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손절’ 송영길 히든카드

간, 쓸개 다 빼줬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선거를 앞두면 이 생물의 움직임이 더욱 극적으로 변한다. 최근 여야는 다수당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 앞서 내부 단속에 나섰다. 특히 전‧현직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앓고 있는 야당의 상황이 정치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2대 총선을 11개월 앞두고 연달아 악재를 만났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송영길 전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됐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송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돈봉투를 뿌렸다는 내용이다. 

전·현직
대표 리스크

검찰은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 전 대표(당시 당 대표 후보) 캠프가 조직적으로 정치자금 9400만원을 살포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 과정서 송 전 대표가 범행을 인지했거나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과 지난 1일에는 송 전 대표 자택, ‘평화와 먹고 사는 문제 연구소(먹사연)’, 선거 캠프 관계자 등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송 전 대표는 현재 돈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상태다. 지난달 24일 프랑스 파리서 귀국한 그는 당시 곧바로 검찰에 조사받겠다며 자진출석했다. 하지만 검찰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서면 진술서를 제출하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조사자가 일방적으로 조사 일정을 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지난 2일 송 전 대표는 다시 한번 ‘자진출석’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은 기자회견도 진행해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토로했다. ‘피의자 신분’인 그는 A4용지 6장 분량의 입장문을 미리 준비해 ‘전근대적 수사’ ‘인생털이 수사’ ‘이중 별건 수사’ ‘총선용 정치수사’ 등의 표현으로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신혼부부, 워킹맘, 20~30대 비서 등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며 “임의동행이란 명분으로 데려가 협박하고 윽박지르는 무도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격 살인을 하는 잔인한 수사 형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저 송영길을 구속시켜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윤석열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냈다. 송 전 대표는 “윤석열정권의 대미‧대일 굴욕외교와 경제 무능으로 민심이 계속 나빠지자 정치적 기획수사에 올인하고 있다”며 “민심이반을 기획수사로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돈봉투 살포 공모, 개인적 자금 조달 의혹 등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자진출석했다 ‘문전박대’
구속영장 피하려는 꼼수?

수사의 단초가 된 ‘이정근 녹취록’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는 “다급해진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저의 집과 측근을 압수수색했다”며 “인디언 기우제처럼 뭔가 나올 때까지 하는 마구잡이식 수사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연결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자진출석 카드를 반려했다. 사실상 ‘문전박대’였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대상자가 적법하게 진행되는 수사 절차에 대해 근거 없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단서가 확인됐는데도 수사를 안 하면 오히려 직무유기다.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실체적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송 전 대표는 10여분 만에 청사를 떠나야 했다. 이 과정서 송 전 대표의 이중적인 행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검찰 수사를 자처하며 자진출석했던 그가 초기화된 휴대전화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검찰에 따르면 송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주거지 압수수색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휴대전화에는 연락처, 통화내역, 문자 등이 없는 초기화 상태였다고 전해졌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대응은 자진출석 과정서 밝힌 ‘수사 협조’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기자회견을 통한 혐의 부인이 다수의 관련자에게 보낸 모종의 메시지가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금품 살포라는 혐의의 특성상 많은 관계자가 피의자 혹은 참고인 조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송 전 대표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지금처럼 무단출석과 대인배 놀이는 오히려 수사를 방해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권 전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송 전 대표는 자숙하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자진 출두 퍼포먼스를 벌이며 언론을 향해 대인배 흉내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빛 바랜
퍼포먼스

이어 “올해 초 이재명 대표도 검찰에 출두할 때 자신을 김대중‧조봉암에 빗대며 정치범 연기를 하더니 송 전 대표 역시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공당의 대표까지 지낸 분이 ‘나 한 명으로 퉁치자’는 식으로 사법거래를 시도해서야 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송 전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한 것에 대해서도 “탈당과 복당이 단톡방 들락거리기처럼 흔해 빠진 민주당서 탈당이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어떤 범죄 피의자도 자기 마음대로 수사 일정을 못 정하는데 이는 특권의식의 발로”라며 “겉으로는 검찰수사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검찰수사를 방해하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민주당의 태도다. 민주당 내부서조차 송 전 대표의 이번 자진출석을 두고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돈봉투 살포 의혹이라는 치명적인 악재가 발생하자 민주당 차원서 송 전 대표를 ‘손절’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문재인정부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기면서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이 당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윤석열정부 출범과 맞물려 치러진 지난 지방선거 완패로 지방권력의 추가 넘어간 부분도 총선에 대한 부담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서 전·현직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일부 의원에겐 ‘털고’ 가야 하는 흠집이 된 모양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송 전 대표의 검찰 자진출석에 관해 언급했다. 조 의원은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구속영장 청구에 대비해 ‘나는 도주의 의사가 전혀 없고 도주할 수도 없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드림으로써 구속영장 기각의 명분을 쌓겠다, 그런 여러 가지 포석을 둔 게 아닌가”라고 해석했다. 

대선 경선까지
편파적 관리?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조 의원은 이 대표가 지난달 24일,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기자의 질문을 받고 “김현아(전 국민의힘)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고 되물은 것에 대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모래에 머리 박고 있는 타조 같은 그런 모습 같은 느낌이 들어 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 역시 송 전 대표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대표는 송 전 대표에게 이른바 ‘정치적 수혜’를 입은 적 있다.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이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인천 계양을 선거구는 당초 송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회의원 배지를 내놨고 이를 이 대표가 이어받은 것이다.

‘송영길 지도부’ 체제로 치러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서도 송 전 대표가 이 대표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파적인 관리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비명계(비 이재명)서 제기된 주장으로 당시 당 지도부는 경선 도중 후보직에서 사퇴한 정세균·김두관 후보가 받은 표를 ‘무효표’ 처리했다.

그 결과 이 대표는 득표율 50.29%, 턱걸이 과반으로 간신히 결선투표를 피했다. 

이 전 총리 측이 무효표 처리를 두고 강하게 항의했지만 송 전 대표는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이재명 후보를 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로 선포했고 추천장을 공식적으로 수여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송 전 대표가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되고 귀국과 동시에 논란이 폭발하자 비명계를 중심으로 당시 상황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대표는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고개를 숙인 상태다. 지난달 17일 ‘이정근 녹취록’ 등으로 의혹에 불이 붙은 지 6일 만에 이 대표는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사과했했다. 그러면서 “아직 사안의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당으로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당 내부서도 반응 안 좋아
꼬리 자르기에 태도 바꿀까

이어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수사기관의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며 “민주당은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할 것이고 이번 사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확실하게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검찰에 비판 일변도로 대응했던 이 대표가 송 전 대표를 둘러싼 의혹은 수사기관의 힘을 빌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여기에 당시 프랑스에 있던 송 전 대표의 귀국도 요청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송 전 대표는 귀국했고 민주당서 탈당했다. 자의든 타의든 선긋기에 나선 것이다.

현재 송 전 대표는 ‘사면초가’ 상태다.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 신분도 아닌 데다 당적마저 없어졌다. 민주당 방패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치권이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아군이라 여겼던 민주당 내부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검찰이 송 전 대표를 돈봉투 의혹의 최대 ‘수혜자’로 보고 있어 수사를 피할 수도 없다.

검찰이 쥐고 있는 카드도 송 전 대표에 불리하다. 1만여건에 이르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녹음 파일이 확보된 상태고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송 전 대표의 휴대폰도 검찰로 넘어가 있다. 민주당서 의혹에 연루된 인사 일부를 정리하는 선에서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녹취록에 이름이 언급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은 자진 탈당 형태로 당을 떠났다. 윤 의원과 이 의원은 지난 3일 탈당 의사를 밝혔다. 두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비공개 최고위서 이 대표 등 지도부를 만나 이 같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원은 “그동안 여러 가지 당에 많은 누를 끼치고 국민들에게 걱정을 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여러 가지 할 말은 많지만 조사 과정서 성실하게 이 문제를 밝혀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민 여러분과 지역구, 당에 이런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 “법적 투쟁으로 진실을 밝혀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내년 총선
송에 달려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송 전 대표의 태도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 기획본부장은 이 대표의 ‘외면’에 태도를 바꿨다. 이전까지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최근에는 활발하게 입을 열고 있다. 현재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뚜렷하게 드러난 현직 의원은 2명이지만 이 사안이 언제 ‘게이트’로 번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송 전 대표의 입에 달렸을 수도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돈봉투 살포’ 국민의힘도?
민주당 때리다 역풍 맞을라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부 정비에 나선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서도 좀처럼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복원, 한일 셔틀외교 복구 등 다양한 이슈가 산적해 있는데도 지지율은 민주당에 밀리고 있다. 

당무감사위로 진상조사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 2일, 신의진 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첫 회의를 열었다.

고양시정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아 전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 전 의원이 기초의원 등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당무감사위에 진상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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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