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냄새’ 전두환 후손들 곳간 해부

무슨 돈으로 삼형제 먹고 사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전두환 손자 전우원씨의 폭로로 전두환 일가 비자금 은닉 의혹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가는 모양새다. 전씨 일가와 관련된 각종 기업체에서는 수상한 자금흐름이 관측됐다. 전우원씨 발언으로 비밀금고, 미술품 등 10여년 전 제기됐던 비자금 은닉 수법이 재조명받기도 했다. 올해는 전두환씨가 “29만원밖에 없다”고 밝힌 지 20년째 되는 해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이나 숨어있던 ‘검은돈’을 이번에는 모두 찾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고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할아버지의 연희동 자택에는 하늘에서 돈이 쏟아지듯, 계속해서 현금뭉치가 들어왔다”고 폭로했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전씨 일가의 비자금 의혹에 구체적 폭로가 덧칠되면서, 점차 비자금 은닉처와 그 수법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비밀금고
현금다발

우원씨는 지난 1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연희동 자택 내부에 비밀금고가 두 곳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그는 아버지 전재용씨의 둘째 부인이자 자신의 친모인 최모씨에게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을 종합해 폭로를 이어갔다.

그는 “할머니(이순자씨)가 쓰는 옷장 벽을 밀면 금고가 있고 창고쪽 복도 끝에 가서 벽을 밀면 또 금고가 나왔다고 (제 어머니가) 말하더라”며 “아는 사람이 밀어야지만 금고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가)금고를 열고 들어가면 1000만원 단위 현금이 묶여서 준비돼있고, 차곡차곡 (방 전체)벽에 쌓여 있었다고 하더라”고 부연했다.

그는 현금이 너무 많았던 나머지 비밀금고 밖에도 현금 가방이 놓여 있었으며, 가족들이 연희동 집에 커다란 더블백을 가져와 수억원씩 담아갔다고도 주장했다.


현금 규모에 대해선 “정말 하늘에서 돈이 쏟아져 내려오듯이 비서와 경호원들이 계속 돈다발이 담긴 큰 가방을 들고 와 쌓아놓고 또 쌓아놨다가 아는 분들이나 가족이 오면 가져갔다”며 “상상할 수 없는 규모”라고 회상했다.

다만 지금은 연희동에 돈뭉치가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수사가 한 번 진행되고 난 후에는 확 줄어들었고 그 이후부터 (돈가방을 쌓아 놓는 일은) 안 했다”며 “아마 다른 곳에 돈을 챙겨 놓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우원씨는 지난달 자신의 해외생활 자금 출처를 비자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때 그는 자신이 미성년자였을 때 명의를 이전받은 자산 목록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비엘에셋의 지분 20%, 웨어밸리 비상장 주식, 준아트빌 등이 모두 한때 자신의 소유였다. 

10년간 지지부진…비자금 찾기 새 국면?
‘수상한 저수지’ 의혹 업체 다시 수면 위

비엘에셋은 전재용씨 가족이 지분 100%를 소유했던 부동산 개발회사며, 웨어밸리는 전재용씨와 전두환씨 측근이 돌아가며 대표직을 지낸 IT보안업체다. 준아트빌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고급 부동산이다. 이들의 가치는 당시에도 수십억원에 달했는데, 이 재산이 비자금을 통해 형성됐다는 주장이다.

우원씨는 자신이 미성년자였던 시절 전재용씨가 비자금을 은닉할 목적으로 명의변경을 추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비엘에셋 지분은 2013년 추징됐고, 비상장 주식은 전재용씨의 ‘황제노역’ 이후 계모 박상아씨에게 양도했다”는 등 구체적인 자금흐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전재용씨는 외삼촌 이창석씨와 함께 27억원 이상을 탈세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원을 선고받았다. 2016년 7월부터 2019년 2월까지는 노역형에 처해졌다. 전재용씨는 약 2년 반 동안 노역한 대가로 벌금 38억6000만원을 탕감받았다. 


이외에도 웨어밸리는 배당금을 통해 전재용씨의 비자금을 세탁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웨어밸리는 2020~2021년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약 15억원을 지급했다. 지난해에도 약 4억원을 지급했다. 

우원씨는 자신이 박상아씨에게 증여한 비상장 주식을 전재용씨가 사용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웨어밸리는 ‘비자금 저수지’로 지목했다. 해당 주장대로라면 약 20억원에 달하는 배당금 중 일부가 전재용씨 수중에 들어갔을 수 있다. 

정확한 기억
손자의 폭로

웨어밸리가 2015년 2억원, 2017년 3억원 이후 배당금 지급이 뜸하다 전재용씨가 출소한 이후부터 3년 연속으로 배당금 지급에 나선 점도 의심을 키운다. 이미 웨어밸리는 2013년 검찰 ‘전두환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에 5억5000만원을 환수당했다.

수사팀이 웨어밸리에 전두환씨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판단하고 ‘제3자 추징’을 실시한 것이다.

전두환씨의 차남 전재용씨 외에도 장남 전재국씨, 삼남 전재만씨 모두 벌여둔 사업들이 비자금과 연관돼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동안 전재국씨는 출판 사업을 통해 독립생계를 유지 중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검찰은 2021년에도 전재국씨가 운영하는 출판사인 시공사에서 3억5000만원을 추징했다. 시공사에도 전두환씨 비자금이 일부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전재국씨는 시공사 외에도 북플러스·리브로 등의 실소유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세 업체 간의 내부거래 내역에서 20여년간 약 150억원대의 횡령·배임이 있었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됐다.

각 업체 감사보고서에 기재된 상호 간 내부거래액이 각기 달랐는데, 이를 모두 합산하면 156억원에 달했다. 전재국씨가 비교적 조작이 쉬운 내부거래액 항목을 이용해 비자금을 횡령·세탁했다는 의심이 나온다. 

자금흐름
볼 수 없나

또 전재국씨는 음악 관련 출판사인 ‘음악세계’를 통해 수천억대 규모의 해외 부동산사업을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전재국씨는 2019년 베트남 노른자위 땅에 약 7500억원 규모의 부동산사업을 벌이려다 실패했다. 음악 출판사가 아파트 공사 시행사로 들어갈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당시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해당 사업은 토지 비용과 공사비 등으로 7500억원, 이자 등으로 1400억원을 투입해 총 1조4000억 매출을 거둘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 토지 소유자에게선 전재국씨 측이 해당 사업을 먼저 제안했고, 수개월 이내에 약 2000억원을 입금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재국씨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어떻게 조달할 계획이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일각에서는 전재국씨가 은닉 비자금을 활용한 자금 조달 방안을 계획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전재만씨가 장인 이희상 전 동아원 회장과 공동 운영 중인 양조장 ‘다나 에스테이트’ 역시 비자금 창고 의혹을 받고 있다. 우원씨는 지난달 이곳에 관해 “‘검은돈’의 냄새가 난다”거나 “최고의 돈세탁 시설이 아닌가 싶다”고 직격했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미국 내 고급 와인 산지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위치했다. 해당 양조장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비교적 고가에 판매된다. 비싼 품목은 한 병에 100만원을 호가한다. 이마저도 회원제로 사전예약을 해야 구입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5월 이뤄진 한미정상회담 만찬 테이블에 오른 와인인 ‘바소’ 역시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주다. 이 양조장의 현재 가치는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원은 이곳에 700억 이상을 꾸준히 투자했다. 2016년 동아원이 무너지면서, 이곳의 경영권이 사조그룹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출판사, IT기업, 양조장…
보여도 이제 못 잡는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이 전 회장 측이 경영권을 되찾은 상태다. 


전재만씨가 양조장 대표로 활동한 이후로 이곳에 전씨 일가의 비자금이 흘러갔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으나,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원씨는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가서 땅값을 확인해보라. 게다가 와이너리는 대규모 최첨단 시설이 필요해 돈이 넘쳐나는 자가 아니고서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분야가 절대 아니다”고 지적했다.

양조장 사업 시작부터 상당한 비자금이 투입됐을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우원씨는 일가가 고가의 미술품을 활용해 비자금을 은닉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2013년 전씨 일가에게서 다양한 미술품을 압수해 추징금을 환수한 바 있다.

최씨는 지난 7일 방영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서 우원씨와 통화하며 “집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 김환기 화가의 대표작 파란 그림이 있었다. 문짝 두 개만한 크기의 몇 십억원짜리 그림이었다”며 “(전우원씨가)어릴 때 우리 집 식탁 뒤에 걸려 있었는데 아빠(전재용씨)가 액자만 버리고 그림만 말아서 새엄마(박상아씨)에게 갖다줬다”고 증언했다.

전씨 일가는 2013년 9월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미납 추징금을 모두 납부하겠다”고 공언했다. 전두환씨가 2003년 재판서 자신의 예금액이 29만1000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지 10년째 되던 해였다.

전씨 일가가 자진 납부를 약속하면서, 검찰은 연희동 자택을 비롯한 부동산과 금융자산 등 모두 1703억원(당시 추산가) 상당을 추징할 방침이었다. 전두환씨의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살짝 웃도는 액수였다.

하지만 전씨 일가의 반발과 연이은 소송으로 추징금 환수율은 답보상태에 놓였다. 전씨 일가가 자진 납부를 공언했던 2013년에서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도, 환수율은 58.2%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공매 수익 추징을 두고 법적 분쟁 중인 오산 땅(55억원 상당)을 포함해도, 미납 추징금은 867억원이 남는다.

부역자들
입 열까?

2021년 11월 전두환씨가 사망하면서 비자금 추적과 추징금 집행은 사실상 요원해졌다. 비자금 조성에 직접 관여한 이의 ‘양심선언’ 없이는 실체 파악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원씨는 앞으로 또 다른 양심선언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돈세탁을 도와주신 분들은 당연히 얻는 게 너무나 많기 때문에 충성을 다하고 지금도 입을 닫고 있다”며 “대가로 받은 것들이 회사나 아파트 등”이라고 말했다. 우원씨와 최씨는 전두환씨의 비서들이 목동 소재 아파트 등을 보수로 받아갔다고 주장한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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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