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7000만원 ‘대리모’ 직접 구해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7.03 11:24:57
  • 호수 14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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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걸리면 불법 아닙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대리모 구합니다.” 대리모는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지다. 사정없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국내서 대리모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부담도 크다.

대리모는 문자 그대로 아이를 대신 낳아주는 여성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불임 부부라 하더라도 대리모를 통해서 아이를 낳는 것은 합법이 아닌 불법이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3조(배아의 생성에 관한 준수사항)에는 ‘누구든지 금전, 재산상의 이익 또는 그 밖의 반대급부를 조건으로 배아나 난자 또는 정자를 제공해서 이용하거나 이를 유인해 알선하면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불임 부부 
유혹 손길

이에 따라 ▲체세포복제배아 등을 자궁에 착상시키거나 착상된 상태를 유지 또는 출산하도록 유인하거나 알선한 사람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한 사람 ▲희소·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 목적 외의 용도로 체세포핵이식행위 또는 단성생식행위를 한 사람 등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리모를 통해 출산한 자녀가 친생자로 등록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2018년 5월18일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재판장 이은애 수석부장판사)는 A씨(남성)가 서울 종로구청장을 상대로 낸 가족관계등록사무의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 사건서 A씨의 항고를 기각하고 1심 판단을 유지했다.

2006년 8월 결혼한 A씨 부부는 자연적인 임신과 유지가 어렵자 국내 한 대학병원을 통해 대리모 출산 방식으로 아이를 갖기로 했다. 이후 2016년 7월, 해당 병원서 A씨 부부의 정자와 난자로 생성된 수정란을 착상한 대리모 B씨는 이듬해 3월 미국의 한 병원서 딸을 출산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 A씨 부부의 딸이 맞지만 당시 미국 병원이 발행한 출생증명서에는 대리모 B씨가 엄마로 기재됐다.

B씨로부터 딸을 인계받은 A씨는 같은 해 7월 종로구청에 딸의 출생신고를 하면서 출생신고서의 ‘모’란에 아내 C씨의 이름을 기재했다. 그러나 출생신고서에 기재된 모의 이름과 미국 병원이 발행한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모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발견한 종로구청은 출생신고를 수리하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A씨는 소송을 냈다. A씨는 “가족관계등록법이 정한 바에 따라 출생신고서에 출생증명서를 첨부했다. 생명윤리법이 금지하는 영리 목적의 대리모 계약도 아니고, 또 부부의 수정란을 착상하는 방법에 의한 대리모는 법률상 금지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으로 이동
출산까지 모든 절차 현지서 진행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인공수정 등 과학기술 발전에 맞춰 법률상 부모를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유전적인 공통성 또는 수정체의 제공자와 출산모의 의사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모자 관계는 단순히 법률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정 ▲약 40주의 임신 기간 ▲출산의 고통과 수유 등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부분이 포함돼 있어 적서적인 유대관계 역시 ‘모성’으로서 법률상 보호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우리 민법상 부모를 결정하는 기준은 ‘모의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이다. 수정체의 제공자를 부모로 보는 경우 여성이 출산에만 봉사하게 되거나 형성된 모성을 억제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자와 난자를 제공한 사람은 민법상 ‘입양’, 특히 친양자입양을 통해 출생자의 친생부모와 같은 지위를 가질 수 있다. 우리 민법상 부모를 결정하는 기준은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서 대리모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리모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부부의 정자와 난자가 건강해 수정은 되지만 자궁에 수정란 착상과 이후 과정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 ▲남편의 정자는 건강하나 아내의 난자가 수정되지 않는 경우 ▲지병 등으로 임식 혹은 출산이 산모의 건강에 심각한 위해가 될 경우 ▲비혼 혹은 미혼이나 아이를 원하는 경우 ▲게이 또는 트랜스젠더 부부가 아이를 갖고 싶은 경우다.


이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외국 대리모를 찾는다. 실제로 인터넷 창에 ‘대리모’만 검색하면 대리모를 연결해주는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최후의 수단
외국서 구해

이들 업체는 “신장이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 암 환자, 심각한 임신 중독증, 신경정신과 질환으로 투약 중인 환자, 각종 자가면역질환, 희소 질환자는 임신이 불가능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원인 불명의 난임’”이라며 “고령으로 인한 시험관 실패도 여기에 속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혼인 연령이 높아져 보통 여성은 30대 후반서 40대 초반에 결혼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후 1~2년간 자연임신을 시도하다가 난임병원서 시험관 임신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시험관서도 실패하면 연락을 주는 사람이 많다. 자연임신이 가능했다면 업체에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대리모 출산을 원하는 부부는 단 한명도 없다”며 “대리모도 결국 난임치료의 한 가지 방법일 뿐이며 직업도 있다. 이들은 자궁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자궁을 제공하고 금전적 대가를 받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대리모가 필요한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해당 사이트에는 금액과 절차도 나와 있다. 총 7회 차로 진행되며 1회 차는 한국서 동의서를 작성한다. 이때 500만원을 지불해야 하고, 2회 차는 현지에 방문해 대리모를 계약하고 정자와 난자를 채취한다. 이때 1000만원을 지불한다.

3회 차에는 대리모와 계약 후 3일 이내 500만원을 내야 하고, 4회 차에는 임신이 확정된 것을 확인한 뒤 500만원을 내야 한다. 임신 12주 차 경과 시 5차로 500만원을, 임신 24주 차가 지나면 500만원을 더 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출산 때는 현지로 재방문해야 하며 4000만원을 또 지불해야 한다. 총 드는 금액은 대략 7500만원으로 환율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넘치는
사기꾼

여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추가 금액은 ▲PGS 배아당 50만원 ▲동결보존 배아가 남아있을 경우 배아 이식 추가 시도 140만원 ▲동결보존 배아가 남아 있지 않아 이식을 못한 상태서 배아 생성 추가 시 700만원 ▲첫 방문 때 배아가 생성되지 않아 이식을 못한 상태서 배아 생성 추가 시도 시 560만원 ▲다태 임신·출산 시 500만원 ▲의학적 사유의 제왕절개 400만원 ▲자궁 외 임신 130만원 ▲임신·출산 과정 중 발생한 임신 합병증으로 수술이 필요하거나 대리모 장기의 영구적 소실 또는 기능 장애가 예상되는 경우 250만원 등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못할 금액이다. <일요시사>는 해당 업체와 상담을 시도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업체는 상담 전 결혼과 질병을 확인했다. ‘혼인 상태인 사람만 대리모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고 쓰여 있지만, 별 다른 서류 확인 절차는 없었다. 즉, 미혼이거나 불임 판정을 받지 않아도 대리모를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업체는 “상담, 계약, 배란을 위한 출국, 배아 생성 후 대리모 계약을 위한 출국, 임신‧출산 예정일을 맞춘 출국으로 과정이 진행된다. 만약 배아가 생성되지 않았거나 이식했는데 착상이 안 되면 이전 단계를 반복한다”며 “이 모든 과정이 한 번에 성공해 빨리 진행될 경우 1년이 걸린다. 대리모는 카자흐스탄서 만난다. 원래는 우크라이나서 했는데 너무 많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국가는 계속 옮기고 숨기는데, 인터넷 후기나 정보가 없는 건 우리가 통제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리모는 불법이 아니지만, 국가가 좋아하진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다. 관련 규정이 없다. 만약 불법이었으면 이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리모 지원자는 많은데 좋은 조건을 가진 대리모는 드물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좋은 조건을 가진 대리모 후보자를 선택해서 권한다”고 부연했다.

“최상 조건 여성들 준비”
1년 걸려 최소 7500만원


업체에 따르면 대리모 후보자는 나이, 체형, 인종, 출산 경험, 과거 프로그램 참여 경험 등으로 체형은 BMI 정상, 나이는 20대 중반서 후반을 가장 선호하며 가급적 러시아계 사람으로 한다. 비용이 맞지 않아 한국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모든 과정이 끝나고 대리모가 출산해도 ‘대리모 기록’은 남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업체 관계자는 “현지 병원 발행 출생기록을 갖고 현지 관공서에 출생신고 시 현지 출생증명서가 나온다. 이 증명서를 한국에 보내 구청이나 주민센터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며 “출생신고가 완료되면 아이 여권이 발급되고 그 여권으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서 출산한 자녀로 등록되는 것이다. 입양이나 대리모 사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리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선 부부가 카자흐스탄에 직접 가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진행하는 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업체는 대리모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 대면 상담부터 받아보라고 권했으며 그 외 다른 정보는 받을 수 없었다.

불법 외에도 문제는 존재했다. 법적인 보호장치가 전혀 없어 사기를 당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난자 매매와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아주겠다고 속여 1억7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30대 브로커가 항소심서 실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D씨는 2014년 10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난자를 매매하고 대리모를 알선해 아이를 낳아주겠다고 속여 피해자 6명으로부터 1억74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그는 “아파트에 대리모들이 살고 있다. 동남아 계열 대리모 4000만원, 한국인 대리모 600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피해자를 속여 난자 공여 값이나 계약금을 챙겼다. 


D씨는 또 2016년 7월 한 여성에게 미국인 불임 부부에게 난자를 제공해 대리모 역할을 해 아이를 낳아주면 5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한 뒤 계약금 300만원을 주고 난자를 불법 채취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난자를 매매하거나 대리모를 소개해주겠다고 광고하기도 했다. D씨는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는 소망을 이용해 사기를 친 것이다.

모호한 규정
싹 손질해야

한 대리모 관련 연구 전문가는 “한국은 대리모에 관한 법정 규정이 애매하다. ‘하면 안 된다’ ‘된다’ ‘뭔가 문제가 있으면 처벌한다’ 이런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정자나 난자 생식세포 공여에 대해서는 있지만, 대리모에 대해서는 없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매혈이나 장기매매를 금지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리 환자의 목적이 급해도 다른 사람의 몸을 거래하는 대리모 시술은 불법이다. 그러나 가족 간이라든지, 소위 말하는 이타적 목적과 불임 부부를 돕기 위한 시술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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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