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의혹만 커진 손준호

어설픈 해명 의문만 키웠다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중국축구협회로부터 승부조작 혐의로 영구 제명 징계를 받아 선수 생명에 위기가 닥친 손준호가 눈물로 결백을 주장했으나, 금품거래에 관한 명확한 증거나 해명을 내놓지 못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적지 않다. 손준호는 “승부조작 대가는 아니었다”면서도 돈을 받은 이유와 사용처는 밝히지 못했다.

축구선수 손준호는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 내 체육회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부조작 혐의와 중국축구협회의 영구 제명 징계에 대해 결백을 호소했다. 손준호는 20만위안(약 3700만원)을 산둥 타이산 동료였던 진징다오로부터 받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금액을 받은 이유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는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놓으면서도 “승부조작 등 불법적인 금전거래는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뇌물 혐의
결백 호소

이날 손준호의 에이전트는 손준호가 중국 법원으로부터 20만위안 금품수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판사와 형량을 협상해 이미 구금돼 있던 10개월만큼의 형량을 받는 것으로 정리됐다”고 설명했다. 

에이전트는 손준호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이체 내용에 중국 법원이 금품수수 혐의를 갖다 붙였다는 취지로 승부조작에 대한 무혐의를 주장했다. 중국서 금품수수 혐의 유죄 판결로 약 10개월 만에 석방된 손준호는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손준호는 “10개월 넘게 좁은 방에서 20명도 넘는 사람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며 “고된 환경서 홀로 한국인으로서 하루에 말 한마디도 못하고 철조망 같은 창문을 바라봤다”면서 “하루하루 정말 힘들게 살았고, 심신이 모두 지쳤다”고 말했다.


손준호의 에이전트는 “한국 귀국 자체가 중요한 상황이었다”며 “판결문을 통해 손준호에게 적용된 자세한 혐의 사실을 확인해 볼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전했다.

‘판결문을 취재진에 공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준호 측은 “판결문은 우리도 받아보지 못했다”며 “중국 변호사와 논의해 보겠다”고 답했다. 

대한축구협회와 수원FC 등이 손준호 측에 세부 혐의와 내용을 알 수 있는 판결문을 요청했지만, 국제이적동의서(ITC)가 빠르게 발급된 덕에 판결문에 상관없이 국내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손준호는 중국 공안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판을 앞두고 중국 법원 판사와 당국 고위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는 자리서 ‘20만위안에 대한 금품수수 혐의를 인정하면 이른 시일 내에 석방해 주겠다’ ‘한국서 선수 생활도 이어갈 수 있게 해 주겠다’며 회유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 공안이 아내와 아이들을 언급하며 혐의를 인정하라고 협박했고 “지금이라도 인정하면 이르면 7∼15일 뒤에 나갈 수 있다고 회유했다”며 “겁도 났고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무엇인지도 모르는 혐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금품수수 자체만 인정했지, 승부조작 등 대가성을 인정한 적은 없다. 승리 보너스로 16만위안을 받는데, 사람들이 20만위안을 받기 위해 승부조작을 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혐의를 인정하고 석방됐다”며 “관련 내용을 발설할 경우 축구를 더 못할 것이라는 협박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
20만 위안 수수 미스터리


다만 그는 팀 동료였던 진징다오에게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며, 대가성 송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손준호는 “진징다오는 산둥서 유일하게 한국어를 했고 적응에 도움도 줬다”며 “가족이 왔을 때 잘 챙겨줘 서로 선물도 하고 돈독해졌다”며 “그렇게 지내다 보니 서로 돈을 빌리기도 했고 조사받을 때도 불법적인 돈이 아니라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손준호는 질의응답 시간 내내 20만위안을 받은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이 선물을 주고받고 급할 때 돈을 빌려주는 등 거액의 금액이 오간 경우가 많아 정확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진징다오와 문제가 된 20만위안을 주고받을 시기의 휴대전화 기록도 모두 지워졌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중국 공안으로부터 휴대전화를 받아 손준호의 아내가 포렌식을 했지만 딱 해당 기간 기록만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손준호 핸드폰에 당시 둘의 대화나 문자가 남았을 텐데, 진징다오에게 돈을 받았다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에 관한 내용만 사라졌다.

또 진징다오로부터 승부조작과는 관련이 없는 인간적인 감사함의 뜻이라는 입장이 나온 것도 아니다.

손준호는 “구금된 뒤 진징다오와 연락한 적이 없다” “그가 먼저 승부조작 혐의로 잡혀갔고, 이후에는 중국서 삶을 모두 잊고 정리하고 싶었다”며 따로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진징다오는 중국 국가대표 주전까지 뛰었던 스타플레이어다. 지난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 조별리그 한국전에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포렌식 시도
복구 불가능

하지만 지난해 중국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승부조작 파문의 핵심 당사자 중 하나로 언급되는 상황이다. 

손준호는 어떤 이유로 20만위안을 주고받았는지 입증할 자료는 없었다. 그는 “공안 측에 조사 당시 음성 파일 열람을 요청했는데 ‘모두 삭제됐다’고 들었다”며 “이 부분만 제대로 밝혀진다면(협박으로 거짓 자백한 걸)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중국 법원이 20만위안에 대한 대가성이 있다고 본 것인지, 손준호가 20만위안을 어떤 이유로 받았는지 등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손준호 측은 “정확히 법원이 어떻게 판결했다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며 “절대 불법이나 승부조작을 해주는 대가로 받은 돈은 아니라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손준호가 받은 혐의는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다. 이는 정부기관이 아닌 기업 또는 기타 단위에 소속된 사람이 자신의 직무상 편리를 이용해 타인의 재물을 불법 수수한 경우 적용된다.

손준호의 에이전트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당초 손준호에게 ‘60∼65만위안(약 1억3000만원) 규모의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뇌물수수 혐의는 금품 수수에 대한 대가성 입증 여부가 관건인데, 손준호는 “중국 공안이 지난해 1월 산둥-상하이전 승부조작에 내가 가담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준호는 ‘불법 구금·강압수사’를 못 이겨 거짓으로 자백했으나, 이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60∼65만위안 뇌물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자백을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구금 기간 내내 무혐의를 호소했다는 손준호는, 재판에서는 중국 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20만위안 금품 수수 혐의를 인정했지만, 승부조작 혐의엔 단 한 번도 동의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그간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손준호는 “서로 얘기하지 않기로 했는데 중국축구협회서 먼저 발표했기에 나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나도 이젠 잃을 게 없고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로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으면 내가 범죄자로 생각되는 것 같아서 자리를 만들었다”고 기자회견을 연 이유를 설명했다.

1시간30분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손준호의 혐의를 뒷받침하거나, 그의 결백에 힘을 싣는 공식 문서·자료 등 뚜렷한 증거가 단 하나도 제시되지 않아 여전히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중국축구협회는 “사법기관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전 산둥 타이산 선수 손준호는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도모하려고 정당하지 않은 거래에 참여했고, 축구 경기를 조작하고 불법 이익을 얻었다”며 “이에 따라 협회는 축구와 관련된 어떠한 활동도 평생 금지한다”고 밝혔다. 

유죄 판결문
실마리 단서

이날 중국 국가체육총국과 공안부는 공동으로 다롄서 축구 프로리그 불법 도박과 승부조작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중국 공안부와 협회는 1년에 걸친 공조 수사를 바탕으로 반부패 및 승부조작 혐의로 선수 및 축구계 종사자 61명을 무더기 징계했다.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로 10개월 구금됐다가 풀려난 손준호는 영구 제명 징계를 받은 43명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렸다. 협회는 손준호를 포함해 산둥 타이산과 선양 훙윈, 장쑤 쑤닝, 상하이 선화 등에서 뛰었던 선수 44명에게 영구 제명 징계를 내렸다. 17명에겐 5년 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그러다 지난 12일, 협회가 손준호에 대한 영구 제명 징계 내용을 국제축구연맹(FIFA)에 통지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협회는 지난 11일 대한축구협회에 보낸 공문을 통해 “손준호에 대한 영구 제명 징계를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보고했다” “향후 조치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손준호는 당장은 K리그1 일정은 소화가 가능하나, FIFA가 징계위원회를 열어 중국축구협회의 징계 내용을 검토한 뒤 각 회원국에 손준호의 징계 내용을 전달하면 어느 국가서도 축구선수로 뛸 수 없게 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은 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통한 항소가 유일하다.

지난 6월 손준호를 영입한 수원FC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최순호 수원FC 단장은 “최종적으로 ‘손준호가 (K리그)경기에 뛸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지 않는 이상 (경기장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손준호는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정식 선수 등록을 허용받은 후 지난 6월 프로축구 K리그1 수원 FC에 입단해 국내 무대에 복귀했다. 

손준호 측은 “중국축구협회가 (FIFA에)사실을 밝히려면 손준호가 승부조작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며 “제 생각에는 증거가 없어서 FIFA가 중국축구협회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만약에 FIFA가 중국 손을 들어주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추후 대응하겠다”며 최악의 상황 발생 가능성도 열어뒀다.

공안 협박에 거짓 자백?
FIFA에 영구 제명 통지

한국 국가대표 미드필더인 손준호는 지난 2014년 K리그1 포항 스틸러스서 데뷔한 뒤, 2018년부터 전북 현대서 활약했다. 2020년 전북의 K리그1 우승을 이끌었고, MVP를 받기 힘든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당당히 MVP를 차지했다. 

이후 MVP와 동시에 중국 산둥 이적을 선택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손준호는 산둥서 수비형/중앙 미드필더로 2021 중국 슈퍼리그 21경기 4득점 4도움 및 90분당 공격포인트 0.40으로 맹활약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연말 시상식이 취소되지 않았다면 MVP가 유력한 분위기였다. 

곧바로 중국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났지만 지난해 5월 중국 상하이 홍차오 공항을 통해 귀국하려다 공안에 연행됐고, 이후 형사 구류돼 랴오닝성 차오양 공안국으로부터 뇌물 혐의로 조사받았다. ‘형사 구류’는 현행범이나 피의자에 대해 수사상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구금 상태서 실시하는 강제수사다.

손준호 측에 따르면 갑작스럽게 체포된 그는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조차 없는 간단한 사안’이라는 중국 공안의 말을 믿었다. 이에 변호사 없이 공안 조사를 받았고, 한국어를 어눌하게 구사하는 통역자의 도움만 받았다. 

수사 주체가 랴오닝성 공안 당국인 까닭에 손준호는 체류 지역인 산둥성서 이송돼 조사를 받았다. 이는 한국 팬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었고, 이후 손준호에 대한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앞서 한국 정부는 줄기차게 불구속 수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양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그를 면담했으나 사건에 대한 얘기는 나누지 못했다. 영사 접견인 만큼, 영사나 손준호 모두 혐의에 대해 말을 나누지 못했다. 대신 건강상태는 괜찮다는 정도만 파악했다. 

사태를 주시하던 대한축구협회도 현장 상황 파악과 지원을 위해 전한진 경영본부장과 변호사를 중국에 급파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귀국한 바 있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아무런 조처를 할 수 없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손준호의 소식이 새는 것을 차단했다. 국내 축구 팬들은 별다른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손준호의 석방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10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지난 3월 풀려나 귀국했다.

약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식 축구 활동이 없었던 손준호는 석방과 동시에 빠르게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K5리그에 속한 건융FC에 들어가 실전감각을 키우려 했다. 동시에 손준호는 친정팀 전북과 계약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이 과정서 전북의 모기업이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그의 이적은 무산됐다. 대신 수원FC가 손준호에게 손을 내민 뒤, 현재까지 정상적으로 수원FC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중징계 위기
은퇴 갈림길

손준호는 복귀 후 이번 시즌 K리그1 12경기에 출전했다. 지난달 18일엔 울산HD를 상대로 자신의 복귀 골이자, 수원FC 데뷔골을 넣었다. 이에 손준호는 감격의 눈물과 함께 “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끝까지 응원한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yuncastl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