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3인 현미경 검증 ?슬로건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0.04 17: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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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열 정책보다 낫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후보,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후보를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고 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학력·롤모델·취미·별명·저서·친구·고향·건강까지 살펴본데 이어 열일곱 번째로 그들의 '슬로건'을 살펴봤다.

정치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열 정책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단 한 줄의 메시지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도 자신의 정책적 방향은 물론이고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까지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슬로건은 '단 한 줄의 승부'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대선에서 단 한 줄의 승부 슬로건 대결에서 승리하게 될 후보는 누구일까? <일요시사>는 각 후보의 슬로건을 살펴봤다.


박근혜 <박근혜가 바꾸네>
"무엇보다 쇄신이 중요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대선 슬로건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박 후보는 슬로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침대는 과학'이라는 카피로 유명한 조동원씨를 홍보기획본부장으로 영입하는 등 눈에 띄는 슬로건을 만들기 위해 무척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4·11총선 때는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100% 대한민국'으로 정해 큰 효과를 얻은 경험이 있다. '1% 대 99%의 대결'을 내세운 민주당을 역으로 겨냥한 슬로건이었다.

민생에 방점

박 후보 측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에 대해 "시대적 과제인 '변화', 박 후보의 정치철학을 상징하는 '민생', 유권자가 원하는 '개인화' 등을 키워드로 슬로건을 만들었다"며 "기다려온 변화 박근혜, 국민의 삶과 함께 가는 박근혜, 내 삶을 위한 선택 박근혜 등이 더해져 깔때기 원리에 의해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박 후보는 지난 7월1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가진 대선출정식에서도 '국민' '행복' '꿈'을 수십 차례 언급하며 "우리 정치는 민생과 상관없는 정쟁과 비방에만 몰두해있다"며 "이제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확 바꿔 국민 모두가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박 후보를 상징하는 이모티콘은 새누리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의 말풍선 안에 '박근혜' 이름의 초성인 'ㅂㄱㅎ'과 함께 '스마일'을 한데 모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박 후보 측은 "그동안 지도자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사진, 이름, 캐리커처 등이 사용됐지만 디지털문화를 상징하고 젊은 층에 다가가기 위해 이모티콘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후보의 슬로건과 PI(Presidential Identity)는 나오자마자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박 후보의 'ㅂㄱㅎ' PI가 경선상대였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PI인 'ㅇㅌㅎ'을 따라한 것이라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또 시민단체인 '내가 꿈꾸는 나라'는 박 후보의 슬로건에 대해 자신들의 단체명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박 후보 측은 "'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슬로건은 우리나라에 500개가 넘고, 사람이름 초성을 사용하는 것은 최근의 트렌드"라며 일축했다.

한편 슬로건인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그 뜻이 모호해 비판을 받았다. 일각에선 '박 후보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례적 슬로건 추가

이러한 논란 때문인지 박 후보 측은 지난 7월20일경 '박근혜가 바꾸네'란 대선 슬로건을 이례적으로 새로 추가해 눈길을 끌었다. 경선 선거운동기간에는 당초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발표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보다 이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는 모습이었다.

이 슬로건은 "국민 여러분 저 박근혜가 바꾸겠습니다"라는 발언에서 나온 것으로, 박 후보의 대선출마 선언문, 또 뒤이은 정책발표를 통해 자주 나왔던 문구다. 이를 '박근혜' 발음과 비슷하게 표현해 '슬로건화'한 것으로 보인다.


변추석 미디어홍보본부장을 비롯해 실무진 다수가 이 슬로건을 제안했고, 박 후보도 제안에 흡족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박 후보의 철학과 정책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박근혜가 바꾸네는 쇄신과 실천의지를 강조하겠다는 의지로 다가온다. 캠프 측은 이를 통해 친근감을 높이면서도 '박근혜=쇄신·개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고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재인 <사람이 먼저다>
"슬로건 정하기 힘들다 힘들어"

"슬로건 좋던데, 좀 빌릴까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손학규 당시 경선후보는 지난 7월23일 방송토론회에서 슬로건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문 후보가 자신이 대선후보가 된다면 손 후보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을 빌려 써도 되겠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나 손 후보는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소 도발적인 질문이지만 그만큼 손 후보의 슬로건이 탐난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한 것이다.

손 후보는 비록 경선에서 패했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건배사로 쓰일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문 후보는 당초 여성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겨냥해 헌신·용기·원칙을 키워드로 한 '대한민국 남자'를 슬로건으로 내세웠으나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연상된다는 이유로 중도 폐기됐다.

중도폐기 아픔도

문 후보는 SNS를 통해 "대한민국 남자 PI를 사용도 안 했는데 걱정이 들려왔다. 페북(페이스북)과 트윗(트위터)으로 의견을 물었는데 반대의견이 많았다"면서 "(폐기를) 받아들인다. 의견을 여쭤보길 잘했다"고 적었다.

 후보는 슬로건을 놓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문 후보는 출마선언을 통해 "소수특권층의 나라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이 주인인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출마선언을 했다. 하지만 출마선언 때의 슬로건인 '우리나라 대통령' 또한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메시지가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문재인 캠프에서는 "아직 메인 슬로건으로 확정 된 것이 아니다"라며 급히 발을 뺐다.

즉각 캠프에서는 '노무현의 카피라이터'로 불린 정철 사무국장과 시인이자 캠프 대변인인 도종환 의원,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정만호 메시지팀장이 참여해 슬로건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이다. 이에 따라 문 후보의 최종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가 됐다.

이 슬로건은 현 정부, 여당이 민생을 살리지 못하고 있음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민주당 경선 승리 후 다음 날 현충원을 방문해 방명록에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썼다. 같은 날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는 '일자리가 먼저입니다'라는 주제로 정책간담회를 연 것도 슬로건에 입각한 행보로 풀이된다.

드림팀 구성

하지만 문 후보의 슬로건 역시 표절시비를 겪었다. 사람이 먼저다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2년 대선 때 내걸었던 슬로건 'Putting People First(국민이 먼저)'를 표절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2년 7월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된 뒤 'Putting People First'(PPF)로 명명된 집권 비전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제시했다. 실업자 증가, 빈부격차 확대 등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행정부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재정운용 방안과 관련한 정책 대안들을 내놨고, 결국 선거에서 이겼다.

이에 대해 문 후보 측은 "클린턴 전 대통령 슬로건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며 "인간의 존엄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담은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홍익인간'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문 후보의 심벌은 황록색의 담쟁이를 형상화 했다. 문 후보 측은 "담쟁이 잎 하나가 수백, 수천 개의 담쟁이 잎과 손잡고 결국 벽을 넘는 것처럼 국민과 함께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의 벽을 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정치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철수 <새로운 변화의 시작>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지난 19일 정식으로 출마선언을 한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아직 슬로건과 PI 등이 정해지지 않았다. 안 후보 측은 선대위 인선이 마무리 되면 슬로건과 PI도 곧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선 홍보팀이 꾸려지면 그곳에서 담당해 슬로건과 PI를 만들고 박선숙 총괄선대본부장이 최종 점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의 출마선언 당시 단상 플래카드에 새겨져 있던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라는 문구가 사실상의 슬로건이 되지 않겠느냐고 예상하고 있다.

안 후보는 이날 "국민들은 저를 통해 정치쇄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 줬다"며 "저는 18대 대선에 출마해 국민들의 열망을 실천해내는 사람이 되려 한다"고 밝히며 특히 '변화'를 강조했다.

무엇보다 '변화'

안 후보 측은 일단 이 문구가 슬로건이라고 보면 되지만 이를 계속 가져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안 후보는 출마선언 다음 날인 지난 20일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방명록에서도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때문에 안 후보의 슬로건은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는 분석이다.


안 후보가 이렇게 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제도권 정치인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의 차별화를 통해 3자대결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변화에 초점을 맞춘 슬로건은 안 후보의 차별화 된 집권 플랜과 국민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한 전혀 새로운 방식의 대선출마과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안 후보의 향후 대선 행보 또한 새로운 변화라는 슬로건에 맞춰 파격적인 정치실험을 거듭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안 후보는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정당에 기반하지 않은 선거운동, 독자출마, 네거티브 없는 선거운동 등의 새로운 정치를 표방했다. 또 국민이 선택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됩니다라는 문구에서 '국민이 선택하는'이라는 부분은 정치적 이득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민심만을 따르겠다는 안 후보의 정치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해당 문구가 적혀있던 플래카드의 바탕색깔인 '흰색'이 안 후보의 상징색이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고 있다. 흰색은 안 후보의 깨끗한 이미지와도 잘 맞고, 박 후보의 상징색인 빨간색이나 문 후보의 상징색인 초록색과도 겹치지 않는다. 또 안 후보는 출마선언에서 '국민' '정치' '미래' '변화'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향후 PI에는 이러한 개념이 반영될 것으로 예측된다.

기대와 우려 동시에

한편 정치전문가들은 안 후보가 추구하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정당 배경을 가지지 않은 후보가 대선에서 이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세계 최초일 것"이라면서 "새로운 정치실험임은 분명하지만 때문에 여러가지로 위험스러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네거티브 없는 선거운동 제안 등의 참신한 행보는 정치권의 발전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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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