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클럽’ 박영수 뒷북 수사 내막

2년 가까이 수박 겉핥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장동 50억 클럽과 관련해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2년 가까이 수사만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박영수 전 특검이 증거인멸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과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타 핵심 인물에 대한 수사는 제자리걸음 상태다. 검찰이 수박 겉핥기 수사로 기소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검찰이 대장동 의혹을 수사한 지 1년10개월이 지났다. 기자(김만배)·변호사(남욱)·회계사(정영학)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대장동 일당’은 재판에 넘겨졌다. 또 다른 갈래인 50억 클럽 수사는 안갯속이다. 의혹을 받는 인물 중 절반이 살아남았다. 여전히 구속되지 않은 생존자는 권순일 전 대법관, 박영수 전 특검,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 김수남 전 검찰총장,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 등이다.

무딘 칼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인물들은 ‘대장동 일당’과 밀접한 관계였다. 김씨가 운영한 화천대유 자문단에는 권순일·박영수·김수남이 포함돼있었다. 화천대유서 근무한 곽상도·박영수의 아들·딸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고액 퇴직금·대여금을 받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2년여가 됐으나 수사 결과는 ‘빈손’에 가깝다. 검찰이 유일하게 재판에 넘긴 곽 전 의원은 1심서 뇌물수수 혐의에 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지난달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재판부는 통상적으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든다. 그러나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는 달랐다. 재판부는 “피의자(박 전 특검)의 직무 해당성 여부, 금품의 실제 수수 여부, 금품 제공 약속의 성립 여부에 관해 사실적·법률적 측면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쉽게 말해 검찰이 박 전 특검에게 적용한 혐의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는 재판 과정서 판사가 검사에게 공소장 변경을 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구속영장에 담겼던 박 전 특검의 핵심 혐의는 뇌물이 주를 이룬다. 2014년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었던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이 김씨 측 컨소시엄인 ‘성남의 뜰’에 참여케 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신의향서도 발급하도록 하는 대가로 측근인 양재식 변호사를 통해 200억원과 단독주택 2채를 약속받았다.

수차례 압수수색에도 법원 설득 못 해
사무실 PC·서류 증거인멸 1년 벌어줘

이후 우리은행의 컨소시엄 참여가 무산되면서 박 전 특검은 여신의향서 발급만 돕기로 하고 대가 역시 200억원서 50억원으로 줄었다. 검찰은 50억원 가운데 8억원은 이미 박 전 특검에 건네진 것으로 봤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특경가법상) 수재 혐의를 적용했다.

이는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하거나 요구 또는 약속했을 때 적용하는 범죄혐의다.

법원은 박 전 특검이 ‘특경가법상 수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금융회사 임직원’인지부터 태클을 걸었다. 자신이 이사회 의장을 지낸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과 무관하다는 박 전 특검의 논리를 법원이 일부 받아들인 셈이다.

법원은 8억원 수수 등 사실관계에 관해서도 의문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특검은 8억원 중 대한변호사협회 선거자금으로 받았다는 3억원에 관해선 “받은 사실이 없다”고 맞섰고, 나머지 5억원에 대해서도 “김만배와 이기성(박 전 특검의 인척)의 거래였고, 자신을 거쳐 갔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김씨 등의 지시로 이씨가 조성해 박 전 특검에 전달한 5억원의 최종 ‘도착’지는 김씨다. 이씨에게 받은 5억원을 박 전 특검이 김씨에게 다시 보냈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이 받은 5억원을 김씨에게 보낸 이유가 ‘50억원 약정’과 맞물려 있다고 봤다.

나중에 받기로 한 50억원을 담보하기 위한 ‘화천대유 증자대금(지분투자)’ 성격으로 5억원을 보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달 중순 박 전 특검의 딸과 아내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며 영장 재청구를 위한 보강수사에 나섰다. 박 전 특검의 딸은 2016~2021년 화천대유에 재직하는 동안 임금 외에 대여금 명목으로 11억원을 받고 ‘판교 퍼스트힐 푸르지오’ 한 채를 저가 분양받아 8억원의 시세차익도 얻었다.

검찰은 박 전 특검의 딸이 얻은 이익 일부는 박 전 특검의 아내에게 흘러간 정황도 포착했다. 다만 검찰은 박 전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를 통해 취한 경제적 이익이 25억원에 달한다는 걸 알면서도 구속영장에 적시하지 않았다.

사실상 제 식구 감싸기
김수남·권순일 올스톱

검찰은 곽 전 의원 재수사에서 호반건설 압수수색 영장 등에 아들 병채씨를 뇌물수수의 공범으로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박 전 특검의 딸도 아버지와 공범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박 전 특검 딸을 압수수색하면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시했다고 한다.

청탁금지법 위반은 직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공직자 등이 동일인에게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등의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면 성립한다. 박 전 특검의 딸이 화천대유에 재직(2016~2021년)하며 25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한 시점은 국정 농단 특검 활동 시기와 겹친다. 검찰은 조만간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계획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수사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거세다.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박영수 전 특검이 제일가는 특수통 소릴 들었던 양반”이라며 “검찰이 어떻게 논리를 펼 것인지 예상해 증거를 없앴다는 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박 전 특검은 휴대폰을 부숴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무실 PC 기록과 서류까지 없애 물적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두 달 뒤 화천대유 고문에 올라 월 1500만원씩 총 1억5000만원을 받았던 권 전 대법관의 재판거래 의혹은 아직 해소되지도 않았다.

남 변호사는 “김만배가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성남제1공단 공원화 무효소송을 대법원에서 뒤집었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 대표 사건의 선고 시점에 김씨가 권 전 대법관을 8차례 방문한 기록도 나왔다.

늑장 기소


김 전 총장은 김씨 부탁으로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의 뇌물수수 수사를 무마해줬다는 의혹을 받는다. ‘김만배 공소장’엔 김 전 총장이 대장동 사건이 터진 2021년 9월 김씨를 만나 대책을 논의한 사실도 적시됐다.

검찰을 믿지 못한 야권은 지난 4월, 50억 클럽 의혹 특별검사 임명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늦어도 오는 12월에는 50억 클럽 특검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는 얘기다. 그전까지 검찰이 핵심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매듭짓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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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