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 시리즈를 비롯한 미국의 대중적인 범죄 쇼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국내서도 인기 많은 범죄영화나 TV 드라마를 보면 거의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시청자로 하여금 범인의 검거에 법의학적 증거 분석이 그 열쇠라고 믿게 만든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서처럼 과연 법의학적 증거가 그토록 믿을만한 것인가? 유전자 증거, 교흔, 혈흔 분석, 지문 등 보편적 형태의 법의학 증거가 엄격한 검토와 조사 대상이 됐고, 일부는 영화나 드라마서처럼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곤 한다.
과학계서 신뢰를 얻지 못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경찰과 검찰서 활용되고 있는 교흔 분석에 근거해 33년의 무고한 옥살이를 한 오심 피해자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교흔뿐 아니라 다른 법의학적 분석기법들도 과학계에서는 의문시되고 있으나 여전히 검·경의 중요한 무기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바로 그런 기법들이 누군가에게 유죄 평결을 내리는 너무나도 확실한 대못이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과학계의 이 같은 우려를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심지어는 부정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 가장 확실한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분석도 표본의 오염 등 처리 과정이나 절차상의 문제 또는 기술적인 난관 등으로 전혀 증거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극단적인 비판도 나오고, 혈흔 분석은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검증된 바 없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이처럼 법의학 증거에 대한 과학적 타당성이 의문시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의 사법제도는 이런 법의학 증거를 아직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유죄를 확정하는 데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을까?
흔히들 세상에는 두 가지의 사법제도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사법제도만이 아니라, 과학도 부자들을 위한 과학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과학이라는 두 가지의 과학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DNA 증거를 제외한 현재 법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법의학적 기법들은 과학적으로 인증된 것이 없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을 증명이라도 하듯, 적어도 미국서 지금까지 알려진 오심(wrongful conviction) 사건의 절반이 타당하지 않은, 무효한 법의학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한다.
미국서 이런 결과를 초래한 데는 실험실 가운을 입은 경찰이나 분석관이 특정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전적으로 만들어내거나 발명한 ‘과학’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당한 법의학, 법과학은 어떤 것이고, 그렇지 않은 소위 ‘쓰레기 과학(junk science)’은 어떤 것인가? 용어의 사전적 의미로는 쓰레기 과학은 지지하는 충분한 연구나 증거도 없이 과학적 사실로 제시되는 이론이나 방법이라고 한다.
쓰레기 과학은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 해석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결국 쓰레기 과학은 지지하는 과학적 연구와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고, 오류의 개연성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거나 결론적이라고 제시되거나, 주관적 범주나 해석에 의존하고, 복잡한 과학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소위 전문가가 너무 쉽게 되는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급기야 미국 과학협회(NAS: National Academy of Science)가 개입해 법의학, 법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끝에 상당히 부정적인 결과와 우려를 내놓은 적이 있다. 이를 기화로 모든 법의학, 법과학 분야 학계와 실무자들을 놀라게 하고 어렵게 했는데, 아마도 교흔 분석과 관련된 법치의학자(forensic dentists)들의 충격이 가장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과학협회는 정확성에 대한 적절한 추정이 없는 두 표본이 유사하다거나 심지어 식별, 구별할 수 있다는 검사관의 진술, 판단은 과학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아무런 증명 가치가 없으며, 즉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반면에 상당한 편견적인 영향을 끼칠 잠재성만 있다고 설명한다.
보고서는 “훈련도, 개인적 경험도, 직업 경력도, 그 어떤 것도 정확성에 대한 적절한 경험적, 실험적 입증을 대신,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법의학, 법과학계에서는 법의학 증거는 유죄를 확인,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고, 무고한 사람을 없도록 해주며 “법의학 증거의 허용성과 관련된 기존 법적 기준은 온전한 과학과 법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반박했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