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극악무도한 데이트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일요시사>는 피해 여성이 겪었던 피해 사실이 적힌 공소장을 입수했다. 가해 남성은 피해 여성의 돈을 이용해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가해 남성은 오피스텔 입주 전 자신의 집에서 피해 여성의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었다. 이후 피해자에게 지옥 같은 5일이 시작됐다.
“살려줘 엄마, 전화 못해. 제발 보면 와줘.” 지난달 11일, 피해자 A씨 어머니는 딸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메시지에는 주소와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적혀 있는 주소로 곧장 차를 몰고 간 어머니는 급한 마음에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다.
지난 15일 기자와 만난 피해자 A씨 아버지는 “인면수심 같은 일이 벌어졌다. 데이트 폭력 사건은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CCTV 자료나 증거자료를 직접 수집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가해자가 경찰에 체포된 첫날 변호사를 2명 선임했다는데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면수심
가해자 김모씨는 경찰에 체포된 이후 이틀 뒤 구속됐다. 김씨는 지난 4일 성폭행, 강간, 감금 등 7개의 죄명으로 구속 기소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가해자 김씨는 지난달 7~11일까지 A씨를 오피스텔에 감금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지난달 7일, 자신의 주거지서 A씨의 휴대전화를 사설 디지털포렌식을 했고, A씨가 다른 남성과 연락했다는 이유로 폭행을 저질렀다. 그는 “넌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다. 너가 못 죽을 것 같으면 내가 죽여 주겠다”고 협박했다.
이후 그는 A씨의 머리를 이발기로 밀었다. A씨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기 위해 윗부분만 제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저항하자 “너 이거 안 하면 강아지도 죽여버리고 너도 맞을 것”이라며 피해자 얼굴에 침을 뱉고 소변까지 봤다. 김씨는 A씨에게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지시한 뒤 그 모습을 2회에 걸쳐 촬영했다.
A씨 아버지는 “7월7일 오피스텔에 입주한 첫날 딸이 700만원을 인출한 기록이 있는데, 이 돈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지불했다”며 “그 오피스텔은 사업자등록이 필요한 지식산업센터다. 딸이 자신의 명의로 사업자등록증까지 만들었는데, 이게 불과 8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주거형 오피스텔은 사람의 왕래가 많지만, 지식산업센터는 사업장 용도로 이용되기 때문에 출퇴근 이후 시간에는 적다. 게다가 사건이 발생한 오피스텔은 최근 입주자를 받는 오피스텔인 점을 노린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김씨의 폭행 및 감금은 닷새 동안 이어졌으며 성폭행도 있었다. A씨 아버지에 따르면 김씨는 “너는 하루 종일 맞을 거니까 너가 잘못해서 맞는 거고 너 가족도 죽여 버린다”며 목을 조르거나 손바닥으로 뺨을 40차례 때리는 등 폭행을 가했다. 이어 “얼굴에 염산을 부어 버리겠다. 도망가기만 하면 사람을 사서라도 널 쫓아가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울타리에 가두고 “여기서 대소변 봐라”
머리 윗부분만 밀고 얼굴에 소변까지
김씨는 A씨를 애완견 울타리에 가두고 소변 패드에 대·소변을 보게 했다. A씨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자 앞을 가로막고 폭행을 가한 사실이 공소장에 드러났다.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김씨는 A씨가 신고하지 못하게 휴대전화를 빼앗고 A씨 가족의 번호를 차단했으며 의도적으로 옷을 입었을 때 보이지 않는 부분만 폭행했다. 외출했을 때 폭행 부위가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다.
A씨 증언에 따르면 김씨가 밖에서도 보폭을 맞추지 않으면 폭행을 가했고, 외출할 때도 자신보다 앞서서 갔다는 이유로 폭행했다. 김씨는 A씨를 발로 짓누르면서 그 모습을 거울로 보는 등 우월감에 심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씨는 A씨에게 규칙이 적힌 쪽지를 주면서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을 동원했다. 해당 쪽지에는 ▲말 두 번 하게 하지 않기 ▲내가 말할 때 다른 거 하지 말고 집중하기 ▲알았다고만 대답하기 ▲다른 남자와 관련해 어떤 언급도 안 하기 ▲최대한 붙어 있기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씨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A씨 아버지는 기자에게 A씨가 한 계좌에 10만원 이체한 내역을 보여주며 “10만원 이체한 곳이 바로 사설 거짓말탐지기를 운용하는 업체”라며 “지난달 12일 탐지기 검사 예약이 잡혀 있었는데 그 전날(가해자가) 체포됐다. 만약 그 전에 안 잡혔으면 더 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A씨가 작성한 메모에는 “(김씨가)6개월 전부터 도박과 주식에 빠져서 돈을 벌거나 잃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더 과격해졌다. 나중에 빚이 늘어나면서 회생 신청할 때 직업이 호스트바 접객원이라 일을 한다는 증명을 할 수 없었다”며 “이후 텔레그램을 통해서 불법 가짜문서를 만들어 제출하는 것을 봤고 자기는 굉장히 똑똑하고 경찰은 무능해서 절대 모른다고 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때부터 김씨의 폭력이 시작된 것이다.
A씨 아버지는 “(김씨가)주식 및 인터넷 도박에 빠져 지난해 9월 탕진한 이후 경제적 여력이 하나도 없었다”며 “딸아이를 잡을 근거가 없어지자 집착이 더 심해졌고 지난 6월 딸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하고 전화번호를 변경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 수사관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A씨가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정신병력이 있는지에 관한 것으로 이 내용은 가해자 쪽에서 주장한 것이다.
김씨는 구속 기소 이후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린 것으로 전해진다. 변호인은 총 3명이다. A씨 아버지가 가해자 아버지와 연락한 메시지에는 “5년, 6년 전까지만 해도 힘들게 살았다. 전셋집이랑 자차도 보유해본 적 없다”며 “자식 잘못 키운 책임감에 너무 힘이 든다”고 읍소했다. 반성이 아닌 되레 피해자에게 힘들다고 선처를 구한 것이다.
김씨는 자신의 폭행에 관해 A씨가 때려달라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 아버지는 김씨 측의 주장 내용을 알고 싶어 가해자 조서를 요청했지만 받을 수 없었다. 1심 형사소송에선 사건의 진상규명과 범죄 당사자의 형벌을 결정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서 제외된다.
A씨 아버지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법이냐. 가해자 쪽에서는 지금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데, 피해자는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거냐”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가해자 조서는 1심 형사재판 이후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공판기록 확보를 위해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할 때야 열람이 가능하다.
초호화 변호인단
피해자의 경우 강제수사권, 증거수집과 관련 압수수색 영장 청구권이 없다. 이는 사실상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A씨 아버지는 직접 가족관계증명서를 출력해 사건이 벌어진 오피스텔 근처를 매일 돌아다녔다.
A씨 아버지는 “CCTV를 찾는 과정서 영상 자료를 모자이크 처리하는 업체로 보내는 것까지 직접 다 해야만 했다”며 “경찰도 어느 CCTV를 확인해봐야 하는지 다 알 수는 없다. 이런 경우는 정부가 중간 기관을 만들어서 피해자가 증거자료를 입증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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