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광주교대 ‘맞춤형 채용’ 의혹

3개월에 개인전 5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등의 가치는 경쟁 과정서 나온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서 같은 신호에 따라 같은 거리를 달려 거머쥔 승리는 그 자체로 값지다. 공정한 경쟁을 만드는 역할은 심판에게 부여된다. 모든 선수가 똑같은 상황서 다툴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꼼수를 막아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 도덕과 윤리가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도덕과 윤리를 가르쳐야 할 예비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라진 도덕
대신한 꼼수

최근 광주교육대학교(이하 광주교대)서 채용 불공정 의혹이 불거졌다. 특정 지원자를 위한 ‘맞춤형 채용’을 진행했다는 의혹이다. 지난 7월 합격자 발표 직후 지원자들 사이서 제기된 의혹은 4개월째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서 채용 전반을 관리하는 광주교대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광주교대는 5월24일 ‘2023학년도 2학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초빙 공고’를 게시했다. 국어교육과·수학교육과·미술교육과에 각 1명씩 교수를 채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자격심사·전공적부심사·연구발표실적심사·연구내용심사 등 1차 전형서 한 차례 지원자를 거른 후 교수능력심사·면접심사 등 2차 전형을 진행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채용 과정을 명시했다.

세 학과 교수 지원자는 학위 논문을 제외하고 최근 4년간(2019년 6월9일~2023년 6월8일) 국제학술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 등에 게재한 논문 2편을 제출해야 했다. 미술교육과의 경우 ‘개인전 발표 실적’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초빙분야별 심사기준과 ‘광주교육대학교 교원업적평가 및 성과급적연봉제 운영지침’을 참고하라고 공고했다.


채용 불공정 의혹이 불거진 학과는 미술교육과다. 광주교대는 미술교육과 교수 초빙분야를 서양화로 지정하고 ‘미술교육 강의 가능자’를 지원자격으로 제시했다. 미술교육과 심사기준은 ▲전공적부심사(50점) ▲연구발표실적심사(50점) ▲연구내용심사(50점) ▲교수능력(50점) ▲면접심사(50점) 등 총 250점으로 구성됐다.

심사위원이 제출된 서류 등을 평가해 수·우·미·양·가로 구분, 점수를 매긴 후 합산 결과 가장 높은 점수의 지원자를 최종 합격자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적공적부심사는 초빙분야와 지원자의 학위논문·학력·경력 등이 일치하는 정도를 평가하는 분야다. 연구발표실적심사와 연구내용심사는 지원자의 논문, 개인전 실적 등을 양적·질적으로 평가한다. 총 100점이 배점된 만큼 2차 전형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20여명의 지원자 가운데 5명이 1차 전형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격자 발표 직후 이의 제기
학과 교수들까지 “문제 있다”

이후 7월26일 김모 교수가 미술교육과 최종 합격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합격자 발표 다음날인 7월27일 2차 전형에 참여했던 지원자 일부가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전공적부심사, 연구발표·내용심사 등 채용 과정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주교대에 명확한 검증을 요구했다.

쟁점으로 부각된 부분은 김 교수의 개인전 실적이다. 문제를 제기한 조모 작가는 김 교수의 개인전 실적이 지나치게 짧은 기간에 집중돼있고 그 내용 또한 ‘자기표절’ 작품으로 채워졌다고 주장했다. 지원자들의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김 교수와 차점자의 총점은 1점 차에 불과했다. 개인전 실적 심사에 따라 합격자가 뒤바뀔 수도 있던 셈이다.


‘광주교육대학교 교원업적평가 및 성과급적연봉제 운영지침’에는 ‘미술 실기 업적평가 기준’이 명시돼있다. 전시회는 ▲국내외서 진행한 국제 초대전(180점) ▲국내외서 진행한 국제 일반전(100점) ▲국내서 진행한 초대전(130점) ▲국내서 진행한 일반전(70점) 등으로 점수를 배정했다. 

초대전은 미술관 측에서 작가에게 요청해 관련 비용을 지불하면서 진행하는 전시고, 일반전 이른바 대관전은 작가가 미술관에 제안하는 전시다. 운영지침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개인전 인정 기준이다. 기준에 따르면 ‘국내외 미술관 및 공인된 단독갤러리서 6일 이상 전시한 경우’에만 개인전으로 인정된다. 

또 전시 작품 중 70% 이상 신작이어야만 개인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동일한 작품으로는 몇 번의 개인전을 개최해도 1회로 인정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도록(팸플릿) ▲현장사진(개인전에 한함) ▲전시확인서 1부 등을 증빙서류로 요구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도록에는 싣지 않았어도 현장에는 작품이 걸려 있는 경우가 있다. 도록과 현장사진, 그리고 미술관의 전시확인서 등을 통해 다각도로 검증해야 개인전 여부와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잡음 터지고
대처 도마에

조 작가에 따르면 김 교수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총 8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중 5건이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3개월여 동안에 집중돼있다. 미술교육과 교수 지원을 위해 실적 쌓기용 전시를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에 개인전이 진행된 장소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미술관을 비롯해 병원 아트갤러리, 대학 박물관, 갤러리형 카페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조 작가는 “병원 로비, 카페 등에서 진행한 전시를 개인전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전시 내용 또한 개인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신작 비율이 70%가 안 되는 것은 물론 도리어 작품 중복률이 50~60%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지난 4월 전남 화순의 한 갤러리형 카페 전시에 등장한 작품이 다음달인 5월 세종시의 한 갤러리형 카페 전시서도 확인됐다. 흥미로운 대목은 해당 작품이 위아래가 뒤바뀐 채 현장사진과 도록에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미술작품에 문외한인 일반인이라면 얼핏 다른 작품으로 착각할 법했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기존 작품과 다른 작품처럼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한 것이라면 사기 행위에 가깝다. 도록에 싣는 과정서 실수한 것이라도 문제가 있다. 개인전을 준비하는 작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직접 챙긴다. 도록에 작품이 잘못 게재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작가는 “김 교수가 개인전 실적이라고 낸 작품 중 한 점은 2011년 전시에 출품한 작품에 풀만 몇 개 더 그려서 신작이라고 전시한 것”이라며 “대표적인 자기표절 작품”이라고 비판했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11조(연구부정행위의 범위) 5항은 연구자가 자신의 이전 연구 결과와 동일 또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을 출처표시 없이 게재한 후 연구비를 수령하거나 별도의 연구 업적으로 인정받는 경우 등 부당한 이익을 얻는 행위를 ‘부당한 중복게재’로 명시했다. 


자기표절?
부정행위

조 작가의 연이은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광주교대는 절차대로 진행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술교육과 일부 교수가 ▲전공적부심사 ▲외부심사위원 초빙 등에 문제가 있다고 공문 등을 통해 언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공문에는 ‘양적 평가의 공정함과 질서를 훼손하는 심사’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광주교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합격자 발표 전날까지도 공채관리위원회가 열렸고 이 자리서 미술교육과 교수들이 제기한 문제가 언급됐다”며 “하지만 광주교대는 해당 문제에 대한 별다른 반응 없이 교수 채용을 강행했다. 지원자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문제를 지적하는 상황서 학교가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한탄했다. 

개인전 증빙서류 중 하나인 현장사진을 심사 과정서 검토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광주교대의 국민신문고 답변서도 현장사진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다. 조 작가는 합격자 발표 직후 국민신문고에 ‘실기 실적 중복 의혹’ 등의 민원을 제기했다. 

광주교대는 해당 민원에 답변하는 과정서 “실기실적에 대한 공정한 심사를 위해 모든 지원자에게 공통적으로 ‘도록과 전시확인서’를 제출받았으며”라고 답했고 또 “미술 실기 업적평가 기준에 따라 심사장에 비치된 지원자의 도록과 전시확인서 등을 열람하면서 중복작품 등에 대해 엄정하게 심사했다”고 말했다.


‘광주교육대학교 교원업적평가 및 성과급적연봉제 운영지침’에 따라 심사했다면서도 해당 지침에 포함된 현장사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것이다. 특정 지원자를 위해 현장사진을 일괄적으로 심사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왔다. 이른바 ‘맞춤형 채용’을 진행했다는 의심이다.

초대전과 일반전(대관전)을 제대로 구분해 검증했는지 여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준에 따르면 국내 초대전은 130점, 국내 일반전은 70점으로 배점됐다. 배점 차이가 60점에 이른다. 광주교대는 연구내용심사에서 개인전 실적으로 ‘국내외서 진행한 국제 초대전, 국내 초대전에 한함’이라고 명시했다.

지원자 등에 따르면 내용심사에 제출하는 개인전은 전체 실적 중 가장 ‘자신작’을 내놓는다고 한다.

“절차대로 했다” 일관하더니…
결국 학내 윤리위원회 구성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교수는 연구내용 심사에 지난 5월 전북 전에서 진행한 전시자료를 낸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해당 전시가 초대전인지 일반전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전시 요청 주체가 다르다는 점에서 초대전과 일반전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전시 비용의 주체 역시 미술관과 작가로 갈리기 때문에 채용 과정서도 배점 차이를 두는 것.

심사기준에 따르면 해당 전시는 초대전이어야 맞다. 하지만 조 작가에 따르면 해당 미술관 관계자는 김 교수의 전시를 “대관전(일반전)”이라고 말했다. 초대전이었냐는 조 작가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 것이다. 해당 미술관 SNS에 게재돼있던 김 교수 전시 관련 자료는 현재 전부 삭제된 상태다.

석연치 않은 구석은 또 있다. 광주교대는 미술교육과 교수 초빙 공고문과 합격자 발표 공고를 홈페이지서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교대 홈페이지 채용공고 게시판에서는 해당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지난 17일 기준). 게시 기간이 오래돼 삭제했다고 하기엔 그보다 더 이전의 게시글도 살아있는 상태다.

문제를 제기한 조 작가, 미술교육과 일부 교수들, 지역 미술계 관계자 등은 광주교대의 채용 검증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광주교대는 조 작가의 국민신문고 민원에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교수 공채를 진행했으며 향후에도 교수 채용의 공정성 및 신뢰도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국민신문고 답변과 달리 광주교대는 불분명한 기준, 부실한 검증, 안일한 사후 대처 등으로 채용 불공정 의혹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제 공은 연구윤리위원회로 넘어간 상황이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연구윤리 규정에 따라 예비조사, 본조사 등을 거쳐 6개월 이내에 판정을 내려야 한다.

광주교대는 연구윤리위원회의 판정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광주교대 교무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연구윤리위원회서 연구윤리와 관련해 의혹이 있는 부분에 대해 들여다볼 것”이라며 “현재 연구윤리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 측으로선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김 교수에게는 미술교육과 학과 사무실, 교수실, 개인 번호,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연락을 시도했지만 일절 답하지 않았다. 

결과 판정
6개월 뒤에야

조 작가는 “순수미술(서양화)은 예술의 순수성을 지향하면서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통해 미술계 전반의 인정과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이어져왔다”며 “미술작품 공모 선정 과정서 자기표절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 검토를 통해서 당선을 취소할 정도로 미술계서 윤리 검증과 작가의 양심, 도덕성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이번 채용 과정서 불거진 의혹이 사회통념상 공정과 상식에 따라 상세히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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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