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달고 돌아온 이재명 막전막후

고름에 칼질 숙청 피바람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구속 문턱까지 다다랐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돌아왔다. 그야말로 기사회생이다. 여당인 국민의힘만큼이나 비명계 역시 당황한 기색이다. 민주당의 기류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비명·친명 할 것 없이 공천을 따내기 위한 셈법이 복잡해졌다. 비명과의 ‘화합’과 ‘숙청’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이 대표의 속내 역시 복잡해질 전망이다.

지난달 18일, 검찰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 구속영장이었다. 검찰은 이 대표가 백현동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몰아줌으로써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최소 200억원의 손해를 끼치고,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에게 총 800만 달러를 북한에 대납하도록 한 혐의를 적용했다.

최소 31표
이탈 색출

구속영장이 국회로 날아들자 민주당은 분주해졌다. 지난 2월 이 대표 체포동의안은 부결로 막을 내렸지만 무더기 이탈표가 나왔던 만큼 당 대표 리더십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당시 표결 결과 재석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기권 9명, 무효 11명으로 민주당 내에서만 최소 30명이 넘는 이탈표가 나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차례 내홍을 겪었던 만큼 두 번째 체포동의안이 부결될 것이란 확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표결 당일까지 친명(친 이재명)계는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면서도 부결 쪽으로 흐름을 몰아갔다. 반면 비명(비 이재명)계는 앞서 이 대표가 선언한 불체포특권을 포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어길 경우 또다시 방탄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물론 당내 지지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다는 이유에서다.


병상 단식을 이어가던 이 대표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모호한 ‘사실상 부결’을 호소하면서 여론이 갈렸다.

이날 이 대표는 자신의 SNS에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번 영장 청구는 황당무계하다”며 “검찰은 지금 수사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검찰이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수사권을 사적으로 남용해 ‘비열한 정치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의 호소문이 역풍으로 작용한 것일까? 다음 날인 21일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서 재석 295명 중 찬성 149명, 반대 137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가결됐다. 국회 체포동의안은 재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가부를 정한다. 이날 가결에는 찬성 148표가 필요했다. 1표가 더 많은 149표가 나오면서 과반을 넘긴 것이다.

민주당 의원 167명이 표결에 참석했지만 반대가 136표에 그친 것 역시 민주당 내홍의 서막이다. 당내에서만 최소 31표의 이탈표가 나왔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헌정사상 최초로 제1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가결 후폭풍은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줄사퇴로 이어졌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그날 밤 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에 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에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이날 박 전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지도부 결정과 다른 표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명계인 민주당 송갑석 의원 역시 이틀 뒤인 23일, 지명직 최고위원직을 내려놨다.


곧 휘몰아칠 가결표 후폭풍
친·비 모두 공천 셈법 복잡

직책 여부를 떠나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추측되는 민주당 의원들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강성 친명계 의원은 비명계가 가결을 주도한 것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고름’이라 비판했다.

‘비명계를 숙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당내 갈등이 빚어졌다. 가결파 색출에 앞장서는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사실상 비명계를 대상으로한 징계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로 불리는 ‘개딸’(개혁의 딸) 사이에서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비명계 의원을 지칭하는 속어) 리스트와 전화번호를 공유해 이들에게 욕설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개딸에게 받은 문자를 일부 공개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현수막에 이원욱 얼굴 사진 거니 더 역겹다. 나대지 말라’ ‘국민의힘 프락치’ 등 비난 표현이 난무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이 대표가 이장으로 있는 ‘재명이네 마을’ 카페는 혐오 정치의 산실이 됐다”며 “이 대표가 ‘재명이네 마을’ 이장을 그만둬야 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 역시 한 시민으로부터 “이상민님 응원해요(하트)/ 개딸은 무시해요!/ 새로 창당해도/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야권의 희망이십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답장을 보냈고 작성자는 “세로로 읽어 보세요”라며 수박이 썰려 있는 사진을 함께 보냈다. 각 행의 첫 글자를 따서 읽으면 ‘이 XXX야’라는 욕설이 된다. 해당 문자가 조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 의원은 “천벌받을 것이오” “아예 끊어버릴게요”라고 답했다.

연일 이어지는 강경 대응에 계파색이 옅은 민주당 의원까지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일각에선 “대체 누구를 위한 진흙탕 싸움인지 모르겠다”는 한숨 섞인 우려도 나온다.

당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에는 친명계 인사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끈질긴 명줄
지도부 사퇴

지난달 26일, 범친명계로 꼽히는 홍익표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원내운영수석부대표에는 박주민 의원이 인선됐다. 박 의원은 이 대표 캠프의 총괄본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친명계 인사로 꼽힌다. 이 밖에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주도해 온 강경파이기도 하다.


새 원내정책수석부대표에는 유동수 의원이 뽑혔다. 다른 인사에 비해 계파색이 옅다는 평을 받지만 이 대표의 지역인 인천 계양 지역 국회의원을 맡고 있는 만큼 친분이 두터울 가능성이 제시된다.

원내대변인에는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민주당 윤영덕, 최혜영 의원이 각각 선임됐다. 특히 윤 의원은 이 대표가 단식했을 당시 동조 단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 안팎에서는 홍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까지 대부분 친명계 의원들로 채워지면서 단일된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주 중으로 민주당 당직 개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민주당이 친명 체제로 돌아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새 지도부를 선출한 다음날인 27일, 친명 체제 민주당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날 새벽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면서 정치권의 판세가 뒤집혔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대표에 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기각에 따라 양당의 희비도 엇갈렸다. 민주당은 윤정부를 ‘야당 대표를 대상으로 검찰권을 남용하고 탄압에 몰두한 무책임한 정권’으로 규정하고 반격 태세를 갖추었다. 국민의힘은 “결국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고 반발했다.

이래저래
진퇴양난

자료와 증거가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던 검찰이 우선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구속영장 기각에 관해 “수사를 위한 중간 과정일 뿐 무죄 입증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극적으로 구속을 피한 이 대표는 당내 리더십을 회복하는 동시에 검찰을 향한 반격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쌍날 검을 쥐고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정부·여당을 향해서는 ‘한동훈 장관 탄핵’, 비명계에는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빗발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여의도 복귀가 임박한 가운데 비명계를 향한 친명계의 반격이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의 수장이 ‘정치적 부활’이라는 날개까지 달고 돌아오니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대로 간다면 비명계는 공천은 물론 정치생명까지 위태로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비명계 축출설’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한 라디오를 통해 “좌절한, 절망한 국민 앞에 당 대표가 ‘내가 단식이라도 해서 이것을 끊어내겠다’는 결연한 결기를 보인 앞에서 그렇게 (가결을)할 수가 있는 건지. 그분들(비명계) 스스로 용퇴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만일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징계 조치라도 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치에 정통한 이들 사이에서도 한두 사람 정도라면 비명계 축출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가결표를 던진 의원을 당 윤리심판원을 통해 제재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안에 관해 당 지도부가 정치적으로 나서기보다는 당의 시스템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도 죽는다
골 아픈 딜레마…최종 선택은?

민주당 계파 싸움이 갈수록 치열한 이유는 총선과 공천이라는 예민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중에서도 비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홍영표 의원(4선)을 비롯한 설훈 의원(5선), 이상민 의원(5선) 등 비명계 중진 의원들의 행방이 주목된다.

친명계가 혁신안으로 제안했던 ‘국회의원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제한’을 실시할 경우 중진 의원이 다수 포진된 비명계에게는 부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를 몸소 실천한 홍 원내대표가 취임하면서 해당 혁신안은 탄력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해 6월 민주당의 험지로 꼽히는 서울 서초을 지역위원장 공모에 지원했다. 3선을 내리 달성한 성동구를 벗어나 직접 험지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개혁파’라는 타이틀이 붙기 시작했다. 친명을 대상으로 한 긍정적 메시지가 커질수록 비명의 입지는 줄어드는 형국이다.

이 대표가 당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만큼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민주당의 갈등에 불을 붙이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비명계를 공식적으로 징계하거나 비판할 경우, 이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당의 균열도 배제할 수는 없다. 나아가 분당 선언까지 나온다면 당이 타격을 입는 건 물론 ‘비명계 학살로 완성되는 이재명 사당화’ 논란 역시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이 대표가 비명계와 화합의 메시지를 낸다면 내년 총선 승리를 목적으로 뭉쳐진 ‘원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다만 이미 깊어진 계파 간 갈등이 쉽게 아물지는 미지수다.

일부 친명계에서는 이 대표가 먼저 손을 내밀어도 비명계가 내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상황서 이 대표가 포용의 정치를 보이더라도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놓쳐버린
타이밍

장시간 진통이 예상되지만 당장 민주당이 분당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앞으로 더 많은 당내 인사가 친명계로 채워질 것”이라면서도 “민주당이 둘로 갈라질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Zero)”라고 예상했다. 총선이 6개월 남은 시점서 분당 절차를 밟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당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당분간은 잠잠할 전망이다. 여의도로 돌아올 채비를 마친 이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표류하는 영수회담 묵묵부답도 ‘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향해 ‘민생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부정하며 민생 회복을 위한 협치의 기회를 날려서는 안 된다”며 하루빨리 회담에 응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실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연목구어”라며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장소에서 해야 할 파트너와 하는 정상으로 복귀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꼬집었다.

이번 영수회담은 여의도 복귀를 앞둔 이 대표의 위상 높이기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양당의 갈등이 심화될 전망이다. <박>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