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달고 돌아온 이재명 막전막후

고름에 칼질 숙청 피바람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구속 문턱까지 다다랐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돌아왔다. 그야말로 기사회생이다. 여당인 국민의힘만큼이나 비명계 역시 당황한 기색이다. 민주당의 기류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비명·친명 할 것 없이 공천을 따내기 위한 셈법이 복잡해졌다. 비명과의 ‘화합’과 ‘숙청’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이 대표의 속내 역시 복잡해질 전망이다.

지난달 18일, 검찰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 구속영장이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백현동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최소 200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에게 총 800만 달러를 북한에 대납하도록 한 혐의를 적용했다.

최소 31표
이탈 색출

구속영장이 국회로 날아들자 민주당은 분주해졌다. 지난 2월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부결로 막을 내렸지만 무더기 이탈표가 나왔던 만큼 당 대표 리더십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당시 표결 결과 재석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기권 9명, 무효 11명으로 민주당 내에서만 최소 30명이 넘는 이탈표가 나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차례 내홍을 겪었던 만큼 두 번째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것이란 확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표결 당일까지 친명(친 이재명)계는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면서도 부결 쪽으로 흐름을 몰아갔다. 반면 비명(비 이재명)계는 앞서 이 대표가 선언한 불체포특권을 포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어길 경우 또다시 방탄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물론 당내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는 이유에서다.


병상 단식을 이어가던 이 대표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모호한 ‘사실상 부결’을 호소하면서 여론이 갈렸다.

이날 이 대표는 자신의 SNS에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번 영장 청구는 황당무계하다”며 “검찰은 지금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검찰이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수사권을 사적으로 남용해 ‘비열한 정치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의 호소문이 역풍으로 작용한 것일까? 다음 날인 21일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서 재석 295명 중 찬성 149명, 반대 137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가결됐다. 국회 체포동의안은 재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부를 정한다. 이날 가결에는 찬성 148표가 필요했다. 1표가 더 많은 149표가 나오면서 과반을 넘긴 것이다.

민주당 의원 167명이 표결에 참석했지만 반대가 136표에 그친 것 역시 민주당 내홍의 서막이다. 당내에서만 최소 31표의 이탈표가 나왔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헌정사상 최초로 제1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가결 후폭풍은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줄사퇴로 이어졌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그날 밤 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에 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에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이날 박 전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지도부 결정과 다른 표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명계인 민주당 송갑석 의원 역시 이틀 뒤인 23일, 지명직 최고위원직을 내려놨다.


곧 휘몰아칠 가결표 후폭풍
친·비 모두 공천 셈법 복잡

직책 여부를 떠나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추측되는 민주당 의원들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강성 친명계 의원은 비명계가 가결을 주도한 것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고름’이라 비판했다.

‘비명계를 숙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당내 갈등이 빚어졌다. 가결파 색출에 앞장서는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사실상 비명계를 대상으로한 징계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로 불리는 ‘개딸’(개혁의 딸) 사이에서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비명계 의원을 지칭하는 속어) 리스트와 전화번호를 공유해 이들에게 욕설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개딸에게 받은 문자를 일부 공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현수막에 이원욱 얼굴 사진 거니 더 역겹다. 나대지 말라’ ‘국민의힘 프락치’ 등 비난 표현이 난무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이 대표가 이장으로 있는 ‘재명이네 마을’ 카페는 혐오 정치의 산실이 됐다”며 “이 대표가 ‘재명이네 마을’ 이장을 그만둬야 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 역시 한 시민으로부터 “이상민님 응원해요(하트)/ 개딸은 무시해요!/ 새로 창당해도/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야권의 희망이십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고 작성자는 “세로로 읽어 보세요”라며 수박이 썰려 있는 사진을 함께 보냈다. 각 행의 첫 글자를 따서 읽으면 ‘이 XXX야’라는 욕설이 된다. 해당 문자가 조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 의원은 “천벌받을 것이오” “아예 끊어버릴게요”라고 답했다.

연일 이어지는 강경 대응에 계파색이 옅은 민주당 의원까지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일각에선 “대체 누구를 위한 진흙탕 싸움인지 모르겠다”는 한숨 섞인 우려도 나온다.

당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는 친명계 인사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끈질긴 명줄
지도부 사퇴

지난달 26일, 범친명계로 꼽히는 홍익표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원내운영수석부대표에는 박주민 의원이 인선됐다. 박 의원은 이 대표 캠프의 총괄본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친명계 인사로 꼽힌다. 이 밖에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주도해 온 강경파이기도 하다.


새 원내정책수석부대표에는 유동수 의원이 뽑혔다. 다른 인사에 비해 계파색이 옅다는 평을 받지만 이 대표의 지역인 인천 계양 지역 국회의원을 맡고 있는 만큼 친분이 두터울 가능성이 제시된다.

원내대변인에는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민주당 윤영덕, 최혜영 의원이 각각 선임됐다. 특히 윤 의원은 이 대표가 단식했을 당시 동조 단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는 홍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까지 대부분 친명계 의원들로 채워지면서 단일된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주 중으로 민주당 당직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민주당이 친명 체제로 돌아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새 지도부를 선출한 다음날인 27일, 친명 체제 민주당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날 새벽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정치권의 판세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대표에 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기각에 따라 양당의 희비도 엇갈렸다. 민주당은 윤정부를 ‘야당 대표를 대상으로 검찰권을 남용하고 탄압에 몰두한 무책임한 정권’으로 규정하고 반격 태세를 갖추었다. 국민의힘은 “결국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고 반발했다.

이래저래
진퇴양난

자료와 증거가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던 검찰이 우선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구속영장 기각에 관해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 무죄 입증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극적으로 구속을 피한 이 대표는 당내 리더십을 회복하는 동시에 검찰을 향한 반격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쌍날 검을 쥐고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정부·여당을 향해서는 ‘한동훈 장관 탄핵’, 비명계에는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빗발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여의도 복귀가 임박한 가운데 비명계를 향한 친명계의 반격이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의 수장이 ‘정치적 부활’이라는 날개까지 달고 돌아오니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대로 간다면 비명계는 공천은 물론 정치생명까지 위태로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비명계 축출설’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한 라디오를 통해 “좌절한, 절망한 국민 앞에 당 대표가 ‘내가 단식이라도 해서 이것을 끊어내겠다’는 결연한 결기를 보인 앞에서 그렇게 (가결을)할 수가 있는 건지. 그분들(비명계) 스스로 용퇴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만일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징계 조치라도 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치에 정통한 이들 사이에서도 한두 사람 정도라면 비명계 축출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을 통해 제재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안에 관해 당 지도부가 정치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당의 시스템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도 죽는다
골 아픈 딜레마…최종 선택은?

민주당 계파 싸움이 갈수록 치열한 이유는 총선과 공천이라는 예민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중에서도 비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홍영표 의원(4선)을 비롯한 설훈 의원(5선), 이상민 의원(5선) 등 비명계 중진 의원들의 행방이 주목된다.

친명계가 혁신안으로 제안했던 ‘국회의원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제한’을 실시할 경우 중진 의원이 다수 포진된 비명계에게는 부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몸소 실천한 홍 원내대표가 취임하면서 해당 혁신안은 탄력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해 6월 민주당의 험지로 꼽히는 서울 서초을 지역위원장 공모에 지원했다. 3선을 내리 달성한 성동구를 벗어나 직접 험지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개혁파’라는 타이틀이 붙기 시작했다. 친명을 대상으로 한 긍정적 메시지가 커질수록 비명의 입지는 줄어드는 형국이다.

이 대표가 당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만큼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민주당의 갈등에 불을 붙이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비명계를 공식적으로 징계하거나 비판할 경우, 이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당의 균열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나아가 분당 선언까지 나온다면 당이 타격을 입는 건 물론 ‘비명계 학살로 완성되는 이재명 사당화’ 논란 역시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이 대표가 비명계와 화합의 메시지를 낸다면 내년 총선 승리를 목적으로 뭉쳐진 ‘원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다만 이미 깊어진 계파 간 갈등이 쉽게 아물지는 미지수다.

일부 친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먼저 손을 내밀어도 비명계가 내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상황서 이 대표가 포용의 정치를 보이더라도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놓쳐버린
타이밍

장시간 진통이 예상되지만 당장 민주당이 분당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앞으로 더 많은 당내 인사가 친명계로 채워질 것”이라면서도 “민주당이 둘로 갈라질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Zero)”라고 예상했다. 총선이 6개월 남은 시점서 분당 절차를 밟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당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당분간은 잠잠할 전망이다. 여의도로 돌아올 채비를 마친 이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표류하는 영수회담 묵묵부답도 ‘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향해 ‘민생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부정하며 민생 회복을 위한 협치의 기회를 날려서는 안 된다”며 하루빨리 회담에 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실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연목구어”라며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장소에서 해야 할 파트너와 하는 정상으로 복귀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꼬집었다.

이번 영수회담은 여의도 복귀를 앞둔 이 대표의 위상 높이기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양당의 갈등이 심화될 전망이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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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