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폭행’ 보복 공포 떨고 있는 피해자 사연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14 12:46:12
  • 호수 1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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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고 밀었는데 ‘쌍방과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중 격투기 선수에게 폭행당했다. 가해자는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동네 주민이 발견해 신고하지 않았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살기 위한 몸부림은 ‘정당방위’를 ‘쌍방과실’로 바뀌었다.

‘묻지마 범죄’의 정식 명칭은 ‘이상동기 범죄’다. 묻지마 범죄 피의자 중 재범자 비율이 75%에 달해 경찰은 지난해에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로 명칭을 바꿔 특별팀까지 구성했다.

2021년 경찰청과 한국문화및사회문제심리학회 주최로 열린 ‘묻지마 범죄, 현실적인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2021년 범죄분석 학술 세미나’에 따르면 2017년 묻지마 범죄 범죄자는 30대와 40대가 총 31명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 48명 중 47명이 남자였다. 48명 중 35명은 월평균 소득이 아예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무심코 지나다…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가 교도소에 수감된 이상동기 범죄 피의자 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폭력 범죄 재범 위험성 평가 연구서도 50명이 재범자로 확인돼 재범자의 비율이 7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상동기 범죄도 3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9일 시대전환 조정환 의원은 이상동기 범죄 흉악범에 대한 처벌 강화를 위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금고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신설하고, 무기징역, 금고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 요건을 현행 복역 기간 20년서 25년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겼다. 


조 의원은 “최근 대법원이 실질적 종신형 효과를 위한 사형선고는 적절치 않다는 판결을 내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할 수 있는 법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법안 취지를 설명했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하자는 것.

이는 모든 이상동기 범죄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으로, 서울에 거주 중인 A씨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지난달 18일밤 11시쯤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이상동기 범죄 폭행을 당했다.

유난히 퇴근이 늦었던 A씨는 들어가기 전에 집 인근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 주위를 살펴보니 옆 골목 계단 앞에서 남성 2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둘 다 상의를 벗고 있었는데, 한 명은 몸에 문신이 있었다.

A씨는 ‘이상한 사람이 옷을 벗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담배를 끄고 집으로 들어가려 할 때 옆에서 술을 마시던 남성 B씨가 A씨에게 “이웃에 사는 사람인데 며칠 전, 옆에 있는 동생이 A씨에게 인사했는데 무시했다고 한다”고 대뜸 말을 걸었다.

끊긴 CCTV…폭행 후 찾아오기도
“가해자 2~3분 거리에 살고 있어”

A씨는 당황했다. 인사를 무시한 적도 없었지만, 애당초 초면이었다. 그는 “나는 두 분 다 초면이다. 인사를 받은 기억도 없다.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답했다.

그러자 B씨는 같이 술 마시던 지인을 불러서 확인하면서 A씨를 협박했다. B씨는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아냐. 우린 격투기 선수다. 무시하면 안 된다. 여기는 집 앞이라 CCTV가 있다. 그러니 저기가 내가 사는 집인데 저기서 조용하게 소주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단순히 술에 많이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닌 느낌을 받은 A씨는 이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자리를 피하려고 움직였는데, 이때 갑자기 B씨가 머리와 몸을 밀쳐서 화단과 벽에 부딪혔다. 초반엔 B씨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대치하다 계단 옆까지 밀리면서 함께 떨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다.

A씨는 순간 정신을 잃고 깨어났는데 이때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B씨는 A씨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A씨는 살기 위해 의도치 않게 주먹을 휘두르며 반격했다. 

다행히 지나가는 동네 주민과 A씨 아버지가 싸움 장면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싸움은 일단락됐다. 이후 A씨는 골목에 설치돼있는 CCTV를 확인했지만, 카메라 선이 연결돼있지 않아서 영상 확인이 불가능했다.

더 무서운 일은 다음 날 아침 일어났다. 동네가 시끄러웠고 창밖에 욕 소리가 들리더니 경찰차와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B씨 무리가 A씨 집 앞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경찰서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방어를 위한 폭력이라도 상대의 신체에 유형력을 행사하면 쌍방과실로 접수된다.

정당방위는 예고된 위험을 대비하거나, 누군가가 나를 때렸다고 상대방을 방어 목적 이상으로 폭행하면 인정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당방위 인정 요건은 ▲현재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자기나 다른 사람의 법적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 세 가지로 요약된다.

경찰은 “A씨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너무 안타깝다. 가해자 개인정보는 말하기 어렵지만 질이 많이 안 좋은 사람들”이라며 합의를 조언했다.

A씨는 B씨 무리가 언제 다시 나타나 자신과 가족에게 보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A씨는 결혼한 지 2달 된 아내,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방어했지만…

A씨는 “가해자가 2~3분 거리에 사는데, 나한테 보복하려고 하는 것 같다. 지금 스마트워치 범죄 예방 시계를 받았지만, 너무 무섭다”며 “집 주변에는 CCTV가 없고 골목길은 매우 어둡다. 내가 일방적으로 폭행당했다는 증거는 아버지와 이웃들 증언밖에 없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는 “내가 한 행동이 왜 정당방위가 아닌지 모르겠다. 앞으로 보복당할 수도 있고, 또 누가 칼 들고 나를 위협해도 제압하면 정당방위가 아닌 것 아니냐”고 허탈해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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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