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살인사건으로 본 국내 사제 총기의 세계

60대 아버지는 어떻게 총을?
유튜브 보면 누구나 만든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05년 설립된 유튜브는 20년 만에 전 세계를 장악했다. ‘온라인 동영상 공유 플랫폼’으로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과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다양한 콘텐츠를 무기로 인간 삶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었다. 문제는 화려한 빛 뒤에 가려진 이면이다.

인천 송도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20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아파트에서 A씨가 아들 B씨를 총으로 살해했다. 이날은 A씨의 생일로 B씨와 그의 아내, 자녀, 지인 등이 함께했다. 생일 파티는 축하 노래를 부르는 등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의 비극
범행 동기는?

비극은 A씨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물렸다가 다시 돌아온 A씨는 아들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가방에서 쇠파이프를 꺼내 겨눴다. A씨가 직접 만든 총기였다. 아들을 향해 한 발 발사한 A씨는 곧바로 총신 역할을 하는 쇠파이프를 교체한 뒤 두 발을 더 쐈다.

아들은 세 발 중 두 발을 오른쪽 가슴과 왼쪽 옆구리에 맞았다. A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들의 지인을 향해서도 두 번이나 방아쇠를 당겼으나 다행히 불발됐다. A씨는 며느리에게도 총을 겨눴다. B씨의 아내는 자녀 둘을 방으로 피신시킨 뒤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나왔다. A씨는 그런 며느리에게 소리를 지르며 위협했다.

B씨의 아내는 A씨가 총을 재정비하는 사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B씨의 아내가 경찰에 신고하자 A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공영주차장에 뒀던 렌터카를 타고 도주했다. 이후 A씨는 범행 3시간 만인 지난 21일 오전 12시20분경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인근 도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국내에서 사제 총기를 이용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배경을 두고 궁금증이 일었다. 특히 A씨의 아내가 국내 유명 피부미용 기업 대표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갖가지 추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 경찰에서도 프로파일러를 투입하는 등 A씨의 범행 동기를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성공한 전처에 대한 분노, 경제적·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본인에 대한 자괴감이 쌓이다가 폭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유가족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들이 생활비를 끊은 것에 분노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유가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쇠파이프로 만들어
폭발물도 제작했다

A씨의 범행 동기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서 유가족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은 입장문을 내고 “남편(B씨)의 억울한 죽음이 왜곡되지 않고 아이들이 이 고통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A씨의 전 아내도 “저는 피의자와 이혼한 뒤에도 자식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진술할 예정이니 제발 부탁하는데 더는 추측성 보도를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은 “프로파일링 결과를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A씨는 사제 총기를 만들어 발포했고 또 폭발물도 제작해 집에 설치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서울 도봉구 자택에 인화성 물질과 발화 타이머를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경찰특공대가 출동해 주민 105명을 대피시킨 후 폭발물을 제거했다. A씨가 설치한 폭발물은 실제 폭발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점은 A씨가 범행 도구를 직접 만들었다는 데 있다. A씨가 만든 사제 총은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총신에 발사기 역할을 하는 손잡이를 단 형태다. 플라스틱 탄피 안에 비비탄 크기의 쇠구슬이 든 산탄이 장전돼있었다. 폭발물은 시너 14통과 타이머가 결합된 형태였다.


A씨는 유튜브를 통해 총기 제작법을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유튜브에는 수천 건이 넘는 총기 제작 영상이 업로드돼있다. 총기 제작을 위한 물품도 전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말 그대로 시간과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A씨처럼 사제 총과 폭발물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각종 추측에
유가족 고통

경찰의 유튜브 영상 삭제 요청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단속이 영상의 제작, 확산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총기 제작 등 사제 무기를 제작하는 영상이 퍼지고 접근성이 좋아지면 모방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전 차단 조치와 법적,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도 제언했다.

경찰청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온라인상 총기 제조법 불법 게시물 8893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삭제·차단을 요청했다. 지난 5월 한 달에만 3264건에 대한 삭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경찰청 등 소관 기관의 요청에 따라 총포·화약류 불법 게시물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다. 방심위의 불법 무기류 관련 정보 시정 요구 의결 건수는 2021년 744건에서 2022년 5610건으로 8배가량 급증했다. 이후에도 매년 수천 건 이상이 심의되고 있다.

유튜브 측은 총기를 판매하려는 의도로 제작됐거나 시청자에게 총기와 탄약 특정 액세서리의 제조 방법을 안내하거나 액세서리의 장착 방법을 안내하는 콘텐츠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고가 접수되면 내부 검토를 거쳐 삭제나 채널 정지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튜브 특성상 영상이 장기간 노출되거나 재업로드 되는 경우가 있어 이를 전부 막진 못하는 실정이다.

법도 있긴 하지만 허술하긴 매한가지다. 현행 총포·도검·화학류 등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포화약법)은 총기나 폭발물의 제작 방법·설계도 등을 인터넷 등에 게시하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모의 총포 등 유사 위협 장치의 게시·판매 행위도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이다.

인터넷 널린
총기 제작법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이 총포화약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사제 총기 제작 행위를 명확히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련 정보의 게시·유포에 대해 형사 처벌 및 삭제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기서도 유튜브 같은 해외 사업자가 운영하는 플랫폼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처벌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IT업계에서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플랫폼 규제안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유튜브의 뛰어난 접근성과 빠른 확산 속도가 역설적으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유튜버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이 과정에서 자극적인 영상이 여과 없이 시청자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조회 수가 곧 수익과 직결되는 만큼 시청자를 유인할 요소로 도를 넘는 내용의 콘텐츠를 제작해 업로드하는 유튜브 채널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다. 과도한 신상 털기, 박제 등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낙인을 찍는 사례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 실제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해 6월 한 유튜버가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라면서 일반인의 신상을 공개해 사회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은 2004년 12월 경남 밀양 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밀양으로 불러내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일단 유포되면 못 막아
가짜 뉴스 진원지 역할

당시 가해 학생 가운데 30명은 소년원 송치 처분 또는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14명은 합의 등으로 인해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아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다.

‘집행인’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던 C씨는 가해자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을 공개하는 영상을 2차례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C씨가 영상을 올릴 때마다 누리꾼은 언급된 인물의 신상을 털었고 SNS에 악플을 달거나 회사로 전화를 거는 등의 방식으로 반응했다. 이 과정에서 엉뚱한 인물이 언급돼 피해를 입는 사례도 생겼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C씨는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유튜브나 SNS를 통해 가짜 정보를 관망하는 현상에 대해 이제는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엄벌을 통해 최소한의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유튜브가 가짜 뉴스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나온 유명인 관련 루머가 유튜브를 통해 확산하고 언론 보도로까지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거보다 짧은 영상을 선호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게 등장한 1분 이내의 ‘쇼츠’는 퍼지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대형 이슈가 발생하면서 유튜브의 위력이 다시 한번 만천하에 드러났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조차 유튜브를 즐겨보면서 정치에 적용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여러 차례 자신을 지지하는 쪽 유튜버를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접근성 높고
확산 빠르고

더 큰 문제는 유튜브 영상의 휘발성이다. 누리꾼은 유튜브 영상을 소비한 이후 그대로 흘려버린다. 자신이 접한 영상이 잘못된 정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한 유튜브 측의 제재도 미미하다. 누군가에게는 유튜브가 배움의 터전이고 놀이터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범죄를 위한 교재이자 타인에 대한 공격의 시발점일 수 있다. 유튜브의 두 얼굴인 셈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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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