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대담> 살아 있는 정치사 박지원을 만나다

“7공화국 문을 여시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치 9단 박지원’이 여의도로 귀환했다. 92.35%라는 최고 득표율과 함께 ‘최고령 국회의원’이란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박 당선인은 ‘팔순 새순’ 국회의원이라며 웃어 보였지만 정치 9단이라는 별명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결코 아닐 테다. 여의도 사무실서 <일요시사>와 만난 박 당선인은 국내 정치의 현주소를 조목조목 짚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지난 4·10 총선서 해남·완도·진도 선거구에 승기를 꽂는 데 성공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그는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로 여의도에 입성한 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변인과 비서실장 등 굵직한 직을 두루 연임했다.

박 당선인은 <일요시사>와 만나 여의도로 복귀한 소감에 대해 “기쁘지만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며 “싸우지 않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국회,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이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번 총선을 통해 5선을 달성했다. 당선인의 동력은 무엇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답게, 독립지사의 아들답게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혼을 가지고 있다. 그 DNA가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열심히 정치를 하려고 한다.

-오랫동안 민주당의 역사를 함께했다. 그동안의 변화 중 체감되는 게 있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 구성원도 바뀌기 때문에 당연히 민주당도 바뀌어야 한다. 개혁하고 혁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당을 위해 희생한다는 ‘선당후사’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당은 충성심과 애당심이 많았다. 지금의 의원들은 개개인의 생각을 조금 더 중요시하는 쪽인 것 같다.

-선당후사 정신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부모님이나 윗사람이 무언가를 시키면 싫더라도 눈물을 찍찍 흘리면서 그 말을 따랐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않나. 시대가 변했으면 거기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 지도자는 변화를 이끌거나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수가 높아 이번 국회의장 선거에 나설 것이란 예상과 달리 불출마를 선언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후보 등록 마감 전날인 지난 8일, 이재명 대표와 점심을 먹었다. 오찬 사실을 여태 공개하지 않았는데 오늘(13일 기준) 여기서 처음으로 밝히는 것이다. 그날 이 대표와 1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얘기를 나눈 결과 “지금은 내가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가 나에게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직접 말한 건 아니다. 1시간 넘게 얘기하다 보면 대화의 흐름 정도로 알아챌 수 있지 않은가.

-국회의장 선거가 치러지기 전부터 후보들의 중립성 논란이 불거졌다. ‘기계적 중립은 필요없다’는 취지의 발언이 많았는데 어떻게 봤나?

▲국민의 정서는 중립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국회의장도 한때 당적을 가졌던 의원이고 임기를 마치면 당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친정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윤 대통령이 개혁, 입법, 특검 등을 향해 거부권을 남발한다면 의장으로서 삼권분립 원칙에 의해 국회 의견을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존경의 대상인 국회의장이 초반부터 “중립의 의무가 없다” “중립을 지키지 않겠다”라고 하는 건 올바른 정치가 아니라고 본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 여부가 뜨거운 감자다. 박 당선인은 이 대표의 연임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인물로 꼽힌다. 당내 주요 인물들이 연임론에 군불을 때면서 점차 기정사실이 되는 듯했다.

“이 대표 연임은 당연한 것”
정권 교체의 길로 ‘뚜벅뚜벅’

하지만 지난 16일 ‘어의추(어차피 의장은 추미애)’의 주인공이었던 추미애 당선인이 국회의장 경선서 낙선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표의 의중을 뜻하는 ‘명심’은 추 당선인을 향했지만, 투표 결과 우원식 의원이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의 반작용으로 이 대표의 연임론이 굳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와 관련해 박 당선인은 “민주당이 아주 건강한 정당이라는 걸 국민에게 보여줬다”며 “결과적으로 우 의원의 당선이 이 대표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연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총선이 끝나고 내가 처음으로 이 대표의 연임론을 얘기했는데 당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대표의 연임은 당연하다고 본다. 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 이뤄진다.

총선서 승리하면서 국민은 이 대표를 재신임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2년 내내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당의 절체절명 목표는 정권교체기 때문에 가장 가능성이 큰 이 대표를 앞세워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각에서는 ‘친명 일색’ ‘이재명 독주’라는 비판도 나오는데?

▲어떠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이어가는 것과 같다. 정권교체의 길을 이 대표가 끌고 가야 한다.민주당 내 당 대표 연임을 금지하는 당헌·당규는 없다. 단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1년 전에 당원·당직을 사퇴해야 한다. 당시 김대중 총재도 문재인 대표도 전부 1년 전에 사퇴했다.

인터뷰가 중반에 접어들고 본격적으로 현 정부에 관한 이야기가 화두로 올랐다. 정부가 각종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범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으로 향하는 길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박 당선인은 “특검 거부 마일리지는 탄핵 마일리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시기를 생생히 겪은 정치인이다. 과거를 회상하던 박 당선인은 개헌을 통한 4년 중임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시사했다. 근거는 무엇인가?

▲탄핵의 물결은 정치권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시작됐다. 3·15 부정선거, 4·19 혁명, 6월 항쟁, 광우병 파동, 촛불 혁명까지 전부 민중의 불꽃이었다. 마지막 정의만 정치권서 다뤘을 뿐이다. 현재 탄핵에 대한 동력이 충분치는 않다.

일각에선 탄핵 남발이라는 지적도 나오는데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민생, 물가, 남북관계, 외교·안보 모두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금은 6공화국 시대로 우리는 옛 시대를 정리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7공화국의 문을 열어야 한다.

-윤 대통령을 대상으로 4년 중임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인가?

▲윤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야 한다. 본인의 임기를 1년 앞당긴 2026년으로 단축하고 같은 해 지방선거를 치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 방법은 막대한 예산과 정치적 혼란도 줄일 수 있다.


이명박 전 정부 당시 여당 당 대표와 개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대표가 “책임지고 대통령을 설득하겠다”고 장담했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잘 안 된 모양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단언을 내릴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역사적인 미래로 가는 제7공화국의 문을 여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이 바뀌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영수회담과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대통령이 변하지 않고 불통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남은 임기 동안 변화가 없다면 엄청난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15 부정선거부터 촛불집회까지
“탄핵 물결은 민중의 불꽃서 시작”

그렇게 되면 우리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국회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 강대강 국면이 이어지면 나라와 국민이 길을 잃는다. 민생을 비롯한 물가와 외교 남북관계 모두 어디로 가겠는가?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민과 우리가 볼 때는 전혀 아닌데 말이다.

-용산 참모진의 문제도 있다고 보시나?

▲글쎄 참모진들도 문제지만 결국엔 대통령 스스로가 성찰하고 바뀌어야 한다.

-영수회담 추진 과정서 비공식 특사 라인이 가동됐다는 이른바 ‘용산 비선’ 논란이 불거졌다. 함성득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장과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주축이라는데, 이는 어떻게 보고 계시나?

▲우리나라는 ‘박근혜 비선 트라우마’가 있다. 국정 농단으로 탄핵이라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선이든, 공식 라인이든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야당 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서 농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두 교수가 어떤 이유로 나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임 교수한테 물어보니 (사전에 답변을)조율하기로 했는데 그게 잘 안 된 모양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 등판 시기를 예상한다면?

▲전당대회가 7월로 늦춰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시기가 늦어질수록 한 비대위원장 등판에 아스팔트를 깔아주게 된다. 현재 국민의힘 당헌·당규인 100% 당원투표로 전당대회를 치른다면 한 비대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50대 50으로 한다면 유승민 전 의원이 될 확률이 있다.

숫자에 맡길 일이지만 한 전 비대위원장과 유 전 의원 모두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으니 누가 당선되더라도 흥미진진하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과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에 대한 평가도 궁금하다.

▲이번 총선서 개혁신당은 3명의 당선인을 배출했다. 이 당선인은 지금처럼만 잘하시면 된다. 이 공동대표는 원내 진입에 실패했지만 계속해서 투쟁하면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

▲민주당과 협력하는 협력 관계라고 본다.

-협력 이상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합당이라든가, 아직 거기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22대 국회 개원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희망하는 상임위와 발의하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보위원회다. 아무래도 지난 12년 동안 해온 것들인 만큼 익숙하기도 하다. 발의하고 싶은 법안으로는 사형제 폐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부터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되지 않았다. 2007년 국제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지만 법으로는 정비되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가법이 없으면 회원으로 받지 않는 만큼 이제는 법과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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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