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손절’ 송영길 히든카드

간, 쓸개 다 빼줬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는 생물이라고들 한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선거를 앞두면 이 생물의 움직임이 더욱 극적으로 변한다. 최근 여야는 다수당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 앞서 내부 단속에 나섰다. 특히 전‧현직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앓고 있는 야당의 상황이 정치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2대 총선을 11개월 앞두고 연달아 악재를 만났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송영길 전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됐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송 전 대표를 당선시키기 위해 돈봉투를 뿌렸다는 내용이다. 

전·현직
대표 리스크

검찰은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 전 대표(당시 당 대표 후보) 캠프가 조직적으로 정치자금 9400만원을 살포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 과정서 송 전 대표가 범행을 인지했거나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29일과 지난 1일에는 송 전 대표 자택, ‘평화와 먹고 사는 문제 연구소(먹사연)’, 선거 캠프 관계자 등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송 전 대표는 현재 돈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상태다. 지난달 24일 프랑스 파리서 귀국한 그는 당시 곧바로 검찰에 조사받겠다며 자진출석했다. 하지만 검찰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서면 진술서를 제출하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조사자가 일방적으로 조사 일정을 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는 게 검찰 입장이다.

지난 2일 송 전 대표는 다시 한번 ‘자진출석’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은 기자회견도 진행해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토로했다. ‘피의자 신분’인 그는 A4용지 6장 분량의 입장문을 미리 준비해 ‘전근대적 수사’ ‘인생털이 수사’ ‘이중 별건 수사’ ‘총선용 정치수사’ 등의 표현으로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신혼부부, 워킹맘, 20~30대 비서 등 주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며 “임의동행이란 명분으로 데려가 협박하고 윽박지르는 무도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격 살인을 하는 잔인한 수사 형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며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저 송영길을 구속시켜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윤석열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냈다. 송 전 대표는 “윤석열정권의 대미‧대일 굴욕외교와 경제 무능으로 민심이 계속 나빠지자 정치적 기획수사에 올인하고 있다”며 “민심이반을 기획수사로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돈봉투 살포 공모, 개인적 자금 조달 의혹 등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자진출석했다 ‘문전박대’
구속영장 피하려는 꼼수?

수사의 단초가 된 ‘이정근 녹취록’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는 “다급해진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저의 집과 측근을 압수수색했다”며 “인디언 기우제처럼 뭔가 나올 때까지 하는 마구잡이식 수사는 심각한 인권침해로 연결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자진출석 카드를 반려했다. 사실상 ‘문전박대’였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대상자가 적법하게 진행되는 수사 절차에 대해 근거 없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단서가 확인됐는데도 수사를 안 하면 오히려 직무유기다.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실체적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송 전 대표는 10여분 만에 청사를 떠나야 했다. 이 과정서 송 전 대표의 이중적인 행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검찰 수사를 자처하며 자진출석했던 그가 초기화된 휴대전화를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


검찰에 따르면 송 전 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제출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주거지 압수수색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휴대전화에는 연락처, 통화내역, 문자 등이 없는 초기화 상태였다고 전해졌다. 검찰은 송 전 대표의 대응은 자진출석 과정서 밝힌 ‘수사 협조’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기자회견을 통한 혐의 부인이 다수의 관련자에게 보낸 모종의 메시지가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금품 살포라는 혐의의 특성상 많은 관계자가 피의자 혹은 참고인 조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송 전 대표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지금처럼 무단출석과 대인배 놀이는 오히려 수사를 방해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권 전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송 전 대표는 자숙하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자진 출두 퍼포먼스를 벌이며 언론을 향해 대인배 흉내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빛 바랜
퍼포먼스

이어 “올해 초 이재명 대표도 검찰에 출두할 때 자신을 김대중‧조봉암에 빗대며 정치범 연기를 하더니 송 전 대표 역시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공당의 대표까지 지낸 분이 ‘나 한 명으로 퉁치자’는 식으로 사법거래를 시도해서야 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송 전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한 것에 대해서도 “탈당과 복당이 단톡방 들락거리기처럼 흔해 빠진 민주당서 탈당이 무슨 정치적 의미가 있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어떤 범죄 피의자도 자기 마음대로 수사 일정을 못 정하는데 이는 특권의식의 발로”라며 “겉으로는 검찰수사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검찰수사를 방해하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민주당의 태도다. 민주당 내부서조차 송 전 대표의 이번 자진출석을 두고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이어 돈봉투 살포 의혹이라는 치명적인 악재가 발생하자 민주당 차원서 송 전 대표를 ‘손절’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문재인정부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기면서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이 당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윤석열정부 출범과 맞물려 치러진 지난 지방선거 완패로 지방권력의 추가 넘어간 부분도 총선에 대한 부담을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서 전·현직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일부 의원에겐 ‘털고’ 가야 하는 흠집이 된 모양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송 전 대표의 검찰 자진출석에 관해 언급했다. 조 의원은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구속영장 청구에 대비해 ‘나는 도주의 의사가 전혀 없고 도주할 수도 없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드림으로써 구속영장 기각의 명분을 쌓겠다, 그런 여러 가지 포석을 둔 게 아닌가”라고 해석했다. 

대선 경선까지
편파적 관리?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조 의원은 이 대표가 지난달 24일, 돈봉투 의혹과 관련해 기자의 질문을 받고 “김현아(전 국민의힘) 의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고 되물은 것에 대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모래에 머리 박고 있는 타조 같은 그런 모습 같은 느낌이 들어 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 역시 송 전 대표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대표는 송 전 대표에게 이른바 ‘정치적 수혜’를 입은 적 있다.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이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인천 계양을 선거구는 당초 송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회의원 배지를 내놨고 이를 이 대표가 이어받은 것이다.

‘송영길 지도부’ 체제로 치러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서도 송 전 대표가 이 대표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파적인 관리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비명계(비 이재명)서 제기된 주장으로 당시 당 지도부는 경선 도중 후보직에서 사퇴한 정세균·김두관 후보가 받은 표를 ‘무효표’ 처리했다.

그 결과 이 대표는 득표율 50.29%, 턱걸이 과반으로 간신히 결선투표를 피했다. 

이 전 총리 측이 무효표 처리를 두고 강하게 항의했지만 송 전 대표는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이재명 후보를 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로 선포했고 추천장을 공식적으로 수여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송 전 대표가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되고 귀국과 동시에 논란이 폭발하자 비명계를 중심으로 당시 상황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대표는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고개를 숙인 상태다. 지난달 17일 ‘이정근 녹취록’ 등으로 의혹에 불이 붙은 지 6일 만에 이 대표는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사과했했다. 그러면서 “아직 사안의 전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당으로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당 내부서도 반응 안 좋아
꼬리 자르기에 태도 바꿀까

이어 “이번 사안은 당이 사실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수사기관의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며 “민주당은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조치를 다할 것이고 이번 사안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확실하게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검찰에 비판 일변도로 대응했던 이 대표가 송 전 대표를 둘러싼 의혹은 수사기관의 힘을 빌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여기에 당시 프랑스에 있던 송 전 대표의 귀국도 요청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송 전 대표는 귀국했고 민주당서 탈당했다. 자의든 타의든 선긋기에 나선 것이다.

현재 송 전 대표는 ‘사면초가’ 상태다.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 신분도 아닌 데다 당적마저 없어졌다. 민주당 방패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치권이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아군이라 여겼던 민주당 내부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검찰이 송 전 대표를 돈봉투 의혹의 최대 ‘수혜자’로 보고 있어 수사를 피할 수도 없다.

검찰이 쥐고 있는 카드도 송 전 대표에 불리하다. 1만여건에 이르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녹음 파일이 확보된 상태고 압수수색도 진행됐다. 송 전 대표의 휴대폰도 검찰로 넘어가 있다. 민주당서 의혹에 연루된 인사 일부를 정리하는 선에서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녹취록에 이름이 언급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은 자진 탈당 형태로 당을 떠났다. 윤 의원과 이 의원은 지난 3일 탈당 의사를 밝혔다. 두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비공개 최고위서 이 대표 등 지도부를 만나 이 같은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원은 “그동안 여러 가지 당에 많은 누를 끼치고 국민들에게 걱정을 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여러 가지 할 말은 많지만 조사 과정서 성실하게 이 문제를 밝혀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민 여러분과 지역구, 당에 이런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린다”면서 “법적 투쟁으로 진실을 밝혀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내년 총선
송에 달려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송 전 대표의 태도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 기획본부장은 이 대표의 ‘외면’에 태도를 바꿨다. 이전까지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다가 최근에는 활발하게 입을 열고 있다. 현재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뚜렷하게 드러난 현직 의원은 2명이지만 이 사안이 언제 ‘게이트’로 번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송 전 대표의 입에 달렸을 수도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돈봉투 살포’ 국민의힘도?
민주당 때리다 역풍 맞을라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몸살을 앓고 있는 사이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부 정비에 나선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서도 좀처럼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복원, 한일 셔틀외교 복구 등 다양한 이슈가 산적해 있는데도 지지율은 민주당에 밀리고 있다. 

당무감사위로 진상조사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 2일, 신의진 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첫 회의를 열었다.

고양시정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아 전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 전 의원이 기초의원 등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당무감사위에 진상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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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