은 언론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김 위원은 소위 결정에 대해 사무처가 일방적으로 해명자료를 냈다면서 송두환 인권위원장에게 해명자료 작성 직원들의 인사조처를 요구하며 회의 진행을 미루고 있다.

김 위원이 소위를 열지 않으면서 누적된 안건만 이달 초 기준으로 230건이 넘는다.

이충상·김용원 잇단 말 끊기에 혐오 발언
위원장 중재 불가능…질문에 동문서답도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소위를 열지 않는 행태는 직무유기와 다름없다. 김 위원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 바 있다”며 “소위원회를 개최하지 않음으로써 ‘진정은 이를 접수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있는 인권위 운영규칙 제4조 제1항을 위반한 혐의”라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은 또 있다. 침해구제2소위 위원장을 맡은 이충상 상임위원은 지난 5월, 군 신병 훈련소 인권 상황 개선을 권고하는 인권위 결정문 초안에 성소수자 혐오 소지가 있는 문구를 넣었다.

그는 ‘해병대 훈련병에게 짧은 머리를 강요하는 것은 인권침해임을 인권위가 인식해야 한다’는 당시 결정문에 반발해 ‘남성 동성애자가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는 경우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고, 이를 인권위가 인식시켜야 하는가’라는 소수 의견을 적었다.

인권단체 등은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인권위 상임위원이 오히려 혐오와 차별을 선동했다’며 인권위에 인권위원 사퇴를 촉구하는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위원은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안’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축제를 즐기려고 모였다가 밀려 넘어져 발생한 참사가 국가 권력이 시민을 고의로 살상한 5·18 민주화운동보다 더 귀한 참사냐”고 말해 유족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두 위원이 도를 넘은 행동에 관해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어느 기관이나 내부갈등은 있지만 특정 인물로 인해 회의가 수개월째 미뤄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인권위의 위상이 추락했다”고 토로했다.

인권 아닌
법률 해석

인권위는 감사원, 중앙선관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과 같은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대통령실을 포함해 타 기관에 ‘권고’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강한 독립성이 요구되는 기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 위원과 이 위원의 합류 이후 인권위의 독립성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거세다. 지난달 30일, 인권단체는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규칙 개정안 철회와 사태에 책임이 있는 김용원 위원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단체의 강도 높은 비판은 왜 나왔을까?

김 위원은 이날 회의서 “접수 사실을 모든 인권위원들이 알고 있다. 운영지원과장이나 사무총장이 접수하거나 보고할 필요도 없는데 마치 사무총장이 접수해야만 심의를 할 수 있는 것처럼 해놨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진 사무총장에 관해 “자신이 인권위원들의 상관인 것처럼 하는 무식하거나 오만방자한 행동이며 그에 대해서는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 사무총장과 운영지원과장은 그 자리서 비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의 발언에 관해 한 인권위원은 “공개된 공식회의 자리서 사무총장에게 ‘오만방자하다’와 같은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을 제지하지 못한 데 대해 같은 인권위원으로서 사과드린다”며 “다른 인권위원도 타인에 대한 그런 언동에 대해선 경각심을 가지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갈등이 격화되자 송두환 인권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송 위원장은 “위원들께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다. 누구에게 무식하다, 오만방자하다, 심부름이나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방청인들도 지켜보고 있는 회의다. 회의의 품위나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말의 무게에 대해 위원님들이 더 엄격하게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방청이 가능한 회의서 이 정도인데 비공개 자리에서는 얼마나 심하겠느냐”고 전했다. <일요시사>가 야권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인권회 회의록을 보면 인권위원들은 회의 때마다 갈등을 겪었다.

비상식적
대응 일관

5월22일에 진행된 제7차 전원위원회 회의 결과 및 회의록 보고 자리서 김 위원은 송 위원장에게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이 위원님이 작성했던 초안상에 다른 인권위원이나 직원들이 보기에 거북한 부분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결정문서 빼기로 했다. 이 내용이 자유게시판에 올라가더니 언론사에 제공됐다”며 “몰지각하다고 표현하겠다. 누가 언론사 기자에게 알려 기사화되게 만들었는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석희 위원은 “최종 결정문에 삭제되면 결정문만 보고받는다. 삭제가 안 됐으면 인권위원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국민이 안다. 동성애자가 기저귀를 차고 다니냐”고 하자 이 위원은 “다닌다. 객관적 진실이다. 관련 보도 언론사에 대해서는 정정보도 청구뿐만 아니라 단체가 형사고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위원은 이 위원에게 “왜 인권위원으로 있냐”고 물었고, 이 위원은 “게이 중에 기저귀 찬 사람 없나?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했다.

6월12일에 진행된 제8차 전원위원회 회의 결과 및 회의록 보고 자리서 윤 위원은 이 위원에게 “위원회 관련 의견을 주셨는데 이 위원님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발언을 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혐오발언이 아니다”고 반박하자, 윤 위원은 “혐오발언하지 말라. 그것이 혐오”라고 강조했다.

윤 위원은 “혐오발언 제발 하지 말아라. 많은 사람이 울고 있다”고 재차 요구했다.

같은 달 26일 진행된 회의서 서미화 위원은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이 위원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했다. 서 위원은 “너무 모욕적이고 옆에 앉아 있기 힘들다. 어떻게 희생자들 5·18 희생자와 비교하냐. 사과해야 하고 인권위원 상임위원과 정말 안 맞으시는 것 같다. 사퇴하시라”고 강조했다.

이태원 참사 5·18 비교해 유가족 2차 가해
야 추천위원 임기 얼마 안 남아 갈등 커지나

이 위원도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모욕하거나 비하한 게 아니다. 서 위원님 말씀이 인권침해적”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방청하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관계자는 “애들이 왜 죽은 지 아는가! 공권력이 아무것도 안 하니까 죽었다. 5·18이 왜 나오냐”고 반발했다.

9월7일에 진행된 상임위 결과 및 회의록 보고 자리서 남규선 위원은 침해1소위의 회의 진행이 미뤄지는 것에 관해 지적했다.

김 위원이 “우선 좀 더 말씀드리겠다”고 하자 송 위원장은 “잠깐만요”라고 제지했고, 김 위원은 “말씀을 먼저 드리겠다”고 반복해서 언급했다.

송 위원장이 “충분히 얘기했다”고 했지만 김 위원은 “이미 기각을 결정했고 어떤 형태의 재고도 있을 수 없다. 위원장을 포함한 누구의 조언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고 제3자에 해당되는 인권위 내부 구성원들이 엉뚱한 주장을 일삼아서 따를 생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회의록에 담긴 이 위원과 김 위원의 말을 살펴보면 법조계 출신다운 언어를 구사한다. 사법기관의 판단과 판례를 언급하면서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진행된 인권위만의 ‘관행’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법조계 출신 인사들이 많아지면서 인권적 문제보다는 법리적 해석으로 접근해 의결하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도 “법률적 테두리 안에서만 해석이 이뤄지면 현장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도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 위원과 김 위원의 논란은 지속되고 있으나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현재 인권위원들의 남은 임기를 보면 윤 위원이 내년 2월, 김수정 인권위원이 내년 8월까지다. 두 위원 모두 대법원장 추천으로 임명된 사람이다. 송 위원장의 임기도 내년 9월 초까지고, 남 위원의 임기도 내년 8월까지다.

갈등 해결
대책 전무

이들의 임기가 끝나면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인권위원은 2명만 남게 된다. 사실상 여권이 추천한 위원들에게 둘러싸여 회의 진행 과정에 의사를 표명할 순 있지만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이념의 전쟁터가 돼버렸다. 아무리 보수진영 인사라고 해도 사무처나 직원들이 존경하는 인권위원들도 있었다. 두 위원이 오고 난 이후부터 이른바 ‘아수라장’이 돼버린 상황”이라며 “참담하다. 회의 진행도 되지 않아 유가족들과 진정인들에게 피해가 전가되고 있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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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