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잊혀진 사람처럼 살겠다”며 퇴장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연일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총선이라는 민감한 시기를 앞두고는 작은 움직임도 크게 보이는 법이다. 국민의힘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까지 문 전 대통령과 그의 세력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새로 정권을 잡은 인물이다. 임기를 마치기 3달 전까지 국정 지지율이 40%대 안팎을 유지했지만 결국 ‘정권교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급하게 정권이 교체된 탓에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재등장
문 전 대통령이 정권 심판까지 다다르게 된 이유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리스크와 부동산 가격 폭등, ‘촛불정부’에 관한 실망이 맞물렸다는 설명이다. 특히 부동산 문제는 결정적인 국면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문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에 레임덕에 맞닥트린 이유이자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한 방’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직후 꾸려진 촛불정부라는 특이성이 오히려 흠이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전 정부와 비교해 나쁘지는 않았지만 국민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결국 20대 대선서 근소한 차이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를 누르고 정권을 잡았다.
지난해 5월까지 국정을 수행한 문 전 대통령은 “잊혀진 삶을 살고 싶다”며 양산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로 사저를 이주했다. 이후 자신의 SNS 등을 통해 텃밭을 일구거나 책을 읽는 등 일상적인 근황을 알렸다.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서 문 전 대통령이 연일 강조하던 ‘잊혀진 삶’과 반대되는 행보가 이어졌다. 커지기 시작한 목소리가 여의도 안팎을 넘나들면서 존재감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지난 4월 북카페인 ‘평산책방’을 개업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는 설명이다.
평산책방은 평범한 북카페가 아닌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민주당 의원의 ‘거점’이라는 설이 돌면서다.
추측만 난무했던 조 전 장관의 총선 출마설은 그가 평산책방을 찾으면서 본격적으로 힘이 실렸다. 지난 6월11일 평산책방을 방문해 문 전 대통령을 만난 조 전 장관은 “문재인정부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폄훼되는 역진과 퇴행의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걸어가겠다”고 정치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평산책방’ 찾은 이낙연·조국
총선 노리는 의원들 성지순례?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며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역시 귀국 직후 평산책방을 찾았다. 이 대표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라는 친명(친 이재명)계의 애타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문 전 대통령과 막걸리 만찬을 가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주당 내홍의 시작점이라고 진단했다.
이 밖에도 문 전 대통령은 윤정부의 리스크가 떠오를 때마다 한마디씩 쓴소리를 얹으면서 존재감을 유지했다.
지난달 3일, 문 전 대통령은 윤 대통령의 ‘반국가세력’ 발언을 두고 자신의 SNS를 통해 “아직도 냉전적 사고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꼬집었다.
지난달에는 “단 한 건도 금품과 관련된 부정과 비리가 없었던 당시 청와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한 이동관 후보의 배우자가 인사청탁 차원의 금품수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던 중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이하 잼버리)를 둘러싼 여야 책임 공방에 문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문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에 속도가 붙었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서도 임기를 마친 전 대통령이 계속해서 정치적 의도가 담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해석했다.
현재 정부여당은 잼버리가 파행된 이유를 두고 문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시간 준비 기간을 거쳐온 만큼 지난 정부가 핵심축을 담당했다는 설명이다. 개최 장소를 두고 장시간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새만금을 고집한 이들 역시 전북도와 민주당 의원이라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개최지를 새만금으로 결정한 것은 2015년 박근혜정부라고 받아쳤다. 문정부는 야영지 매입 등 인프라를 닦아왔을 뿐, 잼버리 대회 운영 준비는 윤정부의 과제였던 만큼 그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는 주장이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을 지켜보던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도 윤정부를 상대로는 날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새만금 잼버리 대회로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다”며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실망이 컸을 국민들, 전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 전북도민과 후원 기업에 대회 유치 당시의 대통령으로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친명계 지고
친문계 뜰까
잼버리가 파행한 책임을 현 정부가 아닌 전 정부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목소리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메시지는 문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의 모든 행동을 아우르며 “친문 세력 키우기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민주당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인물은 문 전 대통령일 것”이라며 그를 지지하는 친문 세력 역시 발맞춰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민주당을 이끌어갈 수 있는 ‘암묵적 세력’은 아직까지 친문(친 문재인)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잊힌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는 인물이 여의도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이다. 전 대통령과 현 대통령의 대립구도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오는 25일, 문정부의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이 평산마을 사저에 모일 것이란 얘기가 돌면서 또 다른 정치적 해석이 꼬리를 물었다. 이번 만남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전략과 민심 대책 등 논의 등이 이루어질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다만 친문계는 이번 만남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번 평산마을 회동은 어디까지나 서로 안부를 묻는 자리라며 하나같이 선을 그었다.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온 만큼 계파갈등을 방지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재점화되고 10월 사퇴설이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당내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민주당 구심점이 한순간 사라진다면 계파를 막론하고 당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차기 구심점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친문 세력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에 힘이 실린다.
구세주?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 역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9월부터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활동 영역이 넓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당내가 혼란스러운 만큼 직접 나서는 대신 현재로서는 물밑에서 움직일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잼버리 파행의 폭탄 돌리기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문정부가 다시 소환되면서 정치권에 적잖은 파동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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