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야권을 중심으로 논의된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의 통과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해 2개의 문턱을 남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있었으나 갑작스레 정의당이 입장을 뒤집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면 적어도 4월 임시국회 안에 처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정의당은 이달 초까지 국민의힘과 ‘50억 클럽 특검법’ 협상을 이어왔다. 더불어민주당과의 교감을 중단하고 소통을 이어갔으나 인내심에 한계가 온 분위기다.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직을 방패막이로 추가 회의 일정도 잡지 않는 등 소극적 행보를 보인 탓이다. 민주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계획이다.
소극적 행보
적극적 추진
50억 클럽 특검법은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그간 국민의힘과 소통해온 정의당이 입장을 선회하면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패스트트랙은 국회법 제85조의2에 따라 긴급하고 중요한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일정 기간 내에 해당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하는 제도다. 국회의원 전체 혹은 소관 상임위원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서명을 받아 국회의장이나 위원장에게 제출하면 패스트트랙 지정이 가능하다.
이후 표결을 진행해 국회의원 전체 또는 상임위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해당 법안은 패스트트랙이 된다.
앞서 국민의힘은 현재 대장동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어 특검법 추진이 옳지 않다고 반대해왔다. 정의당은 국민의힘의 이 같은 기조를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새다. 민주당이 오는 27일 국회 본회의서 50억 클럽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에 동참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의당은 4월 임시국회 안으로 50억 클럽 특검법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면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최근 확정했다.
법사위에서 절차를 밟아 특검법을 통과시키려던 정의당이 입장을 바꾼 것은 최근 법안심사1소위에서 일어난 국민의힘 소속 소위원들의 항의성 퇴장의 여파인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소속 소위원들은 지난 11일 열린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특검 추천 권한과 수사 대상 등을 문제 삼아 항의한 뒤 퇴장했다.
이로써 50억 클럽 특검법은 민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의결된 특검법은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발의한 ‘화천대유 50억 클럽 뇌물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법안에는 비교섭단체서 특검 후보를 추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만 50억 클럽 특검법이 당장 법사위 전체회의서 다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법사위 의결을 위한 전체회의 상정 권한은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쥐고 있는 탓이다.
정의당 입장이 정리되자 민주당은 이달 중으로 50억 클럽 특검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데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또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함께 이달 내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당 정책조정회의서 “어제(12일) 이정미 대표가 ‘법사위서 50억 특검법이 지체된다면, 4월 임시국회 내에 신속처리안건 지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김 여사 특검법도 함께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며 “비록 늦었지만 정의당의 진전된 결단을 다행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특검법 법안심사소위 민주당 의결로 통과
국힘 반발 집단퇴장 여파? 돌연 입장 선회
국민의힘의 반대는 여전하다. 여당 소속 법사원들은 최근 성명서를 통해 “대체 민주당은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을 배제한 채 50억 클럽 특검법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특별검사 제도는 수사가 미진하거나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보충적이고 예외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공조가 확실시되면서 50억 클럽 특검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오는 27일 본회의서 특검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큰 편이다. 패스트트랙 지정 요건은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 찬성이다. 다만 패스트트랙에 180석이 필요한 만큼 민주당 169석과 정의당 6석 외에도 5석 이상이 더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소수당과 무소속 의원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가도 특검이 꾸려지는 데 두세 달의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최장 240일이 지난 뒤 열리는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대장동 사건을 화두로 띄울 수 있다.
야권의 쌍특검 맹공을 두고 법조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회의론이 나온다.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의 1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50억 클럽 의혹을 명확하게 규명하자는 취지의 특검법의 실제 내용이 대장동 의혹 전반을 포괄하는 데다 수사 대상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까지 포함될 수 있어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특검이 직접 곽 전 의원의 무죄 판결을 뒤집기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이 과거 발의한 50억 클럽 특검법안에는 ▲50억 클럽 등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자들의 불법자금 및 부당한 이익 수수·요구·약속 및 공여 등 의혹 ▲대장동 개발을 위한 사업자금 및 개발수익과 관련된 불법 의혹 ▲천화동인 3호 소유자 등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자들의 부동산 거래 특혜 및 불법 의혹 ▲1~3호까지의 의혹 등과 관련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으로 정하고 있다.
보충적이고
예외적으로
수사 대상으로 50억 클럽 의혹을 넘어 대장동 의혹 전반을 포괄하는 식이다. 수사 대상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들어갔다.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의 누나는 성남의뜰로부터 배당받은 개발 수익으로 2019년 윤 대통령 부친으로부터 집을 샀다는 의혹을 받는데, 특검법은 이 부분까지 들여다보겠다고 명시했다.
법안 통과가 현실화된다고 해도 곽 전 의원에 대한 공소 유지는 검찰이 계속 담당한다. 이 같은 한계점 때문에 특검이 직접 곽 전 의원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힘들다. 특히 법안 통과 직전 검찰이 관련자들을 재빠르게 재판에 넘기거나 윤 대통령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하면 민주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검찰은 뒤늦게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 기소 후에는 동일 범죄사실로 압수수색할 수 없기에, 새로 인지한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지난 11일 호반건설과 부국증권 사무실 등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곽 전 의원 부자의 뇌물 및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발부받은 영장이다.
우선 검찰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를 새로 적용해 입건했다. 개편 전 수사팀은 곽 전 의원에게 뇌물 및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해 공소장을 구성했다. 다만 1심에서는 이 두 혐의가 무죄로 판단됐다.
이전 수사팀은 범죄수익은닉 규제법 위반 혐의로는 기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 수사팀이 이 혐의를 새로 인지해 영장을 발부받은 것이다. 검찰은 화천대유가 2021년 2월, 곽 전 의원 아들 병채씨에게 퇴직금, 성과급 등 명목으로 50억원(세금 등 공제 후 약 25억원)을 지급한 것은 뇌물과 알선의 대가라고 보고 있다.
또 이 부분은 산업은행 컨소시엄과도 연관돼있다. 검찰은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의 컨소시엄 이탈을 무마해줬다고 의심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하나은행에게 컨소시엄 이탈을 압박했다는 정황 등을 보강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뒤늦은
재수사
검찰은 화천대유가 뇌물 및 알선의 대가를 직원인 병채씨의 퇴직금과 성과급 등 명목으로 가장해 지급한 것은 범죄수익을 은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까지 50억 클럽 관련 혐의로 기소된 인물은 공여 혐의를 받는 김씨를 제외하고는 곽 전 의원이 유일하다. 검찰이 곽 전 의원을 기소할 당시 아들 병채씨는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에는 병채씨가 피의자인 뇌물 혐의 고발 사건 등이 남아있고, 범죄수익은닉 혐의도 추가로 입건해서 수사 중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법원이 영장을 발부해준 것은 수사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은 곽 전 의원에 대한 1심 판결 후부터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왔다.
결국 검찰 수사는 곽 전 의원 부자가 ‘경제 공동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방향으로 집중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곽 전 의원 1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배척하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미 결혼한 병채씨가 곽 전 의원과 경제 공동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6년차 대리급 직원에게 세금 공제 후에도 약 25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성과급·퇴직금으로 지급된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곽 전 의원과 김씨만 재판에 넘겨졌으나 박영수 전 국정 농단 사건 특별검사와 양재식 변호사에 대한 수사도 갑작스레 빨라졌다.
일각에선 정치권의 50억 클럽 특검 논의를 막으려는 명분을 만들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정치권의 특검 논의를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실상 ‘적과의 동침’
4월 내 본회의 마무리
우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등 혐의로 박 전 특검과 양재식 변호사의 주거지와 사무실, 우리은행 본점·성남금융센터·삼성기업영업본부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결재 서류와 은행 거래내역 등을 확보했다.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 김씨 등이 대장동 개발사업 공모를 준비할 때 부국증권 배제 등 컨소시엄 구성을 돕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청탁하는 대가로 50억원을 받기로 한 혐의를 받는다. 양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민간업자와 실무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특검 딸은 화천대유서 일하면서 2019년 9월∼2021년 2월 11억원을 받기도 했다. 박 전 특검 측은 연이율 4.6%, 3년 기한의 정상적인 대출로 회사 회계장부에 대여금으로 처리됐고, 차용증도 있다고 주장했으나 50억 클럽 의혹과 엮이면서 ‘수상한 거래’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의 딸은 대장동 아파트를 분양받아 8억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대장동 업자들과 연결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양 변호사는 박 전 특검이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강남서 일하며 2016년 특검보로서 박 전 특검을 보좌했다. 대장동 민간개발업체에 부산저축은행 대출을 알선한 브로커로 지목된 조우형씨의 변호를 박 전 특검과 함께 맡기도 했다.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서 대장동 일당은 양 변호사를 영입한 것을 두고 ‘신의 한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검찰은 이달 8일 김씨를 대장동 범죄수익 390억원 은닉 혐의로 기소한 뒤 이 수익이 로비 명목으로 50억 클럽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금 추적을 이어왔다. 검찰은 이날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뒤 참고인 조사를 거쳐 양 변호사와 박 전 특검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곽 전 의원, 권순일 전 대법관,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수남 전 검찰총장, 홍선근 <머니투데이> 미디어그룹 회장 등 다른 50억 클럽 범죄 혐의도 계속 추적할 방침이다.
박영수 제외
수사 제자리
검찰의 빨라진 수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특검 추진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한 의원은 “지난달부터 50억 클럽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검찰이 갑작스레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충분히 의혹이 제기돼왔음에도 이제 수사를 시작한 부분이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관계자도 “민주당과 추가 논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이달 내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며 “검찰 수사를 무작정 지켜보기만 하자는 국민의힘과의 대화는 배제하고 있다”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