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광주교대 채용 논란 그 이후…

‘임용 취소’ 결론 총장이 뭉갤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교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논란이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제보자의 문제 제기로 연구윤리위원회가 소집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친 끝에 ‘임용 취소’ 결론이 나왔다. 이제 공은 광주교대 총장에게 넘어간 상태다. 

지난해 7월 광주교육대학교(이하 광주교대) 미술교육과 채용 과정서 불공정 의혹이 불거졌다. (<일요시사>1454호 <단독> 광주교대 ‘맞춤형 채용’ 의혹 보도 참고) 최종 합격자가 미술교육과 채용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혹과 함께 채용 전반을 관리하는 광주교대의 대응도 문제로 지적됐다.

4개월 지나
위원회 구성

광주교대는 자격심사·전공적부심사·연구발표실적심사·연구내용심사 등 1차 전형서 한 차례 지원자를 거른 후 교수능력심사․면접심사 등 2차 전형을 진행해 김모 교수를 미술교육과 최종 합격자로 결정했다. 하지만 최종 합격자 발표(지난해 7월26일) 직후 일부 지원자의 문제 제기로 김 교수의 개인전 실적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광주교육대학교 교원업적평가 및 성과급적 연봉제 운영지침’에 따르면 전시 작품 중 70% 이상이 신작이어야만 개인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광주교대는 지침에 포함된 ‘미술 실기 업적평가 기준’에 따라 ▲도록(팸플릿) ▲현장 사진(개인전에 한함) ▲전시확인서 1부 등으로 개인전 실적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1차 전형을 통과한 5명 가운데 1명인 조모 작가는 김 교수의 개인전 실적이 지나치게 짧은 기간에 집중돼있고 그 구성 또한 ‘중복게재’ ‘자기 표절’ 등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가 채용 과정서 제출한 개인전 실적의 양과 질 모두 광주교대 미술교육과 채용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광주교대에 명확한 검증을 요구했다.

최초 문제 제기 이후 4개월 동안 별다른 대응이 없던 광주교대는 지난 11월 연구윤리위원회를 구성해 김 교수의 연구윤리 부정 의혹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교무처장·기획처장·미래교육혁신원장·산학협력단장을 당연직 위원으로 포함해 총 11명 이내로 구성하도록 했다. 미래교육혁신원장인 선모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광주교대 연구윤리 규정에 따르면, 연구윤리위원회는 예비조사를 통해 제보자의 제보내용을 조사한 뒤 본조사 실시 여부를 결정한다. 본조사가 진행되면 7인 이상의 위원으로 본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이때 외부인 30% 이상, 해당 연구 분야 전문가 50% 이상의 비율을 맞춰야 한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연구의 진실성 검증을 통해 교직원, 연구원, 학생, 교원 신규채용 지원자 등에 대한 연구부정 행위를 판단한다. 윤리규정에 따르면 연구윤리위원회는 ▲위조 ▲변조 ▲표절 ▲부당한 저자 표시 ▲부당한 중복게재 ▲연구부정 행위에 대한 조사 방해 등을 연구부정 행위로 판단해 제재 조치를 건의할 수 있다.

조 작가는 지난해 11월 ▲(김 교수의) 개인전 신작 비율이 70% 이하인데도 실적으로 인정된 점 ▲2023년 전시한 작품이 2011년 전시 작품의 자기 표절로 보이는 점 ▲현장 사진에는 없지만 도록에는 포함된 작품이 있는 전시 ▲초대전인지 개인전인지 불분명한 전시 ▲자료가 전혀 없어 실제로 전시가 이뤄졌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개인전 등에 대한 검증을 요청했다. 

연구윤리위원회 본조사 결과 나와
연구부정 행위 인정돼 의견 제시

조 작가에 따르면 김 교수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8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중 5건이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 3개월20일 동안에 열렸다. 단순 계산으로는 22일에 한 번꼴로 전시했던 셈이다.


이 중 일부 전시는 병원 갤러리, 카페형 갤러리 등 공인된 미술관으로 보기 어려운 장소서 개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실적 쌓기’에 급급해 개인전을 부실하게 진행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초대전 여부 의혹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전은 전시 요청 주체에 따라 초대전과 일반전(대관전)으로 구분된다. 초대전은 미술관, 일반전은 작가의 요청으로 진행된다. 광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채용 기준서 초대전과 일반전을 구분해 배점했다.

국내 초대전이 130점, 국내 일반전이 70점으로 배점 차이가 60점에 이른다. 지원자 순위가 바뀔 수 있는 차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5월 전북의 한 미술관서 개인전을 진행했는데 해당 전시가 초대전인지 일반전인지를 두고 말이 엇갈렸다. 김 교수는 해당 전시를 초대전이라고 제출했는데 미술관 관계자는 조 작가와의 통화서 일반전이라고 답했다.

해당 미술관 SNS서도 김 교수의 전시자료가 모두 삭제됐는데 그 또한 일반전이어서 작가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 작가는 “초대전은 미술관 측에서 기획하고 준비하기 때문에 도록의 크레딧 부분에 총괄, 감수, 기획, 전시 진행, 전시 보조, 평론, 사진 등 관계자 이름과 주최, 주관, 후원사 등이 들어간다. 하지만 김 교수의 경우(해당 전시가) 초대전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크레딧 구성”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일요시사> 확인 결과 해당 전시 도록에는 김 교수의 이름뿐이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지난해 11월22일 조 작가의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예비조사를 진행했다. 총 6명의 위원이 참석한 연구윤리위원회는 이날 논의를 통해 조 작가의 제보 내용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추정돼 외부 전문가의 의견수렴을 위한 본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조사자 해명
“현대미술이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연구윤리위원회 예비조사 결과 통보서’에 따르면 연구윤리위원회는 ▲개인전 전시 실적 중복 의혹(부당한 중복게재 혐의) ▲자기 표절 의혹(변조 혐의) ▲현장 사진에는 없는 작품이 도록에 수록됐다는 의혹(위조 혐의) 등을 검증하기 위해 전문가가 포함된 본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다만 초대전 여부 의혹과 개인전 전시 여부 의혹에 대해서는 해당 미술관의 확인서를 근거로 검증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이후 외부위원 3명을 포함한 9명의 본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지난달 27일 열린 본조사위원회에는 김 교수(피조사자)가 참석해 의견을 진술했다. 김 교수는 부당한 중복게재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 해당 개념은 저서나 논문처럼 심사를 거쳐 공식적으로 비교할 때 쓰는 것이다. 전시 현장이라는 특수적인 상황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자기 표절 의혹이 제기된 작품에 대해서는 “의미적으로 주제가 바뀌었고 작품 배경과 잘 맞아 이 작품을 전시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새로운 작품명을 부여할 필요성도 있었다고 작가로서 판단했다”며 “외형적으로 자기 표절이라고 판단하는 자체도 현대미술에서는 하기 어려운 문제 제기”라고 강조했다.

거의 똑같아 보이는 작품이라도 작가가 다른 작품이라고, 의미가 다르다고 하면 인정해줘야 하는 게 현대미술이라는 주장이다. 

현장 사진에는 없지만 도록에는 있는 작품 관련해서는 “전시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가 생기기 때문에 작가는 그것을 고려해서 운영하고 선택하는 것”이라며 “도록과 현장의 작품이 차이가 생기는 것은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광주 지역의 한 미술계 관계자는 김 교수의 해명을 두고 “미술계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한 것 같다”며 “작가의 전시 연출,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이번 사안은 채용 과정서 불거진 일이다. 채용 기관의 기준에 맞춰서 그에 부합하는 자료를 제출하는 게 1순위였다”고 지적했다.

현장 사진
배경 달라

연구윤리 본조사위원회는 김 교수가 제출한 7회의 전시회 실적 중 2회의 전시를 ‘부당한 중복게재’로, 자기 표절 의혹이 있는 작품을 ‘변조’로 판정했다. 그러면서 ‘2023학년도 2학기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초빙 공고’에 명시된 ‘지원자격 등 임용조건에 하자가 발견되거나 제출한 서류에 허위 사실이 발견되거나 학위논문, 연구 실적물 등이 연구윤리에 저촉됐을 경우에는 심사서 제외되거나 합격 취소 또는 임용 후에도 임용을 취소할 수 있음’이라는 기타 사항에 의거해 ‘임용 취소’ 의견을 제시했다. 


미래교육혁신원 관계자는 “연구윤리 본조사위원회서 결정된 사안을 가지고 연구윤리위원회서 논의했는데 별다른 이의 없이 결론이 났다. 총장님께 보고된 상태”라며 “연구윤리 규정에 따라 제보자와 피조사자 모두 3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현재 이의신청기간”이라고 밝혔다. 

제보자나 피조사자가 제기한 이의신청이 접수되면 연구윤리위원회는 회의를 열고 해당 내용에 대해 논의한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예비조사부터 다시 진행되는 구조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이의신청에 대한 논의까지 마치고 최종 결론이 나오면 역시 총장에게 보고하고 추가로 수사기관에 고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연구윤리위원회의 결과가 나왔지만 광주교대 채용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광주교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연구윤리위원회서)임용 취소 결과가 나왔지만 총장이 조치를 하지 않으면 김 교수의 직은 유지된다. 학교에서는 교무처장과 총장이 ‘도록으로만 평가해야지 왜 현장 사진을 언급하냐’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귀띔했다. 

광주교대 교무처장을 맡고 있는 방모 교수는 연구윤리 본조사위원회 결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임용 취소 결론이 나온 것에 대한 학교 측 입장을 묻는 <일요시사>의 질문에 “잘 알지 못한다. 미래교육혁신원에 물어보면 잘 알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교무처장은 연구윤리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했다. 

연구윤리위원회 조사 결과와는 별개로 추가 의혹도 불거졌다. 김 교수의 개인전 진행 여부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김 교수가 본조사 직전에 제출한 한 장의 현장 사진이 불씨가 됐다. 해당 사진의 배경이 김 교수가 개인전 실적으로 제출한 미술관이 아니라 다른 미술관이었기 때문이다.

제출 자료와 다른 전시 장소 의혹
미술관 관계자들 친인척으로 얽혀

김 교수는 지난해 2월15~23일 전남 담양군의 나야나교육박물관서 열린 ‘플라스토피아’라는 전시를 개인전 실적으로 제출했다. 연구윤리위원회가 확인한 김 교수의 전시 실적 확인서에도 해당 전시는 나야나교육박물관서 9일 동안 진행한 것으로 명시돼있다.

문제는 김 교수가 나야나교육박물관서 진행한 전시 ‘플라스토피아’의 현장 사진으로 제출한 자료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현장 사진의 배경은 나야나교육박물관이 아닌 대담미술관으로 확인됐다. 대담미술관은 나야나교육박물관의 길 건너편에 위치해있다. 다시 말해 김 교수가 나야나교육박물관서 진행했다고 밝힌 개인전이 실제로는 대담미술관서 진행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대담미술관 관계자는 “전시 기획은 나야나교육박물관서 진행했고 전시만 대담미술관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담미술관 홈페이지 확인 결과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는 전시가 열리지 않았다. 대담미술관 관계자는 “미술관 리모델링을 하던 시기”라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해당 내용은 연구윤리 본조사 과정서도 언급됐다.

김 교수는 “나야나교육박물관 쪽은 전시할 상황이 안 되고 대담미술관 공간은 잠깐 비어 있어서 줄 수 있다고 들었다”며 “잘 모르고 전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미술계 관계자는 “작가는 전시장에 작품을 배치할 때 1㎝만 어긋나도 힘들어한다. 그런데 전시 장소를 잘 모르고 했다는 해명은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나야나교육박물관과 대담미술관에 얽혀 있는 인물의 면면이다. 대담미술관 관장은 김 교수의 서양화 전임 교수인 정모 교수다. 당초 이번 미술교육과 채용 자체가 정 교수의 퇴임으로 시작됐다.

광주교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나야나교육박물관 관장은 정 교수의 친언니다. 그 박물관 학예사로 있던 양모씨는 정 교수의 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김 교수가 연구윤리 본조사위원회에 제출한 나야나교육박물관 전시 확인서에 양씨의 이름이 확인된다. 

일각에서는 김 교수가 개인전 ‘플라스토피아’를 대담미술관서조차 열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채용 사유화
바로 잡을까

광주지역의 한 미술계 관계자는 “김 교수가 현장 사진으로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시장 배경과 계절감이 맞지 않는다. 이런 의혹을 방지하기 위해 도록과 현장 사진, 전시 확인서를 모두 검증하는 것인데 광주교대는 여전히 도록만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작가는 “광주교대는 예비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도덕과 윤리가 교수의 많은 덕목 중 최우선이 돼야 한다. 이번 일이 올바른 방향으로 마무리지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이메일, 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연락을 취했지만 답신은 없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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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