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HL그룹 오너 2세들이 10년 만에 지주회사 주식 취득에 나섰다.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경영권 승계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외부 세력의 공세에 대응하는 차원쯤으로 보기도 한다.
HL홀딩스는 지난 9일 ‘최대주주등소유주식변동신고서’를 공시했다. 정몽원 HL그룹 회장의 장녀와 차녀인 정지연씨, 정지수 HL만도 상무보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HL홀딩스 주식 취득에 나섰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공시에 따르면 지연씨와 정 상무보는 지난달 5일부터 지난 3일 사이에 장내매수를 통해 HL홀딩스 주식을 각각 5만3534주, 5만2989주 사들였다.
일석이조
이로써 지연씨가 보유한 HL홀딩스 지분은 기존 0.01%에서 0.53%(5만4379주), 정 상무보의 지분율은 0.02%에서 0.54%(5만4661주)로 상승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HL홀딩스 주식을 늘린 것을 VIP자산운용를 비롯한 외부 세력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보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인 VIP자산운용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HL홀딩스 지분 9.02%를 보유한 2대 주주로, 그간 HL홀딩스에 주주환원 정책 시행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VIP자산운용은 지난해 중순경 “HL홀딩스는 2018년 이후 해마다 200억원 수준의 배당을 포함해 연평균 278억원을 주주환원에 활용하고 있으나, 극단적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저평가 상황을 고려할 때 동일한 주주환원율 내에서 배당보다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HL홀딩스는 지난해 11월 정기이사회를 열고 2024년부터 2026년에 걸쳐 시행할 주주환원 정책의 승인을 의결했다. 해당 정책에 따라 3년 동안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고, 매년 최소 2000원의 배당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주주환원 정책이 수립됐다고 해서 VIP자산운용이 공세적인 태도를 완전히 거둘 거란 보장은 없다. 당장 오는 3월 열릴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진 구성 등으로 정 회장 측과 대립각을 드러낼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자산 2조원 이상의 회사는 ‘사외이사 아닌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합산 3%룰’,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 시 ‘개별 3%룰’이 적용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HL홀딩스 3% 이상 주주는 ▲정 회장(25.03%) ▲VIP자산운용 ▲베어링자산운용(6.59%) ▲국민연금공단(5.37%) ▲KCC(4.25%) 등이다.
존재감 드러내는 자매
외부 위협 견제 차원?
HL홀딩스가 그룹의 중추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너 일가는 외부 세력으로부터 경영권을 제약받는 일을 최소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HL만도·HL위코·HLD&I한라 등 그룹 내 계열사 다수가 HL홀딩스 지배하에 놓여 있다.
더욱이 HL홀딩스 사업형 지주회사다. 그룹 차원의 사업전략을 수립 및 지휘하고 계열사로부터 배당수익과 상표권수익을 얻는 순수 지주회사와 달리, HL홀딩스는 자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정기주주총회를 별 탈 없이 넘기면 지연씨와 정 상무보가 취득한 주식은 일종의 세력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지분율을 더 끌어올리고, 경영 일선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수순을 밟으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단 지연씨는 최근 주식 취득을 제외하면 10년 넘게 뚜렷한 움직임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HL그룹에서 영업팀 과장, 미주 지역 주재원 등을 거친 그는 2012년 결혼과 함께 퇴사를 결정했다.
대신 남편인 이윤행 HL만도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활약 중이다. 이 사장은 이재성 전 HD현대중공업 회장의 아들로, 지난해 말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되는 등 그룹에서 입지가 강화되는 추세다. 일각에서는 HL그룹이 향후 사위 승계를 택할 수 있다는 견해를 드러내기도 한다.
정 상무보는 지난해 10월 임원 승진했고, 현재 미국 뉴욕에 위치한 스타트업 컨설팅 업체 HL벤처스 메니지먼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정 상무보는 지연씨가 재직할 때보다 더 높은 직급에 오르며 경영 승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빨라지는 보폭
다만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절차를 밟으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HL그룹 산하 주요 계열사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가동 중이지만, 1955년생인 정 회장은 미래 성장 사업 발굴을 비롯한 그룹의 현안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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