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대담> 황우여 위원장 비상대책을 말하다

“지금 비대위는 당무형”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비상대책위원회는 관리형도, 쇄신형도 아니다.”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언론서 분석했던 현재 비대위의 두 가지 성격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우리 비대위는 당무형”이라는 입장이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지지치 않고 뚜벅뚜벅 당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시도 중이다. 

국민의힘은 비상 상황이다. 당 대표 체제로 이끌지 못하고 걸핏하면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문제는 당의 위기에 나서는 이가 딱히 없었다는 점이다. 혼란한 상황 속 구세주 같은 존재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이다. 황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의 큰 어른이다. 그런 그는 고심 끝에 비대위원장직을 맡아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쉴 틈 없이
강행군

77세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에게선 이팔청춘 느낌이 강했다. 에너지가 넘쳐 흐르며, 당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팔팔 끓었다. <일요시사>는 황 비대위원장을 만나 당내 상황 등을 물었다.

황 비대위원장의 정치경력은 30년이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정치를 해왔다. 최근 그는 말 그대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쉴 틈도 없이 하루에도 여러 개의 일정을 소화 중이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기간은 두 달여로 생각보다 길지 않다.

그 안에 다양한 당내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런 만큼 스스로 느꼈을 부담감도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사실 부담을 잘 느끼진 않는다. 고민은 많았지만, 그냥 덜컥 맡았다. 옛말에 ‘노마식도’라는 말이 있다. 경험이 많으면 그 일에 능숙하다는 뜻인데, 앞이 깜깜할 때 늙은 말을 풀어놓는 전법”이라며 “병사들은 길을 몰라도 늙은 말은 이미 갈 길을 다 알고 있다. 당이 나를 부른 게 그런 취지라고 생각한다. 지혜를 모아 당에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명암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기 위해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총선서 참패한 국민의힘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려놓기 위해서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실 각오까지 마쳤다. 총선 결과 국민의힘은 ‘영남당’이 돼버렸다. 수도권서 패배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그중 ‘수도권 민심이 곧 전국 민심’이라는 말처럼 국민의힘이 전국적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패배의 주요 원인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황 비대위원장은 “수도권은 1~2%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결국 수도권 민심에 부응하지 못한 게 크다. 수도권에는 전국 각지서 모여든 호남, 충청권 사람들이 많다. 결국 국민의힘이 충청과 호남 민심을 등에 업지 못해 패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거론했다.

이어 “나는 인천 사람인데 인천 인구는 27만명서 현재 300만명까지 늘었다. 이런 식으로 수도권에 이주한 사람이 많다. (이들이)수도권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전국 민심을 아우르는 선거 정책 개발과 선거전략을 펼쳐어야 했는데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야당은 선거 구조상 현 정부의 지난 과오를 꺼낼 수밖에 없다. 반면 여당은 전통적인 선거 구도상 미래 담론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번에는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이 그대로 먹혀들었다.

여당은 현 정부가 추진해나갈 수 있는 사안을 디테일하게 제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여당이 야당의 전략에 말려든 대목이다. 정책은 실종됐고, 이조(이재명·조국) 심판에 혈안이 됐다. 결국 국민의힘은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지켜내는 데 그쳤다.

“수도권 민심은 전국 민심…못 읽었다”
“전대 룰? 치열한 논의 후 결정할 것”


그렇다고 여당의 선거전략이 꼭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윤석열정부의 3년을 위해서는 총선 승리는 절실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민주당과 야당이 심판론을 들고 나오면서 국민의힘서 이조 심판론으로 맞불 작전을 펼치다 보니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빠졌다”며 “선거를 끝낸 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저출산 대책, 연금개혁 같은 사안을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어야 했다. 미래의 꿈을 심어 미래 VS 과거의 구도로 선거전을 펼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총선 패배의 여파는 상당했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총선 책임론을 가지고 다투는 중이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선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한 전 비대위원장과 윤 대통령이 거론된다. 양측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다. 이런 탓에 총선 백서의 작성 작업도 쉽지 않다.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이 단장을 맡았지만, 한 전 비대위원장의 책임으로 적시될 방향성이 제기되자 당내가 시끄럽다.

이를 두고 인물이 아닌 진짜 총선 참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만큼 현재 국민의힘은 많이 갈라져 있다. 황 비대위원장도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전략적인 부분과 똘똘 뭉치지 못한 부분을 꼬집었다. 

그는 “선거는 미래를 위한 하나의 축제이자 투자다. 여당은 과거를 심판하고 앉아 있으면 안 된다. 프레임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머리에 남는 게 없다. 이런 부분이 제대로 담겨야 한다. 지금 국민의힘은 보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정통성을 확고히 하겠다는 게 필요하다. 다시 뭉쳐야 하고, 동지애도 절실하다”고 짚었다. 

야당에
동지애

이런 명분하에 탄생한 게 황 비대위원장을 필두로 한 황우여 비대위다. 정치색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는 그는, 지난 23일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광폭 행보를 보이며 동지애를 펼치고 있는데, 중도층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야당에 대한 적극적인 동지애를 통해 국민에게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가겠다는 의도다. 대외적으로 이런 전략은 일정 부분 인정받는 분위기다. 다만 비대위가 출범하고 시간이 어느 덧 흘렀지만, 도대체 비대위의 콘셉트가 뭐냐는 질문이 계속 쏟아진다.

언론에서는 관리형으로 보고 있지만, 황 비대위원장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황 비대위원장은 “(비대위는)당무형이다. 나에게 부여되는 권한을 어떤 특정인이 부여한 게 아니다. 비대위는 당헌·당규에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규정돼있다. 당은 전당대회(이하 전대)서 할 일이 있으면 준비해야 하고, 쇄신할 것이 있으면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쇄신이냐, 관리냐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자칫 큰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나는 당무를 집행할 뿐이다. 비대위 발족 때 목적을 정해줬으며 이후에 포괄적인 비상 대권이 부여되는데, 그걸 고친 게 나”라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이제 당내 문제도 논의를 착수할 시기다. 대표적인 문제가 전대 룰 수정 문제와 개최 시기다. 국민의힘은 직전 전대서 기존의 룰을 바꾸면서 당심 100% (당원)투표로 선거를 치렀다. 최근에는 여러 곳에서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친윤(친 윤석열) 세력은 당심 100%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비윤(비 윤석열)계는 민심이 필수라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전대 룰에 따라 후보 간 유불리가 갈리는 상황이다.

황우여 비대위는 이런 환경 속에서 전대 룰을 손봐야 한다. 비대위는 지난 20일, 상임고문단을 만나 전대 룰과 관련한 부분도 청취했다. 아직까지 황 비대위원장의 입장은 여러 의견을 모아보겠다는 정도다. 

이와 관련해 황 비대위원장은 “전대 룰과 관련한 의견은 노코멘트다. 개인적인 생각이 있지만 이것을 이야기하는 순간에 당헌·당규 개정 문제가 발생한다. 관리자 신분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 자격에 문제가 생긴다”며 “일각에선 바꾼다고도 이야기하는데, 결정된 부분은 없다.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지켜봐야 안다”고 말을 아꼈다. 

당우도
신경 써야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우리나라의 헌법 개정 절차가 있듯이 국민의힘에는 개정 절차가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어떤 말에도 휩쓸리지 않고 내부서 치열한 논의를 한 뒤에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탓에 당 내부 일각에선 혁신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껏 국민의힘은 여러 번의 비대위를 거쳐왔다.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분란이 이어져 왔고, 여전히 내분이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혁신 문제 역시 그동안 계속해서 제기돼 왔다.

이번마저 기회를 날려 버린다면 국민의힘은 스스로 설 기회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 

황 비대위원장은 “(비대위는)비판받아도 어쩔 수 없고, (내가)말할 수 있는 권한도 별로 없다. 비대위원장이 여러 말을 할 수 있다는 당헌·당규 해석이 나오면 할 수 있는데, 비대위는 충실하게 집행하는 데 그쳐야 한다. 전대 룰에 관한 부분은 양론이 있다. 당 대표는 당원만 뽑아야 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대신 그는 당우(당원이 아니면서 밖에서 당을 돕는 사람)를 신경써야 할 문제라고 봤다. 즉 교육자, 공무원, 소상공인, 경제인 등 입당을 하지 못하거나 입당을 꺼리는 상당수의 의견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을 포용할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는 게 황 비대위원장의 견해인데, 이 문제 역시 당헌·당규의 개정 문제가 걸려 있다. 그는 출마자 5(당원) 대 5(당외) 당의 대표자는 7(당원) 대 3(당외) 방식을 택해야 이색적인 선택이 유입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친윤·비윤 간 분란…당의 건전한 에너지”
“차기 당 대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길”

그에 따르면 여러 분야의 사람을 흡수하기 위해 전대 룰을 바꿀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다만 비대위원장이 “어떻게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한 표밖에 되지 않는 만큼 크게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잘못하면 나만 의심받고 공정하게 이걸 수행하는 점에서 큰 문제가 생긴다. 우리의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를 통해 정리해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절차가 있는 과정서 개정하라고 당이 원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대 룰과 함께 문제가 되는 것은 계파간(친윤과 비윤)으로 나뉘어 아직도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총선을 통해 내부 상황은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됐지만, 국민의힘은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까지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다.

당의 세력 보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만큼, 정리하고 가야 할 부분임에는 자명해 보인다. 특히 비대위 자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면서 황우여 비대위에게는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황 비대위원장은 “이 부분(압박)을 오히려 좋은 동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윤상현 의원이 쇄신하지 않고, 널브러져 있냐는 식으로 나를 엄청 공격했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짧은 기간에 쇄신할 부분이 어딨냐는 식으로 비판했다”며 “관리나 잘하라는 식이었는데, 오히려 고마웠다. 이 부분을 즐기려 한다. 당을 자꾸 억압하고 눌러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분란을)당의 건전한 에너지로 본다”고 제시했다.

국민의힘은 차기 당 대표가 누가 될 지가 초미의 관심거리다. 당 대표에 따라 당의 정체성과 방향성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권주자로 나경원 당선인,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차기 당 대표는 지방선거는 물론, 대선도 신경써야 한다는 점에서 물밑 싸움이 치열하다.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후보들은 저마다 세를 불리기 위해 각자 활동 중이다. 

대청소
마무리

황 비대위원장은 “새로운 당 대표는 내년 보궐선거를 신경써야 하고, 다음은 지방선거다. 대선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하다. 특히 지방선거서 이겨낼 인물이 적합하다고 본다. 4년 내내 선거가 있어서 당 대표가 스타트를 잘 끊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비대위 관리만 하면 반대서 정신 차리라는 이야기를 하는 만큼 청소의 뒷마무리를 한다든지, 당의 필요한 부분을 빨리 처리해 나가려고 한다. 매듭 지을 수 있는 부분은 빨리 짓고, 쇄신 문제도 가열차게 처리해 임기를 잘 마쳐 후임 대표가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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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