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8.16 14:42
최근 장윤기 사건으로 불거진 경찰의 부실 수사 또는 수사 비리 의혹은 정치권의 검찰 보완수사권 논쟁과 함께 사법제도 전반에 걸친 대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경찰권의 비대화와 어쩌면 독점에 대한 우려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 같은 우려와 논란에 대해 경찰은 ‘순환 인사제’의 확대를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고위 간부 중심으로 극히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순환 근무를 중간 간부는 물론이고 실무자들에게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나 경찰 입장에서는 한층 강화된 경찰권을 견제하고, 특정 지역 장기 근무로 인한 유착과 그로 인한 사건의 고의적 은폐나 봐주기식 수사와 같은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강조한다. 반면 경찰 일선에서는 특히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 경찰관들에게는 그로 인한 직무 만족과 조직 전념의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경찰권의 강화로 과거 어느 때보다 경찰 인력의 질적 향상, 특히 수사 역량의 강화가 요구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수 경찰관의 이직이나 우수 인력의 경찰 유입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결국 시민이 그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최근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검찰 보완수사에 대한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한쪽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기소와 수사라는 완전한 기능적 분리가 검찰개혁의 핵심이기에 검찰의 보완수사는 폐지돼야 한다고 외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경찰의 오판, 오류, 그리고 비리 등으로 있을 수 있는 수사상의 문제들을 검찰 단계에서 한 번 더 들여다보고 필요하다면 보완수사를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검찰의 수사권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는 경고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위 말하는 표적 수사나 별건 수사 등 그 막강한 권한이 오용되고 남용된 사례를 적지 않게 목격했다. 결국, 검찰개혁이라는 목표로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라는 가히 혁명적인 개혁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릇 모든 개혁이나 심지어 작은 변화라도 그 목표나 목적은 분명해야 한다. 이유는 어떤 정책이라도 그 정책이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 집단, 또는 조직이나 단체, 더 나아가서는 계층의 의견과 이익이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번 보완수사 논란이 보완수사를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
최근 교도소 수용 인구의 과밀, 즉 과밀 수용이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교도소의 과밀 수용은 사실상 교도소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그 해결 또한 그만큼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교정이 경찰, 검찰, 법원과 함께 네 바퀴로 굴러가는 형사사법 제도의 마지막 단계로서 그 책임과 역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교정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상당히 수동적인 역할과 기능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교도소 수용 인구를 교도소 스스로 결정하고 조절할 수 없다. 누구를 얼마나 교도소에 수용하는가는 전적으로 법원의 판단 및 결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나마 수용 인구의 조절에 교도소가 어떤 것도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크고 작은 문제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석방이 교도소가 수용 인구를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조절 기능일 것이다. 과밀 수용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해소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처음부터 교도소에 수용되는 범죄자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교도소가 아니라 법원의 몫이고, 법원 또한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의할 뿐이며, 법 제정은 어쩌면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하기
범죄의 연구는 오래전부터 권력, 불균형, 그리고 사회정의의 문제와 엉켜있었다. 물론 전통적인 범죄학에서는 주로 범죄 행위와 그에 대한 형사사법 대응을 구체화하는 저변의 권력 역동성과 구조적 불균형에 대한 적절한 탐문도 없이 사회적 요인이나 개인적 특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범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권력구조와 불균형을 이해할 필요가 적어도 비판 범죄학 쪽에서는 제법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회제도와 체계 안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범죄의 근원을 관조하고, 예방, 개입, 그리고 사회적 변화를 위한 더 효과적인 전략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비판적 시각에서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데는 당연히 나름의 당위성이 없지 않다. 우선 범죄는 대체로 법률적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범죄를 규정하는 법률은 적어도 갈등론적 입장에서는 대부분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력과 권한이 있는 사람들의 몫이고, 이들은 당연히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가지지 못하거나 적게 가진 계층의 사람들이 주로 범하는 전통적인 노상 범죄를 주로 형법이 규정하고 있고
무고한 여고생의 목숨을 앗아간 장윤기의 범행 자체도 문제지만, 사건 수사 과정의 문제와 쟁점들이 적지 않은 문제점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상 동기 범죄자들이 ‘묻지 마’식의 무작위 폭력을 어린이, 노인, 여성 등 상대적 약자들을 선별적으로 공격하고 있어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이런 이상 동기 범죄는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르고 예측조차 할 수 없기에 그 예방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더욱 두려운 것이다. 연인 폭력이나 스토킹이나 가정폭력과 같은 친밀한 관계의 범죄처럼 약자를 향한 폭력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음에도 경찰을 비롯한 사법 당국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만약 장윤기에 대한 경찰의 긴급 명령이나 조치가 더 적극적이고 선제적일 수 있었다면 무고한 여고생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의 모든 전통적인 폭력의 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야만 일어날 수 있는 범죄다. 따라서 그 예방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시간과 공간에 함께 있지 못하도록 예방하면 된다. 피해자에게 스마트 워치를 제공해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피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자거나 교도소의 과밀 수용에 따른 수형자 처우 문제가 뜨거운 논쟁거리다. ‘범죄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그에 따른 대응 방안, 방법을 반영하는 형사 정책적 판단과 선택의 산물일 것이다. 논쟁이 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는 여기에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학계에서도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는 교육, 훈련, 치료 등 처우를 통한 교화 개선과 준법 시민으로서 성공적인 사회 복귀의 대상인가, 아니면 죄에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형벌의 대상인가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서로 맞닿아 있다. 물론 모든 범죄자는 다 처우와 교화 개선의 대상도 아니며, 그렇다고 모든 범죄자가 엄중한 형벌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여기가 의견이 갈라지는 변곡점이다. 인간을 합리적 선택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본다면 범죄라는 행위를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만큼 그에 상응한 책임과 처벌이 마땅한 것이다. 반면에 유전처럼 내 선택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대로 살고 있을 따름이며, 범행도 그중 하나인 만큼 무작
범죄는 범행의 동기를 가진 잠재적 범법자, 그 동기를 행동으로 옮길 범행의 기술 또는 수단, 그리고 그 수단으로 범행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만 일어날 수 있다. 이를 두고 범죄 발생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한다. 어떤 범죄라도 과실에 의한 범죄를 제외한 적어도 전통적 의미에서의 범죄라면 범행의 의사, 의도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범죄의 동기나 의도만 있다고 모든 범죄가 다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동기가 실행될 수 있는 범행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수단과 기술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범죄 동기는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인간의 내적 추진력이나 이유로서, 개인적 욕구, 필요, 좌절 등 다양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전통적으로 범죄학에서는 범죄자의 생물학적, 유전적 요인에서부터 사회적 배경이나 환경, 그리고 개인적 기질이나 심리에 이르기까지 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범죄 동기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에 반해 범죄 기회는 범죄가 실제로 실행될 수 있는 외부적 환경이나 상황이나 조건으로서 감시가 없거나, 보안이 허술하거나, 표적이 매력적인 경우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범행의 동기가 워낙 다양하고 그 해결 또
최근 몇 년 동안, 경찰 분야에서 연구가 가장 활발한 주제는 ‘경찰의 정당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학술적으로 경찰 정당성(Police Legitimacy)이라 함은 사람들이 경찰 조직은 물론이고 그들의 법 집행 활동이 정당하며, 따라서 경찰의 법 집행과 지시에 자발적으로 따르려는 심리적 신뢰의 정도라고 한다. 이런 경찰 정당성이 중요한 것은 현대 경찰에 있어서 경찰권의 효율적인 행사는 물론이고 경찰의 존재 자체마저도 시민의 참여와 협조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민의 경찰 정당성 인식은 시민의 자발적인 법 준수는 물론, 경찰 활동에 대한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경찰 활동의 효율성을 더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더 안전하게 보호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경찰 정당성은 어디서, 어떻게 생기고 오는 걸까? 학자들은 대체로 결과와는 크게 관계없이 법 집행의 과정과 절차가 공정했는가 여부를 따지는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이는 형사사법의 패러다임이나 모형 중 하나인 적법 절차(Due process) 모형이 강조하는 바와 마찬가지다. 절차
과연 범죄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학자들은 다양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현재 전통 범죄학에서는 국가가 법으로 범죄를 규정하는 법률적 정의에 의존하고 있다. 법으로 하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거나,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면 범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범죄를 법률적으로만 규정한다면, 우리가 놓치게 되는 점들이 많아지고, 이것이 때로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차별적 정의라는 비난의 여지를 주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상식적으로 모든 인간의 행위를 법으로 다 규정할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범죄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며, 이 현상은 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해 변하게 되지만 법은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때 온라인 범죄가 처음 시작됐을 때나, 스토킹 범죄를 규정한 법률의 부재로 제대로 처벌할 수 없었던 경험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리고 법률적 정의는 법이 공정하다는 전제가 따라야 하는데, 법의 기원에서 갈등론적 관점의 법의 기원은 갈등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이 법이고, 그 법은 가진 자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도 차별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지지 못한 자들이 주로 범하는 전통적 노상 범죄엔 강경하면서도, 가
세계 어느 나라이건, 어떤 선거이건,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후보자의 개인적 능력이나 인품이나 경력도 있지만 앞으로 자신이 펼칠 정책을 약속하는 선거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선거가 아니라도 각 정당은 정당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정책을 담은 정강 정책이 있기 마련이다. 선거에서 이런 공약이나 정책 제안이 당락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것 또한 역사를 통해서 목격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보면 각 후보자와 그 후보자가 속한 정당에서는 다양한 공약과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를 토대로 자신과 당을 홍보하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된다. 정책과 공약에는 당연히 대통령선거라면 경제, 외교, 국방 등 국가적 정책 대안이 제시될 것이고, 지역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라면 그 지역에 맞는 각종 공약이 제시된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는 범죄와 안전이라는 치안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때로는 당락을 좌우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초반부터 월등하게 앞서가던 민주당의 마이클 두카키스가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 후보에게 완패했던 사실이 치안의 중요성을 확인해줬다. 물론 그의 패배에는 다양한 이유와 원인이 있겠지만, 유권자인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찰이 직무상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대표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경찰관의 스트레스는 경찰관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질환이나 고통을 초래하게 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경찰관의 스트레스가 경찰관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경찰 조직과 공공의 안전이라는 사회적 위험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직무 스트레스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직무 환경이나 여건 또는 상황으로 겪게 되는 신체적, 정신적인 부정적 반응이라고 한다. 경찰의 직무 스트레스는 상시적으로 위험에 노출된다. 시신이나 피해자를 직면해야 하는 감정적 어려움 등 경찰관의 직무 특성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특수성으로 다른 직종에 비해 그 수준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이렇게 위험 수위에 다다른 경찰의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다. 심지어는 그 정도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 해결에도 관심이 부족해 경찰관의 스트레스로 인한 개인적 비극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왜 우리의 경찰관들은 이토록 심각한 직무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을까? 살인, 자살, 심각한 상해 등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대체로 잔인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누구인지를 국민에게 공개하면서 그에 대한 감시망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자는 게 전제다. 시민들의 경계와 주의를 촉구해 재범을 어렵게 만들어 예방 및 그로 인한 공공의 안전을 도모하자는 것이 적어도 이 제도가 추구하는 명목상의 목표, 목적일 것이다. 범죄학에서도 동기를 가진 잠재적 범죄자에게 감시를 강화함으로써 범행의 기회를 차단하거나 제한함으로써 이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신상 정보 공개는 해당 범죄자에 대한 억제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장래 범행 가능성에도 억제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한다. 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누구나 유사한 범행을 하면 자신의 신상 정보도 공개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줌으로써 범죄 동기를 일반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국에서 말하는 ‘공개 망신 주기’다. 미국의 공개 망신 주기가 더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범죄자 신상 정보가 공개되면서 공개적으로 망신, 수치심을 가하는 주체가 경찰, 검찰, 법원 등 국가가 아니라 신문과 방송 등 전통 언론을 통해서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이라고 할 만큼 경제적 영향이 크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최근 우리나라는 세계인이 즐겨 찾는 일종의 해외여행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아직은 건재한 한류 열풍이 크게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5년에 관광객이 처음으로 2000만명을 넘어섰다. 2년 전과 비교해 20% 가까이 증가했을 정도로 급증했다. 당연히 관광 수지도 크게 개선되고, 국내 서비스 산업도 성장했음이 분명하다. 여기까지가 긍정이라면, 그림자도 존재한다. 외국 관광객 급증에는 명암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바로 범죄 문제다. 통계에 의하면, 2023년 3만2737명이던 외국인 범죄자 검거 인원이 2024년에는 3만5283명으로 8% 증가했다. 외국인 관광객 급증에 따른 범죄도 증가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범죄는 예방이 최선이지만, 관광산업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오히려 외국인의 출입국은 더 쉬워지고 있어 사실상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곧 범죄자나 범죄 위험이 있는 사람까지도 걸러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관광객을 수사하고 검거해야 하는 경찰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
범죄 사건이나 범죄자를 이야기할 때면 항상 떠올리게 되는 것은 대부분이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과 그 주범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연쇄살인 사건의 소식이 최근엔 비교적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총기 난사와 같은 다중 살상 사건이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연쇄살인’이 아니라 ‘연속 살인’이라고 하는 사건들이었다. 연쇄살인이나 연속 살인은 그 희생자가 다수라는 점은 같지만, 연속 살인이 살인과 살인 사이의 기간, 즉 소위 ‘냉각 기간’이 없는 반면에 연쇄살인은 대체로 이 냉각 기간을 가진다는 큰 차이가 있다. 연쇄살인이건 연속 살인이건 인간 사회에서 전쟁을 제외하고는 가장 잔혹한 범죄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참혹함에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최근 연쇄살인 소식이 뜸해지거나 거의 들리지 않고 있어서 다행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살인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연쇄살인범이 뜸한 것 같은 이유는 살인 사건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기 어려워진 때문이라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연쇄살인이란 당연히 살인범이 잡히지 않고 살인을 연쇄적으로 계속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최근 연쇄살인과 관
하루가 멀다고 안타까운 죽음과 치명적인 신체적 손상은 물론, 전 재산을 날린 사기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이 보도되고 있다. 일부 피해자는 자신의 범죄 피해자화에 책임이라면 책임이고, 적어도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범죄 피해를 당한 그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고한 피해자가 된 이들의 억울한 울부짖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도 자신의 잘못이라고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 그 사람과 한때나마 알고 지냈다는 이유 하나로 생명을 잃고 치명상을 당하고서도 오히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자기 목소리를 낼 곳도, 기회도 없고 누구하나 들어주지도 않아 철저히 소외되고 침묵을 강요받는 것이 피해자들이 겪어야 하는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 형사사법제도의 절차와 과정에서의 2차 피해와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이라는 이중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과연 우리의 사법제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며, 사법 정의는 실현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현실은 아마도 우리 사법제도와 절차의 한계와 그로 인한 피해자의 소외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차이가
기술의 발전과 점포 운영의 효율화라는 두 가지 현대사회의 큰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무인 가게, 무인 점포의 증가일 것이다. 과학기술이 주는 경제성과 편의성이 무인화의 주요 계기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점주는 물론 사회와 심지어는 절도범에게까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키고,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무인 가게와 점포에 대한 절도가 최근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에 실험됐던 학교에서의 ‘무감독 시험’을 생각나게 한다. 학생과 소비자의 양심을 시험하는 것이다. 급기야 사회 문제로까지 일컬어지는 이 무인 가게, 점포 절도는 그 자체가 주요 범죄의 하나지만, 그로 인한 추가적인 몇 가지 쟁점도 수반된다. 사적 이익의 보호를 위한 공권력의 행사가 옳은지, 이와 관련된 것으로 소액 절도 사건에 대한 법 집행으로 인한 공권력의 낭비는 없는지, 자원의 한계와 경찰 업무의 긴급성 등 우선순위로 인한 법 집행과 처벌의 신속성, 확실성, 그리고 엄중성 등 처벌의 실효성도 대두되고 있다. 여기에 무인 점포 절도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촉법소년범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경찰
어느 촉망받던 영화감독이 자정이 넘은 시간, 돈가스가 먹고 싶다는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찾은 심야 식당에서 옆자리 20대 일행과 소음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폭행으로 그는 결국 뇌사 판정을 받고 여러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간 사건이 벌어졌다. 있어서는 안 될 인명 살상의 중대 범죄지만, 더 큰 문제는 사건 이후의 상황이다. 피해자 유족 측의 주장에 따르면, 경찰의 초기 대응 부실부터 수사 지연 등 피의자 수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부실 수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개별적인 내용을 논하고 잘못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마침 형사사법 제도와 절차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대변혁이 일어나거나 곧 일어날 예정이어서 이번 사건이 끝이 아니라 유사한, 아니 더 심한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주는 가장 큰 우려는 바로 무고한 피해자의 양산과 사법 제도와 절차와 과정에 의한 ‘2차 피해자화’의 우려다. 경찰 수사는 지연되고 부실했다는 것이고, 법원의 영장 기각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다. CCTV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고, 그 물증 속에 구체적인 사건의 내용이
범죄자들이 상응한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거나 지은 죄에 대한 응보를 목적으로 한다고 형벌을 가장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처럼 범죄자에 대한 처벌로 어떤 결과나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형벌, 즉 비공리적이고 과거 지향적, 행위 지향적인 형벌이 있는 반면, 형벌을 통한 결과나 효과를 기재하는 미래 지향적인 공리적 형벌도 엄연히 존재한다. 형벌을 통해 미래에 어떤 결과나 효과를 기대하는 공리적 형벌도 다양하기는 마찬가지다. 간단하게는 구금을 통한 범행 능력의 원천적 차단, 즉 범죄자에 대한 재범 능력의 무력화라고 하는 무능력화, 수형자에 대한 처우, 교육, 훈련, 치료 등을 통한 수형자의 교화와 개선과 결과적인 사회복귀에서부터 형벌의 고통을 통한 재범의 억제를 기대하는 억제, 최근에는 사회 재통합과 회복적 사법에 이르기까지 형벌의 목적이 더욱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사회와 시민들이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그 어떤 형벌의 궁극적인 목적보다 형벌의 고통을 부과함으로써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그에 따른 응보와 고통의 위협에 의한 수형자의 재범과 잠재적 범법자들에 대한 범죄 동기의 억제와 그로 인한 범죄의 예방일 것이다. 특히, 범죄 문
최근 떠들썩했던 사건 중 하나는 이른바 ‘관계성 범죄’다. 하루가 멀다고 전 연인이 스토커에게 희생당하고, 친밀한 관계의 사람에게 배우자가 살해당하는 일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같은 유형의 범죄를 흔히 관계성 범죄라고 부르는데, 이는 말 그대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족, 배우자, 연인, 친구 등 특정한 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범죄다. 서양에서는 흔히 ‘친밀한 관계의 폭력’이라고 더 많이 불리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 관계성 범죄가 갑작스러운 현상만은 아니다. 예전이라면 개인적인 문제라거나 가정 문제, 집안 문제로 치부돼 단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여권의 신장과 사회와 형사사법기관의 인식 변화로 더 이상 개인의 사적인, 집안의 문제가 아닌 여성의 문제, 사회의 문제로 세상 밖의 공적 문제가 되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된 측면이 강하다. 인식의 전환에는 나름의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범죄학적으로, 형사사법적인 측면에서는 범죄 자체의 잔인성과 지속성, 그리고 반복성, 그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대부분의 관계성 범죄에 있어서 가해자가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인 경우라는 점을 감안할 때,
범죄학과 실존 사례에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보이는 비상식과 반대로 비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통념들이 많다. 최근 모텔 연쇄 약물 살인 사건 피의자에 대한 신상 정보 공개가 경찰의 심의위원회에서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가 ‘범죄 수법의 잔인성 조항’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이는 전적으로 여성 범죄, 여성 범죄자, 여성 범인성, 범죄성에 대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신화나 통념 때문은 아닐까 한다. 특히 이번과 같은 연쇄살인이라면 더욱 이러한 신화나 통념에 따랐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FBI의 프로파일러도 ‘여성 연쇄 살인범은 없다’고 단언하지만, 미국에서는 연쇄살인범의 약 20% 정도가 여성이다. 그것도 모든 다른 살인의 10%만이 여성의 범한다는 통계를 고려한다면, 전직 FBI 요원의 단언처럼 여성연쇄 살인범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절대다수의 살인, 특히 연쇄살인이 대부분 남성의 몫이긴 하지만, 잘못된 신념이나 통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은 폭력적인 배우자나 연인 등 남성 주범의 종범일 따름’이라는 선입견이다. 지배적인 주범 남성에 의해서 착취되고 강요됐을 뿐이라는 존재로 비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