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발’ 거부권 무력화 전략

“더 이상 거부를 거부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2대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의 특징인 입법 독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이 상임위를 보이콧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기세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에는 ‘대통령 거부권’만이 남아 보인다. 하지만 거대 야당은 대통령 거부권을 제한하고 타파할 법안도 두루두루 내놓고 있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했지만 지난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거부권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과반 의석을 얻은 야당은 입법 독주를 일삼고 있는 가운데, 여당에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모아 보니…

22대 국회가 개원하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위원장직을 차지한 법제사법위원회 등 11개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 국회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쟁점 법안을 재추진하며 ‘입법 독주’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2 특별검사·4 국정조사’를 밀어붙인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2 특검’은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말한다. 국조 대상은 채상병 순직 은폐 의혹,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방송 장악, 동해 유전개발 의혹이다. 특히 채상병 순직 사건은 특검과 국조 둘 다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상임위원장 선출 이후 상임위 일정에 대해 전면적으로 보이콧 중이다. 또 여야 합의 없이 단독 처리하는 법안에 대해선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강력하게 요구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일방 독주로 엉터리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집권당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추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대통령의 재의 요구가 과거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는 거대 야당의 의회 독주 결과물이다. 재의 요구 건수는 민주당 의회 독재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서도 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지속된다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대통령실 한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의 본령을 외면하고 힘 자랑 일변도의 국회운영을 고집한다면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의 명분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대화와 타협으로 어렵사리 확립한 국회의 관례와 전통은 어떤 면에서는 국회법보다 더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라고 덧붙였다. 

심지어 윤 대통령도 수도권·TK(대구·경북) 초선 당선인들과 만찬 자리서 “예산 편성권이나 거부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협상력을 야당과 대등하게 끌어올리면 좋겠다”고 말해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2 특별검사·4 국정조사 내세워
“대통령에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대통령 거부권은 헌법에 나와 있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헌법 제53조 제2항에 따르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서 의결된 법률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환부거부). 대통령의 거부권은 정치학적으로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국민의 뜻에 반해 법률을 제정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기능, 국회의 재의결이 있을 때까지 법률안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기능 등을 두루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1대 국회서 ▲지난해 4월4일 민주당과 정의당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지난해 5월15일 간호법 제정안 ▲지난해 12월 노란봉투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 방송문화진흥회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5가지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올해 들어선 ▲50억 클럽 특검과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 ▲농어업회의소법안 ▲지속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안 등 많은 논쟁이 발생한 법안들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됐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어지자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통해 22대 국회 첫 과제로 ‘대통령 권한 남용 제한과 무당적화’를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바 있다.

해당 제안이 부결되자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지난 13일 대통령 본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 법안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하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14개의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면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상 권한이지만 그 권한은 무분별하게 행사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이 아닌 헌법의 원칙상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은 최고 직책의 공직자로서 공익을 수호하는 대표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공익과 사익이 충돌할 때 사익을 배제하고 공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헌법과 법률상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임 2년 14건 행사
“이해충돌 행사 위헌”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재임 2년간 14번의 법률안 무소불위의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며 “특히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특검법과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해충돌 상황서 공익이 아닌 사익을 추구한 것으로 거부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개정안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제한 여부에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 헌법재판관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 거부권은 헌법상에도 나와 있는 권한”이라며 “국회와 행정부의 권력 균형이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많이 행사한 것은 맞지만 해당 개정안은 행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해석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안의 법 위에 제한을 두는 것은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익을 실현해야 하는 공무원인 대통령이 본인이나 가족과 관련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대통령이 공정성·중립성을 상실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입법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민주당은 ‘상설 특검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주철현 의원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등 28명은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상설 특검법’에 따른 특별검사 임명 요건을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검은 개별 특검법과 상설 특검법 등 두 가지 방법으로 임명할 수 있다. 이 가운데 개별 특검법은 특정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개별 법안을 발의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 경우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 사실상 특검 도입이 무산된다.

반면 상설 특검법에 따른 특검은 국회가 본회의서 의결만 하면 즉시 발효돼 특검 임명절차가 개시된다. 법률안이 아니기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다만 상설 특검에 따른 특검 임명을 위해서는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이 위원회 구성을 담당하는 여당·야당 등 교섭단체 중 한 곳이 의도적으로 추천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 등 위원회 구성을 방해할 경우 특검 임명이 불가능하다.

상설 추진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낸 ‘국회의 책임성과 국회 임기 만료 시 법률안 재의요구권의 문제’ 이슈 페이퍼는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에 대해 국회가 다시 논의 및 재의결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거부권이 행사된 뒤 국회가 재의결하고 정부가 공포하는 절차까지 완료할 수 있는 일정을 국회가 운영되는 날짜 안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하면 국회 임기 만료 직전 대통령이 돌려보낸 법안을 논의할 시간이 보장된다는 취지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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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