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장모 수사·재판 풀스토리

서슬 퍼런 칼날이…여기만 비껴갔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윤석열정부의 매서운 칼날이 유독 특정 인물에게는 무뎌지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는 최근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하고 있던 경찰로부터 ‘불송치 결정’을 통보받았다. 이로써 최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세 번째 ‘수사 종결’을 통보를 받게 됐다.

검찰의 칼날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항상 ‘억울하다’고 말한다. 당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에 대한수사는 눈에 불을 켜고 하는 수사기관이 유독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와 김건희 여사 수사에서만큼은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최은순
누구인가?

특히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개발 의혹 수사에 검찰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의심한다. 실제로 이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는 1년6개월 동안 이어졌으며 사상 최장 기간, 최다 인력 투입이라는 역사를 썼다.

이 대표는 지난 3월22일, 검찰로부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이해충돌방지법, 부패방지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에 넘겨진 이 대표 관련 사건만 12건에 달하며 그는 이달 초부터 매주 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사업구조를 승인하고 내부 정보를 민간업자들에게 알려준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그가 몰아준 특혜 때문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4895억원가량의 손해를 봤고, 이 대표의 측근과 민간개발업자는 7886억원을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해당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위해 검찰이 수집한 수사 자료는 공책 기준 500여권에 달하며, 수사 검사 인력만 8개 부서, 6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모두 부장검사 이상급으로,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경찰은 최씨의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선 최근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불송치란 말 그대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고소 및 고발사건에 대해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판단한 것과 동일하다. 불송치 처리가 내려질 경우, 곧 사건은 종료 수순을 밟게 된다.

민주당 안귀령 상근부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을 내고 “경찰이 대통령 장모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바보 행세를 하고 있다”며 “경찰이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윤 대통령의 장모 최씨를 불송치했다”고 지적했다.

안 부대변인은 “최씨는 시행사 설립자고 시행사는 가족회사인데도 개발사업이 시작된 뒤 대표직을 사임했기 때문에 관여한 정황이 없다는 경찰의 변명은 황당무계하다”고 일갈했다.

민주당이 말하는 시행사와 설립자, 개발사업은 무엇일까? 이는 김 여사와 최씨, 또 그의 가족들이 연루된 회사, ‘양평시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말한다. 최씨는 2011년부터 2016까지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서 800억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아왔다.

해당 사건은 2021년 시민단체 민생경제연구소가 ‘정체불명 인허가 담당자를 처벌해달라’며 최씨를 고발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신고를 접수한 양평경찰서는 내사 중이던 사건과 동일 건임을 확인하고 정식 수사로 전환했다.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에서는 시행사인 이에스 아이앤디(ESI&D)가 깊게 관여돼있다.


개발 특혜 의혹 ‘불송치’ 결정
경검 세 번째 ‘수사 종결’ 통보

문제는 최씨 및 가족들이 이 회사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ESI&D가 양평군서 부과하는 개발부담금을 감경받을 의도로 공사비 등과 관련한 증빙 서류에 위조 자료를 끼워 넣었다고 의심했다.

해당 시행사가 사실상 최씨 및 가족들 회사인 만큼, 최씨도 사법부의 칼날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 13일, 불송치 결정을 받았다. 지분도 없고, 사업이 추진되기 전 사임했던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사업 관련자 5명이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를 적용받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점과 사뭇 대비되는 결정이었다.

특히 해당 사건에 정계 인사가 연루된 점은 많은 이들에게 공분을 샀다. 윤 대통령을 사위로 둔 최씨가 정계의 입김으로 돈을 ‘부당하게’ 벌었다는 의심 아래서다.

직접 연관자로 지목된 정계 인사는 국민의힘 김선교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4월부터 2018년 6월까지 11여년간 양평군수를 지냈고, 2013년 4월부터 2014년 1월까지는 경기도 여주·양평·이천을 담당하던 여주지청장을 역임했다.

해당 기간은 최씨와 최씨 가족이 양평군의 도시개발구역 사업을 최종 승인받은 기간과 일치한다. 공흥지구 특혜 의혹이 불거진 2021년 당시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대선주자로 활동하던 기간이었으며 김 의원은 그의 캠프에 일찌감치 합류한 상태였다.

여러 정황들은 최씨를 범죄 용의자로 만들었고, 경찰은 해당 혐의점을 집중 수사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최종 수사 결과서 최씨가 아파트 착공 등 사업을 본격화하기 전 대표이사직서 물러났던 점, 김 여사는 과거 이 회사 사내이사로 재직한 적이 있으나 그 역시 사업 추진 전에 사임했던 점, 가진 지분이 없는 점 등을 들어 혐의점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공책만
500권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은 자치단체가 민간 개발을 승인하고 개발 이익을 몰아가진 사건이다. 이 구조는 이 대표가 의심받고 있는 성남시 대장동 사건과 과정이 매우 비슷하다. 규모에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에 대해 수사 인력과 수사 의지가 차이 나는 부분은 민주당 의원들이 계속해서 지적하는 부분이다.

안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야당 인사는 아무 증거 없이 일방적 진술만으로 소환하고 구속하면서 대통령 가족에게는 조건 면죄부를 주는 불공정에 치가 떨린다”며 “공정의 탈을 쓰고 편파의 끝을 보여주는 윤석열정권의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분개하는 이유는 공흥지구 사건뿐만이 아니다. 최씨는 오금동스포츠 투자약정 위증 논란 혐의도 받았는데 해당 혐의도 2021년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건은 2003년경 거액의 이익금을 놓고 최씨와 동업자 정대택씨 간의 법적 분쟁서 비롯된 문제였다. 


최씨와 정씨는 서울 송파구 소재의 스포츠 플라자 건물을 사고 팔아 이익금 53억원을 남겼다. 당시 정씨는 “최씨가 이익금이 발생할 경우 절반씩 나눠 갖기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최씨는 ‘동업 계약이 강압에 의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논리를 펼치며 이익금을 나누지 않았다. 

법적 다툼 과정서 법무사 백모씨는 사업 제안 및 정보제공자인 정씨와 돈을 댄 최씨 간 동업 논의를 지켜보고 법무사로서 이들 사이의 이익금 배분 약정서 작성에 관여한 주요 증인이었다. 그는 이익금을 절반씩 나누기로 한 구두 약정의 존재 여부를 알고 있고, 약정서 작성 당시에도 직접 입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계속되며 계약서 작성이 ‘자발적’이었는지, ‘강압에 의한’ 것이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불거졌다. 최씨는 결국 정씨를 사기미수 및 신용훼손, 강요죄 등으로 고소했고, 이익금 배분 약정서가 ‘강요’에 의한 것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재판에 넘겨진 정씨는 구속 기소 후 1심서 2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결정적인 진술을 한 사람이 바로 법무사 백씨였다. 백씨는 최씨에게 유리한 자술서와 탄원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고, 제출받은 증거가 불충분했던 법원은 그의 진술을 주요 판단 근거로 사용했다.

정씨는 곧장 백씨가 최씨로부터 ‘금전적인 대가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해 다시 법정 분쟁을 시작했으며 백씨가 3차례에 걸쳐 최씨에게 총 2억여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데자뷰?


백씨는 2005년 7월 정씨의 항소심 7차 공판서 뒤늦게 “약정서는 내 입회 아래 자발적 동의하에 작성됐다”며 “지금까지는 위증했다”고 진술을 번복했으나 법원은 백씨의 진술이 번복된 점을 들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씨는 최씨가 백씨에게 준 2억원이 위증의 대가라며 형량이 강한 모해위증(피의자나 피고인을 처벌받게 할 목적으로 위증을 조장하는 죄)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그보다 형량이 작은 변호사법 위반죄로 징역 2년형을 확정했다.

정씨 측은 백씨가 번복한 증언을 토대로 2005년 말 백씨와 최씨를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위증했다”는 백씨 자백에도 불구하고 전부 불기소 처분했다.

정씨 측이 반발하자 검찰은 경찰의 수사보고서를 보고 1년 뒤 최씨를 약식기소했고, 최씨는 벌금 100만원을 처분받았다. 정씨 측은 “백씨의 양심고백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려 사건이 부당하게 종결됐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사자인 정씨는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반면, 최씨는 100만원 벌금형이라는 다소 약한 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최씨의 ‘혐의 없음’ 퍼레이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씨는 요양병원을 불법 개설해 국민건강보험공단서 요양급여 22억9000여만원을 부정하게 타낸 혐의로 수년간 재판을 받아왔다.

이번에 그에게 ‘혐의 없음’을 판결한 곳은 다름 아닌 대법원이었다. 최씨는 동업자들이 모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지 5년9개월 만에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일각에선 유죄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검사가 이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최씨는 2013년 2월 경기 파주시 소재에 요양병원을 개설한 후 운영에 관여하면서 같은 해 5월부터 2015년 5월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420만원을 부당 수급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비의료인이 불법으로 개설한 병원은 간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를 받을 수 없으며 최씨와 함께한 동업자들은 2017년 3월까지 모두 유죄가 확정됐다. 특히 주범으로 지목된 주모씨는 징역 4년형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공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4년형을 선고받는 와중에도 최씨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수사는 그렇게 공들이더니…
1심과 정반대로 해석한 2심

해당 사건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2020년 최씨를 고발하기에 이른다. 경찰의 첫 수사가 시작된 지 5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재수사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2020년 11월 최씨를 기소했다.

민주당은 주씨가 주범이 아니라 오히려 최씨가 주범이라고 의심했다. 최씨가 2013년 당시 요양병원 사용 목적으로 건물을 매매한 직접 계약인 중 한 사람으로 이 과정서 2억원의 계약금을 사비로 지급했고, 각종 서류에 본인의 이름을 날인했으며, 그의 큰사위를 병원 행정원장으로 앉혔다는 것이다.

병원 운영비를 일부 보조한 것도 최씨며 병원이 건물 확장을 위한 대출이 필요할 때 최씨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병원 설립과 운영, 사세 확장에 깊게 관여했던 최씨가 어떻게 입건조차 되지 않았을까? 비밀은 ‘책임면제 각서’에 있었다. 최씨는 문제가 불거지기 전인 2014년 이사장직서 물러나면서 병원 운영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책임면제 각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였던 2021년, 1심 재판부는 “요양급여 편취로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초래하고 성실한 가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 혐의가 없었다면 그런 각서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며 징역 3년 형과 함께 법정 구속시켰다. 

곧바로 항소한 최씨는 석방되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21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1월, 2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사실과 같은 증거를 두고 정반대 판단을 내린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책임면제 각서’의 성격을 1심 재판부와 달리 해석했다. 2심 재판부는 “동업자의 자금 편취 행각을 보고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며 ‘주범’이었던 최씨를 ‘목격자’로 해석했다.

엇갈렸던 1·2심 판결은 대법원으로 넘어갔고 결국 지난해 2심 재판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결문서 “공모관계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하고, 그와 같은 증명이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무죄 판결의 배경을 수사 부실로 들었으며 시간이 많이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무죄 선고의 이유를 사실상 당시 수사기관이었던 검찰로 넘긴 셈이다. 최씨는 무죄가 확정돼 해당 혐의에서는 현재 완전히 자유로워진 상태다.

당선 후…
혐의 없음

양평시 개발 특혜 혐의에서는 경찰이, 모해위증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불법 요양급여 편취 혐의에서는 법원과 검찰이 함께 최씨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장모가 여기저기 송사에 다수 연루된 점도 놀랍지만, 그때마다 처벌받지 않은 것도 놀랍다. 민주당은 사법부가 언제까지 최씨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을지, 이 대표의 재판을 준비하며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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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